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Prince Returned as a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91)
천마가 되어 돌아온 막내황자-191화(191/213)
* * *
드디어 정신을 차린 블랙드래곤.
벨리아크레니가 어둠 속에서 샛노랗게 빛나는 거대한 눈동자가 나를 신기하다는 듯 빤히 쳐다봤다.
“아까 내 심상세계에서 만났을 때는 분명히 지금과 다른 외모였거늘… 본래의 육체는 어디로 가고 그런 추악한 몸뚱이를 쓰고 있는 것인가?”
“…나름대로 이래저래 사연이 많다.”
“지금 보니, 아까 내가 너에게서 느꼈던 천륜을 거스르는 자의 기운도 그 몸뚱이에서 나오는 것이었군.”
“맞다.”
나는 눈앞의 블랙드래곤에게 시급히 부탁해야 할 것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베하마그 산맥으로부터 끝없이 밀려오는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을 베르딘 후작가를 위해서.
“당신은 불안정한 상태로 수면기에서 깨어나면서 이성을 잃고 폭주하게 되었고, 거칠게 날뛰는 당신의 마나를 느낀 몬스터들이 일제히 이 산맥을 벗어났다.”
“크르르… 확실히 그런 것 같군.”
“온 산맥에 걸쳐 날뛰고 있는 당신의 마나를 한시라도 빨리 갈무리해줄 것을 부탁하지.”
하지만 내 말을 듣고도, 벨리아크레니는 별다른 액션이 없었다. 거대한 눈동자를 찌푸리고서 가만히 쳐다볼 뿐.
그렇게 한동안 쳐다보다가 거대한 입을 벌려서 말했다.
“하지만 인간이여. 그게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충분히 정중하게 부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만? 아니면, 내가 엎드려서 절이라도 해야 하나?”
“뭣이…?”
알량한 드래곤의 자존심으로 대접을 받아보겠다는 생각인 것 같았는데, 나는 순순히 굽혀주지 않았다.
어차피 이 블랙드래곤 벨리아크레니는 한번 깨어난 이상 다시 잠들기까지는 수백 년이 남아있을 터였고, 우리 베르딘 입장에서는 같이 살아야할 이웃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저자세로 나가고 얕보이면, 앞으로도 여러모로 피곤한 일들이 발생할지 몰랐다.
애초에 여기서 고마워해야 하는 것은 저 드래곤이기도 했고.
“나는 당신에게 큰 도움을 줬는데, 오히려 태도를 문제 삼으니 상당히 불쾌하군.”
“네놈이 내게 도움을 줬다고?”
“그렇다. 흑마법사 놈들의 간계로 불완전하게 깨어나서 폭주하고 있던 것을, 내가 제정신을 일깨워주지 않았나.”
“크르르르! 잠꼬대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멈추게 되는 법이다. 고작 이런 것으로, 감히 내게 도움을 줬다고 생색을 내는가?”
“그래?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정말로 뭘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아무래도 수백 년 동안의 잠에서 방금 깨어나서 머리가 안 돌아갈 만도 했기에, 나는 친절하게 하나씩 드래곤이 처해있던 상황을 알려주기로 했다.
“당신이 폭주하는 바람에, 베하마그 산맥에 살던 수십 만 마리의 몬스터들이 일제히 산맥을 벗어났다.”
“그래서?”
“졸지에 산맥을 맞대고 있는 인간의 영지들은 몬스터 웨이브를 맞게 되었고, 아마 미리 준비를 해놓지 않았던 영지들은 큰 타격을 입었겠지.”
“그건 너희 인간들에게나 큰일이 아닌가? 나와는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지?”
“그냥 적당히 영지 차원에서 피해를 입으면 모르겠지만, 이대로 두면 제국도 왕국들도 국가 차원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될 거다.”
한마디로, 베하마그 산맥을 끼고 있는 제국과 왕국들이 연합해서 드래곤 레이드를 올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얘기를 들은 벨리아크레니가 안 그래도 커다란 눈동자를 더욱 동그랗게 떴다.
“인간들이… 감히 나를 잡으러 온다고?”
“그렇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데,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망할 판국이라면 달려들지 않겠나.”
“하! 가소롭군!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
“만약 당신이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문제될 게 없을 수도 있지. 하지만 당신은 수면기에서 불안정하게 깨어난 상태이고, 계속 정신도 못 차리는 상태라면?”
이 상태로 작정하고 달려드는 제국과 주변 왕국들의 오러마스터들과 7서클 이상 고위급 마법사들을 상대해야 할 거다.
과연 그래도 드래곤이 아무 피해 없이 무사할 수 있을까?
“크르르…….”
“게다가 당신이 상대해야 할 근본의 적은 따로 있는 상황이지.”
“크르릉? 내가 상대해야 할 근본의 적?”
“흑마법사. 너나 프라가가 천륜을 거스르는 자들이라고 부르는 놈들 말이다.”
“…!”
애초에 이 모든 판을 짠 것이 흑마법사들이었다.
놈들이 개입하지 않을 리가 없었고, 필시 양패구상(兩敗俱傷)이나 어부지리(漁父之利)를 노릴 게 뻔했다.
“하지만 놈들도 당신의 폭주가 이렇게 빨리 멈출 줄은 몰랐겠지. 아까 내가 말한 대로 온 산맥으로 뻗어 나가서 날뛰고 있는 당신의 마나를 잠재우면, 놈들의 계획은 어그러지게 될 터.”
“과연… 건방지지만, 일리 있는 말이로구나.”
이쯤 되니, 벨리아크레니도 거대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베하마그 산맥 곳곳으로 퍼져나간 자신의 마나를 갈무리하기 시작했다.
츠즈즈즛!
츠화아아아―
별안간 블랙드래곤의 거체에서 새까만 어둠의 마나가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이 어둠의 마나는 레어의 중심부에서부터 온 산맥으로 잔잔하게 퍼져나갔다.
마치 서산 너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 까만 밤의 어둠이 온 세상에 서서히 내려앉는 것처럼.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츠즈즈즈…….
마침내 드래곤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던 어둠의 마나가 잦아들더니,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기감을 최대한 넓혀서 레어 바깥쪽을 살펴보니, 베하마그 산맥 전체에서 느껴지던 흉흉한 마나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패닉 상태가 되어서 베하마그 산맥에서 허둥지둥 도망치던 몬스터들도 다시 제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마 베르딘 쪽으로 갔던 몬스터들도 이제 서서히 제정신을 차리고 다시 되돌아오겠지.
‘휴우― 어떻게든 해냈군.’
감회가 새로웠다.
처음에 베르딘의 사생아로 눈을 떴을 때부터, 가장 우려했던 것이 이 ‘몬스터 웨이브’였다.
베하마그 산맥의 ‘검은 재앙’이라고 불렸던 이 사건은 제국과 주변 왕국들의 영토 절반 이상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을 만큼 치명적인 재해였다. 이로 인해서 베르딘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고.
하지만 결국에는 베르딘의 멸망을 피하게 됐다.
물론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인명피해와 경제적인 손실이 어마어마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영지가 통째로 폐허가 되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겠는가?
스윽.
목적을 이룬 나는, 어느새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아인세라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는 벨리아크레니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용무를 마쳤으니, 나는 이제 가보도록 하겠다.”
“크릉? 벌써 가려는가?”
“그래. 환자도 있고, 내려가서 영지 상황도 살펴야 하니까.”
무엇보다 목적을 이뤘으니, 더 이상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벨리아크레니는 내가 떠나는 것이 꽤 아쉬운 모양이었다.
“인간. 네 이름은 무엇인가?”
“내 이름?”
“그래.”
“…에반 베르딘이다.”
잠깐 고민하긴 했는데, 그냥 알려줬다. 어차피 상대는 무려 드래곤인데,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든 알아낼 수 있을 테니까.
“크릉, 에반 베르딘. 성이 있는 것을 보니 귀족인가 보구나.”
“그런 셈이지. 그런데 개인신상은 왜 자꾸 묻는 거지?”
“너는 우리 블랙 일족과 각별한 관계가 있는 프라가라흐와 계약하고 있지 않은가. 너와 프라가에게는 들어야 할 얘기가 많다.”
“그래서… 영지로 찾아오기라도 하려고?”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는 대로 찾아가려고 했다만.”
와, 그냥 갔으면 큰일 날 뻔했네.
일단 벨리아크레니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는 것은, 내 입장에서도 매우 좋은 일이었다. 어쩌면, 드래곤이 깨어나면 그냥 폐기할 생각을 하고 있던 마나석 광산도 어쩌면 계속 운영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영지에 드래곤이 오면 무슨 난리가 나겠는가?
본체로 오면 말할 것도 없고, 설령 인간형 모습으로 폴리모프를 해서 온다고 해도 분명히 문제가 생길 거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후우― 됐다. 영지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내가 찾아오도록 하겠다.”
“오호, 그렇다면야… 알겠다.”
“대신에 여기까지 좀 편하게 올 수 있도록 뭔가 장치를 마련해 줄 수 있겠나?”
“그러면 이걸 주도록 하겠다.”
우우웅―
별안간 내 앞의 허공이 일렁이더니, 검은 어둠 속에서 웬 손바닥만한 종이 한 장이 나와서 팔랑거리며 떨어졌다.
집어 들어서 살펴보니, 거기에는 복잡한 문양의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마법 스크롤인가?”
“맞다. 그걸 찢으면 여기까지 텔레포트해서 올 수 있을 거다.”
“그렇군.”
참고로 그냥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하려고 하면, 온갖 방어마법에 차단당할 거라고 했다.
드래곤이 건네준 스크롤까지 챙긴 나는 이제 진짜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벨리아크레니의 호의는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이왕 편의를 봐주는 거, 지금 돌아갈 때도 내가 마법으로 보내주겠다.”
“흠? 그렇다면 고맙지.”
그런데 좀 문제가 있었다.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베르딘 후작령이다.”
“텔레포트 좌표는?”
“으음?”
“텔레포트 좌표 말이다. 마법으로 보내주려고 해도, 좌표를 알아야 보내줄 것이 아닌가.”
“어…….”
대략 난감했다.
아인세라가 깨어있으면 알려줄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그때, 봉인검에서 프라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그건 내가 알려줄게.] [프라가? 잠들어 있던 거 아니었나?] [피곤해 죽겠는데, 그래도 이후에 돌아가는 상황이 궁금해서 그냥 봉인검 안에서 듣고 있었지.]그는 직접 내 마나를 끌어다가, 벨리아크레니에게 검은방벽의 텔레포트 좌표를 말해줬다.
그러자 곧 블랙드래곤의 어둠 속성 마나가 나를 둘러쌌고, 그녀가 작별인사를 건넸다.
츠화아아아―
“조속한 시일 내에 다시 보게 되길 바라겠다.”
“알았다. 한번 최대한 빨리 올 수 있게 노력해보도록 하지.”
“그럼… 다음에 또 보자. 에반 베르딘.”
파스스스!
이 말을 끝으로, 나는 어둠 속으로 삼켜졌다.
이후에 어둠이 걷혔을 때에는….
“인간?! 죽인다아아!”
지이이잉―
갑자기 누군가가 고함치는 소리가 귓가에 쩌렁쩌렁 울렸고, 곧 수십 군데에서 검붉은 광선이 날아왔다.
이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베르딘과 타 영지의 군사들… 복장을 보니까 대공령의 군사들인 것 같았는데, 아무튼 다들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가, 갑자기 저기에 웬 소년이?!”
“헉! 에반 공자님?!”
“뭐라고?! 저, 저, 저기 있었던 소년이 베르딘 3 공자라고?!”
콰앙!!!
대충 보니까 상황은 알 것 같았다.
아직 한창 몬스터들이랑 싸우고 있는데, 갑자기 그 한복판에 내가 나타난 거겠지.
지금은 영주의 아들이 죽었다는 생각에 다들 머리가 하얘졌을 테고.
하지만 방금 드래곤과 조우하고도 살아 돌아왔는데, 이까짓 거쯤이야.
슈우우우우…….
“휴우, 깜짝 놀랐네.”
폭발의 여운이 가시고 나자, 나는 곧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