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101)
100화
“할아버님. 암살 말씀이십니까.”
팽무성이 황당한 표정으로 묻자 살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의 실력이 뛰어나니 본문의 살수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겠고 너희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기감을 더 예리하게 닦는 것에 암살만 한 것이 없지.”
자연스레 암살을 논하는 살왕을 보며 사패는 새삼 눈앞에 있는 노인이 살왕이라는 것을 다시 상기했다.
“천살택문의 살법이 중원제일이라 들었습니다. 저희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겠지요.”
“난데없이 칼침이 날아온다 생각하니 짜릿한데.”
“천살택문 살수들의 암기술이 기대되네요.”
나름 호기로운 반응을 보이는 사패를 보며 살왕이 옆에 있던 진영에게 바라보았다.
진영도 사패를 보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지금 십영 중 다섯이 있던가?”
“두 시진 전에 취영이 살행에서 복귀해서 총 여섯입니다.”
잠시 고민하던 살왕은 사패를 보며 말했다.
“너희의 수준이 뛰어나니 첫날은 일급 살수, 둘째 날은 십영, 셋째 날은 내가 직접 나서서 총 사흘 동안 살행을 벌일 것이다.”
손주의 일행들에게 암살을 예고하는 것은 무림에서 살왕이 유일할 것이다.
‘할아버님께서 가르침을 주려고 하시나 보네.’
팽무성은 셋째 날에 살왕이 직접 나선다는 말을 듣고 그 의중을 알아차렸다.
암살을 막아내며 기감을 갈고 닦는데 굳이 살왕까지 나설 필요가 없었다.
살왕 나름대로 신경 써서 사패에게 무언가 가르쳐 주려는 호의가 느껴졌다.
팽무성 일행도 살왕이 직접 살행에 나선다는 말에 긴장과 기대가 섞인 표정을 보였다.
“진영은 가서 아이들에게 알리거라.”
“예. 문주.”
진영이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무각이 살왕에게 물었다.
“살행은 하루에 몇 번씩 오는 겁니까.”
“나야 모르지. 한 번 올 수도 있고 열 번 올 수도 있다. 왔던 살수가 다시 올 수도 있지. 잘 버텨 보거라.”
살왕은 열건면을 깨끗이 비우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같이 자리에 앉던 살수들도 일어나서 살왕의 뒤를 따랐다.
“오늘 밤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 전에 잠시 시간이 있으니 쉬어두거라.”
이렇게 되자 객잔에는 사패만 남게 되었다.
“흐응. 갑자기 우리가 지금 살문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느낌이 확 오네요.”
당화련의 말에 팽무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할아버님의 말씀처럼 기감을 예리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팽무성의 사패도 동의하며 식사를 마저 끝냈다.
“팽 아우, 그래도 표정을 보아하니 회포를 잘 푼 것으로 보여 다행이네.”
“예. 그동안 밀린 대화를 한꺼번에 풀어냈습니다.”
“팽 오라버니가 말수가 적은 편이라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객잔에 들어올 때 제법 조손지간의 느낌이 나더라구요.”
“하하, 그랬나?”
“음. 팽 시주, 인연 중에서도 혈연은 특히 더욱 진한 법이지.”
팽무성은 술병을 들어 네 사람의 잔을 채워주었다.
“이것을 마지막 잔으로 하자. 다음 술은 사흘 뒤에나 마실 수 있겠네.”
무각은 살행보다 술을 입에 못 대는 게 더 걱정인 듯 입꼬리가 축 늘어졌다.
“자, 다들 사흘 동안 죽지 말자고.”
무각의 장난스러운 말에 팽무성 일행은 웃음기를 띠며 술잔을 부딪쳤다.
* * *
살행이 시작되고 사패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자신만의 능력으로 홀로 살수들을 맞이하기 위함이었다.
천살택문은 어지간한 마을보다 넓어서 사패가 네 방향으로 흩어져도 활동 범위가 중복되지 않았다.
어느 한적한 숲속의 바위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던 팽무성은 눈을 떴다.
태양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고 산의 능선을 타고 있었다.
‘이제 아침인가.’
벌써 살행이 시작되고 팽무성은 천살택문에서 두 번째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첫째 날, 자시(23~01시)부터 시작된 천살택문의 살행은 온종일 끊이질 않았다.
그때마다 살수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팽무성의 목을 노렸다.
위협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나 여러 가지 살법을 겪게 되어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이번이 서른두 번째인가. 이제 횟수를 세기도 귀찮네.”
눈을 뜬 팽무성은 뭉친 근육을 풀어주듯 목을 옆으로 꺾었다. 그때 뒤에서 쏘아진 강침이 팽무성의 옆으로 지나갔다.
만약 목을 꺾지 않았다면 무음으로 날아온 강침이 그대로 뒤통수에 꽂혔을 것이다.
멀어지는 강침을 보던 팽무성의 눈이 아래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지둔술로 모습을 숨기고 있던 살수들이 세 방향에서 튀어나오며 기다란 꼬챙이를 찔러왔다.
제법 빠르게 땅을 가르고 튀어나오는데 조금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뒤늦게서야 잠행복에서 모래가 떨어지며 아주 미세한 소리를 낼 뿐이었다.
팽무성은 이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철컥
살수들이 꼬챙이의 끝을 돌리자 꼬챙이의 길이가 갑작스레 늘어났다.
거리감과 받아칠 때를 혼란시키는 절묘한 한 수였다.
‘괜찮네.’
그러나 꼬챙이가 팽무성의 몸을 관통하는 것보다 팽무성의 지풍이 더 빨랐다.
투투툭
혈을 제압당한 세 명의 살수는 꼬챙이를 찌르던 자세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단번에 제압당했지만, 살수들의 눈빛을 보아하니 아직 포기를 하지 않았다.
팽무성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빠악
팽무성의 두 발이 딛고 있던 납작한 바위를 뚫고 도기를 두른 직도가 솟구쳤다.
앞서 팽무성을 노린 일급 살수들은 미끼에 불과했다.
진영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일부러 바위 밑의 땅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제법인데.”
직도에 도기를 두른다 한들 지둔술로 땅에서 모습을 감춘 채로 바위를 뚫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진영은 바위밑은 안전하리라는 심리를 노린 것이지만 팽무성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애초에 지둔술로 접근하던 살수들의 기척을 놓치지 않았으니 말이다.
콰앙
팽무성은 내공을 실어 진각을 밟아서 직도의 끝을 찍어눌렀다.
그러자 직도는 땅으로 푹 들어갔고 바위는 박살이 났다.
진각이 땅이 흔들자 진영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땅 위로 뛰쳐나왔다.
모습을 드러낸 진영은 허리춤에서 직도 한 자루를 더 뽑아들더니 쌍도를 휘둘렀다.
진영의 몸이 팽이처럼 회전하며 쌍도가 연달아 쏟아졌다.
이에 팽무성도 적아도를 뽑아 들었다.
한번 진영과 도를 맞대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채채챙
팽무성은 도갑에서 절반 정도 빠져나온 적아도를 기울여 쌍도를 막아내며 좌장으로 장력을 내질렀다.
거리를 좁힌 채 질척하게 물고 늘어지는 진영의 공세를 끊어내기 위함이었다.
허나 진영은 되려 발끝의 회전속도를 높이더니 좌도로 장력을 베어내고 우도로 팽무성의 목을 노렸다.
진영은 수비도 공격으로 승화시키며 공세 일변도의 도법을 펼쳐냈다.
쌍도라는 이점을 제대로 살려서 써먹고 있었다. 이에 팽무성의 웃음이 짙어졌다.
‘이것이 천살택문의 월아쌍무(月牙雙舞).’
개파 조사인 천살제의 독문 무공이자 천살택문의 살수들이 공통으로 익히는 무공이었다.
진영은 월륜보(月輪步)를 밟으며 계속 회전이 섞인 움직임을 선보였고 거기에 쌍도로 펼치는 월아쌍무가 더해졌다.
그 모습은 마치 진영이 팽무성을 무대 삼아 빙글빙글 돌며 검무를 추는 모습과 같았다.
‘역시 천살택문은 다른 살문과 무공의 궤를 달리 하고 있군.’
보통 살문의 무공은 단 한 초식에 모든 힘이 집중되어 있다. 정면 싸움을 피하고 일격필살을 노리는 살수에게 적합한 무공이었다.
반면 천살택문은 살기가 짙은 실전형의 도법에 살수의 비기가 섞여든 느낌이었다.
그 덕분인지 첫 살초를 실패하면 전력이 급감하는 살수들과 달리 진영은 꾸준한 기량을 선보이며 쌍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쐐앵
팽무성의 적아도가 크게 휘둘러졌다.
진영이 쌍도를 교차해 막아내자 약간 솟구친 채 뒤로 밀려났다.
도격에 실린 힘이 엄청나서 적아도를 막아낸 쌍도가 아직도 잘게 떨리고 있었다.
이를 본 진영의 눈의 가늘어졌다.
‘역시 무리인가.’
팽무성은 간단히 손목을 흔드는 것만으로도 월아쌍무를 막아내고 있었다.
살왕이 마치 호수 위에 비친 달과 같다면 팽무성은 끝을 모르고 솟아오른 태산과 같았다.
줄일 수 없는 격차를 느낀 진영은 월륜보를 극성으로 밟았다.
순간 흐릿한 잔영을 남기고 사선으로 솟구친 진영은 쌍도를 교차하여 그어냈다.
초승달 형태의 도기가 십자 형태로 겹쳐서 날아들었지만 팽무성은 호왕잔연(虎王?燕)의 초식를 펼쳐 맨손으로 도기를 박살냈다.
호왕잔연의 금나수는 그대로 뻗어 허공에 뜬 진영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팽무성은 그대로 땅에 진영을 처박았다.
콰앙
“쿨럭.”
“괜찮나.”
“예, 소왕.”
팽무성이 손을 내밀자 흙으로 엉망이 된 진영은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진영마저 제압당하자 점혈이 풀린 살수들은 저마다 인사를 하곤 감쪽같이 모습을 감추었다.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잘 배웠습니다.”
그러자 팽무성과 진영 단둘이 남게 되었다. 팽무성이 눈짓을 하며 걷자 진영도 어개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할아버님께 네가 천살택문의 다음을 이을 소문주라고 들었다.”
“그렇습니다. 소왕.”
고개를 숙인 진영을 보며 팽무성이 물었다.
“얼굴을 볼 수 있을까.”
팽무성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진영은 얼굴의 가면을 벗었다.
가면 아래 드러난 얼굴은 제법 앳된 소년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팽무성은 이제 갓 변성기를 넘긴듯한 목소리로 대충 나이를 짐작하고 있었다.
“예상보다 어리네.”
“이 년 뒤면 약관입니다.”
그에 팽무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십영들을 제치고 후계자로 선점될만한 재능이었다.
“할아버님과 천살택문을 잘 부탁한다.”
말재주가 뛰어나지 못했기에 팽무성은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예. 노력하겠습니다.”
이에 팽무성이 피식 웃더니 진영의 어깨를 툭 쳤다.
“할아버님의 제자이니 나도 너를 동생처럼 대하마. 앞으로는 형님이라 불러라.”
팽무성의 말에 진영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머뭇거렸다.
“싫은 거냐?”
팽무성의 짓궂은 물음에 진영은 그제야 대답했다.
“아닙니다. 형님.”
“그래, 앞으로 네가 문주가 되어서 어려운 일이 생긴다면 팽가로 연락해라. 내가 바로 달려갈 테니.”
그 말에 진영도 어색한 표정을 지우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형님.”
“그래, 먼저 가봐. 다른 손님이 온 듯하니.”
진영이 고개를 숙이고 신형을 감추었고 팽무성은 원래 가던 길을 그대로 걸어갔다.
그런 팽무성의 머리 위로 세 개의 철망이 연달아 떨어지고 있었다.
지칠 줄 모르고 덤벼드는 천살택문의 살수들을 보며 팽무성은 입꼬리를 올리며 손을 들었다.
* * *
깊은 밤중에 무각을 제외한 사패는 객잔에서 늦은 저녁을 해결하고 있었다.
“어우.”
기이한 소리를 내며 뒤늦게 들어오는 무각은 질린듯한 얼굴로 힘없이 주저앉았다.
무각은 탁자에 축 늘어져 몸을 맡겼는데 이 식사 시간 만큼은 살수의 습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살수들이 밥때를 가리는 것은 아니지만, 사패 전원이 모인 만큼 살행을 펼치기에 힘든 탓이었다.
“하하, 오늘은 아무래도 힘들었던 모양이군.”
남궁혁이 핼쑥한 무각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초절정에 오르고 어지간한 인기척은 다 잡아낼 줄 알았는데 내 오만이었어.”
첫째 날처럼 일급 살수들이 연달아 습격하지는 않았으나 무각은 오늘이 더 힘들었다.
전날보다 살행 횟수는 적었으나 살수들의 틈에 십영이 포함된 탓이었다.
십영은 초절정고수도 암살할 수 있도록 살왕에게 직접 훈련을 받는 이들이었다.
그런 만큼 그들의 칼끝은 무각에게 닿기에 충분했다.
“음… 실전이었으면 중상 두 번, 한 번은 죽었으려나. 남궁 형은?”
“나도 가끔 어려움을 겪었지만 죽을 위기는 없었다.”
팽무성은 무각을 보며 피식 웃더니 말없이 오리고기를 입에 넣고 있는 당화련을 봤다.
“너는 어땠는데?”
“당문의 암기술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이 있어요. 많은 참고가 되던데요.”
겉으로는 괜찮은 듯 보였지만 당화련도 제법 고생을 한 듯 눈 아래가 퀭했다.
당화련은 쉬지 않고 입을 우물거리더니 젓가락을 놓고 있던 팽무성을 보곤 말했다.
“팽 오라버니도 지금 배 채워놔요. 밤새 십영들이랑 맞닥트리다가 살왕을 상대해야 하니까요.”
“그렇군. 내일은 드디어 살왕인가.”
축 늘어져 있던 무각의 눈이 전의로 타오르고 있었다.
“나도 기대되는군.”
남궁혁도 살왕과 손을 섞을 것을 상상하는지 날카로워진 눈을 한 채 검집을 쓰다듬고 있었다.
* * *
둘째 날의 밤도 무사히 보낸 팽무성은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을 했다.
운기조식을 하면서도 기감을 넓게 펼쳐 살수의 살행을 대비하고 있었다.
그런 팽무성에게 살왕이 뒷짐을 지고 느긋이 걸어오고 있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팽무성은 가만히 일어나서 도병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 모습에 살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뿌드득
굽어졌던 살왕의 허리가 곧게 펴졌다.
“어디 소문으로만 듣던 손주의 실력을 봐볼까.”
살왕의 두 눈에서 막대한 살기가 폭사하기 시작했다.
천살택문. (4)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