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112)
111화
“흐음…”
굽은 허리를 앞으로 내밀며 진열장을 살피는 노인, 신의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침음을 흘리기를 반복했다.
화령초(火靈草)와 구엽신초(九葉神草).
모두 양기가 강한 약재였고 신의가 꼭 구하고자 하는 것들이었다.
그 외에도 구매해야 하는 게 몇 가지 있지만, 신의는 선뜻 구매하지 못하고 가져온 전표만 만지작거렸다.
“대체 영약과 약재의 시세가 갑자기 왜 이리 오른 것인가?”
며칠 새에 곱절이나 폭등해버리니 신의는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이는 가격을 말해주는 관리인도 마찬가지였다.
“최근에 수요가 크게 급등한지라…”
“끄응. 돈이 크게 모자라는군.”
신의는 쉽게 발을 돌리지 못하고 진열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구매해드리겠습니다.”
신의가 낯선 목소리가 들어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처음 보는 사내가 갑작스레 다가오니 신의가 눈썹을 축 내렸다.
“누구신데 이런 호의를 베푸는 것인가?”
“요즘 흑상의 모든 영약과 약재를 사들인 장본인입니다.”
그제야 신의는 경계하는 눈으로 사패를 자세히 살폈다. 제일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각자 입고 있는 무복이었다.
‘팽가, 당가, 남궁, 소림.’
사패에 대한 좋은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신의는 소문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기에 섣불리 호의를 받지 않았다.
“그대들이 사패로군. 명성은 익히 들었네. 하지만 노부의 각패를 받기 위함이면 사양하지.”
천하에 신의의 각패를 노리는 이들은 아주 많았다. 신의의 의술도 천하제일이지만 직접 만든 영약들도 하나같이 일품이었다.
“신의께서 오랜 시간 이어온 선행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 때문에 차질이 생길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대문파는 물론이고 황궁에서도 찾지만, 신의는 그저 강호를 정처 없이 떠돌 뿐이었다.
그러면서 여러 환자를 치료했는데 가난한 병자들의 경우 신의가 직접 약재를 구해서 치료했다.
신의가 무림인뿐만 아니라 민초에게도 명성이 드높은 이유가 젊을 때부터 이어온 선행 덕분이었다.
“음…”
신의는 팽무성의 눈을 빤히 바라봤다.
일 갑자에 가까운 시간 동안 수많은 이를 접했기에 눈빛에 담긴 의중을 읽는 재주가 있었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건 아니구나.’
팽무성과 잠시 눈을 마주친 신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염치 불고하고 도움 좀 받겠네, 팽 소협.”
신의가 가볍게 포권하자 팽무성도 포권으로 받았다.
그러며 신의가 약재가 든 보따리를 들며 흑상을 나서는 것을 팽무성은 바라만 볼 뿐이었다.
‘도움을 받고 싶지만 어쩔 수 없지.’
팽가의 무인들에게 먹일 영약을 제조하는 것은 팽중혁의 외가인 담양약가에 도움을 청해놓은 상황이었다.
거기에 신의가 힘을 보태준다면 커다란 도움이 되겠지만 팽무성은 신의의 성정을 알기에 말도 꺼내지 않았다.
‘아직은 인연이 아닌 거지.’
팽무성이 신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할 때 당화련이 다가와 팽무성의 소매를 잡고 흔들었다.
“팽 오라버니, 청유객잔의 숙수가 솜씨가 뛰어나대요.”
팽무성이 계산을 치르는 사이에 당화련은 다른 관리인에게 이 주변의 맛집을 물어보고 다닌 모양이었다.
“그래, 돈이 꽤 남았으니 실컷 시켜서 먹자.”
이에 남궁혁과 무각이 행복한 얼굴을 했다.
“후후, 객잔에서 제일 비싼 술을 마셔야겠군. 팽 아우 덕분에 호강하는구나.”
“이야, 벌써 침이 고이네.”
* * *
신의를 만나고 사흘이 흘렀다.
사패는 하남의 북쪽에서 계속 북상하고 있어 이틀만 더 걸어가면 하북의 땅을 밟을 수 있을 터였다.
어느 이름 모를 협곡을 지나고 있을 때, 사패는 앞쪽에서 많은 수의 기척을 느꼈다.
“팽 오라버니, 무림인들 같은데요?”
“느껴지는 기척이 하나같이 거친 놈들인데.”
팽무성의 말에 무각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조용히 못 지나가면 뚫고 가지, 뭐.”
“후후, 내 경험상 이런 때에 조용히 지나갈 수 있는 경우가 없더구나.”
남궁혁의 예상은 정확했다.
협곡의 중간에는 오십 명은 넘어 보이는 낭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두 사람을 겁박하고 있었다.
낭인들이 겁박하는 것은 노인과 사내아이.
“신의?”
노인의 뒷모습을 알아본 팽무성이 중얼거리자 이를 들은 낭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팽무성을 향했다.
“네놈들은 누구냐?”
팽무성은 낭인의 말을 무시하고 신의에게 말을 걸었다.
“어르신. 저를 기억하십니까.”
“물론이네, 팽 소협.”
곤란한 상황에 처한 듯한데 신의는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팽무성은 신의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사내아이를 슬쩍 보더니 물었다.
“저희가 도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음, 또 도움을 받는군.”
신의도 절정에 다다른 상당한 실력자였다. 허나 신의의 무공으로도 눈앞의 낭인들은 벅찬 상대였다.
낭인들은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는 네 명의 후기지수들 보더니 살기를 드러냈다.
“네놈들 사패로구나.”
“우리를 잘 아는데?”
무각이 여유롭게 반응하자 낭인들이 각자의 무기를 뽑아냈다.
“네놈들의 전에 우리의 형제들을 죽였다지?”
그 말에 팽무성이 싸늘한 웃음을 보였다.
“평범한 낭인들이 아니라 염라회 놈들이군.”
“잘됐구나. 사패가 알아서 찾아오다니.”
중얼거리던 낭인은 기다란 죽통을 꺼내서 심지를 잡아당겼다.
퍼펑
낭인이 꺼낸 죽통은 염라회에서 쓰는 신호탄이었다.
“이 근방에는 신의를 찾기 위한 병력이 산개한 상황이다. 일각이면 이쪽으로 모두 집결할 것이다.”
“네놈들은 모두 죽은 목숨이라는 거지.”
“형님. 저년은 살려두어야 합니다.”
“아암, 그렇고말고.”
낭인들이 음욕이 가득한 눈으로 자신의 몸을 훑자 당화련은 손가락을 꿈틀거리며 중얼거렸다.
“다 잘라버려야겠네.”
그 말에 낭인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 잘라버린다는군. 귀엽구만.”
“아직 남자의 맛을 못 봐서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이지.”
이에 당화련은 입술을 비틀며 섬뜩한 미소를 흘렸다.
남궁혁은 염라회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이상하구나, 저놈들은 후환이 무서워 명문의 후기지수들은 건드는 법이 없는데.”
“미쳤거나, 아니면 믿는 구석이 생긴 듯합니다.”
팽무성은 소매를 걷으며 말했다.
“반대쪽에서도 곧 몰려올 겁니다. 남궁 형님과 무각은 뒤쪽을 맡아주십시오.”
최대한 넓게 퍼트린 팽무성의 기감에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새로운 기척이 잡히고 있었다.
낭인들의 말이 거짓은 아닌 듯 제법 많은 수가 모이고 있었다.
“알겠네.”
남궁혁과 무각은 등을 돌려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화련아, 가자.”
“네.”
당화련은 독기를 품은 눈으로 팽무성 보다 먼저 몸을 날렸다.
쐐애애액
퍼퍽
당화련은 낭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어린표를 날리기 시작했다.
“끄아악!”
당화련의 손이 꺾일 때마다 굵직한 파육음이 나며 낭인들이 비명을 질렀다.
어린표는 평소와 다른 곳에 꽂히고 있었다. 바로 남자의 낭심이었다.
당화련은 일부러 독도 쓰지 않고 암기만으로 집요하게 낭인들의 낭심을 노리고 있었다.
“흐음.”
어지간한 일에는 꿈적도 하지 않는 신의도 왜인지 어린표가 박힐 때마다 움찔거리고 있었다.
“뭐 하는 거냐, 저년을 잡아!”
낭인들이 저마다 당화련에게 병장기를 휘둘렀지만 당화련의 털끝 하나 손댈 수 없었다.
그 사이에 다리를 오므린 채 쓰러지는 낭인만 늘어나고 있었다.
“발정 난 것들아, 죽어, 죽어, 죽어.”
낭인들 사이에서 날아다니는 당화련의 두 눈에는 섬뜩한 귀화(鬼火)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를 본 팽무성은 쓴웃음을 지으며 발을 옮겼다.
“어르신, 뒤로 물러나 계시지요.”
어느새 신의의 옆에 나타난 팽무성은 사내아이의 눈을 감겨주었다.
“눈을 감고 열만 세고 있어라.”
팽무성의 말에 사내아이가 눈을 감는 순간.
꽈르릉
귀를 울리는 커다란 번개 소리가 울렸다.
이에 아이는 눈을 찔끔 감으며 양손으로 자신의 귀를 막아야 했다.
적아도에서 뻗어진 뇌전에 자비는 없었다.
낭인들은 도격이 닿는 그대로 쪼개지며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쓰러졌다.
팽무성이 도를 잡기 시작하자 낭인들의 수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당화련과 팽무성이 양쪽에서 압박하자 낭인들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었다.
이를 본 신의는 팽무성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압도적인 무공 때문이 아닌 팽무성이 도를 휘두를 때마다 튀어나오는 뇌전 때문이었다.
‘극양의 내공을 익혔군. 하북팽가의 혼원벽력신공이었던가? 전혀 몰랐구나.’
신의가 오랜 세월 무림에서 활동했고 호신을 위해 무공을 익혔으나 무공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신의는 어디까지나 의원이었으니.
신의가 팽무성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질 때, 협곡에 울리던 뇌성이 세 번을 끝으로 더는 울리지 않았다.
사내아이가 눈을 감고 속으로 여섯을 세었을 때 팽무성은 사내아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다 끝났다. 하지만 계속 눈을 감고 있어라.”
낭인들의 피와 시체로 협곡이 엉망이 되었기에 어린아이가 볼만한 풍경은 아니었다.
사내아이는 팽무성의 든든하고 낮은 목소리에 절로 마음이 진정됨을 느꼈다.
“네.”
그때, 신의가 팽무성에게 확인을 하듯 물었다.
“팽 소협,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혹시 자네 극양의 내공을 익힌 것인가?”
“예.”
팽무성의 거침없는 대답에 신의는 사내아이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자네, 단둘이 얘기를 할 수 있겠나?”
팽무성은 신의의 눈빛을 보곤 극양의 내공과 사내아이가 관련되었음을 직감했다.
“나중에 따로 얘기하시지요.”
신의는 저 멀리 먼지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
또 다른 염라회의 낭인들이 몰려오는 것이었다.
“화련아, 이 기회에 쓰레기들을 정리 좀 해야겠다.”
“그러게요. 깨끗하게 치워야겠네요.”
팽무성과 당화련은 나란히 앞으로 걸어갔다.
* * *
“아니, 이백이나 보냈는데 실패하는 게 말이 돼? 병신들이야? 이래서 낭인한테 일을 맡기면 안된다니까. 차라리 가마군을 동원하지 그랬어.”
여인이 불만을 터트릴 때마다 풍만한 가슴이 조금씩 출렁였다.
여인의 얼굴은 조각과 같은 완벽한 이목구비를 지니고 있었다.
보는 시선이나 표정에 따라 여인의 얼굴에서는 다른 느낌이 나타났다.
청초하면서 기품이 있었고, 뇌쇄적이고 요사스럽기도 했다. 한 얼굴에 여러 가지 매력을 지닌 신비한 미모였다.
이런 미모라면 강호에 어떤 취향을 지닌 남성이라도 홀릴 수 있을 듯싶었다.
그야말로 경국지색이라는 단어 그 자체인 미모를 지닌 여인이었다.
“사패에 죄다 죽었다고 하더군.”
반대편에 가만히 앉아있는 근육질의 사내, 권마군의 말에 요마군이 잘 정리된 눈썹을 찌푸렸다.
“또 사패야? 왜 이렇게 겹치는 거야. 이쯤이면 본교 안에서 정보가 새는 거 아니야?”
“그렇지 않아도 마이각이 이번에 새로 개편되었다고 한다. 정보가 샜을 가능성은 적다고 하더군.”
“아아, 짜증나네. 정말.”
요마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속이 다 보이는 얇은 천을 걸친 요마군의 몸매는 장인이 빚어낸 도자기 마냥 흠잡을 곳이 없었다.
그에 권마군도 정면으로 요마군을 보지 않고 살짝 눈을 깔았다.
“이번에 사패가 하북팽가로 간다면서?”
“어쩔 셈이냐.”
“뭐긴 뭐야, 팽무성이 하북팽가에 돌아왔으니 미루어 두었던 계획을 실행해야지.”
요마군의 말에 권마군이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이었다.
“팽무성은 마왕을 두 분이나 상대하고도 살아남은 놈이다. 너의 마공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권마군의 충고에 요마군은 혀로 자신의 입술을 핥았다.
“뭐래. 염왕을 염하문 밖으로 끌어내서 소교주가 먹기 편하게 포장해준 게 누군데.”
염왕과 함께 죽었다고 알려진 애첩이 바로 요마군이었다. 물론 발견된 염왕과 애첩의 시신은 모두 가짜였다.
염왕은 탐천마공에 의해 검은 가루가 되어 흩어졌고 요마군은 이렇게 살아있으니 말이다.
요마군은 분홍빛을 띤 눈으로 권마군에게 눈웃음을 흘리며 사뿐사뿐 걸어왔다.
“단순히 무공의 경지가 높아서 요마종의 마공이 통하지 않으면 요마종이 구마종의 한 축으로 남아있었겠니?”
요마군은 권마군의 뒤에 서서 권마군의 양쪽 어깨를 부드러운 손길로 매만졌다.
“우리는 무인이 아니라 남자를 유혹하는 거야. 정작 초월경에 올랐다는 너도 나를 정면을 보지 못하는 주제에.”
요마군의 달콤한 목소리가 귀를 속삭이자 권마군은 미간을 찌푸렸다.
“가라.”
“깔깔깔.”
요마군이 나가고 홀로 남은 권마군은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사패… 확실히 거슬리긴 하는군.”
권마군은 벽에 걸린 중원 전도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조만간 하북은 시끄러울 테니…’
권마군의 눈은 중원 전도의 끝에 위치한 절강성에 향해 있었다.
* * *
신의와 팽무성은 단둘이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팽 소협, 다시 한번 실례되는 질문을 하겠네. 염왕과 비교하면 자네의 무공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신의(神醫). (2)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