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Prince Returned as a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56)
천마가 되어 돌아온 막내황자-156화(156/213)
* * *
스르르륵-
‘깜짝 놀랐군… 갑자기 정마대전 때의 기억이 영상으로 떠오를 줄이야.’
예상 밖의 상황에 깜짝 놀라서 나도 잠시 넋 놓고 영상을 쳐다보기는 했지만, 굳이 무림에서의 내 기억을 여기 있는 두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기에 해당 영상을 터치해서 사라지게 했다.
“허어! 에반 공자. 방금 영상은 심상치 않은 기억이었거늘, 그걸 왜 지운 겐가?”
“…저희가 원하는 기억은 아닐 것 같아서요.”
“그걸 자네가 어찌 아는가? 계속 돌려보다 보면 어떤 단서가 나올지…?”
“좀 특이한 영상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이 몸의 원래 주인과는 딱 봐도 상관없어 보이지 않습니까.”
한번 꽂힌 마탑주는 갑자기 영상을 지운 내게 불만이 많아 보였는데, 그래도 나는 두루뭉술하게 대답하면서 질문을 잘 피해 넘겼다.
그런데 쉴새 없이 투덜거리고 있는 노인네와는 달리, 옆에 있던 아인세라는 입술을 꾹 다물고서 투명한 연녹색 눈동자에 가만히 나를 담고 있었다.
묘하게 신경 쓰이는 눈빛.
“뭐야… 아인세라. 너는 왜 나를 그렇게 쳐다보지?”
“어머? 내가 어떻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시비를 거니?”
“아니, 그… 아까부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지 않았나?”
“응? 아닌데. 나는 네 뒤쪽에 화면을 쳐다봤을 뿐이야.”
“…그렇군.”
분명히 쳐다봤는데, 아니라고 하니까 딱히 할 말이 없어졌다. 그런데 그때.
“…어? 에반, 뒤에 화면을 좀 봐!”
“허허, 이번에는 또 뭐가 나올꼬?”
“응?”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의 반응에, 나도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러자 내 기억이 나오던 커다란 공간에, 아까보다 더 커다란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영상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에반’이라는 이름의 소년이었고, 아이가 거울을 보는 순간 나는 얼굴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저 소년은 분명히….’
예전에 심상세계에 들어갔을 때, 잠들어 있었던 거대한 소년이었다.
멸망의 날이라도 도래한 듯 불길했던 붉은 하늘. 끝도 없이 펼쳐진 검은 대지에 박혀서 꼼짝 못 하고 갇혀 있던 영혼들은 검은 쇠사슬이 달려있었는데, 전부 그 소년에게로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천천히 당시 일을 회상하면서, 눈앞의 영상에 집중했다.
도도도도.
– 아빠아아!
– 하하하, 에반! 오늘 하루도 재밌게 보냈니?
하루 해가 서산마루로 넘어갈 무렵.
제국 황도 아스카로네의 어느 한 가정집에 로브를 입은 한 사내가 들어오자, 주인공인 아이가 신나서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아빠’로 보이는 이는 마법사인 것처럼 보였다.
현관에는 어느새 아내로 보이는 여인도 마중 나와 있었다.
– 다녀오셨나요, 여보.
– 다녀왔소.
– 오늘은 황궁에서 별일 없었나요? 신문을 보니까 요즘 정세가 심상치 않다던데요.
– 하핫… 나야 뭐, 항상 황궁연구실에 있는데 특별히 문제 될 게 있겠소?
–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사내는 방에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서 가족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갔다.
노릇노릇 구릿빛으로 맛있게 구워진 오리고기와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토마토 스튜. 다른 반찬들도 건강하고 맛있어 보였다.
“단란하고 유복한 가정이네요.”
“허허… 하지만 공녀. 여기에 매여 있는 영혼 중에서 결말이 좋은 자들은 없을 게야.”
이 행복이 과연 얼마나 이어질지.
아니나 다를까, 퇴근 이후에 저녁을 먹고 푹 쉬고 있던 사내와 이 가정에게 갑자기 비극이 닥쳤다.
쾅!
철그럭- 철그럭-
– 여기가 죄인인 궁정마법사 오베르트의 거주지인가?!
거칠게 문이 열리더니, 갑자기 황궁의 기사들이 집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사내는 재빨리 아내와 영상의 주인공인 아들을 자신의 뒤로 숨기고서 앞으로 나섰다.
– 다, 당신들은 법무부의 집행기사들?!
– 그렇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보니, 얘기는 빠르겠군. 오베르트, 당신은 현재 국가기밀을 외국으로 유출시키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소.
– 그런 말도 안 되는…!
– 일단 구속하라는 상부의 명령이 내려왔으니, 얌전히 우리를 따라가는 게 좋을 것이외다.
지극히 차갑고 사무적인 태도로 말하는 기사들.
그들은 여차하면 베겠다는 듯이 검을 뽑아 들고 흉흉한 기세를 발산하고 있었다.
반면에, 오베르트는 현재 스태프도 없었고 뒤에는 지켜야 할 가족들이 있는 상황.
– 크윽, 젠장….
– 허튼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오. 억울하다면 충분히 소명의 기회가 있을 터이니, 명을 받으시오.
생각이 복잡해 보이는 눈빛이었는데 기사가 다시 한번 순순히 따라나설 것을 종용하니, 결국 영상 속 주인공의 아버지는 순순히 잡혀가는 길을 택했다.
– 에반, 여보…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가서 잘 풀고 오겠소이다.
– 아빠…!
– 여보… 정말 괜찮은 거죠?
– 물론이오. 죄가 없는데, 걱정할 것이 무에 있겠소? 다녀오리다.
오베르트는 떠나는 순간까지도 아내와 아이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가 황궁으로 끌려가고 난 그날 밤.
펄럭.
– 이거이거… 상심이 크시겠군요, 부인.
집 안에 홀연히 누군가가 나타났다.
검은 로브 자락을 휘날리며, 창백하리만치 새하얀 가면을 쓰고 있는 사내. 가면의 왼쪽 눈구멍 아래에는 ‘하트 10’이라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 다, 당신은 누구죠?
– 저는 당신과 아드님을 안내해드릴 길잡이입니다.
– 아, 안내요? 어디로 안내한다는 거죠?
꼬옥….
여인은 두려워하면서도 어떻게든 아들을 지켜내겠다는 듯이 품속의 아이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가면 너머로 사내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 아아, 그곳은 말이죠… ‘저승’이라고, 좋은 곳이 있습니다.
– 네…?!
너무 놀라서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여인.
그녀는 재빨리 아이를 데리고 달아나려고 했으나, 이미 하트 10의 검이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스아아악-
– 꺄아아악!
– 어… 엄마아아!
서걱.
여기까지가… ‘에반’이라는 소년의 기억이었다.
아무래도 마지막 일검에 모녀가 한꺼번에 죽었나 보다.
종합해서 보자면, 심상세계에 잠들어 있던 커다란 소년의 아버지는 ‘오베르트’라는 궁정마법사였다.
그는 모종의 이유로 황궁의 집행기사들에게 끌려갔고, 그날 밤에 가족들도 모두 죽었다. 영상 속 주인공인 소년도 죽었고.
그런데 아이와 어미를 죽인 자가…
“흑마법사… 클로버 7이라는 자 외에도, 하트 10도 잡아야겠군.”
“네가 지금 쓰고 있는 몸의 이름이 ‘에반’인 것도, 아까 그 소년이 뭔가 연관되어있기 때문일까?”
“…흠, 그럴지도.”
내가 이렇게 중얼거리자, 마법진 바깥에 떨어진 곳에서 아인세라도 떠오르는 생각을 말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마탑주의 얘기가 의미심장했다.
“오베르트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아주 오래된 이름을 듣게 되는군.”
“네에? 마탑주님, 방금 그 마법사를 아세요?!”
“허허허, 알다마다. 어느 정도 이름난 마법사들은 전부 이 늙은이와 일면식이 있다고 보면 되네.”
“…!”
단서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마탑주는 기다랗고 허연 수염을 쓸어내리면서, 영상 속 남자에 대한 기억을 천천히 되짚었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로구먼. 오베르트는 궁정마법사들 중에서도 독특한 인재였다네. 서클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론’과 ‘실험’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었지.”
“이론과 실험이요?”
“그래. 다른 마법사들은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분야인데도, 오베르트는 황궁에서 이것저것 다양한 연구를 많이 했었다네.”
마탑주는 특히 오베르트가 자신을 찾아올 때면 ‘시간’과 ‘공간’ 그리고 ‘무한 동력’ 등등 이런 주제들로 재미있게 토론했었다고 말했다.
“아까 영상 속에서는 집행기사들에게 잡혀갔었는데, 왜 그런 겁니까?”
“정확한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네. 다만, 그가 황궁에서 맡고 있던 연구가 극비리에 진행되던 것이었는데… 거기에 뭔가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까 싶구먼.”
“그러면… 그는 결국 어떻게 됐습니까?”
“오베르트는….”
내 질문에, 마탑주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나도 결국 그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네. 하지만 나는 이후로 그에 관련된 소식을 전혀 듣지 못하게 되었지.”
“…그렇군요.”
“마침 해당 영상을 같이 보게 되었으니, 오베르트에 대해서는 내가 따로 한 번 더 알아보겠네.”
“감사합니다.”
새삼 마탑주가 있어서 이렇게도 도움을 받는구나 싶었다. 물론 사람 뒷조사하는 일에 관해서는 내가 쥐고 있는 카드도 절대 꿀리지 않았다.
나이트워커.
명실공히 아스론 제국 최고의 암살집단이면서 정보집단이었으니까.
‘조만간 바트란에게 얘기해야겠군.’
나는 에반의 기억을 끝으로, 더 이상 재생될 기억은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화면이 온통 새까맣게 물들었고, 가장자리에 남아있던 일부 작은 기억 영상들까지 싹 사라지게 되었다.
여기에다가 얌전히 있던 심장의 서클들이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웅- 웅- 웅- 웅-
“이, 이건 대체…?”
츠화아아아-
곧 심장에 녹아들어 있던 흑마법사들의 ‘오염된 마나’가 꿈틀거렸고, 기억영상들이 사라진 화면에 새까만 어둠이 마구 소용돌이쳤다.
이 어둠은 마치 화면 바깥으로 튀나올 것처럼 심하게 요동쳤다. 그러더니 흘러나온 목소리.
키득키득.
“인간들이 아주 재미있는 짓을 했네?”
“너는….”
분명히 어디선가 들어본 음성이었다.
비록 지난 2년 동안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어찌 내가 저 소름 끼치는 목소리를 잊을 수 있을까.
“심상세계에서의 에반 베르딘… 맞나?”
“오오, 그래. 오랜만인데 용케 바로 알아보네?”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서 마법진 바깥에 있는 아인세라와 마탑주가 깜짝 놀랐다.
“설마… 지금 우리를 보고 있는 거야?!”
“크크큭, 그러면 치사하게 너희만 보려고 했어?”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목소리.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화면 속 일렁이는 어둠을 가만히 응시한 마탑주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내가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도 우리를 들여다본다 함인가.”
“맞아. 거기 할배는 좀 오래 살아서 그런지 뭘 좀 아는 것 같네. 옆에 있는 꼬마 아가씨는 인생 몇 번 살아 먹긴 했지만, 용인 할배에 비하면 좀 부족하고.”
발끈.
“…뭐라고?”
녀석의 도발에 아인세라가 기분이 나쁜 듯 고운 미간을 찡그리며, 날카롭게 반문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심상세계 속 에반 베르딘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별로 원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오랜만에 얼굴 보니까 되게 반갑네.”
“글쎄. 나는 전혀 반갑지 않군. 설마 2년 전처럼 또 찢기고 싶어서 그런 건가?”
“아하하하하! 그때 그 일로 아주 기고만장했구나?”
나름대로의 도발이었는데, 상대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그가 마치 옆에 바짝 다가와서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그때 일로 너희는 나를 이겼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야.”
놈은 때가 되면 해가 지고 온 세상이 어둠에 삼켜지듯이, 결국에는 나도 자신의 일부분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했다.
마치 아까 봤던 수많은 영혼들처럼.
“개소리.”
키득키득.
“맞는지 아닌지는 두고 보면 알게 될 거야.”
뭐가 그렇게 웃긴지, 기분 나쁘게 쪼개던 녀석은 이제 시간이 다 됐다고 했다.
“나는 남은 잠이나 마저 자러 가야겠어. 고생들 하시고, 다음에 또 보자고.”
츠화아아아-
이 말을 끝으로 화면 속에서는 어둠이 사라졌고, 어느새 마법진은 발동을 멈췄다.
파스스스-
그와 동시에, 마법진 여기저기에 박혀있던 마나석 기둥들이 마나를 전부 소진하고 바스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