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Prince Returned as a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5)
천마가 되어 돌아온 막내황자-15화(15/213)
루크 공작가와의 밀약(密約).
나는 후작도 당연히 찬성할 줄 알았다.
그런데 반응이 뭔가 이상했다.
부들부들….
“그건 안 된다.”
“…예?”
처음에는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곧이어 터져 나오는 일갈(一喝).
“그건 절대로 안 된다고 하였다!”
쿠화아아앙―
“큭… 아, 아버지…!”
일순간 터져 나온 오러가 강력하게 압박해왔다.
아니….
그냥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절대로 안 된다고?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렇게까지 반대하는 건데?!
언뜻 살펴본 후작의 표정은 뭔가….
격하게 감동받은 것처럼 고무되어 있는 한편, 굳은 결의 같은 것이 엿보이기도 했다.
‘이 반응은… 뭐지?’
아니, 그보다도… 이러면 기껏 고심하면서 미리 생각해둔 계획이 전부 틀어지게 된다.
‘후우, 일단 상황 파악이 먼저다.’
침착하게….
대체 내가 놓친 게 무엇인지.
“저기… 아버지?”
“말하거라.”
“혹시… 소자가 이유를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그러자 후작이 조금 멋쩍어하면서 대답하는데, 나는 이유를 듣고 나니 살짝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흠흠! 에반… 아무리 네가 똑똑하고 뛰어나다지만 아직은 열 살의 어린 나이다. 벌써 어른들의 일을 걱정하면서, 네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결정지을 필요는 없다.”
“네? 인생의… 중요한 문제요?”
“그렇다. 나는 네게 정략혼 따위를 강요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말이다.”
“…네에? 정략혼이요???”
이건 또 웬 헛소리인지?
어느새, 옆에서는 집사 세바스가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맞습니다, 막내 공자님! 가문을 위해 기꺼이 한 몸 던져 희생하시려는 마음은 갸륵하나,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어…….”
아무래도 이 사람들이 지금 뭔가 큰 오해를 하는 것 같다.
“저기… 아버지?”
“말하거라.”
“소자, 루크 공녀와 혼약을 맺겠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뭐라고?”
이에, 당황한 후작과 세바스.
“분명히 루크 공녀와 좋은 관계를 맺고, 가문끼리도 잘 지내게 해본다고 하지 않았더냐?”
“아니, 그게 아니면 도대체 무슨 뜻으로 말씀하신 겁니까?”
“저는 당연히 ‘정치적인 관계’를 말씀드린 겁니다.”
나는 내 생각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풀어놨다.
“제 생각에는요, 우리도 제국 모든 영지를 대상으로 직접 몬스터 사체를 팔려면 일도 많아지고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살짝 멍―했던 후작의 눈빛이 다시 날카롭게 빛났다.
그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강한 흥미와 호기심.
“저희가 있는 서부를 제외하고는 중부, 동부, 남부, 북부에 각각 독점 거래처를 두는 거예요. 저희가 필요할 만한 뭔가를 얻을 수 있는 곳으로요.”
“오호라… 그리고 중부의 거래처는 루크 공작가로 두자는 얘기로구나.”
“그렇죠.”
“맙소사… 아니, 벌써 거기까지 생각을!”
세바스는 아까와는 또 다른 의미로 놀란 것 같았다.
하지만 후작의 반응이 살짝 애매했는데…?
“확실히 좋은 생각이구나. 허나….”
“뭔가 걸리는 부분이라도 있으세요?”
“나는 루크 공녀가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 내용들을 공작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과연.
후작 입장에서는 이런 중대 사항을 어린 공녀를 통해 얘기해야 한다는 것이 못내 불안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인세라도 보통내기가 아니었지.’
말은 통하고도 남을 거다.
게다가 이번 일은 마탑의 얀델에게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야 했다.
후작과 공작이 직접 움직이는 것은 어불성설이었고, 기사나 가신들 통해서 접촉해도 얀델에게 괜한 의심을 살 수 있었다.
나는 이런 부분들을 얘기하면서 거듭 설득했다.
“아버지. 저도 열 살이지만, 루크 공녀 또한 보통이 아닙니다.”
“크흠… 네가 그렇게 얘기한다면야…….”
결국 후작은 내 제안을 허락했다.
못내 걱정스러워 보이기는 했지만.
“…정말로 루크 공녀와는 아무 사이도 아닌 게지?”
어… 그 불안하다는 포인트가 어째 루크 공작가와의 밀약에 대한 부분이 아닌 것 같긴 했지만, 아무튼!
“절대로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흠흠! 걱정은 무슨… 아무튼 잘 다녀오너라.”
“알겠습니다.”
나는 곧바로 다음 날 아인세라를 만났다.
* * *
몬스터들이 바글바글한 제국의 3대 마경(魔境).
베하마그 산맥은 베르딘 후작령의 서편과 맞닿아있었다.
때문에 후작령 내에서 영주성은 서쪽에 지어졌고, 성 바깥쪽으로 베하마그 산맥과 연(連)하는 경계선에는 거대한 방벽이 세워졌다.
베하마그 산맥의 영향으로, 이 지역에서만 채석되는 특유의 검은 석재를 통해 지어진….
“우와아― 여기가 ‘검은 방벽’이구나.”
지금 에반과 아인세라는 축조된 이래로 단 한 번도 뚫린 적이 없다는 불패의 방벽 위에 서 있었다.
솨아아아―
저 멀리 보이는 베하마그 산맥으로부터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어지러이 흩날리는 소년과 소녀의 머리카락.
이들의 뒤쪽에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호위기사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베르딘의 하버 란돌프.
루크의 제스 플립.
어제 성 밖으로 나갈 때도 호위를 맡았던 기사들이었는데, 어째 자신들의 어린 주군을 바라보는 눈빛에 묘한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어휴, 저 사람들이 정말….’
저들을 쳐다보는 순간만큼은 같은 생각인 두 사람.
여기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아인세라였다.
“대단하네. 이런 엄청난 방벽이 버티고 있으니까, 저 무시무시한 베하마그 산맥을 앞에 두고도 영지가 존속할 수 있는 거겠지?”
“물론이다. 검은 방벽이 아니었으면, 몬스터들로부터 제대로 된 방어가 어려웠을 테니까.”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5년 뒤, 베하마그 산맥으로부터 일어날 ‘재앙’을….
그로 인해 베르딘 후작령은 멸망하게 되었고, 이것은 다섯 번의 회귀 동안 단 한 번도 예외가 없었다.
‘에반 베르딘. 과연 너는 이렇게 될 미래를 알고 있을까?’
아인세라는 궁금했다.
그래서 슬쩍 물었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응.”
“검은 방벽이 뚫릴 정도로 강력하거나 많은 수의 몬스터들이 몰려오면 어떻게 해?”
모르는 사람들이 듣기에는 이 질문은 우문(愚問)일 터였다. 지금껏 500년이 넘도록 제국이 존재하면서,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에반은 진지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몬스터 웨이브라도 일어날까 봐?”
“…그럴 수도 있잖아.”
이 말을 들은 소년이 피식 웃었다.
“재미있군. 너처럼 영민하고 예리한 사람이 수백 년 제국 역사상, 아직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걱정하다니.”
“아니, 뭐…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그렇군.”
아인세라는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상대를 시험해보려고 던진 질문에, 오히려 시험을 받게 된 기분이랄까.
이렇게 그녀가 조금 무안해하고 있는데, 에반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대로는 막기 어렵겠지.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도 반드시 막아낼 수 있도록 만들 거다.”
자신의 질문만큼이나 의아한 대답.
“수백 년 동안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었던 일을 대비한다고?”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그래.”
두 사람은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뭔가 아이러니한 기분이었다.
‘뭐야… 진짜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는 거야?’
이건 아인세라의 생각이었고.
‘질문의 뉘앙스가 미묘하군. 꼭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을 아는 듯한… 아니면 그냥 단순히 감이 좋은 건가?’
에반 역시도 아인세라에게 분명 뭔가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도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걸까?
‘차차 알게 되겠지….’
지금은 따로 해야 할 얘기가 있었다.
* * *
마침 먼저 얘기를 꺼낸 아인세라.
“그래서… 검은 방벽을 구경시켜주겠다는 것은 핑계였을 테고, 진짜 용건은 뭐야?”
그녀의 녹색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이 눈빛을 마주 보니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생각에.
“별건 아니다. 우리와 루크 공작가가 밀약(密約)을 맺으면 어떤가 해서.”
나는 정화된 몬스터 사체를 판매할 때, 향후 중부지방의 고정 거래처를 루크 공작가로 지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 적당히 마진을 붙여서 루크 공작가가 다시 중부지방의 다른 영지에 팔면 되는 것이고.
“나쁘지 않기는 한데… 조건은?”
“시중 가격의 70%로 마정석을 사고 싶다.”
“아하….”
아인세라는 듣자마자 내가 왜 이런 제안을 하는지 즉시 이해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공작에게서 어제 회담에 대한 얘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음, 나쁘지 않은 조건이긴 한데….”
아니, 오히려 이 정도면 꽤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그녀는 순순히 승낙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무릇 정치란 그런 것이니까.
“베르딘은 워프게이트를 만들고 운영하려면 마정석이 꼭 필요하겠지만, 우리 루크는 당장 새로운 사업이 필요하지는 않아.”
“아, 그래?”
이 말은 허세일 게 분명했다.
왜냐하면, 지금은 루크 공작가도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기일 테니까.
“그러면 이 제안이 카니온한테 갈 텐데, 괜찮나?”
“뭐, 뭐라고?!”
카니온 후작가.
빌어먹을 1황자 ‘키르젠’의 외가다.
황제의 외척이라는 이점을 이용해서 급속도로 세를 확장시켜 나가고 있는 중부의 대귀족.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아주 전형적인 악질이기도 하다.
‘후후, 지금 이 시기에는 루크 공작가와 카니온 후작가가 중부의 패권을 놓고 한창 싸우고 있었지.’
대대로 중부 귀족들의 수장은 루크 공작이었다.
초대 루크 공작이 개국공신이기도 했고, 영지 내에 마나석 광산이 있다는 것도 한몫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루크 공작가를 밀어내려는 카니온 후작가의 기세가 심상치 않을 거다.
“음~ 내가 알기로는 상당수 중부 귀족들이 루크에서 카니온으로 줄을 갈아탔다지?”
“너어!”
아인세라가 대뜸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카니온이 어떤 놈들인지 알아? 그 새끼들은….”
“쓰레기지.”
“…뭐?”
뜻밖의 대답을 들어서 그런 걸까?
살짝 멍―해진 아인세라를 두고서, 나는 이 뒷말을 이어갔다.
“돈만 된다면 밀수, 카지노, 심지어 사람까지 파는 놈들. 사업하다가 수틀리면 음지에서 폭력으로 조지는 건 일상다반사고.”
“뭐야… 꽤 잘 알고 있네?”
“어쩌다 보니.”
그냥 잘 아는 정도가 아니라, 카니온은 내게도 원수 같은 놈들이다.
3황자였던 시절에 1황자는 내게 별별 지랄을 했고, 이놈이 수족으로 부리는 것이 외가였으니까.
“나도 솔직히 카니온보다는 루크 공작가가 훨씬 믿음이 가고 좋다. 하지만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군.”
“칫…….”
잠깐 뭔가 고민하는 듯한 아인세라.
하지만 이미 아까와는 표정부터가 달랐다.
“후우― 좋아, 그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지.”
“후후후, 탁월한 선택이다.”
이건 내가 카니온 후작가를 언급했을 때부터 뻔히 예상한 결과였다.
한편, 그녀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베르딘은 변방에서 중앙정치 따위는 전혀 신경 안 쓰고 사는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가 봐?”
“그냥 돌아가는 상황 정도는 주시했을 뿐이야.”
스윽―
어느 정도 얘기가 되자, 나는 품속에서 미리 준비해온 ‘비밀협정문’ 두 장을 꺼냈다.
여기에는 내가 말한 조건들이 이미 적혀있었고, 아래쪽에는 베르딘 후작과 루크 공작의 서명란이 있었다.
“서명하는 동시에 본인의 마나가 이 협정문에 스며들게 될 거다.”
그렇게 되면 어떤 방법으로도 위조가 불가능해진다.
나는 한 장을 아인세라에게 건네주고, 루크 공작의 사인을 받아오게 했다.
이렇게 해서, 실질적인 협상은 종료되었고―
일주일 뒤.
조사단은 클로브를 통해 몬스터 사체가 정화되는 것을 확인한 뒤에 황도로 향했다.
떠나는 이들의 발걸음은 곧 베르딘이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내딛는 첫 발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