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Prince Returned as a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8)
천마가 되어 돌아온 막내황자-8화(8/213)
‘아… 이렇게 죽는 건가?’
느닷없이 만나게 된 강적 토끼괴물과의 사투 끝에, 나는 차디찬 땅바닥― 은 아니고, 포근하고 푹신한 마나허브 꽃밭 위로 쓰러지게 되었다.
향기는 또 어찌나 달콤한지, 코끝에 가득 풍겨오는 꽃내음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
‘X발, 토끼 손톱이 이렇게 날카로운 줄은 몰랐네.’
뜯겨나간 뱃가죽 사이로 내장이 흘러나와 있었고, 얼마 남지 않은 내 생명력도 붉은 강이 되어 파란 꽃밭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끄으윽…….”
혹시나 해서 움직이려고 해봤는데, 손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고통에 찬 신음성만 희미하게 흘러나올 뿐.
‘하, 하하… 진짜 어이없네.’
갑자기 흑마법에 당해서 무림에 떨어졌을 때도.
거기서 정마대전이 터졌을 때도 살아남았다.
심지어 무림에서 아르바니아로 다시 차원이동하는 것도 성공했는데… 여기서 이렇게?
죽음을 앞두고, 문득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기도 했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식이 점점 흐려지면서, 깨어나지 못할 영원한 잠에 빠져들겠지.
그렇게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
.
.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 순간은 오지 않았다.
‘…어? 이상하다?’
점점 흐려져야 할 의식이 갈수록 맑아지고 있었다. 게다가 복부에서 느껴지던 고통도 점점 사라져갔다.
이제는 몸에 제법 활력이 도는 것 같은 이 느낌적인 느낌은 그냥 나의 느낌인 뿐인 걸까?
꼼지락. 꼼지락.
‘뭐야? 진짜로 움직여지잖아?’
나는 조심스럽게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바로 옆에 토끼괴물의 시체가 보였다.
녀석을 보는 순간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저놈은 가져가서 무스탕을 만들어야 하나?’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거’겠지.
몬스터들 중에서도 오러를 발현할 줄 아는 놈들은 심장에 ‘마나핵’을 지니고 있다.
팔아도 값이 어마어마하게 나가겠지만, 이건 내가 직접 사용할 생각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여기에 담긴 마나를 흡수하면 천마신공의 성취를 끌어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될 테니까.
‘그건 그렇고…….’
스윽.
아래쪽을 내려다본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스슷….
뱃가죽이 뜯겨나가고 딸려 나온 내장이 흘러넘쳐서 상당히 그로테스크했던 복부가 거짓말처럼 말끔해졌으니까.
그리고 이 순간에도 상처가 낫고 있었다.
눈으로 보일 만큼 빠른 속도로.
‘이, 이건 또… 무슨 일인 건지.’
꿀꺽.
이 기괴한 광경에, 나도 모르게 침이 넘어갔다.
혹시라도 주변에 누가 치유마법이라도 써주고 있나 살펴봤는데, 역시 그런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살짝 긴장된 마음으로 신체 내부를 관조했다. 그러자 심장의 마나가 신체 전체에 독특한 마력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끄응…….’
당장이라도 죽을 정도의 치명상을 그 어떤 외부의 조력도 없이 알아서 치료하는 몸뚱이라니?
이런 건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착잡한 심경에, 오만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지금 내 몸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역시 천마신공 때문인 건가?
아니면 차원이동을 거치면서 얻어진 능력?
원래 이 몸의 주인이 어떤 특이체질이었거나, 나도 모르는 마법을 익히고 있었을 가능성은?
…질문은 많았는데, 대답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도 없었다.
분명히 엄청나게 좋은 능력인 것은 맞는데.
‘조금 찝찝하군. 어째 이 몸으로 깨어난 뒤로는 계속 의문점만 쌓여가는지….’
또 다른 숙제가 생겨난 느낌이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자, 이 몸뚱이는 언제 다쳤냐는 듯 완벽하게 회복되었다.
이후.
나는 토끼괴물의 사체를 통째로 들고 가려다, 괜히 이상한 의심만 살 것 같아서 마나핵만 챙겼다.
그리고 마나허브 꽃밭은…….
‘당장 써먹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괜히 욕심부리면 안 되겠지?’
지금 베르딘 후작령의 역량으로는 이걸 감당할 수 없을 거다.
그렇다고 이대로 그냥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혹시라도 누가 발견해서 소문나면 안 되니까.
나는 마나허브 꽃밭 주변에 천마기를 주입한 돌과 나뭇가지 몇 개를 배치했다.
만약 누군가 이 모습을 본다면 애들 장난처럼 보이겠지만, 여기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었다.
그렇게 작업을 마치고 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솨아아아아―
아름답고 영롱한 빛을 내던 마나허브 꽃밭이 사라진 것이었다. 이제 거기엔 숲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흔한 나무와 수풀들만이 가득해 보였다.
팔괘와 오행의 묘리를 이용한 간단한 진법.
이제 마법사나 오러 유저가 작정하고 찾지 않는 한, 아무도 못 찾을 거다.
여기까지 하고, 나는 9대대로 향했다.
* * *
“에반…!”
와락.
후작은 온통 피범벅이 되어 나타난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서 꽉 끌어안았다.
나는 없어진 지 무려 10시간 만에 돌아왔다고 한다.
“아, 아버지……?”
“몸은…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네? 아… 소자, 괜찮습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구나……!”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는데, 그래도 누군가 나를 이렇게 진심으로 걱정해준다는 것이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다른 기사들도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특히 눈시울이 조금 붉어져 있는 하버가 눈에 띄었다.
“크흐흐흛―!!! 에반 공자님!!!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어… 그, 그래…….”
코를 훌쩍거리며,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쩌렁쩌렁 말하는 하버.
그렇게 모두가 진정되자, 후작이 괜히 민망한지 또 본인 특유의 헛기침을 몇 번했다.
“흠흠! 그래…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인 게냐?”
“그것이…….”
나는 라프에게 후작부인의 음모에 대해서 들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증거는 없지.’
사실대로 말하려 해도, 내가 라프를 손수 죽인 것을 말해야 하니 곤란하기도 하고.
그래서 어떻게 말할지 미리 생각해뒀다.
“소자, 9대대의 3중대장이 특이한 식물을 발견했다 하여 안내를 받아 이동했습니다.”
“호오…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후작이 묘하게 눈빛을 반짝였는데, 나는 침착하게 연기를 펼쳤다.
마치 무서워하는 것처럼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
“그것이… 모, 몬스터들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이, 이럴 수가…!”
“그, 그러면 라프는… 설마?!”
끄덕….
내가 가만히 고개를 숙이자, 기사들 사이에서 ‘아!’ 하는 탄식 소리가 흘러나왔다.
“소, 소자는… 숨어있으면, 9대대장이 구하러 올 줄 알았습니다.”
“예에?!”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진 9대대장 발터.
후작과 기사들이 일제히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봤다.
“그게 무슨 말이더냐?”
“저희는 분명히 이동 전에 9대대장에게 말했는데, 저자는 제가 얘기할 때는 건성으로 대답하더니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나 봅니다.”
“마, 말도 안 됩니다! 저는 그런 적이……!”
화들짝 놀라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발터.
저놈이 건성으로 나를 대했다는 것은 구라였다.
하지만 지금 후작한테 저놈 얘기가 제대로 귓구멍에 들어올까?
딱 보니까, 라프가 안전하게 일처리를 할 수 있도록 수색 방향도 일부러 엉뚱한 쪽으로 잡은 것 같은데.
히죽.
[지랄 마라, X새끼야. 넌 이제 X 됐으니.]나는 발터만 볼 수 있도록 조소하며, 전음(傳音)으로 시원하게 쌍욕을 날려줬다.
“고, 공자님?! 아무리 그래도 어찌 이런 욕설을…?!”
깜짝 놀란 발터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래봤자, 다른 사람들에게는 안 들렸겠지만.
“응? 9대대장. 내, 내가… 무슨 욕을 했다고 그리도 무섭게 노려보는지…….”
“예…? 부, 분명히 방금…….”
[후후후,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걸 보니, 병신 같은 놈이로군.]“바, 방금도 제게 병신이라고……!”
발터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발터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는 같은 눈빛을 발터에게 보내고 있었다.
“발터… 네놈이 드디어 미친 게로구나!”
쿠구구궁―
후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장이라도 죽여버릴 것 같은 기세로.
“후, 후작님?! 저, 저는……!”
“닥쳐라!!!”
결국 발터는 내 호위임무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그 자리에서 즉시 보직해임 되었다.
이후.
토벌전이 끝나고 성으로 돌아오자마자, 후작은 발터에게 태형을 놓고 내쫓았다.
* * *
쾅―!
집무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그러더니 뾰족한 여인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신! 발터 경을 내쫓았다면서요?!”
강렬한 보라색 머리카락에 사납게 올라간 눈꼬리는 평소보다 더 올라가 있는 것 같았다.
잔뜩 화가 나서 샛노란 눈동자를 부릅뜨고 있는 이 여자는 후작부인 클라나 베르딘이었다.
“…부인.”
한창 바쁘게 업무를 보던 페르반이 여전히 자리에 앉은 채 그녀를 가만히 응시했다.
“어떻게 저한테 아무런 말도 없이 이럴 수 있죠?!”
클라나가 더욱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
그녀가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이번 일이 발터가 그녀의 명령으로 벌인 짓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클라나 베르딘의 결혼 전 성은 ‘프레이아’.
그녀는 프레이아 백작가의 차녀였고, 발터는 그녀가 베르딘으로 시집올 때부터 함께 왔던 기사였으니까.
실제로 클라나는 발터를 통해서 여태까지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왔지만, 페르반은 그렇게 신경쓰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가 단호했다.
“발터 경은 전장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중책을 놓고 태만했으며, 명예롭지 못하게 자신의 죄를 순순히 인정하지도 않았소.”
“하! 뭐라구욧? 중책?”
기가 차다는 듯 콧방귀를 끼는 클라나.
그녀는 어떤 상황이었을지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반하장으로 따지고 들었다.
“애초에 그 애가 전장에 나간 것부터가 문제였던 것 아닌가요? 그런데 애 좀 잠깐 놓쳤다고, 십수 년간 충성해온 기사를 내쫓나욧?!”
“…….”
딱 이 말만 놓고 보면 맞는 말일 수도 있었다.
그 기사가 일부러 호위대상을 죽이려 했다는 것이 문제지만.
‘머릿속에 똥만 가득 찬 독사 같은 년이…!’
페르반은 공연히 클라나를 건드려 처가인 프레이아 백작가의 이목을 끌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뭘 하든지 내버려 두고 있었는데, 다른 것은 몰라도 에반을 건드리는 것만큼은 그냥 간과할 수 없었다.
“에반이 토벌전에 나가기로 한 것은 베르딘의 일원으로서 언젠가는 필요한 일이었소. 그 아이의 뜻에 따라 좀 더 앞당겨졌을 뿐.”
그리고 영주의 자제를 호위하는 임무가 어찌 중책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대목에서 클라나는 에반을 입적한 이후 쌓여왔던 불만이 폭발했다.
부들부들….
“듣기 싫어요! 그깟 더러운 사생아가 뭐라고욧!”
귀청이 찢어질 듯한 고음으로 날카롭게 소리 지르는 클라나.
결국 그녀는 선을 넘고 말았다.
쾅!
“말을 가려서 하시오, 부인!”
에반에 대한 모욕은 참을 수 없는 페르반이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고함을 쳤다.
그 분노가 어찌나 대단했는지, 은연중에 오러까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파르르….
“다, 당신……?”
얼굴이 하얗게 질린 클라나는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마구 흔들리는 게, 충격이 상당한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게, 남편인 페르반 베르딘은 단 한 번도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화냈던 적이 없었으니까.
고오오오오―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도 좋소! 다만, 에반은 건드리지 마시오!”
심지어 노골적으로 경고하기까지.
“끄으읏… 어떻게 나한테……!”
꾸욱.
클라나는 입술이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그리고는 벌겋게 핏발이 선 눈으로 페르반을 노려봤다.
휙―
그러다가 몸을 돌려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후회하게 될 거라는 말을 남겨놓고.
“…후우, 피곤하군.”
페르반은 부인이 떠난 자리를 한참동안 쳐다보더니,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쉴 시간은 없었다.
에반이 알아낸 몬스터 사체를 정화하는 방법 때문에 ‘황궁’과 ‘마탑’에서 사람이 오기로 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