The Youngest Prince Returned as a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02)
천마가 되어 돌아온 막내황자-102화(102/213)
* * *
한 여기사가 항구 근처의 버려진 물류 단지를 배회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과거에 창고로 쓰이던 많은 건물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관리가 되지 않아서 많이 손상된 상태였다.
금이 가거나 무너져 내린 벽면.
붉게 녹이 슬어 있는 철문.
창틀 여기저기에 처져 있는 거미줄.
거리 곳곳에는 아무렇게나 버려진 기물들이 가득해서, 왠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났다.
어느새 하루해는 서산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고 땅에는 해그늘이 길게 늘어졌는데, 이 풍경 속에는 묘한 위화감이 드는 부분이 있었다.
스륵― 스르륵―
[으음… 여기인 것 같네.]유독 커다란 창고 건물 앞에서 중얼거리는 여기사.
그녀에게는 그림자가 없었다.
외형도 마치 색을 반쯤 빼놓은 것처럼 반투명한 것이 꼭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았는데…?
스르르륵―
놀랍게도 그녀는 창고 건물의 벽면을 스며들 듯이 뚫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여기사의 정체는 줄리아.
2황녀의 호위기사였으나 임무 중에 죽었으나, 죽어서도 그녀를 돕고 있는 ‘유령’이었다.
[이건…?!]창고 안쪽에 들어간 줄리아는 눈앞에 보이는 기괴한 풍경에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일단 가운데에는 커다란 원형의 감옥이 있었고, 쇠창살 사이로는 수백 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리고 주목할 만한 특이점으로는 바닥에 복잡한 문양의 마법진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었다.
[미친놈들… 아이들을 제물로 삼아서 뭔가 저지를 생각인가?]그런데 마법 쪽으로는 식견이 없어서 구체적으로 무슨 짓을 하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줄리아는 창고 내부를 좀 더 살펴봤는데, 사전에 파악한 것과 조금 다른 부분을 발견했다.
[머릿수는 들은 대로 마흔 정도 되어 보이네. 그런데 흑마법사는…?]아무리 둘러봐도, 한 명밖에 없었다.
분명히 다른 유령들에게 듣기로는 두 명이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에반과 싸우고 알렌을 납치한 자는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았다.
에반이 싸웠다는 자는 가면에 ‘스페이드 4’가 적혀있었는데, 이자는 ‘클로버 5’였다. 왼팔도 잘 붙어 있는 데다가, 체형도 들은 것과는 완전히 달랐고.
[앗, 그렇다면 3황자님은…?!]홱―
갑자기 쌔―한 느낌이 든 줄리아가 황급히 알렌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창고 안쪽을 샅샅이 뒤져봐도 머리카락 한 올도 찾을 수가 없었다.
* * *
[뭐라구요? 알렌이… 흑마법사 한 명과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다구요?] [그래도 여기서 먼 곳에 있지는 않을 겁니다.] [아, 그렇겠네요. 인질의 활용도가 떨어질 테니까요.]정찰을 마치고 돌아온 줄리아와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아리아드네.
옆에 있는 에반이 보기에는 허공을 보며 가만히 멍―때리는 것으로만 보였는데….
힐끗.
‘뭘 보는 거지?’
소년은 눈썰미가 제법 좋은 편이었고, 2황녀의 회색빛 눈동자는 분명히 허공 어딘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뭔가 느껴지는 것도 없었다.
그렇게 잠깐 시간이 지난 뒤.
아리아드네가 창고 안쪽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 * *
“그러니까… 지금 저기에는 알렌 전하가 없지만, 아리아 황녀께서는 알렌 전하의 위치를 쉽게 찾으실 수 있으시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맞아요.”
나는 눈앞의 소녀에게 여러 번 놀랐다.
일단 갑자기 흑마법사들의 위치를 찾아낸 것도 놀랐고, 지금 창고 안쪽의 상황을 직접 보고 온 것처럼 훤히 파악한 것도 놀랐다.
‘도대체 어떤 힘을 쓴 거지?’
확실한 것은 ‘마법’은 아니었다.
아리아드네는 모종의 아티팩트를 사용했다고 하지만, 거짓말일 확률이 높았다.
내가 바로 옆에 있었는데도 이렇다 할 마나의 움직임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으니까.
“아! 방금 알렌의 위치를 알아냈어요.”
“…예??”
지금도 마찬가지.
분명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그녀는 잠시 허공을 쳐다보더니 갑자기 알아냈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정말로… 누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군.’
새삼스레 씁쓸한 감상에 잠겨 있었는데, 아리아드네가 손가락을 들어서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
스윽.
“이쪽 방향 직선거리로 200m쯤 떨어진 창고에요.”
“흠… 거기는 상황이 어떻습니까?”
“에반 공자가 얘기한 것처럼 왼팔이 잘린 흑마법사가 있네요. 가면에는 왼쪽 눈 아래 ‘스페이드 4’가 적혀있대요.”
그런데 얘기를 듣다 보니, 묘하게 위화감이 느껴지는 표현이 있었다.
바로 ‘적혀있대요’라는 말.
‘마치 다른 사람에게 얘기를 전해 들은 것 같군.’
그렇다면 뭔가를 소환해서 부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령이나 모종의 사역마 같은 것들.
물론 이 궁금증을 해결하는 게 당장 급한 일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인질은 본거지와 다른 곳에 숨겨놓고, 협상을 벌이려고 했나 봐요.”
“덕분에 우리에게는 일이 더 쉬워졌습니다.”
“맞아요, 에반 공자.”
아리아드네가 빙긋 웃으며 오른손의 팔찌를 매만졌다.
그러자 그 형상이 변하면서 한 자루의 레이피어가 되었는데, 딱 봐도 보통 물건이 아닌 듯했다.
‘여기서는 적당히 놀라는 척을 해줘야겠지…?’
“황녀님…? 뭔가 예사롭지 않은 능력이 있으신 것 같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검술도 익히셨었습니까?”
그런데 아리아드네의 반응이 조금 미묘했다.
빙긋.
“네에. 조금요.”
“흐음… 하지만 함께 전투에 뛰어드시기에는 조금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후훗, 이래 봬도 세검술에는 꽤 자신 있답니다. 에반 공자는 이미 알고 있을 텐데요.”
“…예?”
내가 어떻게 안다는 거지?
소리를 내서 물은 것은 아니었는데, 아리아드네가 마치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먼저 말했다.
“그, 왜~ 고수들은 그냥 딱 보면 상대를 파악하고 알아볼 수 있다잖아요. 아닌가요?”
“아… 네…….”
빙긋.
“그러면 이제 가보도록 하죠.”
또 의미심장한 미소.
뭔가 두루뭉술하게 넘어간 것 같긴 했지만, 황녀가 딱 선을 그었기에 나도 더 이상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아까 승차감이 나쁘지 않았는데, 한 번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피식.
“물론입니다.”
나는 기꺼이 그녀를 다시 안아 들었고, 경공을 펼치며 몸을 날렸다.
굽이굽이 물결치듯 아름다운 회색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렸고, 우리는 곧 알렌이 붙잡혀 있다는 창고에 도착했다.
* * *
“읍― 읍읍―!”
들썩― 들썩―
커다란 창고. 이 넓은 공간의 한가운데에는 한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거기에는 웬 소년이 묶여있었다.
윤기 나는 금발이 인상 깊은 푸른 눈동자의 미소년.
3황자 알렌이었다.
“크크큭, 어린 황족께서는 기운도 좋으시군.”
“읍! 으으으읍―!”
“그렇게 애써 봤자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을 테지만.”
히죽.
흑마법사 스페이드 4는 어떻게든 포박을 풀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알렌을 비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의 위치는 철저히 숨기기로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때.
콰앙―!!!
“뭐, 뭐냐?!”
갑자기 거대한 폭음소리가 나더니, 창고 벽면 한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뿌옇게 피어오른 먼지구름.
그 속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전광석화처럼 날아들었다.
쐐애애액―
“이건…?!”
왠지 낯익은 비도술.
루크 공작령에서 만났던 베르딘 후작가의 사생아가 자신에게 꽂아 넣었던 수법, 암영비살(暗影飛殺)이었다.
이미 피하기에는 늦은 상황.
“건방진 베르딘의 애송이가! 뒈지고 싶어서 여기까지도 쫓아왔구나!”
츠즈즈즛―
그가 하나 남은 팔을 앞으로 뻗어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새까만 어둠의 마나가 흘러나와서 실드(Shield)를 만들었고.
콰과과광!
“크윽….”
날아온 단검들은 모두 실드에 가로막혀 흑마법사에게 꽂히지는 못했다. 하지만 담겨있던 오러가 상당했기에, 막아냈다고 하더라도 아예 피해가 없을 수는 없었다.
쿠화아아앙―
“흑마법사아아아!”
나는 곧바로 흑야광풍보(黑夜狂風步)를 밟으며 무시무시한 기세로 질주했다.
정면에서 이 정도로 압박을 넣으면, 다른 곳으로 눈 돌리기는 힘들어질 터였다.
이어지는 초식은 나찰쇄혼참(羅刹碎魂斬).
“그아아아!”
슈와아아악―
몬스터의 뼛가루를 섞어 넣은 롱소드에 천마기가 듬뿍 스며들었다.
여기에다가 3서클을 달성하고 얻은 특수능력 ‘속성변환’을 통해서 ‘강철’ 속성으로 변환시켰는데―
아르바니아에서는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마나 속성이었지만, 중원에서는 음양오행 중 금(金) 속성이 있었기에 내게는 익숙했다.
콰앙―!!!
“크악!”
피하기에는 너무 늦었던 흑마법사는 결국 내 일검(一劍)을 직접 받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러운 기습공격에, 미처 약물로 육체를 강화하지 못했던 스페이드 4가 가슴팍에 기다란 자상을 입은 채로 튕겨 나갔다.
“지금입니다!”
“알겠어요!”
스스스슥―
그 틈을 타서, 아리아드네가 잽싸게 알렌이 있는 쪽으로 몸을 날렸다.
“뭐, 뭐야?!”
“하앗!”
푸푸푹―
순간 칼날이 번뜩이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레이피어가 한 줄기 빛살이 되어서 뻗어 나갔다.
인질을 지키고 있던 사내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른 채 급소를 찔려서 즉사했다.
그야말로 일격필살(一擊必殺).
‘과연… 대단한 실력이군.’
검술대회에서 맞붙었을 때도 느꼈지만, 그녀의 검술은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나야 회귀를 했다고 쳐도, 아리아드네의 저 비정상적일 정도로 고절한 기예는 대체 뭘까?
“읍?! 읍읍―!”
“후훗, 지금 풀어줄게.”
사락―
내가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아리아드네가 알렌의 포박과 입에 물려있던 재갈을 풀어줬다.
그러자 알렌이 답답했던 숨을 한 번에 몰아 내쉬면서, 즉시 궁금했던 내용을 물어봤다.
“푸하― 누나아아!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파란 눈동자가 휘둥그레진 것이, 어지간히도 놀랐나 보다.
하긴, 대외적으로 아리아드네는 병약한 소녀로 알려져 있었고, 알렌 역시도 그렇게 알고 있었으니까 놀라는 게 무리는 아니었다.
빙긋.
“나중에 얘기해줄게. 그보다, 다친 곳은 없어?”
“응! 귀하신 몸이라고 조심조심 다뤄주더라고!”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는 알렌.
하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상태가 썩 좋지 않아 보였다.
아마도 트리스탄 리에트를 구하려다가 입었던 부상 때문인 것 같았는데….
아리아드네는 못 말리겠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렌, 왜 그렇게 위험한 행동을 한 거니?”
“그거는… 리에트 공자가 아직 친구는 아니지만, 그래도 친해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헤헷.”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 저렇게 천진난만해 보여도 역시 ‘나’는 바보가 아니었다.
한편.
내가 남매의 대화에 귀 기울이고 있을 때, 한쪽 벽면에 처박혔던 스페이드 4가 어느새 약물로 강화된 거대한 몸뚱이를 드러냈다.
“으아아아아! 이 애송이 새끼가…!”
파앙―
지면을 박차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쇄도해오는 흑마법사 스페이드 4가 눈 깜빡할 사이에 지척까지 접근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