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Prince Returned as a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53)
천마가 되어 돌아온 막내황자-153화(153/213)
* * *
환한 대낮임에도 창문들이 전부 짙은 회색빛 커튼으로 가려져 있어서 어두컴컴한 집무실.
희미한 미등만 켜놓은 채, 페르반 베르딘은 책상에 앉아 홀로 생각이 깊었다.
특히 요즘은 대공비의 장례식으로 북부에 다녀온 이후로 시름이 깊었는데… 문제는 역시나 자신의 막내아들 ‘에반 베르딘’ 때문이었다.
갑자기 대공에게 검술 지도를 받게 되어서 혹시나 무슨 사고를 치게 되지는 않을까 해서 따라갔던 것인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조직의 계획을 대대적으로 방해하고 말았다.
‘후우- 심지어 로열 클래스까지 죽었으니….’
그는 자신이 잘 감시하면 에반이 엉뚱한 곳으로 튀는 것을 잘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일을 겪어보니 그 생각은 ‘오산’이었다.
‘확실히 에반을 강제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긴 한데….’
원래 설계했던 ‘암시’가 통하지 않아서 곤란한 상황이었다. 어쨌든 조직에서는 절대로 이번 일을 좌시할 리가 없었고, 그는 이제 조직과 대대적으로 싸워야 할 상황에 대비해야 했다.
당장 끄나풀 역할을 해주던 ‘클로버 2’도 지난번에 북부에서 대공을 제거하려는 일을 방해하지 말라는 경고 이후로 다시 오지 않고 있었고.
‘필시 제거당한 것이 분명하렷다….’
톡. 톡. 톡. 톡.
그가 무의식중에 검지로 책상을 두드리고 있을 때, 집무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더니 두 사람이 들어왔다.
몬스터 사체로 만든 검은색 가죽 갑옷을 입은 ‘기사’와 단정한 정장 차림에 안경을 쓴 ‘집사’였다.
“후작님, 부르셨습니까?”
“무슨 일이신지요.”
베르딘의 기사단장인 하버와 집사인 세바스.
페르반 베르딘의 측근 중의 측근이었다.
그는 두 사람이 들어와서 자리에 앉기 무섭게,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번에 대공성에서 일어난 일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나?”
“예? 아아! 우리 에반 공자님께서 흑마법사들을 모조리 소탕하고 해치운 것 말씀이십니까? 역시 굉장하시지요, 우리 에반 공자님은! 와하하하핫!”
“아니… 그게 아니고…….”
페르반의 질문은 분명히 진중했으며 심각했다. 하지만 팔불출 하버가 전혀 포인트를 못 잡는 것 같자, 옆에서 세바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공성에서 흑마법사들에게 대공비가 납치당하신 사건 말씀하시는 것이죠?”
“맞다. 원래는 암중에서 은밀히 움직이던 자들이었는데, 점점 하는 짓이 대범해지더니 이제는 제국 귀족들을 직접 납치하고 살해할 정도가 됐다.”
“으음… 설마 후작님께서는 흑마법사들이 우리도 노릴 것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뭐라고? 후작님, 안경잡이 말이 진짜입니까?!”
깜짝 놀라서 눈이 번쩍 뜨인 하버.
두 사람을 보며, 페르반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2년간 에반이 그자들의 계획을 무산시킨 것이 몇 번째인가? 이번에도 놈들이 대공을 죽이려던 음모를 밝혀내지 않았나.”
“…생각해보니, 충분히 타겟이 될 만하군요.”
부들부들.
“감히 쥐새끼 같은 놈들이… 우리 에반 공자님을 노리려고 하다니!”
하버는 당장이라도 대검을 뽑아 들고 흑마법사들을 찾아 나설 기세였다. 그가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큰소리쳤다.
“후작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흑마법사 놈들이 오면, 이 하버가 나서서 모두 대갈통을 부숴놓겠습니다!”
“정말 든든하네요, 하버. 하지만 불청객들이 찾아왔을 때를 대비해서 나름대로 준비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준비? 무슨 준비? 안경이 기사가 아니라서 요즘 우리 애들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모르나 본데…!”
지난 2년 동안, 에반의 지도하에 베르딘의 군세는 어마어마한 성장을 이뤘다. 특히 기사들의 오러 운용 능력이 대폭 향상되었고, 일반 병사들 중에서도 자질이 뛰어난 자들은 오러유저의 경지에 대거 오르기도 했다.
확실히 하버가 자신감을 드러낼 만했는데, 이게 다 에반이 가르쳐준 무림의 ‘내공심법’ 덕분이었다.
하지만.
“미리 준비해둬서 나쁠 것은 없겠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일단 치안대와 외곽 수비대의 경계 태세를 강화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쩝, 그건 제가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공연히 머쓱해진 하버가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가 눈치껏 대화에 편승해서 아이디어를 냈다.
“흐으으음~ 그러면 마탑 지부에도 요청해서 마법사들의 도움도 받는 것은 어떨까요?”
“좋은 생각이다. 그건 세바스가 연락하도록.”
“알겠습니다.”
“오오오! 후작님, 아예 신전에도 영주성에 상주할 사제들을 요청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본인 의견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자, 금세 신이 난 하버가 또 다른 의견을 냈다. 그러나 이번 의견에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페르반.
“아니. 신전까지는 괜찮다.”
“네에? 그 양반들이 고리타분하긴 해도 쥐 잡는 데에는 고양이가 딱이라고, 흑마법사 놈들 잡기에는 사제나 성기사가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성안에 들어오게 할 필요는 없다. 굳이 얘기한다면, 신전에는 영주성 바깥쪽의 순찰을 강화해달라고 하면 되겠군.”
“알겠습니다.”
이 외에도 페르반은 하버와 세바스에게 몇 가지 사항들을 더 주문했고, 두 사람은 집무실에서 나가자마자 즉시 행동에 나섰다.
이날부터, 베르딘은 본격적으로 손님 맞을 준비에 들어갔다.
‘흑마법사’라는 불청객을.
* * *
“어마마마, 소녀 아리아입니다.”
“왔구나. 이리 오렴.”
북부에서 황도 아스카로네에 돌아온 아리아드네. 그녀는 돌아오자마자, 2황비 실비아를 만나러 갔다.
2황비는 이미 대공령에서 있었던 사건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에반이 대외적인 상황 때문에 적당히 둘러댄 것이 아니라, 사실은 ‘대공비’가 흑마법사였다는 진실을.
“네가 고생이 많았구나. 그래도 잘해 주었다.”
“아니에요. 그런데… 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후훗, 그래. 뭐가 궁금하니?”
부드럽게 빙긋 웃어 보이는 실비아.
우아하고 기품있는 그 모습은 어느 한 곳도 흠잡을 데가 없어서, 마치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미소에는 어딘가 묘한 위화감이 있었고, 아리아드네는 저 미소가 ‘가면’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조심스레 2황비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어마마마는 처음부터 숙부님의 상황을 알고 저를 보내신 건가요?”
모르는 사람이 듣기에는 조금 뜬금없이 들릴 수도 있는 질문이었다. 대공성 사람들을 비롯해서, 그 누구도 모르고 있던 사실을 항상 풍전등화처럼 위태롭고 가녀린 2황비가 어찌 안다는 말인가?
하지만 실비아는 말없이 가만히 웃어 보였고, 이어지는 대답은 놀라웠다.
“그렇단다. 그러니까 네가 대공령에 간다고 할 때, 대공의 영혼을 주의 깊게 살펴보라고 일러준 것이 아니겠니.”
“도대체 언제부터….”
“몇 년 됐지. 하지만 내가 굳이 대공에게 개입할 이유가 없었단다. 명분도 없었고, 얻을 만한 실익도 없었고.”
원래대로라면, 실비아는 대공의 영혼에 걸려있는 저주를 모르는 척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2년 전, 동부 리에트 공작령에서 ‘에반’이 죽음의 안개를 없애준 일을 계기로, 2황비궁과 대공이 이끄는 반황제파 귀족들은 손을 잡게 되었다.
본인은 인지하고 있지 못했지만, 이 모든 것이 에반의 행동으로 인한 ‘나비효과’였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있으면 에반 공자한테 얘기해서 같이 다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은…?”
“일단 가장 큰 것은 그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그 아이를 자꾸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 했으니까.”
“역시… 어마마마께서는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새삼스레 놀라웠는데, 그래도 아리아드네는 아직 궁금한 것들이 남아있었다.
“만약 제가 에반 공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그가 거절했으면 어쩌려고 하셨어요?”
“후후훗… 나는 에반 공자가 틀림없이 너를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다.”
“네? 그게 대체 무슨 소리… 아!”
아리아드네는 이게 또 무슨 소린가 싶었다. 하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으니, 그녀는 어머니 2황비가 에반의 도움을 확신했던 이유가 이것이 아닌가 싶었다.
“에반 베르딘이… 정확히는 그 소년의 몸을 쓰고 있는 누군가가 ‘황족’이기 때문인가요?”
“어머? 이건 정말 의외인걸?”
역으로 깜짝 놀란 2황비. 하지만 실비아가 놀라는 것은 아리아드네가 얘기해준 ‘내용’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딸이 이 내용을 알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우리 아리아… 벌써 거기까지 꿰뚫어 볼 정도로 능력이 강해진 거니?”
“그건 아니에요.”
“으응? 그러면 어떻게 이 사실을 알았니?”
아리아드네는 에반이 영혼을 다루는 흑마법사와 싸우던 중에 육체를 벗어나 영혼 상태가 되어서 싸웠던 것을 얘기했다.
유체이탈 했을 때를 말하는 것이었는데, 육신을 쓰고 있는 영혼은 마치 집이나 건물 안에 있는 사람처럼 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집이나 건물 밖으로 나온 사람은?
상대적으로 잘 보이게 된다.
쭉 얘기를 들은 실비아는 에반이 보여준 ‘유체이탈’ 능력을 매우 신기하게 여겼다.
“흐응… 에반 베르딘, 그 아이가 역시 보통이 아니네.”
“어마마마께서는 그가 누군지 명확히 보이는 거죠?”
“그렇지.”
“도대체 그는 누구인가요?”
이번에는 아리아드네가 궁금한 것을 물었다. 하지만 실비아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아니… 아직은 대답해줄 수 없다는 표현이 맞으려나?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구나.”
“그게 무슨… 분명히 아까는 분명히 그가 누군지 확실히 보인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렇긴 한데,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지 뭐니?”
“네??? 어마마마께서도 모르는 황족이라구요?”
아리아드네는 조금 황당했다.
2황녀인 자신은 물론이고, 2황비 실비아는 적어도 3대에 걸친 황족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니….
하지만 이어지는 실비아의 얘기가 미묘했다.
“사실 짐작되는 바가 있긴 한데, 이런 경우는 나도 처음이라서 선뜻 얘기해줄 수가 없구나. 하지만 때가 되어서 확인이 되면, 아리아 네게도 얘기해줄게.”
“으으음… 네.”
무슨 말인지 잘 이해는 안 됐지만, 아리아드네는 눈치껏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아무튼, 에반 베르딘. 그 아이는 절대로 적으로 돌려서는 안 돼. 알겠니?”
“…네.”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그 아이도 절대로 너나 알렌을 적대하지 않을 거란다.”
실비아는 항상 에반 베르딘과 친하게 지내고, 동향을 잘 파악해두라고 얘기했다.
“네.”
“그래, 아리아. 너무 수고 많았구, 가서 푹 쉬렴.”
어머니와의 대화는 여기까지였다.
실비아와 만나기 전까지, 아리아드네는 그녀에게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대화를 마치고 난 뒤.
왠지… 지금은 궁금한 것들이 더 많아진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