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Prince Returned as a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74)
천마가 되어 돌아온 막내황자-174화(174/213)
* * *
스르르륵……
지금 이 순간에만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기라도 하듯, 목에서 분리된 스페이드 잭의 머리가 천천히 지면으로 떨어졌다.
쿵.
그렇게 하얀 가면을 쓴 거인의 머리가 지면에 닿는 순간, 지켜보는 이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거인화한 스페이드 잭께서 이렇게 허망하게….”
“맙소사… 대체 이 강함은…?”
캄캄한 밤, 새하얀 달빛 아래.
목이 베인 거인의 시체를 배경으로 전신에서 검은 오러를 뿜어내고 있는 소년의 모습은 ‘전율’ 그 자체였다.
흑마법사들을 가만히 응시하는 검푸른 눈동자 속에는 짙은 어둠만이 일렁이고 있어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통 감도 잡을 수 없었다.
마치 맹수를 만난 초식동물처럼 그들이 뻣뻣하게 굳어있을 때, 소년이 입술이 달싹이자 나이트 워커들의 수장 바트란의 귓가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트란. 뭐 하고 있나?] […예?] [남은 놈들을 정리해라.] [아, 알겠습니다.]감히 움직일 생각을 못 하고 있던 바트란은 전음을 듣자마자 즉시 나이트 워커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에반 공자께서 어서 잔당들을 처리하라고 하신다.] [큭… 알겠습니다.] [간다.]스스슷-
얘기가 끝나기 무섭게 유령보를 펼친 나이트 워커들.
아무래도 방금 에반의 신위를 목도한 터라 다들 바짝 긴장해있었고, 소년을 따르기로 한 이상 본인들도 쓸모가 있다는 가치를 보여야만 했다.
그들은 각각 두 무리로 나눠서 흑마법사 하나씩을 붙잡았고, 바트란은 단독으로 스페이드 10을 상대했다.
[유령진을 펼쳐라.] [라저.]휙… 휙… 휙… 휙…
기척을 완전히 지우는 유령마공을 운용한 상태에서 상대를 포위하고 주위를 맴돌면서, 어디에서 어떻게 공격이 들어가는지 모르게 만드는 합격진(合擊陳)이었다.
특히 진을 펼치게 되면 유령마공끼리 공명하면서 마치 귀신이 흐느끼는 것 같은 귀곡성이 울리게 되는데, 이 소리가 유령진에 갇힌 상대를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키이이이-!
“이, 이게 대체 뭐야!”
“설마 귀신을 불러오는 흑마법인건가?!”
먼저 사냥당한 것은 검은 퓨마로 변해있던 흑마법사였다.
“크르르… 이까짓 거, 그냥 뚫고 나가면 어쩌지 못할 테지!”
팟-
놈은 민첩하게 움직여서 빠른 속도로 진법을 벗어나려고 했다. 상대의 모습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신의 속도를 따라오지는 못할 거라는 안일한 생각에서 벌인 짓이었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키이이이이-
촤악! 촤악! 촤악!
“크아아악!”
사방팔방에서 보이지 않는 단검들이 퓨마의 까만 털가죽을 마구 난도질했고, 녀석은 저항다운 저항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그대로 비명횡사했다.
그리고 그림자 사이사이를 이동해 다니는 흑마법사도 상황이 썩 좋지는 못했는데, 유령마공과의 상성이 극악이었던 탓이었다.
“그, 그림자가 없다고…?”
푹.
“끄…억!”
유령(幽靈)은 무영(無影)이다.
그림자를 기반으로 능력을 사용하는 흑마법사가, 그림자가 없는 유령들에게 둘러싸이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대로 등 뒤에서 단검에 심장을 찔려 즉사한 흑마법사.
동료들의 죽음을 뒤로 한 채, 스페이드 10은 나이트 워커의 수장 바트란과 대치하고 있었다.
처억.
“이제 남은 것은 당신밖에 없군요, 집사 세바스.”
“…이런이런. 지난 십수 년간 그 이름을 견디면서 살아왔는데, 지금도 그렇게 불리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이름이야 어찌 됐든 당신이 죽는 것은 변함없겠지요.”
“암살자 나부랭이 주제에 저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스페이드 10이 하는 말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었다. 아까 죽었던 거인이 너무 강해서 그렇지,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은 아까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에반이 등장한 이후로는 상대방이 전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뭘까요? 기분 탓인가요?’
그렇다고 보기에는 실제로 체내에서 생소한 기운이 유령마공의 기운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바트란은 한동안 혼란스러웠는데, 내부를 관조하다 보니 그것이 처음 만났을 때 에반 베르딘이 자신에게 심어놨던 기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천마신공의 주인에게 반응하는 천마인(天魔印)의 효과였다.
‘하! 하핫… 이 힘이라면 어쩌면!’
스르르…
바트란이 본인조차 ‘혹시’하는 마음에 유령마공을 끌어올리고 정면으로 돌진했다. 그리고는 유령보를 밟아 모습을 감추고 기척을 지웠는데, 스페이드 10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가 가진 흑마력의 특수능력은 어둠을 고체화하는 것.
휙… 휙…
‘지금이다.’
쐐애애액!
쥐도 새도 모르게 상대의 사각지대를 점하고, 후방에서 심장을 찔러 들어가는 바트란의 단검.
스페이드 10은 당연하게도 그 움직임을 읽어내지 못했지만, 그는 이미 전신에 어둠을 고체화하여 얇고 단단한 방어막을 둘러놓은 상태였다.
‘나이트 워커의 수장이여. 유감스럽지만, 제 고체화 능력은 겨우 암살자 따위에게 뚫릴 정도가 아닙니다.’
어느 방위로 어떻게 공격해오든 상관없었다.
그는 바트란의 공격이 실패하면 그 틈을 노려서 곧바로 반격할 생각이었는데…?
파가각-!
‘아니?! 내 고체화 능력이 뚫렸…?’
푸욱.
왼쪽 등판에 둘러놓은 어둠을 뚫고 심장을 꿰뚫은 단검.
가슴팍의 살갗과 옷가지를 삐쭉 뚫고 나온 칼날에는 놀랍게도 반투명한 흑색 막(膜)이 덮여있었다. 아직 불안정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분명히 오러소드였다.
손에 칼을 쥔 이들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는 오러마스터의 상징.
가면 너머로 스페이드 10이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눈을 부릅떴다.
덜… 덜덜…
“어… 어떻게, 아, 암살자 따위가… 오러… 소드를…?”
놀란 것은 스페이드 10뿐만이 아니었다. 지켜보는 다른 나이트 워커들도 모두 충격을 금치 못했다.
“내, 내가 지금 헛것을 보는 건가?”
“도대체 언제부터 수장이 마스터의 경지에….”
심지어 바트란 본인조차도 이게 정말로 될 줄은 몰랐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문득 그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모두가 놀라고 있는 와중에, 오로지 홀로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심하게 쳐다보는 검푸른 눈동자.
그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바트란은 소년은 이렇게 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꿀꺽…
‘에반 베르딘… 도대체 당신의 능력은 어디까지인 겁니까?’
그는 저도 모르게 목구멍 너머로 침이 넘어갔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에반 베르딘을 따르기로 한 것은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심장에 검이 박혀 죽음의 순간이 임박했다는 것을 느낀 스페이드 10은 지난날을 떠올리며 허망함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이처럼 죽게 될 것을, 나는 10년을 넘게 신분을 속이고, 주변의 모두를 속인 채 살아왔다는 말인가….’
그때, 귓가에 낯익은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스페이드 10… 아니, 집사. 자네는 내가 진심으로 믿고 의지해왔네만, 심히 안타깝고 유감스러울 따름일세.”
“클로버… 7?”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리니, 죽어가는 자신을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쳐다보고 있는, 짙은 콧수염의 중년이 보였다.
비록 조직의 임무였지만, 자신이 12년 동안 주인으로 모셨던 사내, 오베르트.
코드네임 클로버 7.
하지만 이런 생각을 훤히 들여다보기라도 하듯, 베르딘 후작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자네에게 그렇게 불리고 싶지 않네. 아무리 임무였다고는 해도, 우리는 지난 세월 동안 꽤 잘해오지 않았는가?”
“당신은….”
특히 2년 전, 에반 베르딘이 입적하고 나서부터는 더욱더 그랬다.
후작은 말을 잇지 못하는 스페이드 10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지막 가는 길. 나는 자네를 집사로서 보내고 싶네.”
“…후작님.”
덜덜…
마침내 익숙한 목소리가 익숙한 호칭으로 페르반 베르딘을 불러오고, 스페이드 10이 떨리는 손을 힘겹게 들어 올려서 가면을 벗었다.
털그렁-
그러자 집사 세바스의 얼굴이 캄캄한 밤, 환한 달빛 아래에 드러났다.
핏기가 싹 가셔서 창백하리만치 하얗게 질린 모습.
빠르게 생기를 잃어가고 있는 눈동자는 퀭하게 초췌했고, 눈가에는 이슬인지 눈물인지 모를 투명한 무언가가 맺혀 있었다.
어느새 그의 앞에 다가온 후작은 세바스의 목 위에 칼날을 올려놨고, 차가운 금속이 살갗을 파고드는 감각과 함께 뜨거운 핏물이 가느다란 강줄기가 되어서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처억.
“잘 가게.”
“…죄송합니다, 후작님.”
“알면 됐다네. 어차피 가는 것은 내가 아니라 자네인 것을.”
“…조심하십시오. 조직은 절대 이대로 당신과 에반 공자를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페르반 베르딘의 말대로, 마지막에는 ‘집사’로서 죽기로 한 스페이드 10.
그의 진심 어린 염려에 마음이 동했는지, 후작의 옆에서 제 아버지를 똑 빼닮은 소년이 무심한 듯 툭 말했다.
“잘됐군. 나도 그들을 가만히 놔둘 생각은 없으니.”
“…하… 하핫. 에반 공자… 당신은 대체….”
이제 곧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그는 정말로 궁금했다.
도대체 에반 베르딘의 정체가 무엇인지.
하지만 소년은 다른 말로 대답할 게 없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라. 나는 에반 베르딘. 베르딘 후작가에 입적된 사생아인 것이니.”
“…그렇군요.”
“잘 가라.”
집사 세바스와의 대화는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서걱.
곧 목에 놓였던 후작의 검이 죄인의 목을 베었고, 이것으로 이번 사태는 일단락됐다.
페르반 베르딘은 가만히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올려다봤고, 까맣던 밤하늘은 어느새 동쪽 끝의 지평선으로부터 붉게 타오르며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동이… 트는구나.”
“예.”
간밤에, 영주성 내에 잠입했던 스페이드 잭을 비롯한 다른 조직원들과 마주쳤을 때.
페르반 베르딘은 어쩌면 다음 날의 아침을 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길고 긴 밤은 결국 지나갔고, 그는 살아서 새벽녘에 찬란하게 비춰오는 여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 * *
환한 대낮임에도 방 안의 모든 창문이 짙은 회색빛 커튼으로 막혀있어서 어두컴컴한 침실.
부상을 입은 후작이 침상 위에 누워 있었다.
그는 베개에 등을 기댄 채 상체만 일으켜서 옆에 앉은 나를 쳐다봤다.
그렇게 한참 동안 쳐다보던 베르딘 후작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후우- 그래. 어제 보니까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아닌가 보더구나.”
“예. 어쩌다 보니 이것저것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구나. 혹시 어디까지 알게 되었는지 말해줄 수 있겠느냐?”
“마탑에 있는 ‘기억과 재생의 방’에 들어갔다 왔습니다. 거기에서 이 몸의 기억을 읽다가, 지금 제 모습과는 전혀 다른 아이의 모습을 보게 되었지요.”
그 아이의 이름은 에반.
아버지는 ‘오베르트’라는 궁정마법사.
여기에다가 얼마 전 황궁에서 나를 공격했던 흑마법사에게서 아버지가 흑마법사이면서, 처형당해서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궁정마법사 ‘오베르트’라는 것을 알게 되었노라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이어서 물었다.
조금은 긴장도 되고, 떨리는 목소리.
“저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