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Prince Returned as a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57)
천마가 되어 돌아온 막내황자-57화(57/213)
“비, 빙의라고?!”
“그래.”
“맙소사…….”
아까 내가 당황했던 것만큼, 이번에는 아인세라가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충격 받고 멍―하게 있는 것도 잠시뿐.
곧 생각을 정리한 그녀가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아무튼… 너는 베르딘 후작가의 사생아 ‘에반’이 아니라는 거지?”
“맞아.”
“그러면 원래의 너는 누군데?”
의심의 눈초리로 날카롭게 노려보는 아인세라.
하지만 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직 말해주기 곤란해.”
“…뭐라고?”
“하지만 때가 되면, 꼭 말해줄게.”
만약 그때도 너와 내가 서로 아군이라면.
이 말을 들은 아인세라가 가만히 나를 노려봤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동안 서로를 응시했는데―
“칫… 좋아. 그러면 이것만이라도 말해줘.”
“뭐지?”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대화.
그만큼 한마디 한마디가 중요했다.
“네 목적은 뭐야?”
“…으음.”
나도 모르게 침음성이 흘렀다.
‘목적’이라….
중요한 질문이었다.
길을 가는데, 목적지가 반대 방향인 사람과 함께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아인세라는 본인과 내가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인지 가늠해 보려 하는 것일 터였다.
‘바트란에게 했던 것처럼 황제를 죽이는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하지만 어설프게 둘러대거나 거짓말로 넘기는 것도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나중에 들키기라도 한다면, 신뢰가 깨지거나 반감을 사게 되어서 적으로 돌아설지도 몰랐으니까.
‘그렇다면 어느 정도 사실이면서, 실제로 이 부분에서 아인세라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어떻게 대답할지 결정을 내린 나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내 목적은 원래 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찌풀.
“…지금 장난해?”
“아니. 진짠데.”
“하, 좋아. 그러면 그다음에는 뭘 할 건데?”
“미안하지만, 이것도 아직 말해줄 수 없어.”
“와― 뭐 하나 제대로 알려주는 게 없네? 설마 나보고 그냥 무조건 믿으라는 거야?”
끙… 역시 아인세라.
절대로 그냥 설렁설렁 넘어가 주지는 않는다.
“나중에 내가 누군지 알게 되면, 목적은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다. 그리고 나는 루크 공작가를 적대할 생각은 없어.”
일례로, 이번에 카니온 후작가와 완전히 척진 것을 말했다.
중부의 패권을 놓고, 루크와 카니온은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리고 카니온을 적대했다는 것은, 지금 당장은 같은 적을 두고 있다는 뜻.
“…그건 그렇긴 하지.”
아직 의심을 완전히 거둔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은 어느 정도 수긍한 것 같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내가 질문했다.
“그렇다면 아인세라, 네 목적은 뭐지?”
움찔.
“…내 목적?”
잠깐이었지만, 일순간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나 곧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목적은 루크 공작가의 존속과 번영이야.”
“으음? 루크의… 존속?”
“…어?”
나는 듣고도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이런 내 반응을 보고, 즉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아인세라.
“설마, 너… 회귀자인데, 우리 가문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거야?”
“…아.”
아차 싶었다.
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어찌 주워 담을 수 있으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렇다면… 어차피 알고 있는 미래의 정보가 얼마 없어서, 나비효과를 무시하기로 한 건가?”
“아, 그건 베하마그 산맥에서 시작될 재앙 때문에.”
나비효과고 자시고, 일단 살고 봐야 하지 않겠나?
이 부분은 아인세라도 충분히 납득했다.
어째… 조금 동정하는 것 같기도 했고.
“쯧쯧, 너는 빙의를 해도, 하필 베르딘의 사생아로 빙의가 됐니?”
“…그러게 말이다.”
나는 가볍게 받아넘기려고 했는데, 아인세라는 꽤나 심각한 표정이었다.
“아무리 강해져도 그렇지… 정말로 베르딘이 그 재양을 버텨낼 수 있긴 한 거야?”
5년 뒤의 재앙은 제국 서부 전체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베하마그와 가장 가까웠던 베르딘은 아예 초토화되어 버렸고.
“내가 살아온 모든 회차를 통틀어서, 베하마그 산맥의 재앙으로 인한 결과가 달라졌던 적은 없었어.”
“하지만 베르딘에 내가 있었던 적도 없었겠지.”
“얼씨구? 진짜 엄청난 자신감이네.”
어쨌든, 아인세라는 나와의 대화를 통해서 더 이상 나비효과 따위는 신경 쓰지 않기로 한 것 같았다.
“치잇… 아무튼, 이렇게 되니까 괜히 조심조심했던 나만 엄청나게 손해 본 것 같네.”
“후후, 아끼다가 똥 된다는 말이 있지.”
삐쭉.
“…야.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아인세라가 괜히 내 탓을 했다.
하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기에, 가볍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글쎄? 잘 모르겠군. 나는 그저 생존본능에 충실할 뿐이라서.”
“어휴! 정말이지 말이나 못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그녀.
그래도 내가 내놨던 답변들이 어느 정도 진정성 있게 들린 걸까?
잔뜩 날이 서있던 분위기는 살짝 누그러들었고,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식당 마감 시간이었다.
이미 가게에 손님은 우리 두 사람뿐.
“어머, 시간이 벌써 이렇게…?”
“이제 슬슬 일어나지.”
입구 쪽에서는 호위기사인 하버와 제스가 언제 대화가 끝나려나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둘이서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표정을 보니 그렇게 심심한 것 같지는 않았고… 오히려 기묘한 유대감(?) 따위가 느껴졌다.
“으하하핫! 두 분, 식사는 즐겁게 하셨습니까?”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입이 귓가에 걸려있는 하버.
옆에 있는 제스도 묘하게 들떠 보였다.
“공작님께는 조금 늦게 들어가실 것 같다고 미리 말해놨습니다.”
“고마워! 역시 제스야.”
빙긋 웃어 보이는 아인세라.
지금 모습을 보면, 아까 봤던 모습이 거짓말 같았다.
‘…대단하군. 역시 회귀자라 이건가?’
한편, 저쪽은 호위기사도 우리 누구누구와는 다르게 이런 방면으로 센스가 상당해 보였다.
“크으! 아쉽습니다, 에반 공자님.”
“뭐가?”
“여기 영업시간이 너무 짧은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직 밤은 많이 남았는데 말이죠! 와하하핫!”
“…….”
지금도 이미 많이 늦었는데, 여기서 더 늦게 들어갔다가는 그 팔불출 공작의 분노를 어찌 감당하려고?
나는 괜히 한 소리 하려다가, 그냥 한숨만 쉬었다.
“에휴… 됐다.”
“예?”
“아니야. 그냥 가자고.”
“아아…! 이대로 데이트를 마무리하기가 아쉬워서 그러시는군요?!”
“뭐?”
“괜찮습니다! 아직 돌아가는 길이 있으니까요!”
도시의 밤길을 오붓하게 걸으면서―
어쩌고저쩌고 뭐라 말하는데, 잠시나마 하버의 말에 혹해서 ‘아인세라가 정말로 내게 고백하려는 것일지도?’라고 생각했던 스스로가 굉장히 한심하게 느껴졌다.
* * *
어느덧 밤 10시를 넘긴 야심한 시각.
만약 베르딘이었으면, ‘마나 가로등’들이 전부 꺼지고 도시 전체가 캄캄한 어둠에 잠겨있을 터.
하지만 루크 공작령은 아직도 곳곳에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거리에는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쩝, 우리 영지는 아직 마나석이 부족해서 이렇게는 못 하겠지.’
새삼 돈 많은 공작령이 부러웠다.
이렇게 부러워하는 것도 얼마 안 남긴 했지만.
“있잖아, 에반.”
“응?”
“그래서 이제 다음 계획은 뭐야?”
“아아.”
나는 한 달 뒤에 제국 유소년 검술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그러자 곰곰이 생각에 잠긴 아인세라.
“혹시 카니온 놈들이 또 수작을 부려오지 않을까?”
“아마도? 당연히 그렇게 하겠지.”
이미 예상하고 있는 바다.
1황자도 참가할 테니, 100%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왕 나가는 거, 키르젠 그 새끼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버려.”
“안 그래도, 그렇게 하려고.”
내가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서.
그 새끼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나를 모욕했는데, 그 빚을 갚아줘야 하지 않겠나?
뭐… 그게 아니더라도, 지난 생의 빚이 잔뜩 있다.
시간이 워낙 오래 지나서 이자가 엄청나게 붙었을 텐데, 기회가 될 때마다 부지런히 갚아줘야지.
“어머, 나 기대하고 있어도 돼?”
“후후후, 물론이다.”
우리 두 사람은 앞으로의 일에 관련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면서 걸었다.
아직 서로를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지만, 일단 오늘 나눈 대화를 토대로 믿어보기로 했다.
여태까지 서로가 보여준 모습들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한창 길을 걷던 도중, 캄캄한 골목길에서 누군가 비틀거리면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한 오십 대 정도로 보이는 대머리 남성.
‘취객인가?’
딱히 대수로울 것도 없어서,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무공으로 강화된 청력을 통해, 사내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흘러들었고―
“으흐흫… 검은색 가루… 그 가루가 필요해… 그 가루만 있으면… 히히히힣… 먼저 간 우리 마누라… 다시 만날 수 있어! 그 검은색 가루만 있으면…!”
우뚝.
나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에반?”
아인세라가 의아하다는 듯이 쳐다봤지만, 나는 여전히 그 사내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제법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녀는 저자가 뭐라고 중얼거리는지 못 들은 것 같았다.
“잠깐 저쪽에 술 취한 남자를 만나봐야겠어.”
저벅저벅―
“뭐, 뭐라고? 야, 같이 가!”
내 돌발 행동에, 당황한 호위기사들도 급히 따라붙었다.
그렇게 취객의 앞을 가로막은 우리 네 사람.
“흐으헤…?”
꿈뻑꿈뻑.
깡마른 체구에 창백한 안색.
어딘가 많이 아픈 사람처럼 퀭한 눈빛.
그는 나와 아인세라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그러다가 이내 아인세라를 보며 헤벌쭉한 미소를 지었다.
“여브오오! 당신이… 당신이 왔구려! 으흐흫!”
“꺅! 뭐, 뭐야?!”
“이런 미친놈이…!”
스릉―
중년 사내가 갑자기 지른 소리에, 아인세라는 깜짝 놀랐고 호위기사인 제스는 검을 뽑아 들었다.
단칼에 벨 기세.
“잠깐!”
스르륵―
나는 즉시 두 사람을 제지했다. 그리고는 재빨리 암영무흔보를 밟고서 사내에게 바짝 접근했다.
이어서 곧바로 시전한 점혈(點穴).
푹― 푹―
“으어어…?”
마혈을 짚자,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인지능력이 떨어져 있는 탓인지, 그렇게 막 놀라거나 하는 반응도 아니었다.
“여, 여브오오오! 크흐흐흙… 나는 이렇게 나이가 먹어버렸는데… 당신은 아직도 처녀 때 같소….”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 늘어놓을 뿐.
“으응…? 술 먹고 사람을 헷갈렸나?”
“착각? 아무리 취했어도 열 살짜리 꼬마가 처녀로 보이겠냐?”
“아니, 뭐 많이 취했으면 그럴 수도 있지!”
냉소적인 내 태도에, 아인세라가 조금 기분이 상했는지 볼멘소리를 냈다.
하지만 지금 이 남자가 보이는 증상이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라면, 결코 가볍게 넘어갈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귀가 좀 좋거든?”
“에? 그건 갑자기 또 무슨….”
“저 남자가 아까 ‘검은색 가루’가 있으면 먼저 간 마누라를 다시 볼 수 있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뭐, 뭐라고?!”
순간, 눈이 부릅떠진 아인세라.
예상대로 그녀도 ‘검은색 가루’라는 말을 듣고 민감하게 반응했다.
“너, 그게 뭔지도 아는 거야?!”
아무래도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상황에, 그녀는 조금 흥분한 것 같았다.
[물론. 회귀했다고 했잖아?]“방금 이건…?!”
[오러를 이용해서 다른 사람에게 안 들리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이야.]“아…….”
옆에 하버와 제스가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 대놓고 떠들 수는 없지 않은가?
지나다니는 사람 중에 혹시 누가 들을지도 모르고.
힐끗. 힐끗.
“뭐야? 무슨 일이지?”
“저 남자는 좀 많이 취한 것 같은데….”
“왜 애들이 길을 막고 있지? 좀 위험한 거 아냐?”
수군수군―
벌써 주변을 지나다니는 몇몇이 괜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도시 구경을 나오면서, 평민처럼 변장했기 때문에 특별히 우리 정체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았지만….
이런 식으로 관심을 끄는 것은 썩 달갑지 않다.
푹.
나는 그 남자의 수혈을 짚었다.
“어…? 흐허어어…….”
풀썩.
사내는 그대로 자리에 쓰러져서 코를 골기 시작했다.
살짝 벌어진 입에서는 침까지 질질 흘리는 게, 영락없는 취객이었다.
“하버. 저놈 챙겨.”
“넵!”
씩씩하게 대답한 덩치의 기사가 세상 모르게 잠든 남자를 단숨에 들쳐멨고.
그길로 우리는 곧바로 영주성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