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128)
127화
절강성 항주(杭州).
항주의 서쪽에 있는 서호(西湖).
일광에 반짝이는 이 거대한 호수는 무한의 동호에 비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서호의 주위로 드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섰고 햇빛에 비친 호숫물은 워낙 맑아 밑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였다.
서호는 눈을 돌리는 족족 놀라운 절경을 볼 수 있는 명승지였다.
그 고즈넉한 분위기에 도취하여 풍류객뿐만 아니라 동남쪽의 호포사(虎包寺)를 찾는 승려들도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사패는 홍영루에서도 서호의 절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식사하는 중이었다.
홍영루, 항주 제일의 숙수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워낙 미미(美味)로 유명한 곳이라 전국 각지에서 인파가 몰려오는지라 안에 들어서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사패는 홍영루 사 층의 귀빈석 중에도 제일 좋은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었다.
팽무성이 흑상에게 자리의 예약을 부탁한 덕분이었다.
홍영루의 사 층은 단순히 돈이 많다고 예약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왕을 비롯한 사패가 손님으로 찾아온다고 하니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사패의 명성이 강호에 널리 퍼져 무림인뿐만 아니라 민초들에게도 알려졌다는 증거였다.
“이제야 팽 아우가 도왕이 된 기념으로 크게 쏘는군.”
“좋은 곳에서 대접하고 싶은 것이니 이해해 주시지요. 남궁 형님.”
“하하, 물론일세.”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무각은 코를 맴도는 신선한 향기에 눈을 번쩍 떴다.
그 눈빛은 마치 전장에 나서는 것처럼 결연했다.
“오는군.”
여러 음식을 시켰기에 네 명의 점소이가 접시를 들고 오고 있었다.
원형의 거대한 식탁에 형형색색의 음식이 하나씩 채워지자 기대에 차 있던 당화련의 눈빛이 점점 반짝였다.
“우와.”
감탄하는 당화련의 젓가락이 계속 움찔거렸다. 당장이라도 접시로 가져가고 싶은 모양새였다.
여러 음식 중에도 당화련의 이목을 확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신선한 생선과 게에 달고 신 양념장을 얹어 먹는 서호초어(西湖醋?).
당화련은 손을 가볍게 휘저어 그 향을 맡더니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해산물과 새콤달콤한 양념장이 더해지니 그 향이 정말 풍부하네요.”
고기를 좋아하는 무각은 동파육과 항주장압(杭州??) 사이에서 고민하더니 동파육 쪽으로 젓가락을 틀었다.
아무래도 무각은 오리고기보다는 돼지고기가 입맛에 맞은 탓이었다.
“이 동파육이 시인 소동파가 먹었다는 그 동파육인가.”
동파육을 한입 가득 베어 문 무각은 지금껏 먹어온 동파육과 다른 깊이의 맛에 절로 불호를 외웠다.
“하하, 입과 코가 둘 다 호강하는군.”
남궁혁은 새우살에 용정 찻잎을 넣어 담백함과 향을 더한 용정하인(?井?仁)을 집어먹더니 소흥주(紹興酒)를 한입에 들이켰다.
팽무성은 사패가 식사를 즐기는 것을 보곤 진흙으로 싸서 구운 규화동자계(叫化童子?)의 한쪽 다리를 뜯어냈다.
거지닭이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고급스럽운 향과 호화스러운 맛.
진흙을 발라서 만드는데 어찌 이런 맛이 나오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에 팽무성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항주 요리의 특징은 서호에서 나는 특산물로 신선함을 자랑하는 요리가 많았다.
이런 요리에 소흥주를 한 잔씩 걸치며 항주의 풍광에 잠겨 드니 이 홍영루가 극락이나 다름없었다.
“팽 오라버니, 이것 좀 드셔보세요.”
“그래.”
즐거워하는 사패를 보며 팽무성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이곳에 오기를 잘했네.’
전생에서도 사패는 홍영루를 방문하고자 했지만 마교의 침공에 불타 사라진 뒤였다.
전쟁 중이라 아쉬움에 발길을 돌려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었다.
팽무성은 그때의 아쉬움을 풀고자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역시 항주에서 먹는 소흥주가 일품이군.”
소흥주의 맛을 본 남궁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쾌감이 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궁혁의 손이 움직이자 어느새 네 개의 술잔에는 붉은빛을 띠는 소흥주가 채워져 있었다.
“뭔가 향이 복잡하고 다채로운데.”
무각이 코를 킁킁거리며 술의 향을 맡자 남궁혁이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쌀, 좁쌀, 보리 등의 여러 가지 산물이 섞여서 이런 향기가 나는 것이지.”
사패는 술잔을 가볍게 부딪치곤 입으로 가져갔다. 당화련은 소흥주가 마음에 든 듯 입술을 핥았다.
“제법 달고 부드럽네요.”
팽무성은 남궁혁의 술잔을 채워주며 슬쩍 운을 띄웠다.
“이제 곧 중추절이 아닙니까. 중추절에는 검각에서 머무는 게 어떨까요.”
“검각이라…”
“운이 좋으면 검후도 만나 뵐 수 있겠네요.”
당화련의 말에 무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검후는 우내팔존에 속한 분이시잖아. 아직도 살아 계시다고?”
삼천과 십대고수 이전에 무림에 군림했던 고수들이 우내팔존(宇內八尊)이었다.
검후(劍后)는 우내팔존의 시대에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던 절대고수였다.
“몇 년 전에 백수(白壽 아흔아홉 살)를 넘기셨으니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으로 뵙는 것이겠군.”
남궁혁도 검존을 따라 어릴 적에 검각을 방문한 것이 다였으니 팽무성의 생각에 동했다.
“나쁘지 않을 것 같군. 그런데 팽 아우, 갑자기 검각이라니, 볼일이라도 있나?”
“아닙니다. 절강에 와본 김에 검각을 한번 보고 싶었습니다.”
“검각에 가려면 배를 타야 한다면서, 아직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는데 잘됐네.”
“낭왕의 일은 빠르게 처리하고 검각으로 가요.”
무각과 당화련도 중추절에 검각에 가는 것을 마음에 들어 했다.
‘아마 중추절 전후였었지.’
정확한 시기는 모르지만, 올해 중추절에 마교가 검각을 급습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팽무성은 벌써 소흥주 두 병을 비우고 얼굴이 사과처럼 익어버린 남궁혁을 봤다.
‘이번 검각행이 남궁 형님께 도움이 되어야 할 텐데.’
마교를 막기 위한 것도 있지만 남궁혁을 위해 검각으로 가는 목적이 컸다.
남궁혁이 검제라 불리는 데 있어서 검각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전생의 남궁혁에게 들어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검각을 노리는 거지.’
동쪽의 끝에 있는 절강, 그중에서도 주산군도에 위치한 검각을 노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 * *
천랑회는 여느 문파와 달리 이권이 밀집되어있는 시(市)나 현(縣)이 아닌 산중에 자리 잡고 있었다.
천목산(天目山)은 산이 경(?) 자 형태로 둥글게 솟아올라 가운데가 뻥 뚫려 있는 특이한 형태의 산이었다.
거대한 눈이 하늘을 본다고 하여 산의 이름도 천목산이라 붙여진 것이었다.
천랑회는 천목산 중앙의 평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서호에서 휴식을 취하고 천목산으로 향하던 도중에 당화련이 입을 열었다.
“팽 오라버니, 그런데 천랑회가 무림맹이 먼저 손을 내밀 정도인가요?”
“일단 규모만 따지자면 그리 큰 곳은 아니지.”
천랑회는 삼백여 명의 낭인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머릿수가 일천을 넘어가는 염라회에 비하면 초라한 숫자였다.
아무래도 낭왕이 가려서 뽑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낭왕을 제하더라도 천랑회의 낭인들은 강하다. 어지간한 무림인보다 피를 많이 볼 테니.”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남궁혁이 팽무성의 말을 받았다.
“왜인(倭人)들을 말하는 것이군.”
절강성은 바다 건너 약탈을 목적으로 들어오는 해적들이 많았다.
이 왜인들은 해적이라고 얕보면 곤란했다.
해적의 탈을 썼을 뿐, 정규 훈련을 받은 군대와 다름없기에 전력이 만만치가 않았다.
“천랑회가 주로 맡는 임무도 해적들을 막는 것으로 알고 있네.”
대규모로 몰려오는 해적들. 거기에 개개인의 실력도 쉽게 볼 수 없었다.
그런 놈들을 매번 상대하니 천랑회가 소수정예로 다듬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낭왕과 천랑회가 무림맹 측에 합류한다면 커다란 전력의 상승을 기대할 수 있었다.
“천랑회의 낭인들이 거칠기는 하지만 일단 의뢰만 맡으면 알아서 잘한단 말이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천목산에 가까워질 때 사패는 이상한 조짐을 감지했다.
천목산의 초목들 사이로 솟아오르는 검은 연기. 이에 무각의 미간이 구겨졌다.
“아미타불, 또 한바탕 살계를 열어야 할 느낌이 몰려오는군.”
사패는 일제히 경공을 펼쳐서 천목산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팽무성의 기감에 천목산을 둘러싼 기척들이 감지되고 육안으로도 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숫자가 제법 많군.”
“그런데 복색이 다 제각각인데요?”
천목산에 모인 무인들을 유심히 살피던 남궁혁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염라회인 것 같구나.”
사패가 가까워지자 천목산의 입구에 모여 있던 염라회의 낭인들도 사패의 접근을 확인했다.
이에 천목산의 입구를 막고 있던 낭인의 일부가 떨어져서 사패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략 사십여 명의 낭인들이 흉흉한 눈빛을 띤 채 달려왔으나 사패는 아랑곳하지 않고 경공의 속도를 높였다.
사패와 낭인들의 거리가 십 보 이내로 좁혀질 때, 낭인들이 외쳤다.
“멈춰라!”
“이 앞은 염라회의 행사가 진행되고 있소. 정체를 밝히시오!”
팽무성은 발도와 동시에 초승달 형태의 도기를 수평으로 쏘아냈다.
“사패다.”
뒤이어 팽무성의 양옆으로 검풍과 권풍이 쏟아졌고 독무가 퍼지기 시작했다.
“사패?”
“이 어린 새끼들이 또!”
“막아라.”
콰앙
머릿수 차이가 열 배나 차이가 났지만, 낭인들의 진형은 삽시간에 무너져내렸다.
사패의 돌진은 파죽지세 그 자체였다.
한 걸음도 지체하지 않고 낭인들을 그대로 뚫고 천목산으로 향했다.
슈슈슈슉
파공음이 연달아 울리며 불화살이 하늘 위로 솟구쳤다.
천목산의 둥근 산맥을 따라 자리를 잡은 염라회의 낭인들은 불을 붙인 화살을 계속 쏘아내고 있었다.
이러니 천목산의 중앙에 있는 천랑회의 산장 곳곳에 불이 붙어 연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이를 본 팽무성은 기감을 넓혀 천목산 전체를 뒤덮었다.
천목산의 입구를 막고 있는 낭인들의 수도 많았지만, 천목산에 올라서 불화살을 날리는 낭인들도 상당했다.
‘아예 천랑회를 몰살시킬 생각인가.’
천랑회의 낭인들은 불타오르는 산장을 뒤로하고 천목산을 빠져나가려 하나 염라회에 의해 길이 막힌 상황이었다.
염라회가 숫자로 밀어붙이니 천랑회의 전진도 더딘 상황. 이대로라면 뒤에서 밀려오는 불길에 타죽을 판이었다.
“남궁 형님.”
“음, 나와 무각이 위쪽으로 가겠네.”
팽무성과 남궁혁은 눈빛 교환만으로 서로의 생각을 완벽하게 읽고 있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정면에서 퇴로를 뚫어야 하니 고생 좀 하겠군.”
남궁혁과 무각은 방향을 틀어 천목산의 위로 향했고 팽무성과 당화련은 염라회가 포진하고 있는 진영의 정면으로 달렸다.
“화련아.”
“알겠어요.”
당화련은 정면으로 쏘아지는 팽무성의 거구에서 몸을 숨긴 채 양 소매에 손을 집어넣었다.
천목산의 입구를 둘러싼 인의 장벽.
팽무성과 당화련은 그 사이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렸다.
콰르릉
적아도가 수직으로 그어지며 붉은 도기가 시원하게 쏘아져 인파를 갈라냈다.
팽무성이 그 사이로 적아도를 내지르자 분화하는 도격이 부채꼴로 퍼져나가 길을 넓혔다.
한편 당화련은 양손으로 각기 다른 색의 독무를 흘려내기 시작했다.
이에 팽무성과 당화련의 급습하려고 후미를 점했던 낭인들이 되려 고꾸라지고 있었다.
무지막지한 돌파력에 염라회의 낭인들은 질겁했고 그 소식은 전방에서 낭인들을 움직이고 있던 염라회주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갑자기 사패라니, 무슨 소리냐.”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다짜고짜 이쪽으로 낭인들을 쓸어버리며 오는 중입니다.”
“하아.”
염라회주는 주먹을 떨며 전방을 바라보았다. 천랑회의 낭인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으나 포위망을 뚫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이 눈엣가시들을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데 중간에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공의 사용을 허락한다.”
염라회주의 말에 수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그분이 허락 없이는 사용하지 말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에 염라회주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그분? 이 새끼, 마공을 익혔더니 누가 네놈의 상관인지 잊어버린 것이냐?”
“죄송합니다, 회주. 실언했습니다.”
수하는 사색이 되어 급히 몸을 돌렸다.
염라회주는 그런 수하의 등 너머로 요동치고 있는 염라회의 후미를 바라봤다.
도왕이라는 별호가 허명이 아니었는지 그 존재감이 제법 거리가 있는 이 자리까지 미치고 있었다.
“저것들과도 악연이구나.”
낭왕. (1)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