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Prince Returned as a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
천마가 되어 돌아온 막내황자-3화(3/213)
* * *
영주성 내에 안 쓴 지 오래된 연무장.
판석은 지진이라도 난 듯 여기저기 금이 가 있었고, 군데군데 찍혀서 파여있기도 했다.
심지어 잡초가 자라난 곳도 보였으니, 아무도 관리하지 않고 그냥 방치된 것 같았다.
츠즈즈즛―
달빛만 은은하게 비추는 적막한 이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는 내게 미세한 검은 오러가 피어올랐다.
천마기(天魔氣)였다.
모든 마기의 원류라 여겨지며, 동시에 모든 마공을 다룰 수 있게 해주는 마기의 정점.
‘생전 무공을 모르던 몸으로 열 살부터 연공이라….’
솔직히 많이 늦은 나이였다.
인간의 몸은 태어났을 때 온몸의 기혈이 뚫려있어, 정수리의 백회혈부터 발바닥의 용천혈까지 삼라만상(森羅萬象)의 기운이 통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몸에 탁기가 쌓여 기혈이 막히게 된다.
그래서 열 살이면, 아마 대성(大成)은 고사하고 단전이나 제대로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방금.
츠화아아아!
미약하지만, 나는 하단전에 작고 소중한 무언가가 확실하게 자리 잡은 것을 느꼈다.
‘후우… 그래도 1성은 완성했군.’
하단전에 앞으로 쌓을 내공의 씨앗을 심은 단계.
이제 이것을 핵으로 삼아 마기를 불려 나가면 된다.
예전의 무위를 생각하면 갈 길이 한참 멀었지만, 그래도 1성을 완성하고 나니까 조금 안심이 됐다.
‘흠… 3개월이라.’
처음에는 최소 6개월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런데 천마기가 쌓이는 속도가 생각보다 빨랐다.
차원이동 때문일까?
에반 베르딘의 몸은 조금 특별했다.
원래는 연공을 통해 단전에 쌓이는 내공은 극소량이다. 이것은 정공(正功)에 비해 축기의 속도가 빠른 마공(魔功)도 마찬가지.
그런데 이 몸은 연공을 통해서 생겨난 마기를 8할 이상의 엄청난 고효율로 단전에 축적했다.
‘그나마 다행이군.’
그리고 이 몸의 특이한 점은 또 있었다.
단전에 천마기를 모으기 전부터, 심장에 정체불명의 마나가 농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극소량이긴 하지만, 놀랍도록 정순한 마나.
이 힘을 처음 느낀 것은 연공 첫 번째 날이었다.
츠즈즈… 즈즈즛…….
― 어? 이건 뭐지?
운기조식 중에 갑자기 심장 부근에서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심장 부근으로 의식을 집중했는데…?
웅… 웅… 웅….
심장 안에서 서서히 회전하기 시작한 마나.
그것은 곧 자연계 마나와 공명을 일으켰고, 급기야 내 앞에 한데 뭉쳐서 발현시키기까지 했다.
우우웅―!
― 우왁?! 이, 이게 뭐야?
나는 갑자기 생겨난 검은빛의 구체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평생 검을 쥐고 살아왔던 내게는 생전 겪어보지 못했던 낯선 감각.
이것과 관련해서, 나는 한동안 영주성의 도서관을 드나들며 관련 서적들을 뒤졌다.
그리고 이 현상이 서클을 통한 마법사의 마나운용과 굉장히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갑자기 서클이라고???
잠깐 설명을 하자면….
육체단련을 통해서 심장부에 순도 높은 마나를 단순축적하는 기사와 달리, 마법사는 심장을 둘러싸는 ‘마나 서클(Circle)’을 만든다.
그리고 이 서클을 통해서 자연계의 마나를 움직여 술식을 구성하고, 우리가 ‘마법’이라 부르는 현상을 구현시키는 것이다.
― 하지만… 좀 이상한 부분도 있군.
분명 책에서 서클은 심장 바깥쪽에 만드는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심장 안쪽에서 마나의 회전을 느꼈다.
―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확실한 것은, 이 소년의 몸으로는 마나를 ‘오러’의 형태로 다루는 ‘무공’과 ‘마법’을 모두 익힐 수 있었다.
‘미쳤네… 이게 가능하다니.’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몸 안에 서로 다른 기운이 존재하면 흐름이 엉켜 폭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림에서는 그것을 ‘주화입마’라고 부르고, 이곳에선 ‘마나폭주’라고 부른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몸에서는 심장의 마나와 단전의 천마기가 충돌하지 않고 조화롭게 상생하고 있었다.
잘은 몰라도, 아마 천마신공 때문이겠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공능(功能)이 많은 ‘태고(太古)의 신공’이었으니까.
‘후후후! 재밌군.’
이날 이후로, 나는 천마신공을 연성하면서 심장의 마나를 활용하는 훈련도 함께 해왔다.
다만, 이 마법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웅― 웅― 웅―
“젠장 할… 여기서 이 부분은 마나를 도대체 어떻게 움직이라고 하는 거지?”
오늘도 난 도서관에서 빌려온 마법서적을 뒤적이며, 1서클 마법 ‘매직미사일’를 연구하는 중이다.
“후우, 쉽지 않군….”
만약 누가 이 모습을 봤다면, 세상에 어떤 또라이가 마법을 책만 보고 배우냐고 하겠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지금 내 상황에서 누굴 믿고, 덥석 마법을 가르쳐달라고 할 수 있을까.
‘음… 그러니까, 여기 술식은 이렇게 바꾸면 되나?’
츠즈즛!
그렇게 한참 동안 끙끙대던 중.
솜털처럼 덩어리져 있던 검은 마나들이 갑자기 작고 단단하게 뭉쳐졌다.
“오오! 된 건가?!”
하지만 성공의 기쁨도 잠시뿐.
매직 미사일을 만들어내는 것까지는 했는데, 여기서 문제는 제어가 안 된다는 거?
피융~~~
“어어…? 이, 이봐! 자, 잠깐만!”
갑자기 매직미사일이 제멋대로 어디론가 날아갔다.
그리고 내가 뭘 어찌할 틈도 없이 폭발해버렸다.
콰앙―!!!
덕분에 난리가 났다.
“으헉! 뭐, 뭐냐?!”
“습격이다! 누군가 성에 침투했다!”
안 그래도 몬스터들의 잦은 습격으로 경비가 삼엄한 베르딘 후작령이다.
“일단 경계병은 나팔부터 불어라!”
“예… 옙!”
뿌우우우―
오밤중에 적습을 알리는 뿔나팔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이냐?!”
“방금 마나 반응이 있었다고 합니다!”
“뭐라고?!”
한창 자다가 깬 후작은 곧바로 기사들과 병사들을 동원해서 대대적인 수색령을 내렸다.
‘하… 망했군.’
이날 밤.
나는 후작과 기사들을 피해서 방으로 도망쳐온다고 진땀을 뺐다.
아마 수련장소와 내 방까지 은밀하게 이어지는 통로를 만들어두지 않았었다면 꼼짝없이 잡혔겠지.
― 여기에는 없는 것 같다. 다른 곳을 수색한다!
후작이 잘못된 지시를 내렸던 것도 운이 좋았다.
이때, 나는 후작 바로 옆의 덤불 속에 숨어있었다.
결국 이 사건은 그냥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후로 나는 좀 더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휴우, 큰일 날 뻔했다.’
평민으로 자란 사생아가 가르쳐주지도 않은 특이한 무술이나 마법을 사용하면, 누가 봐도 수상할 터.
어쩌면 ‘진짜 아들’이 맞는지 의심받을 수도 있었다.
‘…미안하지만, 그게 사실이기도 하고.’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씁쓸하긴 하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새까맣게 보이는 천마기와 마나였다.
흑마법사로 오해받기 딱 좋았으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것만큼은 안 된다.’
문득 은마환(隱魔環)이라도 있었으면―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천마신교의 교도들이 중원행을 갈 때면 끼고 가는, 마기를 숨겨주는 반지였다.
물론 아르바니아에도 은마환처럼 특정 기운을 숨겨주는 아티팩트들이 있긴 했다.
천마기를 숨기려면, 보통 물건으로는 어림없겠지만.
‘이런 건 또 어디서 구하나?’
제일 만만한 곳은 마탑이었지만, 문제는 황궁이랑 마찬가지로 내가 갈 만한 명분이 없었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정말이지,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 * *
“끙.”
고민은 며칠 동안 더 이어졌다.
또 해결해야 할 문제가 뭐가 있을까?
‘내 편이 되어줄 세력이 있어야 한다.’
3황자나 천마였을 때도 절실히 느꼈지만, 뭐든 혼자서는 한계가 있었다.
‘아예 없는 데서 시작하는 것보다, 일단 있는 것을 활용하면 좋겠지?’
그래서 베르딘 후작령을 강성하게 만들고 싶었다.
‘음… 베르딘 후작가가 앞으로 어떻게 되더라?’
처음에는 특별히 떠오르는 정보가 없었다.
변방 구석에서 워낙 조용히 박혀있어서.
‘아무리 그래도, 뭐라도 있었을 텐데?’
으으음.
나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그러자 퍼뜩 떠오르는, 5년 뒤의 사건이 있었다.
‘이런 미친! 그걸 잊고 있었다니….’
워낙 대형 사태라서 제국이 발칵 뒤집혔던 사건.
이 일로 인해, 베르딘 후작가는 멸문하게 된다.
‘하, 안 되겠다.’
당장 이것부터 막을 준비를 해야 했다.
다행히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시간 여유가 좀 있었다.
어떻게 해야 베르딘 후작령이 부강해질 수 있을까?
‘일단 여기는 영지 크기에 비해 인구가 너무 적어.’
몬스터들의 습격이 너무 잦은 까닭이다.
그러면 베하마그 산맥의 몬스터들을 싹 평정해야 하느냐?
…나중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한번 따져보자.
단순히 안전해지기만 해서 사람들이 모여들까?
‘아니다.’
무엇이 사람들을 끌어모으는가.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익을 좇는 존재다.
‘욕망(欲望)!’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을 움직이는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가장 확실한 것은 역시 ‘돈’이다.
‘아마도 떼돈 벌 수 있다고 하면, 암만 위험하다고 해도 알아서들 몰려오겠지.’
문득 예전에 신교에서 돈벌이할 때가 떠올랐다.
아무리 마인들이 무섭다고 해도, 천산에서만 자라나는 마령초(魔靈草)와 흑삼(黑蔘)이 돈이 된다니까 천하 각지에서 알아서들 기어오더구만.
‘그렇다면 몬스터만 바글거리는 이곳에, 과연 돈이 될 만한 게… 어?’
문득 떠오른 생각.
질문 안에 답이 있었다.
* * *
사각사각.
책상 위에 놓인 결재서류 위로 깃펜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이날도 여느 때처럼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던 페르반 베르딘 후작.
“후우, 정말이지…….”
그가 며칠 전 한밤중에 있었던 해프닝을 떠올리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빨리 강해지려는 것은 좋지만… 하마터면 들킬 뻔했다.’
아닌 게 아니라, 만약 자신이 덤불 속에 숨어있던 에반을 먼저 발견하고 수색대를 물리지 않았다면?
‘아마 들켰겠지.’
설령 그런 상황이 왔더라도, 대충 얼버무리며 넘길 수 있기는 했다.
그렇다 해도 이런 일이 또 발생하는 것은 곤란하다.
‘절대로 나 이외에 다른 누군가가 에반이 품고 있는 흑마력을 눈치채서는 안 되니….’
놀랍게도, 후작은 ‘사생아 에반’이 매일 밤마다 명상과 검술, 마법을 비롯한 각종 수련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에반의 기감이 닿지 않는 범위에서 종종 수련하는 것을 엿보고는 했으니 말이다.
‘성장속도와 학습능력이 내 예상치를 훨씬 웃돌고 있다.’
분명 좋은 일이긴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이러다가는 언제 어떤 식으로 에반의 흑마력이 노출될지 몰랐다.
‘…방법을 모색해봐야겠군.’
지금 이 순간.
후작의 표정은 에반과 함께 있을 때와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칼에 베일 듯 날카롭고 차가운 눈빛.
그가 이렇게 상념에 잠겨있을 때였다.
똑똑.
“아버지. 소자 에반이옵니다.”
“으흠? …들어오너라.”
문제의 막내아들이 제 발로 찾아왔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일까.
어느새 후작의 표정은 저도 모르게 스르르 풀어져 있었다.
“웬일로 찾아왔느냐?”
“아버지. 이제 곧 몬스터 토벌전에 나서시지요?”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에반.
“토벌전? 일주일 뒤로 잡혀있긴 하다만…….”
…설마?
살짝 불안해지는 마음에, 후작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워졌다.
씨익.
아니나 다를까.
에반이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 몬스터 토벌전, 소자도 따라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