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107)
106화
무림맹 용투장(龍鬪場).
아홉 개의 비무대를 중심으로 관람석이 둥글게 계단처럼 층층이 세워진 대연무장.
그 모습이 용이 똬리를 튼 모양을 연상시켜 붙여진 이름이었다.
천룡대회는 언제나 용투장에서 진행되었고 간혹 무림맹에서 중요한 비무가 벌어질 때도 용투장을 이용하곤 했다.
과거에는 이 용투장에서 천하제일을 가리는 논검이 벌어지기도 했으니 정파의 역사에서 의미 있는 장소였다.
“사람이 엄청 많은데 이 인파를 다 수용하는 용투장이 대단하네요.”
“괜히 엄청난 규모로 지은 것이 아니지.”
사패도 천룡대회를 관람하기 위해 용투장에 들어와서 적당한 자리를 찾고 있었다.
그때, 사패에게 한 무인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가슴에 금빛 수실로 수놓아진 호천(護天).
무림맹주를 호위하는 호천대의 무인이었다.
“사패를 귀빈석으로 모시라는 맹주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가시지요.”
무인의 말에 사패가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 천룡대회의 귀빈석이라 하면 무림맹에 큰 영향력을 가진 이들이 앉는 자리였다.
그런데 그 귀빈석에 사패를 초대한다니.
후기지수의 신분으로 천룡대회의 귀빈석을 차지한 이가 과연 누가 있을까.
“걱정 마시지요. 귀빈석의 명단에 사패를 넣을 때 반대 의견은 없었다고 합니다. 부담가지지 마시고 자리를 빛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팽무성의 수락에 호천대 무인은 사패를 귀빈석으로 안내했다.
귀빈석은 용투장에서 비무대가 제일 잘 보이는 자리에 있었다.
귀빈석으로 사패가 들어서자 먼저 자리에 앉아있던 귀빈들의 관심이 사패로 향했다.
“오, 저들인가?”
“무당과 점창의 장문인께서 칭찬을 많이 하시더이다.”
간혹 무공이 뛰어난 귀빈은 사패의 무공을 살피다가 탄성을 흘렸다.
“사패가 이번 대회에 나섰다면 다른 후기지수들은 그대로 묻혔겠어.”
“그런 것 같소, 대단한 후배들이야.”
귀빈석에 모인 강호 명숙들은 날카로운 눈으로 사패를 가늠하면서 감탄과 호의를 내비쳤다.
이에 사패는 포권을 취하며 눈을 마주치는 명숙마다 인사를 하곤 자리에 앉았다.
귀빈석의 제일 끝인 말석이었지만 확실히 일반 관람석보다는 천룡대회를 훨씬 즐겁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서 천룡대회의 시작을 기다리던 그때, 팽무성의 비어 있던 옆자리에 누군가 다가왔다.
“흠흠, 잘 지냈는가?”
헛기침하며 먼저 팽무성에게 아는 체를 하는 중년인, 며칠 전의 회의에서 사도천 동맹에 반대했던 명숙, 호연검이었다.
이에 팽무성이 일어나려 하자 호연검이 팽무성의 어깨를 잡으며 만류했다.
“괜찮네, 앉게.”
회의에서 부딪쳤던 두 사람이 나란히 앉게 되자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잠시 불편한 침묵이 흐르고 호연검이 먼저 말을 꺼냈다.
“등용문에서 제법 고생했다고 들었네. 자네들 덕분에 합격자를 선별하는 데 묵룡당주가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하더군.”
“아닙니다. 저희도 즐거웠습니다. 이름이 드러나지 않은 후기지수들이 많더군요.”
“등용문에는 주로 중소문파의 제자들이 참가하지만, 그 중에도 기재들은 있지.”
잠시 대화를 멈춘 호연검은 텅 빈 비무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도천과 동맹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네.”
“그렇습니까.”
“나는 정사대전 당시 호남에서 활동했네. 염왕(炎王)이 이끄는 염하문과 주로 싸웠지.”
사도칠문의 하나였던 염하문과 십대고수인 염왕을 막기 위해 호남의 정파는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때 나의 사문도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지. 문도들과 가족들도 함께 말이지… 그래서 나는 사도천과 손을 잡을 수가 없었네.”
“예, 이해합니다.”
“자네 말을 듣고 떠올랐네, 정사대전에 나를 비롯한 사문이 참여했던 이유를.
단순히 정파여서가 아니라 무림일통을 명분으로 무림을 짓밟는 사도천의 패악을 막기 위함이었네.”
줄곧 비무대를 보며 말하던 호연검의 시선이 살짝 팽무성에게 틀어졌다.
“자네 말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네만, 내가 검을 잡았던 이유를 다시 확인했네. 원한에 사무친 나를 일깨워줘서 고맙네.”
팽무성은 따로 답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뒤이어 남궁구의 선언이 용투장에 쩌렁쩌렁 울렸다.
“천룡대회를 시작하겠다! 대진표에 따라 첫 시합을 하게 된 후기지수들은 비무대에 나서라!”
이를 듣던 남궁혁이 고개를 살짝 내밀며 중얼거렸다.
“역시 조부님, 아직도 정정하시군.”
남궁구의 선언에 따라 대기하고 있던 후기지수들이 각자 배정된 비무대 위로 올라섰다.
아홉 개의 비무대에서 연달아 비무가 시작되고 사람들은 각자 점찍은 후기지수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여러 후기지수의 이름이 등장했으나 제일 많은 이름이 불리는 것은 두 사람이었다.
“첫 비무부터 운룡과 검룡이 튀어나오다니!”
“저 두 후기지수는 얼굴을 보기 힘들지 않은가. 이번 천룡대회를 보러 온 보람이 있군.”
운룡 한선.
검룡 연유진.
무당파와 검각, 각 문파의 유망주들이었다. 여기에 권룡과 풍룡을 더해서 사룡이라 불리고 있었다.
“쯧쯔, 첫 상대부터 사룡이라니. 저 둘을 상대하는 소협들은 불쌍하구만.”
관람객의 말대로 운룡과 검룡은 각자의 상대를 철저히 압도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치 누가 상대를 쓰러트리는지 경쟁을 하듯 숨김없이 무공을 뽐내는 중이었다.
한선의 배운신장(排雲神掌)이 상대의 가슴을 밀어내며 균형을 무너뜨렸고, 연유진의 검이 상대의 검을 쳐내서 비무대 밖으로 날려버렸다.
“역시 무당파!”
“아름다운 미모에 뛰어난 검술을 지녔으니 훗날에 검후라 불릴 만하겠군.”
검룡의 미모를 칭찬하는 함성도 많았는데 이를 가만히 듣고 있던 당화련이 팽무성에게 슬쩍 물었다.
“어때요, 예뻐요?”
그 질문에 팽무성은 쓴웃음을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
“벌써 비무가 끝나버렸군.”
이십 합도 겨루지 않고 비무를 끝내버린 두 후기지수의 무위에 관람객들은 환호를 질렀다.
“사룡 중 누가 우승할까?”
“검룡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운룡도 만만치 않소.”
“풍룡은 지금까지 폐관수련을 했다고 하네. 이번 천룡대회를 위해 제대로 준비한 것이지.”
천룡대회가 후기지수들의 무대인 만큼 명성이 비교적 높은 사룡에게 관심이 집중되어있었다.
그러다가 어느덧 누군가 입을 열었다.
“사룡과 사패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잠시간의 침묵과 함께 관람객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사패는 무리지.”
“나이만 후기지수지 명성은 어지간한 강호 명숙 못지않지 않소.”
“소문에는 사패 전원이 초절정에 도달했다는 말이 있네.”
“그 정도란 말인가? 과장된 것 같은데.”
그때 한 중년인이 귀빈석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이 사패와 사룡의 차이지.”
손을 따라 귀빈석으로 눈을 돌리니 귀빈석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패가 보였다.
“허어. 이것으로 확실히 우열이 가려지는구만.”
“사룡이 나온 대회에 사패가 귀빈석에서 구경하고 있으니 끝난 거요.”
“쩝, 그래도 아쉽군. 사패와 사룡이 비무하는 것도 명장면일 듯한데.”
이에 사패 쪽을 멍하니 쳐다보던 중년인이 갑자기 저 혼자 손뼉을 쳤다.
“그러고 보니 백가회에서 권룡이 패호도에게 패배했다는 소식을 들었소, 그 자리에 있던 풍룡도 도전을 포기했고.”
“마침 새로 시작되는 비무에 권룡도 끼어있군.”
“상대는 화산파 제자 같은데 아무래도 권룡에게는 힘들겠지요.”
권룡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화산파 제자의 비무.
그 누구도 화산파 제자의 승리를 예상하지 않았다.
오로지 사패만이 기대감이 섞인 눈으로 화산파 제자의 검을 보고 있었다.
“아무리 화산파라도 권룡을 꺾기는 힘들지.”
“음. 권룡도 진주언가 출신이니 부족함이 없소이다.”
채채챙
이십여 합이 넘어가며 비무의 양상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수다를 떨던 관람객들이 하나둘 입을 다물었다. 이는 귀빈석의 명숙들도 마찬가지였다.
각자 다른 비무를 관전하던 명숙들의 눈길이 한 비무대로 쏠렸다.
“호오. 오랜만에 봅니다.”
“화산이 이번에 제자 한 명만 참가시켰다더니 이유가 있었군.”
중앙 비무대에서 권룡 언태균을 상대로 화려한 검초를 선보이는 화산파 제자.
일향의 검이 용투장의 모든 시선을 이끌어냈다.
“이익!”
사방을 수놓는 일향의 검은 화려하면서도 변칙적이었다.
눈이 어지러워지니 손발이 어지러워지는 것은 당연지사. 언태균은 이를 악물고 추사영보(追死影步)를 밟았다.
추사영보의 흐릿한 음영이 언태균의 신형을 가렸으나 일향은 암향표를 펼치며 정확히 언태균의 움직임을 잡아냈다.
쐐액
가슴을 찔러오는 매화검에 언태균은 결국 귀류음영권(鬼流蔭影拳)을 펼쳐내 막아냈다.
방금의 검초에 섬뜩함을 느낀 언태균은 이내 얼굴이 붉어져 일향을 노려봤다.
“어린 새끼가 건방지게.”
귀류음영권 특유의 기이한 움직임을 보이며 신형을 날린 언태균.
일향의 정면을 노리는 듯하더니 주먹이 느닷없이 우측에서 튀어나왔다.
언태균의 허초를 눈치챈 일향은 손목을 꺾어 주먹을 막아내고 매화검을 비틀었다.
비틀어진 검신은 반원을 그리더니 언태균의 가슴을 베어내려 했다.
“크윽!”
언태균이 급히 몸을 빼서 가슴이 베이는 불상사는 면했으나 옷깃이 조금 갈라져 있었다.
이에 눈살을 구긴 언태균은 일향의 실력이 사룡에 비해도 뒤지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길게 끌지 않기 위해 귀류음영권의 절초를 펼쳐내려 할 때, 언태균은 순간 코를 벌렁거렸다.
순간 코를 감도는 매화향.
언태균이 향기를 맡음과 동시에 그 앞에는 한 송이의 붉은 매화가 피어나고 있었다.
매화노방(梅花路傍).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첫 초식이 펼쳐지며 언태균의 무복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크학!”
무복이 넝마가 되었음에도 몸에는 작은 상처 하나 없었으니 누가 봐도 일향이 사정을 봐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를 본 심판은 천천히 납검하는 일향을 가리키며 외쳤다.
“승자! 화산파 일향!”
“와아아아!”
“사룡을 꺾은 새로운 후기지수의 등장인가! 저 도사의 이름이 뭐지?”
“화산의 매화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군.”
“권룡이 패배하다니, 이변이로군. 이번 천룡대회, 재밌는데.”
관람객들은 새롭게 등장한 일향을 보며 환호했고 귀빈석에서도 일향에 주목하고 있었다.
“매화… 화산의 검법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어려 보이는데 매화를 피워냈군. 역시 화산이구나.”
말없이 비무를 지켜보던 영산 진인이 남궁구에게 물었다.
“저 아이가 검성의 제자로군요. 화산도 후대가 든든하군요.”
남궁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맹에 와서 직접 검성의 등선을 알린 것이 바로 일향이었다. 현재 검성의 죽음은 무림맹에서도 극히 소수만 알고 있는 극비였다.
남궁구는 오랜 친우였던 검성이 먼저 떠난 것에 착찹해했지만 일향의 실력을 직접 보고 나니 그 마음이 조금 가셨다.
‘이 친구야, 제자만 저리 잘 키워놓으면 뭐하나. 정작 자네는 이 자리에 없거늘.’
일향에게서 검성을 비추고 있던 남궁구는 일향이 자신을 향해 포권하자 고개를 나지막이 끄덕였다.
자신에게 포권한 일향이 다른 쪽을 물끄러미 쳐다보자 이에 남궁구도 그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일향이 쳐다보는 방향은 귀빈석 오른쪽의 맨 끝. 사패가 앉아있는 자리였다.
제일 먼저 팽무성이 눈에 들어오자 남궁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패가 화산파에 들렸을 때 인연을 쌓았나 보군.’
남궁구가 팽무성을 쳐다볼 때 일향은 팽무성을 보며 입을 껌뻑이고 있었다.
소리 없이 입만 움직이는 것이지만 팽무성은 입 모양으로 일향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이에 팽무성의 짙은 웃음을 흘렸다.
“그래, 기대하고 있겠다.”
새 물결을 만드는 정파의 인재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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