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12)
11화
“월아.”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목소리였다.
월영은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허리를 숙여 귀를 가까이했다.
“내 아들, 부탁해. 부족한 아이라 네가 필요할 거야.”
“아가씨.”
자신을 향해 힘없이 뻗어오는 손. 월영은 그 손을 조심스레 잡았다.
손을 잡은 월영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직접 타인의 목숨을 거두어봤기에 알 수 있었다. 붙잡은 손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죽음의 기운이 느껴졌다.
아가씨라 불린 여인은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끝까지 언니라 불러주지 않는구나.”
“언니.”
월영은 흔들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답했다.
이를 들은 여인은 웃으며 눈을 감았다.
눈에서 떨어지는 것에 월영의 소매는 조금씩 젖어갔다.
감정을 절제하는 훈련을 받은 뒤로 흘려본 적이 없는 눈물이다.
월영은 점점 식어가는 손을 꼭 잡았다.
“언니의 아들은 제가 꼭 지킬게요.”
그날 이후 사공자를 전담하는 시비가 바뀌었다.
새로 온 그 시비의 이름은 가월이었다.
* * *
가월의 얘기를 들은 팽무성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머니의 부탁이라.”
가월은 팽무성의 어머니의 부탁으로 지금껏 팽무성을 지켜왔다.
“하지만 내가 듣고 싶은 얘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팽무성은 여전히 핵심을 보고 있었다.
더는 숨길 수가 없었다.
가월은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살수입니다.”
시비가 아닌 살수로서의 가월이라 그런가, 분위기가 달랐다.
눈빛은 말할 것도 없고, 목소리와 말투도 차갑다.
마치 외모가 비슷한 다른 여인을 보는듯 했다.
“그래, 살수구나.”
가월의 고백에 팽무성은 놀라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전생의 가월이 죽은 이유.
소가주 취임식이 치러진 당일 밤에 팽대혁을 암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패했고 가월은 자결했다.
평범한 시비로 알려져 있던 가월이라 당시 가솔들의 충격은 상당했었다.
전생의 가월은 알고 있었다.
팽무성이 팽대혁의 계략에 휘말려 죽은 것을. 그래서 홀로 복수를 하려던 것이었다.
팽무성은 가월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외가는 없는 것이 아니라 숨긴 것이군.”
팽무성의 어머니는 여염집의 딸로 알려져 있다. 정말 평범한 집안의 딸이라면 살수가 주위를 지킬 리는 없었다.
“그래서 어디야.”
가월은 이를 말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팽무성의 단호한 얼굴을 보고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더는 숨길 수가 없었다.
“천살택문입니다.”
천살택문(天殺擇門).
무림삼대살문의 하나.
살수들이 모인 곳치고는 특이한 곳이다.
다른 삼대살문인 지옥련이나 만살회와 달리 천살택문은 의뢰를 가려서 받는다.
평범한 양민이나 선인들은 건드리지 않는다. 의뢰를 받는 대상은 오로지 악인.
그렇기에 같은 살수들에게 배척받는 곳이다.
어차피 돈을 받고 칼에 피를 묻히는 주제에 위선을 떤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천살택문은 신경 쓰지 않고 그들만의 규칙을 지켜나가고 있었다. 그럴 수 있는 것은 그만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천살택문. 살왕이 있는 곳이군.”
십대고수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살수.
살왕을 필두로 그 산하에는 뛰어난 살수들이 수없이 많다. 천살택문 살수들의 실력과 기술만 보고 따지자면 다른 삼대살문도 빛이 바랬다.
천살택문이 다른 살문처럼 의뢰를 가려서 받지 않았다면 무림삼대살문이라는 명칭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가월은 조심스레 말을 이어나갔다.
“문주님이 공자님의 외조부 되십니다.”
팽무성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천살택문의 문주는 당연히 살왕이었다.
팽무성은 살왕의 유일한 혈육인 셈이다.
“설마 이번에 받은 선물도?”
“예. 매년 오는 이름 없는 생일 선물. 문주님께서 보내신 겁니다.”
가월의 말을 들어보면 보이지 않은 곳에서 손자를 꾸준히 챙기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왜 전생에는 조용했지.’
팽무성의 억울한 죽음을 알았다면, 살왕이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 살왕이라면 마음 내키는 대로 쓸어버렸을 것이다.
그 때문에 가월이 홀로 살행에 나선 것은 의문이었다.
눈을 감고 전생의 기억을 뒤지던 팽무성은 그 실마리를 찾아냈다.
‘그래, 비슷한 시기였나.’
천살택문이 전쟁을 할 때와 가월이 진실을 알게 된 때가 맞물렸다.
그렇다면 살왕은 물론이고 천살택문 자체가 움직이기 힘들었다. 가월의 무리한 살행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조금은 쉽게 풀 수 있겠어.”
살문 쪽은 인연이 없어 접근하거나 개입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 그 방향이 언뜻 보였다.
팽무성의 의미 모를 혼잣말에 가월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공자님, 그렇게 놀라시지 않는군요.”
“네가 살수인 것을 알 때 제일 놀랐다.”
“그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가월도 내심 궁금하던 차였다.
천살택문의 비전으로 기도를 완전히 감추고 시비처럼 평범한 몸짓을 하며 살아왔다.
팽가의 고수들도 눈치채지 못한 것을 팽무성이 알아차린 것은 의문이었다.
“어느 순간 거슬릴 때가 있었다.”
전생의 기억이 아니더라도 팽무성의 눈에는 가월의 어색한 움직임이 보였다.
일반인들은 무인과 다르게 걸음의 보폭과 호흡이 때마다 달랐다.
거기에 개인마다 특유의 어떤 버릇이 녹아들기도 했다.
가월의 경우에도 일반인처럼 보이기 위해 걸음과 움직임에 신경을 썼다.
하지만 팽무성은 그 불규칙한 움직임 속에서 어떤 일정한 규칙 같은 것을 엿볼 수 있었다.
팽무성도 도왕의 경험이 녹아든 눈썰미 덕분에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불규칙한 움직임을 위한 의식적인 움직임. 팽무성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걸 보셨단 말인가요.”
대화를 내내 냉정함을 유지하던 가월의 표정에 처음으로 금이 갔다.
가월은 물끄러미 팽무성을 바라보았다.
최근까지 팽무성이 바뀐 모습을 지켜봤지만, 이제 자신이 기억하던 과거의 사공자는 없었다.
그래도 가월은 기쁜 마음이 들었다.
만약 이 모습을 죽은 언니가 보았다면 분명 기뻐하고 대견해 했을 것이다.
“가월, 쌍귀산까지 쫓아온 것도 너지?”
질문에 가월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때 느낌이 싸했더니 사공자는 역시나 눈치챘다.
“예, 사공자님이 눈에 안 보이시니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본가에서 나온 거야.”
“시골의 고향에 다녀온다고 휴가를 받았습니다.”
팽무성은 사실을 확인한 이상 가월을 전처럼 세가에 가만히 놀릴 생각이 없었다.
“가월, 네가 부릴 수 있는 살수가 있어?”
“예, 필요한 일이 있으십니까.”
살수를 찾자 풀어졌던 가월의 눈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당분간 살수들을 감찰각 일조장에게 붙여놔.”
“일조장 말입니까?”
가월도 이번 암살사건 조사가 석연찮았다. 감찰각주에게 나는 구린 냄새를 맡은 참이다.
그런데 정작 관련 없어 보이는 일조장에게 살수를 붙이라니 의아한 것이 당연했다.
“목적은 암살이 아니라 감시와 호위다.”
전생에 사공자 암살사건과 감찰각의 조사과정에 의문을 품은 유일한 이가 있었다.
감찰각 일조장.
일조장은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된다.
그때는 자살로 처리되었지만, 앞뒤 사정을 모두 알게 되자 팽대혁의 짓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전생과 다르지 않다면 지금도 홀로 사건을 캐고 있겠지.’
일조장은 본가 내의 정치 상황은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진실과 부패를 찾는 대나무처럼 곧은 사내였다.
이런 인재는 앞으로의 팽가에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천살택문의 정보를 보고 싶은데.”
강호에서 정보를 따질 때 개방과 하오문을 으뜸으로 친다.
하지만 죽이기 위해 정보를 모으는 살문의 정보력 또한 이에 못지않았다.
별다른 세력이 없는 팽무성이 독자적인 정보를 얻기에 이만한 방법도 없었다.
가월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제가 알아서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팽무성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말투랑 행동은 원래 하던 대로 해. 갑자기 뭐야? 말투가 딱딱해서 철호인 줄 알았네.”
반쯤 장난이 섞인 말에 가월도 그제야 웃음을 머금었다.
“제가 한창 살수일 때는 말투가 이랬답니다.”
가월은 살짝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문주님은 아직 만나실 생각이 없으신가요.”
팽무성은 멈칫거렸다.
잠시 생각을 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좀 더 나중에 시간을 만들어보자.”
“네.”
“본가로 돌아가자.”
가월은 그제야 한숨을 내뱉었다.
방금까지 한 대화는 시비가 된 이후 제일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가월은 외가가 살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팽무성이 많이 놀랄 것이라 예상했다.
놀라기만 하면 다행이지 피하면 어쩔까 걱정이 컸다.
팽무성은 명문 정파의 자손이다.
살수의 피가 섞였다는 사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가월은 이 사실이 팽무성의 약점이 될까 두려웠다.
하지만 팽무성은 얘기를 다 듣고도 이전과 똑같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가월의 마음을 안심시켰다.
가월은 가벼운 걸음걸이로 팽무성의 뒤를 쫓았다.
“다행이야.”
팽무성의 곁을 지킬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 * *
팽연후는 팽가의 정보를 담당하는 비호각에서 건너온 정보를 보고 있었다.
“무성이가 결국 해냈군.”
팽무성은 아직 본가에 복귀하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이미 하북에는 백음마가 하북팽가 사공자의 손에 잡혔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다른 녀석들도 긴장해야겠는데.”
이제 가솔들도 슬슬 소문을 접했을 터.
삼공자와의 비무 이후로 또다시 사공자의 이름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 얘기 들었는가?”
“사공자께서 그 음마를 잡았다며?”
“정말? 무슨 재주로? 철호가 잡아놓고 공을 가로챈 것이 아닌가.”
“에헤이, 삼공자도 때려잡았는데 음마를 못 때려잡을까.”
“그건 또 그렇군.”
팽연후의 예상이 맞았다.
이미 소문은 팽가 내에서도 빠르게 퍼져서 가솔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로써 협호행을 떠날 자격을 팽가에 증명한 셈이다.
헌데, 그 상승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소문이 한껏 달아오를 그쯤, 팽연후의 집무실로 팽무성의 복귀 소식이 들려왔다.
“사공자가 도착했습니다.”
“그래, 바로 오라고 해라.”
잠시 후, 집무실에 들어선 팽무성이 팽연후와 마주 섰다.
이제야 사람 구실을 하기 시작한 조카를 칭찬하기 위한 호출이었다.
하지만 팽무성의 보고에 팽연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뭐라고?”
“백음마가 청빙음마의 제자라고 했습니다.”
정보를 담당하는 비호각이 이 사실을 놓친 것에 놀랐고, 팽무성이 청빙음마의 제자를 제압하고 임무를 성공한 것에 더 놀랐다.
팽연후는 몸을 살짝 앞으로 끌었다.
“그게 정말이냐?”
“물론입니다. 백음마의 단전을 확인하시면 명확해질 것입니다.”
팽무성이 직접 백음마와 겨루며 빙공을 확인했다니 아마 맞을 것이다.
빙공 자체가 무림에는 희소했다.
북해빙공을 뺀다면 더더욱 말이다.
“청빙음마. 생각보다 거물이 엮여있었군.”
팽연후의 눈이 깊어졌다.
백음마가 평범한 색마라면 본가의 뇌옥에 가두거나 목을 베어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청빙음마라면 말이 달라졌다.
사도천의 오대호법.
사도천주를 제외하면 사도천의 제일 높은 곳에 서 있는 자들이다.
과거의 하북팽가라면 눈치 볼 것도 없다.
하지만 현 본가의 상황으로는 무리다.
위로는 사도천의 마랑문이, 아래로는 진주언가. 약해지는 하북팽가를 노리고 위아래로 야금야금 좁혀오고 있었다.
거기에 청빙음마의 눈이 하북팽가로 향한다면 본가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이런 고민을 해야 하다니.’
팽연후는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세가를 이끄는 어른으로서 들 낯이 없다.
“숙부님, 무엇을 그리 걱정하십니까.”
생각의 늪에 빠져있던 팽연후를 끌어올린 것은 팽무성의 목소리였다.
그 단단한 목소리에 정신이 확 들었다.
“우리는 정파입니다. 저희는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팽연후는 살짝 멍한 눈빛으로 팽무성을 쳐다보고 한참이 지나서야 답했다.
“그래, 너의 말이 옳다.”
사마외도에게 약한 이를 지키고 정의를 세우는 것이 정파의 의무다.
더구나 하북팽가는 예로부터 협(俠)을 위해 싸우는 투사의 가문이 아니었던가.
그러기 위해 무공을 익히고 힘을 길렀다.
맞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하북팽가는 어쩌면 힘과 가세만 잃는 중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을지도.
“걱정을 해도 바뀌는 것은 없지.”
이미 벌어진 일이다.
어찌 되었든 백음마를 잡은 것은 하북팽가. 청빙음마는 분풀이를 할 것이다.
“뒤처리는 내가 맡으마. 고생했다.”
팽연후의 개운한 얼굴을 보고 팽무성은 고개를 숙였다. 팽연후라면 이 일을 잘 마무리 지을 것이다.
전생에도 병석에 누운 팽진연을 대신해 팽가를 지탱해 온 기둥이었다. 죽기 직전까지 말이다.
“협호행을 떠나기에는 충분하구나.”
“감사합니다.”
“언제쯤 떠날 생각이냐.”
“간단히 정리만 하고 바로 떠날 생각입니다.”
팽무성이 나가는 뒷모습을 팽연후는 빤히 쳐다보았다.
“제 형들에게도 느껴지지 않는 무게가 저 아이에게 느껴지는군.”
팽무성을 보는 팽연후의 표정이 달라졌다.
“협호행이라…”
팽무성을 떠올리는 팽연후의 얼굴에 작은 기대감이 서렸다.
과연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팽무성에 대해 잠시 생각하던 팽연후는 붓을 꺼내들었다.
주목받는 호랑이. (2)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