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Prince Returned as a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54)
천마가 되어 돌아온 막내황자-154화(154/213)
* * *
[대공님… 리니아 님의 일은 정말 유감이에요….]“…고맙다.”
수정구 너머에 모습을 비추고 있는 소녀.
눈처럼 새하얀 머리카락. 그리고 일자로 반듯하게 자른 앞머리 사이에서는 신비로운 황금빛으로 빛나는 커다란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었는데, 그 속에는 세르네아 여신을 상징하는 ‘십자가’ 성흔이 새겨져 있었다.
안타까운 눈빛으로 크라우젤 대공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는… 최근에 성녀가 된 ‘소피아’였다.
거대한 몸체와 얼굴 여기저기에 칼자국이 나서 날카로운 인상에 맞지 않게, 대공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소피아….”
[네, 대공님. 말씀하세요….]“리니아는… 좋은 곳으로 갔겠지?”
[아…….]이 질문에, 수정구 안의 어린 성녀 소피아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걸 뭐라고 대답해줘야 할까?
[대공님, 그게…]“크흛… 리니아는… 분명히 좋은 곳으로 갔을 거야. 내가 걔랑… 이십 년을 넘게 알았는데, 예쁜 거랑 다르게 성격은 좀 지랄 맞아도… 그래도…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었거든….”
중간중간 목이 메는지 겨우 말을 이어간 대공.
말을 하면서 슬픔이 복받쳐 오르는지, 결국 거친 뺨을 타고 굵은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대공님….]“부탁이다, 소피아… 나는 사제가 아니라서 믿음이니 율법이니 이런 복잡한 얘기 따위는 하나도 몰라. 리니아도 딱히 신전에 열심히 다니지는 않은 것 같아. 그래도… 그래도… 내 아내가 제발 좋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어….”
[…….]소피아는 뭔가 말을 하려다 말고, 하려다 말고, 또 하려다 말았는데, 결국 하려던 말을 속으로 삼켰다.
여신의 대리자인 자신이 사실과 다른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차마 대공에게 진실을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건…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래요, 대공님. 너무 걱정하지 마요. 리니아 님은… 꼭 좋은 곳에 가셨을 테니까요.]“…고맙다, 소피아. 정말… 고마워.”
[네….]소피아는 이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슬쩍 다른 주제를 꺼냈다.
[혹시… 전대 성녀님을 찾아보시겠다고 한 것은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저도 추기경분들이나 전담 성기사 분에게 물어보긴 했는데, 다들 잘 모르겠다고 하시더라구요.]“아, 그건 말이다….”
크~~~흥!
휴지를 뽑아서 요란하게 코를 풀어 젖힌 대공이, 현재 아스론 제국 내에 난다 긴다 하는 정보조직에 의뢰를 넣어놨으니 곧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줬다.
[날고 기는 정보 조직이요?]“그래. 나이트 워커라고, 들어 봤나?”
[나, 나이트 워커요?! 그 사람들은 ‘암살자’ 아닌가요?]전혀 예상 밖의 단체가 나오자 눈이 동그래진 소피아. 그런 반응이 재밌었던지, 울적했던 대공이 그나마 재밌다는 듯이 피식 웃어 보였다.
“암살자로 유명하긴 한데, 정보를 찾고 파악하는 쪽에서도 알아주는 놈들이야. 의뢰를 넣기가 굉장히 까다롭다고 들어서 받아줄까 싶긴 했는데, 이번에 우리 의뢰를 확실히 접수했다고 응답을 받았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나서서 전대 성녀님을 찾아주시는 건가요?]“그래. 제국 사람이 아닌데 괜찮냐고 했더니, 상관없다고 하더라.”
[아! 다행이네요.]대공과 마찬가지로, 한결 표정이 풀어진 소피아.
그녀는 잠적해있는 전대 성녀가 꼼짝 못 하고 대신전에 매여있는 자신을 풀어줄 묘책을 가지고 있기를 바라면서, 대공과의 통신을 마무리했다.
* * *
아름드리 거목들이 가득한 숲속.
여기 한 가운데의 공터에는 통나무를 잘라서 만든 커다란 원목 테이블이 있었고,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면서 티타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선풍도골에 허연 수염과 풍성한 백발을 가지고 있는 노인. 그리고 마주 보고 있는 흑발의 귀공자와 은빛 머리카락에 투명한 연녹색 눈동자의 귀족 영애.
소년 소녀의 얘기를 듣고 난 노인. 마탑주 휴마 멀린이 큰소리로 웃었다.
“허허허! 이번에도 큰일을 했구먼. 흑마법사들로부터 무려 대륙 최강의 기사를 구해내다니.”
“하지만… 대공비의 죽음은 막아내지 못 했죠.”
다소 씁쓸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은 흑발의 귀공자, 에반 베르딘.
바로 나였다.
최근에는 어딜 가나 이 주제로 대화가 오가는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녀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이 진실을 밝힐 것도 아니라서, 대충 이런 식으로 반응을 꾸미고 있었다.
“흐음… 그건 유감일세. 그래도 대공을 살렸다는 것은 정말 큰일을 한 것이 맞네. 그는 반황제파 귀족들의 수장이기도 하면서, 흑마법사들에 대해서도 강경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말일세.”
“마탑주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신다면… 감사합니다.”
이제는 본론으로 들어갈 시간이었다. 나는 거두절미하고, 마탑주에게 질문했다.
“이번에는 저희가 제법 오랜만에 방문을 드렸는데, 혹시 연구에는 좀 진전이 있었습니까?”
“허허… 유감스럽지만 새롭게 알려줄 것들은 없네. 기존에 제시했던 가설들을 조금 더 확실하게 확인한 것뿐일세.”
“아… 그렇군요.”
지난 2년 동안, 마탑주 휴마 멀린은 내가 쓰고 있는 ‘에반 베르딘’의 몸에 대해서 연구했다. 이를 위해서 나와 아인세라는 정기적으로 마탑주를 방문했고, 간혹 프라가라흐도 연구에 자문을 해주거나 도움을 줬다.
그 결과, 몇 가지 알아낸 사실들이 있었으니-
1. 이 몸의 심장에는 안쪽에 무언가 원형의 둥그런 물체가 있다.
여기에는 상당한 양의 ‘오염된 마나’가 깃들어 있었고, 놀랍게도 내게 형성된 마나서클은 이 구체 내부에 만들어져 있었다.
나는 줄곧 새로운 서클이 형성될 때마다 심장 안쪽에서 반응이 일어나는 것처럼 느꼈었는데, 이게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던 셈이다.
2. 심장 내부의 이 구체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마나를 추구한다.
하지만 2년 전, 프라가라흐와 계약하고 심상세계의 에반 베르딘을 죽인 후로는 운기조식을 하거나 영약 같은 것들을 먹어도 심장에 마나를 뺏기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단전으로 흡수해서 천마기를 늘리고 천마신공을 제대로 연성할 수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심장으로 흘러 들어가는 마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법이나 특수능력을 사용해서 서클이 가동될 경우에는 조금씩 마나가 심장으로 흘러 들어가서 흡수되고는 했으니까.
‘물론 예전에 내 의지를 벗어나서 멋대로 마나를 뺏어갈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긴 하지만….’
여전히 좀 켕기는 부분이라서, 이후로 최대한 마법이나 특수능력의 사용은 자제하고 있었다.
3. 이 몸에는 영혼들이 붙잡혀서 고통당하고 있고, 정확한 원리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쥐어 짜내서 이 몸이 존재하기 위한 ‘동력원’으로 쓴다.
이건 ‘영혼’ 상태로 있는 프라가라흐가 확인해준 부분이었다.
이렇듯, 마탑주나 프라가를 통해서 많은 정보들을 얻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들도 슬슬 한계에 부딪히는 것 같았다.
“흐음… 뭐라도 얘기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좋았을 텐데, 애석하게도 지금 상태로는 없구먼. 추가적으로 얻을 수 있는 단서나 정보들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말일세.”
“아, 그렇습니까….”
“후작에게 혈연검증을 다시 받아보는 것에 대해서는 얘기해 봤는가?”
‘혈연검증’ 마법을 언급하는 마탑주.
자세한 방식은 모르겠지만, 그는 이 몸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전에 혈연검증에서 ‘이 몸’과 페르반 베르딘이 ‘친자 관계’라고 나왔으니, 이게 의아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살짝 후작에게 얘기를 꺼내 보긴 했지만…
– 마탑에서 혈연검증을 다시 받아보겠다고?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하려는 것이더냐?
– 그게…
– 서, 설마… 본 후작을 아버지로 인정하기 싫어진 것이더냐?
즉시 표정이 굳어진 페르반 베르딘.
팔불출 특성상 아무래도 충격을 많이 받은 것 같았는데, 나는 즉시 필사적으로 손을 내저으며 진정시켰다.
– 그, 그건 절대로 아닙니다!
– 그러면 왜 혈연검증을 받으려 하는 것이지?
– 음, 그건 말씀드리기가…
– 너와 내가 혈연검증마법을 다시 신청하면 세간에 또 불필요한 구설수를 만들어 내게 된다. 또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수락해줄 수 없구나. 그렇게 해야 할 이유도 모르겠고 말이다.
– 아… 예…….
내가 아니라고 말은 했지만, 당시 후작은 여전히 불안해하는 것으로 보였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지만, 그 증거로 눈빛이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어쨌든 후작이 혈연검증 마법을 거절하는 사유가 구구절절 맞는 와중에, 나는 더 이상 관련 주제로 얘기하는 것이 애매했다.
“지난번에 제 혈연검증을 담당했던 마법사는 뭐라고 합니까?”
“딱히 특이사항은 없었다고 하더군.”
“예? 그게 말이 됩니까?”
“허허, 당연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당시의 자료를 나도 직접 봤네만….”
적어도 자료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그 자료 자체가 조작이 돼 있다면 모르겠지만, 담당자는 수년 동안 마탑에서 근무해온 ‘검증된’ 인물이었다.
“쯧, 아무래도 추가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흑마법사 놈들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겠구먼.”
“네. 안 그래도 이번에 북부에서 약간의 단서를 얻었습니다.”
“오호?”
그때 흑마법사들은 나를 보고 분명히 ‘클로버 7의 실험체’라고 말했었다.
“허어- 실험체라….”
“여기에 대해서는 저도 조금 생각을 해봤는데요.”
“오오, 아인세라 공녀. 어디 한번 말해보시게.”
“네. 저는 에반이 베르딘 가에 입적되기 전까지의 기억이 없는 부분을 주목했어요.”
여태까지 쭉 듣고만 있던 아인세라가 눈빛을 반짝였다. 그러자 마탑주도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니까 공녀의 얘기는 에반 공자가 진짜로 흑마법사들의 실험체였고, 그 기간이 현재 기억에 없는 기간일 것이다?”
“맞아요. 어쩌면 기억이 없는 이유도 흑마법사들의 실험과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르죠.”
물론 이 부분은 내가 원래 몸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인세라는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서 덧붙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부분을 통해서, 마탑주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잃어버린 기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게 되면 새로운 단서를 얻을 수 있겠구먼.”
“네? 잃어버린 기억을 다시 떠올린다구요?”
“허허허, 그렇다네. 다행히 이 늙은이가 도움이 될만한 몇 가지 마법을 알고 있다네.”
이 말을 듣고,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기억’이 아니라, ‘이 몸’이 원래 주인이 가지고 있는 기억을 읽을 수 있게 된다면?
[아인세라! 이거…?] [응. 나도 너랑 같은 생각 했어!]서로 전음과 메시지 마법을 주고받은 우리 두 사람.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서, 마탑주에게 말했다.
“그 마법… 저한테 사용해 주실 수 있습니까?”
괜히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리고 돌아온 마탑주의 대답은-
“물론일세.”
노인은 곧바로 소년과 소녀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했다.
마탑 37층.
‘기억과 재생의 방’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