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Prince Returned as a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20)
천마가 되어 돌아온 막내황자-120화(120/213)
“계약?”
“그래. 내가 힘과 지식을 빌려주는 대신에, 너는 내게 걸려있는 속박을 끊어주는 거야.”
프라가라흐의 제안은, 나로서는 나쁠 게 없었다.
애초에 이게 고대 마도유적지 발굴에 뛰어든 목적이기도 했었고.
하지만 아무리 좋다 해도, 확인하지도 않은 채 덥석 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흠… 기간은 어떻게 되는 거지?”
“네가 충분히 강해져서, 나를 이 검에서 풀어줄 수 있을 때까지.”
아, 역시.
항상 너무 좋다 싶은 제안에는 함정이 있는 법.
“그건 아니지. 설령 내가 네 속박을 풀어줄 수 있는 수준이 되어도, 내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을 수 있다.”
나는 계약해지의 조건에 ‘내 문제의 해결’도 포함시켰다.
원래의 몸을 되찾든, 지금 쓰고 있는 몸의 문제를 해결하든.
그러자 프라가라흐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 그러면 만약 네 문제가 해결이 아예 불가능하다면, 내가 영원히 너한테 매여 있으라고?”
“네가 내 문제를 풀어주는 게 불가능하다면, 굳이 내가 너와 계약을 맺을 필요가 있을까?”
“하! 이봐, 이봐… 그러지 말고 잘 생각해봐. 일단 계약을 하면 빠르게 강한 힘을 얻을 수 있게 되는데, 그러면 너한테도 좋은 거 아니겠어?”
“그래봤자 목적을 이룰 수 없다면, 아무 소용없지.”
“끙, 물론 너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래도 너는 나름대로 도움을 받으면서 그 과정 중에 나는 안식을 찾을 수 있으니, 이건 서로에게 이득이라고!”
프라가라흐는 어떻게든 나를 설득해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나 또한 이런 식으로 순순히 프라가라흐를 놔줄 생각은 없었다.
녀석이 말은 좀 자신 없게 하고 있었지만, 나는 프라가라흐가 붙어있으면 내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했으니까.
하지만 이런 속내를 내비치지는 않고, 차갑게 웃어 보였다.
히죽.
“글쎄? 나는 원래 태생이 남 좋은 일은 그냥 못 해주는 성격이라서.”
“뭐, 뭐라고?!”
“사람이 의리가 있어야지, 자기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고 쏙 빠져나가면 되겠나?”
“아니, 그래도 저 죽을 것 같다고 옆 사람도 같이 끌고 들어가는 건 좀 아니지 않아?”
“그래? 싫으면 어쩔 수 없군. 나는 의리 없는 것들이랑 같이 안 다니는 주의라서.”
“헐… 자, 잠깐만! 그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좀 더 조건을 조율해보도록 하자! 어?”
그러나 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내 문제도 함께 풀어져야 한다는 조건에서 단 한 발자국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
인기척이 나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야… 익숙한 기운과 낯선 기운이 같이 느껴져서 와봤더니,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을 데려왔구나?”
새까만 흑발에 잘 깎아놓은 조각 같은 미소년.
핏빛 눈동자를 탐욕으로 번들거리고 있는 그것은, 분명히 내가 쓰고 있는 몸 ‘에반 베르딘’이었다.
“으잉?? 저, 저건 뭐야?!”
갑작스러운 불청객의 등장에, 프라가라흐는 깜짝 놀라서 나와 에반 베르딘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봤다.
그리고는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네가 쓰고 있던 저 몸… 그냥 빈껍데기가 아니라, 자아를 가지고 있는 거였어?!”
“흠흠… 그게…….”
하지만 나한테 물어봤자, 내가 뭘 알아야지.
그런데 대답은 다른 쪽에서 나왔다.
“이런이런~ 멀쩡히 살아있는 나를 무생물 취급하다니, 이건 기분이 좀 나쁜데?”
히죽.
소년이 팔을 넓게 벌리며, 이죽거렸다.
“이렇게 많은 영혼들을 품고 있는데 말이지! 아하하핳!”
“…미친 새끼.”
핏빛 하늘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박혀있는 새까만 대지 위에 서서 광소를 터뜨리고 있는 소년의 모습은 분명 보는 사람이 압도되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하지만 프라가라흐는 눈빛을 반짝이며 다른 부분에 주목했다.
“그런데 지면에 박혀있는 영혼들, 그리고 여기 있는 이 친구 손목에 감겨있는 속박까지 해서… 왜 이게 너한테 연결이 안 되어 있는 거지?”
움찔.
“…뭐라고?”
예리한 질문이었고, 그 순간 나는 똑똑히 봤다.
질문을 들은 저놈의 표정이 경직되는 것을.
“후후훗, 곧 내 영양분이 될 놈이 별걸 다 궁금해하네?”
“얼씨구? 칼에 매인 것도 짜증 나 죽겠는데, 나를 또 옭아매 보시겠다고?”
“맛있어 보이는 알사탕이 알아서 입안에 들어왔길래.”
“아서라. 너도 무지막지한 괴물처럼 보이지만, 너 따위가 삼키기에는 이 몸이 사이즈가 너무 크니까.”
“흐응~ 그래? 크면, 조각조각 토막토막 잘라서 먹으면 되지!”
프라가라흐와 붉은 눈의 에반 베르딘.
둘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며, 서로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그리고 대화는 딱 여기까지였다.
츄릅.
“그러면….”
스르르륵―
입맛을 다진 에반이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암영무흔보(暗影無痕步).
다시 나타날 곳은 프라가라흐의 좌측 후방.
“잘 먹겠습니다아아아♡”
“지랄 마라!”
카앙―!
나는 멍―하게 서 있던 파란 머리 청년을 대신해서 에반 베르딘의 일검을 막아줬다.
뒤늦게 움직임을 쫓아서 깜짝 놀란 프라가라흐.
“뭐야?! X발 언제 여기에…?”
“정신 차려라!”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좀 우스꽝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고대 마도제국의 황태자.
그리고 9서클의 대마법사였던 그였다.
“작은 괴물이… 꽤 재밌는 잔재주를 부리는구나?”
쿠구구궁―
그가 서클을 가동시키자, 황금빛 눈동자에 영롱한 빛이 어렸다. 그러면서 일순간 주변 일대가 크게 들썩거리더니, 주변에 일곱 개의 광구(光球)가 형성되어 둥둥 떠올랐다.
위이이잉―
이것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여서 에반 베르딘에게 황금빛 광선을 뿜어냈는데.
파아아앙!!!
“큭?!”
파밧―
소년은 간발의 차로 그것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으니….
위잉― 위잉― 위이이잉―
파앙! 파앙! 파바바방!
일곱 개의 광구들은 에반 베르딘의 주위를 정신없이 맴돌며 계속해서 광선을 쏴댔다. 그런데 이게 그냥 막 쏘는 게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공격이었다.
그것들은 절묘하게 사각지대를 노려서, 퇴로를 어디 한 곳으로 고정되게 만들면서 야금야금 상대 운신의 폭을 좁혀갔다.
마치 몰이사냥을 하는 것처럼.
“으으… 날파리처럼 왱왱대는 게…!”
결국 에반 베르딘은 어디로도 피할 수 없는 벼랑 끝에 몰리게 되었고, 여유만만했던 소년의 얼굴은 와락 일그러졌다.
“까불지 마라아아아!”
츄르르르륵―
콰광! 퍼버버벙!
결국 회피하는 것을 포기한 에반이 돌연 전신에서 새까만 기운들을 뿜어냈다. 그러자 검은 오러가 마치 촉수들처럼 꿈틀거리면서 황금빛 구체들을 터뜨렸고.
“이, 이 마나는 분명히…?!”
프라가라흐는 상당히 놀란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놀라움의 포인트가 ‘공격’ 그 자체에 있지 않았다.
나는 정면의 에반 베르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옆에 있는 그에게 물었다.
“고대에도 어둠의 마나가 있었나?”
“뭐? 저게 어둠의 마나라고?”
그런데 질문을 받은 프라가라흐는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냐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저건 천륜을 거스른 대가로 얻어진 ‘오염된 마나’야.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어둠의 마나와는 완전히 다른 거라고!”
“오염된 마나?”
“그래! 네 말을 들으니, 지금 시대 사람들은 뭘 잘 모르나 본데… 색깔만 시커멓다고 다 똑같은 게 아니야.”
“…아하.”
얘기를 들어보니, 나는 하나의 가설이 떠올랐다.
현재 아르바니아에서 활개 치고 다니는 흑마법사들의 발원이 프라가라흐가 말하는 고대 마도제국의 배신자들이 아닌가 하고.
이건 프라가라흐도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이제 보니까, 그 저주받을 작자의 후손들이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나 보네. 저 끔찍한 괴물을 만들어낸 것도 그놈들일 확률이 높아 보이고.”
“음… 그렇군.”
어쩌다 보니 흑마법사의 연원에 대해 알게 된 느낌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파밧!
“뱃속에 들어온 먹잇감 주제에! 얌전히 붙잡히기나 해라!”
츄르르르륵―
재차 몸을 날려오며, 어둠의 마나로 만들어진 검은 오러의 촉수를 날려 보내는 에반 베르딘.
붉은 눈동자에서는 살기와 탐욕이 번들거렸고, 수십 개의 촉수가 순식간에 나와 프라가라흐를 덮쳐왔다.
“쳇… 파이어 실드(Fire Shield)!”
나는 특수능력으로 마나 속성을 화염으로 변환시키고, 실드를 전개하려고 했다. 이렇게 한 타이밍 자리에서 막고 그대로 전진해서 반격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마법이…?’
시동어를 외웠는데도 아무 현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새 익숙해져 있어서 이제야 퍼뜩 깨달았는데, 지금 이 상태로는 몸에 서클조차 없었다.
순간 당황했던 그때.
우우웅―
화르르륵!!!
갑자기 주변에 마나의 움직임이 일더니, 불길이 치솟아서 장막처럼 나와 프라가라흐를 둘렀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생각한 게 잘 안 됐나 보네.”
“하… 그러게. 덕분에 어떻게든 됐군.”
“이젠 어떻게 할 거지?”
“이렇게.”
쿠화아아아아―
촉수를 막아낸 뒤, 나는 흑야광풍보(黑夜狂風步)를 밟고 에반 베르딘에게로 쇄도했다.
그 모습은 검은 바람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것과도 같았고, 보법과 연계되는 초식은 귀면 수라난무(鬼面 修羅亂舞).
“그아아아압!”
서걱― 서걱― 서걱―
짧게 끊어치며, 끊임없이 몰아치는 무한의 연격 속에서 검은 오러의 촉수들은 무참히 잘려 나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나는 덮쳐오는 촉수들을 인정사정없이 베어가며,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제법이지만, 그 정도로는 안 된다는 것은 지난번에 충분히 알았을 텐데?”
츄르르르륵―
시야를 가득 메우며 날아오는 촉수들 사이로, 뒤쪽에 서 있는 에반의 주위에 검은 얼음의 창들이 생겨났다.
파슷… 파스슷….
“아하하하! 어디 한번 이것도 막아봐라!”
쐐애애애애액―
“크윽, 젠장…!”
촉수만이었으면 모를까.
여기에다가 수십 발의 아이스 스피어(Ice Spear) 마법이 더해지자, 막아내기가 상당히 어려워졌다.
하지만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나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괴물아, 마법은 너만 쓸 줄 아냐?”
화르르르륵!
별안간 뒤에서 불기둥이 날아오더니, 검은 얼음의 창과 허공에서 맞닥뜨렸다.
치이이이익―
“칫, 먹잇감 주제에 발악이라니!”
“뭔 개소리를 지껄이는지. 삼킬 능력은 되고?”
“닥쳐라! 자아도 없는 사물에 묶인 망혼 따위가…!”
“풉. 그런 내게 털리고 있는 너는?”
“뭐, 뭐라고?!”
계속해서 깐죽거리며 시비를 거는 프라가라흐.
과연 이자가 고대에 아르바니아 대륙을 제패했던 마도제국의 황태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경박해 보이긴 했는데….
도발의 효과는 대단했다.
뿌드득.
“이 하찮은 벌레가아아아!”
쿠구구구궁!!!
결국 폭발한 에반 베르딘.
놈이 포효하자, 갑자기 심상세계의 검은 대지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슈화아아아….
“이, 이게 뭐야?! 끄아아악!”
“아, 아파! 살려줘!”
지면에 박혀있는 사람들은 마구 비명을 질렀고, 전신에서 아지랑이 같은 희끄무리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츠즈즈즛―
츄화아아아아아!!!!
그러더니 손목에 감겨있는 검은 사슬에 빨려 들어갔고, 에반 베르딘에게서는 어둠의 마나… 아니, ‘오염된 마나’가 폭발적으로 치솟아 올랐다.
“이봐… 이건 좀 빡세겠는데?”
“…후우, 첩첩산중이군.”
이 순간, 멍―한 표정으로 멀리서 지켜보는 나와 프라가라흐는 차마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기고만장한 꼬마 괴물은 광소를 터뜨리며 이죽거렸다.
“아하하하핳! 자, 어디 다시 한번 해보자고!”
역시… 쉽게 갈 수는 없나 보다.
2차전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