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103)
102화
날갯짓하듯 두 팔을 사선으로 올린 살왕.
굽혀진 발목과 무릎이 내공이 실린 채 연달아 튕겨지며 육체에 부담이 될 정도의 탄력이 뿜어졌다.
새가 비상하듯 쏘아지는 살왕.
살왕은 좌도를 역수로 바꿔 잡더니 쌍아를 가슴에 모아 두 자루의 도병을 마주 보게 했다.
쏴앙
그대로 손가락과 손목이 움직이며 쌍아가 회전하니 살벌한 바람 소리가 일어났다.
마치 바람개비처럼 회전하는 쌍아는 기이한 궤적을 그리며 날을 드러냈다.
살왕이 펼쳐낸 일련의 동작은 눈을 깜빡일 찰나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은월비오(銀月飛烏).
오로지 극쾌(極快)에 치중하여 쌍격을 쏟아내는 절초가 팽무성에게 날아들었다.
극한의 집중력을 발휘 중인 팽무성의 눈에 실핏줄이 무수하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어떤 초식을 펼쳐내야 할지 사고를 할 시간은 없었다.
살왕의 모습이 사라진 순간, 팽무성은 그저 본능적으로 도를 휘둘러야 했다.
지금껏 쌓아온 경험과 무공. 거기에 직감을 더해내서 적아도를 뻗어냈다.
적아도에 도기가 감싸지자 더욱 짙은 붉은빛을 형형하게 드러났다.
팽무성의 눈에 살왕은 보이지 않고 기이한 곡선을 그리는 두 개의 선만 보일 뿐이었다.
두 개의 선이 교차하는 그 순간, 석상처럼 굳어있던 팽무성의 몸이 바람처럼 움직였다.
팽무성은 적아도를 중단으로 올려 수직으로 그어냈다. 특별한 초식이라 할 것도 없는 삼재검법의 종베기였다.
곧게 뻗는 붉은 직선이 두 선의 교차점을 가르고 지나갔다.
팽무성의 등 뒤로 은월비오를 펼친 살왕의 모습이 나타났고 뒤이어 귀를 울리는 굉음이 울렸다.
쩌어엉
적아도가 거칠게 떨리고 있었고 팽무성의 양어깨에는 옅은 핏줄기가 터져 올랐다.
마찬가지로 쌍아의 도신도 충격을 다 받아내지 못하고 요동치고 있었다.
이를 보던 살왕은 천천히 고개를 틀어 팽무성의 등을 바라보았다.
본래라면 팽무성의 가슴이 네 갈래로 갈라졌을 터.
어깨로 은월비오의 도격이 빗나간 것은 팽무성이 정확히 투로를 읽고 받아친 덕분이었다.
더구나 오호단문도의 절초를 펼친 것이 아니라 간단하기 그지없는 종베기로 막아냈으니 그저 경탄스러울 따름이었다.
이런 일은 더 높은 경지에 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팽무성은 해냈다.
물론 완전히 해낸 것은 아니지만 팽무성이 현재 밟고 있는 경지의 너머를 어렴풋이 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너라면 나도 넘지 못한 벽을 넘을 수 있겠구나.’
적아도를 납도한 팽무성도 등을 돌려 살왕을 쳐다보자 눈을 마주친 조손은 그저 웃었다.
“훌륭하다.”
“감사합니다.”
쌍아를 요대에 갈무리한 살왕은 걸어와서 팽무성의 상처를 세심하게 살폈다.
서슴없이 베어내던 모습과 딴판이었기에 팽무성은 살왕 몰래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다른 녀석들을 보러 가보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여기는 치우려면 꽤나 고생 좀 하겠어.”
살왕은 싸움으로 난장판이 된 숲을 바라보더니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다.
다른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을 사패에게 향한 것이었다.
살왕이 사라지자 팽무성은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운기를 하며 살왕과의 전투를 복기할 셈이었다.
“후우.”
깊은 날숨을 뱉어낸 팽무성은 금세 명상에 빠져들었다.
* * *
천살택문을 떠나기 전날 밤.
보름이라 그런지 유독 달이 크게 뜬 날이었다.
평소보다 선명한 달빛이 목련 위에 내려오자 목련의 꽃잎에는 은빛이 은은하게 서려 있었다.
팽무성과 살왕은 목련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가볍게 술을 기울이고 있었다.
“예정보다 오래 머물게 되었구나.”
“예. 그래도 남궁 형님이 깨달음을 얻은 듯하니 다행입니다.”
“그래, 조만간 그 아이도 벽을 넘을 수 있겠더구나.”
팽무성과 살왕이 겨룬 날 이후로 닷새가 지났다.
사패는 살왕의 가르침으로 무공에 진전을 보였는데 그중 제일 커다란 깨달음을 얻은 것은 남궁혁이었다.
그 이후로 홀로 검을 휘두르고 명상에 빠지는 과정을 반복했고 살왕의 명령으로 그 누구도 일체 접근을 하지 못하게 했다.
오늘 저녁에서야 남궁혁은 얻은 깨달음을 갈무리하고 객잔에 돌아와 끼니를 해결하고 휴식을 취했다.
팽무성이 보기에도 남궁혁은 벽을 넘기 거의 직전의 상태로 보였다.
“화련이와 무각도 발전이 있었습니다. 할아버님 덕분입니다.”
팽무성의 말에 살왕은 고개를 저었다.
“말한 것을 바로 채워내는 그 아이들의 오성이 대단한 것이지. 가르치면서 나도 제법 놀랐다.”
살왕은 술잔을 비우곤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팽무성에게 물었다.
“가주는 잘 지내고 있다더냐?”
“예, 오호단문도가 창안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화입마를 떨쳐내셨다고 합니다.
몸을 회복하며 다시 무공 수련도 시작하셨다고 가월이 알려주더군요.”
그 말을 들은 살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팽진연이 주화입마에 빠진 것은 딸이 죽고 나서 한 달 뒤의 일이었다.
팽진연이 주화입마에 빠진 원인은 혼원벽력도이나 여태 잘 버텨오다가 갑자기 무너진 것은,
딸의 죽음이 팽진연의 마음에 영향을 끼친 탓도 컸다.
딸의 장례식 마지막 날, 아무도 몰래 팽가를 찾아와 팽진연을 만난 살왕이기에 알 수 있었다.
‘그래, 자네도 이제 훌훌 털고 일어나시게.’
팽진연을 생각하던 살왕은 무언가를 떠올리곤 술잔을 내려놓았다.
“요새 진주언가의 움직임이 묘하더구나.”
“예, 석 달 전만 해도 여러 번 팽가와 마찰이 일어났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가월의 보고를 보면 진주언가가 조용해졌습니다.”
“진주언가는 지금 정파의 탈을 쓰고 있지만 그 가문의 역사와 가솔들을 보면 정파와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의 권왕과 언가주는 특히 그러하지.”
“예. 조심하겠습니다.”
팽무성도 체감하고 있는 부분이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본래라면 걱정했겠으나 팽진연도 건강을 회복했고 팽가도 나날이 옛날의 성세를 되찾고 있으니 문제 될 것이 없구나.”
살왕은 그러며 팽무성을 바라봤다.
하북팽가의 전력이 나날이 상승하고 있으나 진주언가에는 십대고수의 권왕이 있었다.
십대고수의 유무는 엄청난 격차였다.
허나 팽무성과 겨루어본 살왕은 권왕에 대한 걱정도 말끔히 지워버렸다.
지금의 팽무성이라면 능히 권왕과 겨룰 수 있을 것이다.
‘조만간 십대고수의 서열이 바뀔 수도 있겠군.’
팽무성은 비어 있는 살왕의 술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할아버님, 만살회와 지옥련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두 살문이 아니더라도 마교가 언제 천살택문을 노릴지 모르는 일입니다.”
전생에서 만살회와 지옥련을 앞세워서 살문의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은 암마군이었다.
허나 암마군은 팽무성에 의해 죽어버렸으니 이번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마교가 천살택문을 가만히 둘리는 없으니 경계와 대비가 필요했다.
“그래, 유념하마. 아예 이 기회에 선수를 쳐서 한 곳을 지워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최근 들어서 만살회와 지옥련이 서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 제법 골치가 아팠던 살왕이었다.
팽무성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살왕을 보며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안주로 가져왔던 만두도 다 먹었고 술도 어느새 동이 났다.
“밤이 늦었다. 너도 가서 눈 좀 붙이거라. 내일이면 떠나야 하니.”
“편히 주무십시오. 할아버님.”
살왕은 대청을 빠져나가는 팽무성의 등을 보며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와줘서 고맙다, 잘 가거라.”
팽무성이 등을 돌렸을 때 살왕은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이에 팽무성은 피식 웃곤 고개를 숙였다.
“저도 감사합니다. 할아버님.”
* * *
호북성 무한.
장강으로 연결되는 수륙교통의 요충지이자 정파 무림의 상징적인 곳이었다.
무한은 아홉 개의 성으로 통하는 대도(大道)인데 거기에 무림맹 본성까지 위치했으니 언제나 사람이 북적이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 점을 고려하더라도 지금의 무한은 길에 아예 사람이 미어터질 정도였다.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찔해지는 광경에 당화련은 짙은 속눈썹을 여러 번 깜빡거리며 중얼거렸다.
“으아, 오늘 안에 무림맹에는 들어갈 수 있을까요?”
“아미타불, 많아도 너무 많군.”
어지간한 성도보다 넓은 대로를 자랑하는 무한이었으나 엄청나게 몰려든 인파 덕분에 앞으로 나아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아무래도 곧 열리는 천룡대회와 등용문 때문에 각지의 무림인들이 몰려오는 탓 같구나.”
“남궁 형님, 이래서는 가기로 한 맛집은 못 갈 것 같습니다.”
“내 생각도 그러하네. 일정을 바꿔서 바로 무림맹으로 들어가야겠어.”
계획을 수정한 사패는 곧장 무림맹 본성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힘겹게 한 걸음씩 내디디며 조금씩 전진한 것이 어느덧 반 시진.
“팽 오라버니, 저기 보여요?”
“그래, 죽산에서 무한까지 오는 것보다 더 힘든 것 같네.”
드디어 백색의 무림맹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무림맹 성벽 쪽은 무림맹의 무인에 의해 인파가 통제되고 있었다.
표시된 깃발을 따라 무림맹에 들어서려는 무림인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우리도 줄 서야 하나?”
무각의 중얼거림에 남궁혁이 고개를 저었다.
“저들은 무림맹에 가입하지 않은 자들이라 신분을 확인하는 걸세.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지. 어서 가세.”
일행의 맨 뒤에 있던 남궁혁이 앞으로 나섰다.
묵직한 자세로 서서 성문을 지키고 있던 무인들은 가까이 다가오는 사패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남궁 대협 아니십니까.”
“다들 오랜만이군.”
남궁혁은 무림맹에 머문 적이 많아서 얼굴을 아는 무림맹 무인이 많은 편이었다.
“천룡대회 때문에 오신 것입니까?”
“아니. 맹주님을 뵈러 왔네.”
“그렇군요. 같이 오신 분들은 설마…”
무림맹 무인이 기대감이 넘치는 눈으로 남궁혁의 뒤쪽을 살폈다.
이에 남궁혁은 피식 웃으며 옆으로 돌아 팽무성 일행을 보여주었다.
“그래. 자네도 알겠지. 사패일세.”
남궁혁의 소개에 무림맹 무인은 사패를 보며 포권을 취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러분.”
“고생이 많으십니다.”
사패도 포권으로 답례했고 주변의 무림맹 무인들도 체면이 있기에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으나 사패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맹주전에 기별을 넣어주게. 맹주님이 직접 들으셔야 할 사안이 있으니.”
“알겠습니다. 들어가시지요.”
무림맹 본성 안으로 들어서자 빼곡하게 솟아오른 고루전각의 숲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림맹의 크기는 사도천에 비해서도 떨어지지 않아서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성문을 통과하면 보이는 넓은 광장에는 팔척 정도의 커다란 비석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의명석(義名石)이라는 것으로 무림맹이 추구하는 정의와 협의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돌이었다.
무림맹의 역사가 제법 긴 만큼 광장뿐만 아니라 무림맹 곳곳에서 이 의명석을 찾아볼 수 있었다.
무림맹의 기치와 옛 선인들의 희생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팽무성은 의명석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았다.
전생에서 사패의 이름이 하나씩 의명석에 새겨질 때마다 의명석 앞에서 밤을 지새웠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무각의 이름이 새겨졌을 때 그 앞에서 사흘 밤낮을 있었던가.’
팽무성은 의명석을 잠시 보더니 미련 없이 고개를 틀어 사패의 뒤를 따랐다.
이번 생에서 저 돌에 이름을 새길 사패는 없도록 만들 것이니.
* * *
팽무성과 살왕이 술을 마시던 그 날 밤.
화르륵
타탁
사방에서 불꽃이 넘실거렸고 불꽃이 좀먹은 기둥은 저마다 불똥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 불구덩이 속에서 홀로 오롯이 서 있는 천마휘의 앞에는 검은 가루가 흩날리고 있었다.
“소교주.”
천마휘의 뒤에 나타난 검마군은 미리 준비해 놓은 청색 장삼을 들고 있었다.
“나도 아직 멀었구나.”
천마휘가 자신이 입고 있는 장삼을 확인했다.
본래 청색이었을 장삼은 화기에 불타고 그을려 맑은 색을 잃은 지 오래였다.
천마휘가 미련 없이 장삼을 벗자 검마군은 새로운 장삼을 천마휘에게 입혀주었다.
밖으로 나온 천마휘는 전각을 빠져나오며 검마군에게 물었다.
“환마군은?”
“지금쯤 무림맹에 당도했을 것입니다.”
“음. 검선의 행방은?”
“죄송합니다. 묘연합니다.”
천마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의 달을 바라보았다. 사방에서 솟아오른 화염 때문인지 달이 붉게 보였다.
“검선, 대체 어디 있는 거요.”
붉은 달을 보던 천마휘는 문득 눈을 가늘게 떴다.
“검마야. 본래의 무림맹 계획은 취소해라. 다시 생각해보니 식상하고 의미도 없을 것 같다.”
“존명.”
“좀 더 재밌게 놀아보자.”
천마휘는 주변에 타오르는 화염과 붉은 달을 보며 새하얀 이빨을 드러냈다.
무림맹. (2)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