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Prince Returned as a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80)
천마가 되어 돌아온 막내황자-180화(180/213)
* * *
뚜벅뚜벅-
나와 아인세라는 마치 신전 같은 분위기의 거대한 통로를 걷고 있었다.
온통 캄캄한 어둠 속에서는 벽면에 박혀있는 마나석 전등만이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었고, 사방은 쥐 죽은 듯 고요하고 조용하기만 했다.
“뭐야… 무슨 레어가 이렇게 허전해? 원래는 가디언들이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
“흠, 정말 이상하긴 하군.”
벌써 방을 3개나 거쳐왔다. 분위기로 봤을 때는 딱 가디언이 있었을 법한 장소들이었는데, 문제는 거기에도 특별히 뭐가 없더라는 것이었다.
흑마법사들이 해치웠다고 보기에는 전투의 흔적이 아예 보이지 않았고.
“혹시 뭔가 압도적인 힘으로 단숨에 콱 해치운 건 아닐까?”
“쯧쯧,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너도 마나의 흐름 정도는 느낄 게 아닌가.”
“흥! 물론 그렇긴 한데,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없는 것도 말이 안 되니까 하는 소리지.”
공연히 한마디 보탰다가 면박을 들은 아인세라.
그녀가 입술을 삐쭉 내밀고 있는데, 나는 조금 신경 쓰이는 것이 있어서 기감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게 첫 번째 방을 지나왔고, 두 번째 방도 지나왔다. 그리고 아까 세 번째 방을 지나오면서, 나는 ‘혹시?’하고 생각했었던 가설을 확신할 수 있게 됐다.
‘하아- 그렇게 된 것이었나?’
처음에 입구에서는 흑마법사들의 마법진 때문인지 잘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레어의 문을 통과하면서 뭔가 낯익은 기운의 잔재가 남아있다고 느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건 분명히 ‘토저씨’였다.
귀여운 토끼 얼굴을 가진 근육질 아저씨 몬스터.
맨 처음에 마나허브 꽃밭을 발견했을 때, 거기에서 나와 생사투를 벌였던 녀석이기도 하다.
‘첫 번째 방에서는 근육질 아기사슴의 기운이 남아있었고, 두 번째 방에서는 소머리 거인의 기운이 느껴졌었다.’
세 번째 방에서는 양과 말머리 거인들의 기운이 확연하게 잡혔는데, 이놈들의 공통점은 전부 마나허브 꽃밭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래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이놈들이 전부 이곳에서 잠들어 있던 블랙 드래곤의 가디언들이었고, 마나허브 꽃밭이 사실 블랙 드래곤의 소유였다면…?
‘아… 그러고 보니, 소와 말, 양머리는 죽어가면서 뭐라고 씨불이기는 한 것 같은데….’
자신들의 주인이 깨어나면 어쩌고저쩌고.
아무튼. 이놈들이 가디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절대로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져서는 안 된다.
나중에 드래곤의 분노를 사게 될지도 모르니….
이렇게 마음 졸이면서 네 번째 방에 들어왔을 때, 거기에서 마주친 것은 ‘검은 코뿔소 거인’이었다.
푸르르- 푸르르-
“무어어어…? 인간… 또 들어 왔나!”
콧김을 뿜어내며 거대한 창을 들어 올리는 코뿔소.
주변에는 마법의 발동과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오염된 마나의 잔재도 느껴져서 누가 왔었는지 즉시 알아챌 수 있었다.
“역시…‧ 아무래도 흑마법사 놈들은 정말로 드래곤을 깨울 생각인가 보군.”
“어떻게 할 거야?”
“뭐를?”
“저 가디언.”
“응?”
나는 아인세라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그녀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설명해줬는데.
“가디언들은 드래곤과 계약이 되어 있는 상태야.”
“그게 뭐 어떻다는 거지? 아무리 드래곤과 계약했다고 하나, 저따위 잡몹이 내 상대가 될 것 같은가?”
“아니, 네 상대는 안 되겠지. 그런데 가디언들을 죽이면 잠들어 있는 드래곤을 자극하게 될 수 있다고.”
“아….”
이 말을 듣자, 나는 마나허브 꽃밭에서 처치했던 다른 가디언들이 떠올랐다. 설마 내가 기억하는 역사보다 드래곤이 좀 더 빨리 깨어나게 될지도 모르는 이 상황이… 그 탓도 있는 건가?
“무어어어! 인간! 인간! 주인의 집에 침입해온 인간들은 다 죽인다아아!”
두두두두두-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에, 코뿔소가 거대한 창을 치켜세우고 돌진해왔다.
느껴지는 기세부터가 장난이 아니다.
막아서는 것들은 전부 짓이겨버릴 기세.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긴장할 정도는 아니고.
후우.
‘모르면 몰랐지, 알게 되었는데 죽일 수는 없지.’
이미 죽여버린 가디언들을 떠올리자, 입에서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러나 지나간 과거를 어찌하겠는가?
그 당시로서는 놈들이 드래곤의 가디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고, 결과적으로 놈들을 잡아서 흡수한 마나핵석을 통해서 천마신공의 성취를 빠르게 늘릴 수 있었다.
그러니, 미련은 없다…!
츠화아아아-
천마기를 끌어올려 양쪽 눈에 집중시켰다. 그러자 시야에 보이는 공간에 마나의 흐름이 가시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흑마법사 놈들이 남겨놓은 오염된 마나는 끈적끈적해 보이는 검보라색.
이 공간에 가득 차 있는 마나는 순수한 어둠의 마나인 검은색.
돌진해오는 코뿔소 가디언의 체내에도 같은 기운이 흘렀고, 놈에게 흐르는 마나의 기운에 더욱 집중하자 체내의 마나흐름이 좀 더 자세하게 보였다.
“너… 그 눈동자는 뭐야?”
“음, 마나의 흐름을 보는 눈이라고 해두지.”
지금 아인세라에게는 검푸른 빛을 발하던 내 눈동자가 완전히 새까맣게 물든 것처럼 보일 터.
천마신공이 6성에 이르렀을 때 얻어지는 공능인 ‘천마안(天魔眼)’이었다.
움찔.
“무, 무어어?!”
천지분간 못하고 겁 없이 달려오던 코뿔소도 순간적으로 위압감을 느꼈는지 멈칫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움직였다.
그림자처럼 미끄러지는 신형.
이어서 펼친 것은 점혈이었다.
‘여기, 여기. 그리고 또 여기로군.’
푹. 푹. 푹.
“무어어어?!”
상대가 인간이 아닌 이상 혈도의 위치가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천마안을 뜨게 되면서 체내의 모든 마나 흐름이 눈에 보이는 상황.
혈도 찾는 것은 일도 아니었고, 코뿔소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인간! 도대체 내 몸에다가 무슨 짓을 한 거냐?!”
“호들갑 떨지 마라. 우리가 여길 나가고, 시간 지나면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될 테니.”
“무으으… 누구 마음대로 여길 지나간다는 거냐!”
“후후, 하지만 입만 나불대서야 어떻게 막으려고 하지?”
나는 움직임만 봉하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입만 나불대는 정도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줄이야.
“무어어어! 다크 스피어(Dark Spear)!”
츠즈즈즛-
“마법진이라고?!”
순식간에 허공 곳곳에서 나타난 어둠의 창들.
그것들은 전방위적으로 나를 노리고 있었는데, 심지어 내가 꿰뚫리면 코뿔소 자신도 함께 꿰뚫리는 각도에서도 나를 노리고 있었다.
동귀어진(同歸於盡).
아무래도 죽기를 각오한 모양이다.
“에반! 크읏….”
슈화아아아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아인세라가 깜짝 놀라서, 즉시 디스펠에 들어갔다. 하지만 드래곤이 설치한 마법진답게, 해체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웠다.
애초에 이 방 자체가 마법진이나 다름없었고, 그렇기에 나나 아인세라가 미리 마법진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기도 했다.
‘큭… 가급적이면 쓰지 말라고 하기는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군.’
웅- 웅- 웅- 웅-
굳이 막으려고 하면 호신강기를 둘러서 막아낼 수는 있겠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천마기는 최대한 아껴두고 싶었다.
그래서 심장의 서클을 운용해서 특수능력을 사용했다.
모든 마법술식을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만들어버리는, 상식의 궤를 초월한 능력.
마법무효화(Anti-Magic)였다.
“무하하하! 이제 끝이다, 인간!”
히죽.
“과연 그럴까?”
“무어어?”
파아아아앗-
나를 둘러싼 수십 개 어둠의 창이 날아오기 직전.
내게서 검은빛이 터져 나왔고, 이 빛에 닿는 어둠의 창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마치 처음에 허공의 어둠이 모여들며 창의 형상을 만들었던 것처럼, 다시 허공의 어둠 속으로 흩어져 가는 다크 스피어.
츠즈즈즈……
“무어어어?! 뭐, 뭐냐! 이게 대체…?”
당황한 코뿔소가 두 눈을 부릅떴다.
직접 보면서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는데,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생각은 한다.
이 방의 마법진은 저놈의 주인이 설치했을 터이고, 그 주인이란 존재가 ‘마법의 종주’라 일컬어지는 드래곤이었으니까.
“유감이다. 그냥 상대를 잘못 만났다고 생각하도록.”
푹.
“…! ……?!”
이 말을 끝으로, 나는 아혈까지 마저 점해버렸다. 그러자 코뿔소는 더 이상 입도 나불대지 못하게 됐고, 우리는 놈을 지나쳐서 그대로 다음 방으로 향했다.
* * *
슈우우우……
“…요란하게도 벌여놨네.”
그다음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수두룩한 몬스터들의 사체와 치열한 격전의 흔적들이었다.
흑마법사 특유의 흑마력이 느껴지는 몬스터들을 보니, 아무래도 지난번에 베하마그 산맥 몬스터 토벌전에서 나를 공격했던 흑마법사가 여기에 있는 것 같았다.
분명 가면에 새겨진 문양이… 하트 퀸이었나?
아무튼 놈들은 흑마법으로 부리는 몬스터들로 가디언을 붙잡아 놓고, 다음 방으로 슬그머니 빠져나가나 보다.
“푸르릉! 괘씸한 인간들! 어린 인간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는다!”
찰싹!
이번 방을 지키고 있는 가디언은 ‘기린’이었다.
앞선 몬스터들과 마찬가지로 머리와 목만 기린이고 몸통은 인간형이었는데, 그 크기가 상상을 초월했다. 족히 15m는 되어 보였는데, 기린의 특성답게 목 길이만 5m가 훌쩍 넘어 보였다.
무기는… 끝에 술이 달린 채찍.
“푸르르르! 다 찢어 발겨주마!”
촤라락-
놈이 다짜고짜 채찍을 휘둘러왔는데, 잘못 맞았다가는 그대로 뼈가 부서지고 살이 찢겨 나갈 것 같았다.
실제로 사방천지에 널브러진 몬스터들의 사체가 이를 방증해주고 있었다. 머리, 가슴, 팔, 다리 할 것 없이 신체의 여기저기가 종잇장처럼 찢어져 있었는데, 딱 보니까 모두 일격에 당한 상처들이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스르륵-
“아인세라! 아까와 똑같은 수법을 쓸 건데, 잠깐이라도 저 기린 움직임을 멈춰줄 수 있겠나?”
“당연하지!”
키이이이잉-
내가 채찍을 피하는 동안, 아인세라의 달빛을 머금은 장신구 세트들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허리춤에 메고 있던 조그맣던 달빛 요술봉은 어느새 본모습으로 돌아가서, 아름답고 우아한 자태를 뿜어내고 있었다.
파직…! 파지직…!
뭐지?
대체 무슨 마법을 쓰려는 걸까?
전매특허인 외부 서클까지 포함해서 무려 일곱 개의 서클을 운용 중인 아인세라.
전신에 연녹색 스파크가 튀기고 있는 것으로 봐서 뇌전속성 마법인 것 같긴 한데, 그 위력이 심상치 않을 것으로 보였다.
이 정도로 거대한 마나라니.
“간다아아아! 라이트닝 썬더(Lightening Thunder)!”
번쩍.
콰르르르릉!
마침내 달빛을 머금은 지팡이를 치켜든 아인세라가 시동어를 외쳤고, 곧 지하공동이라 봐도 무방할 거대한 방의 천장에서 한줄기 거대한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파지지지직-
“푸르르륵! 아아아아악! 이, 이게 무슨…?!”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강력한 뇌전속성 마법에 기린 가디언은 길쭉한 거구를 이리저리 비틀면서 마구 비명을 질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분명히 그리 길지 않았을 시간이었을 텐데, 거대한 뇌전의 줄기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는 시간이 느릿느릿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하늘로부터 한참 동안 쏟아져 내리던 강력한 뇌전의 마나가 멈추고.
슈우우우우……
쿠웅!
온몸 여기저기가 새까맣게 그을린 기린 가디언은 그대로 바닥 위에 엎드러졌다.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내 걱정이 무색하게 녀석의 거구가 움찔움찔거리면서 경련을 일으키는 게 보였다.
“휴우- 다행이다. 아직 죽지는 않았나 봐!”
“그, 그래.”
아무래도 아인세라도 나랑 비슷한 걱정을 했나 보다.
뭐…
일단은 살아있으니 문제없는 거로.
우리는 기린 가디언이 지키고 있던 방을 넘어서 다음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쿠구구구구-
“에, 에반 베르딘?!”
“어떻게 저 괴물 애송이가 여기에…?”
흑마법사가 있었다.
그 옆에는 방금 지나온 기린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무언가가 있었는데-
바로 이 레어의 주인.
‘블랙 드래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