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13)
12화
대로를 가로지르는 십여 명의 무인들.
같은 소속인 듯 똑같은 무복을 걸쳤다.
단순히 열을 맞춰 걷고 있음에도 위압감을 풍겼다.
이러니 주변의 행인들은 알아서 길을 비켜주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아직 거리는 멀었지만, 중년인의 안력에는 저 멀리 보이는 작은 것이 뚜렷하게 보였다.
대문의 현판.
붉은빛을 띠는 적목으로 만든 현판에는 네 글자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북팽가(河北彭家).
힘이 넘치는 필체는 언제 봐도 감탄스러웠다.
현판만 봐도 팽가가 지향하는 웅혼한 정신이 느껴졌다.
정작 작금의 팽가는 가세가 조금씩 기울고 있으니 중년인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응?”
팽가의 정문과 중년인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수문 무인들의 눈이 껌벅거렸다.
눈앞의 중년인은 하북성의 무인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사람이다.
중년인을 알아본 무인들은 포권을 했다.
중년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왔다고 전해주게.”
* * *
“총지부장인 자네가 어찌 직접 온 것인가.”
“얼굴 안 본지도 오래되었지 않나.”
“제법 여유가 있나 보지?”
“바쁘지, 금방 가봐야 해.”
팽연후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오랜만에 찾아온 친우를 맞이하고 있었다.
무림맹 하북성 총지부장, 공손진은 팽연후가 손수 차를 끓이는 모습을 지켜봤다.
후기지수 시절부터 쌓아온 인연이다.
예전에도 팽연후가 내린 차를 마시고는 했다.
“형님께서는 여전하시더군.”
“아무래도 쉬이 회복될 주화입마가 아니니 말일세, 그래도 나아지신 편이지.”
공손진은 팽연후를 만나기 전에 팽진연을 만나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왔다.
공손진은 하북에서 나고 자라서 팽가와 인연이 깊었다.
“그건 그렇고 뇌옥에 있던 놈의 내공은 직접 확인을 했네. 청빙음마의 청빙한령공이 맞더군.”
“우리도 놀랐네. 한낱 색마인 줄 알았던 백음마가 청빙음마의 제자라니. 그 덕분에 비호각주가 제대로 깨졌어.”
“정말 치밀한 놈일세. 한곳에 길게 머무르는 법이 없고 지역을 넘어갈 때마다 인피면구로 얼굴을 바꾸지. 그 탓에 팽가에서도 바로 몰랐을 거야. 오죽하면 청빙음마의 추적을 단신으로 뿌리치고 지금까지 버텼겠나.”
사도천의 오대호법인 청빙음마의 세력은 막강했다.
청빙음마의 추적을 따돌리고 홀로 강호를 떠도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 백음마가 하북팽가의 막내에게 뜬금없이 잡혔다.
거기다 두 팔이 잘린 처절한 모습으로 말이다.
“흠, 아무튼 백음마는 잘 부탁하네.”
“그래, 맡겨둬.”
팽연후는 백음마를 뇌옥에 가두지도, 죽이지도 않기로 했다.
굳이 이 둘 사이에서 팽가가 선택할 필요가 없었다.
팽가가 선택하기 어렵다면 다른 쪽으로 그 선택지를 넘기는 방법도 있었다.
팽연후는 백음마를 무림맹으로 넘기기로 했다. 어차피 백음마를 잡은 것은 팽가로 알려져 있다. 더는 손해 볼 것이 없었다.
“백음마를 잡아 온 것이 사공자라 했던가.”
공손진의 기억 속에서 사공자는 무공에 어울리지 않는 심약한 어린아이였다.
공손진은 지부에 들어온 정보를 보고 의아했었다.
처음에는 정보가 잘 못 된 것인가 싶었다.
“요즘 본가에서 작은 풍운을 일으키는 아이일세.”
“작은 풍운이라.”
공손진은 팽연후의 말이 칭찬의 의미로 들렸다.
다른 조카들에게는 한 번도 칭찬을 한 적이 없는 팽연후다.
이러니 자연스레 사공자에게 호기심이 갔다.
공손진은 차 한 잔을 마시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랜만에 친우를 만나 유익했다.
공손진이 이끌고 온 무인들은 이미 백음마를 호송 마차에 넣고 기다리고 있었다.
“음?”
공손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
무림맹 무인들 사이에 어울리지 않는 이가 있었다.
“엄청난 풍채로군.”
젊을 때부터 팽가를 드나들며 많은 장사를 보았지만 저만한 몸은 본 적이 없다.
드넓은 등짝이 돌자 매서운 호안이 공손진을 향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자네는?”
“팽무성이라 합니다.”
포권을 하는 팽무성. 이를 본 공손진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렇군, 자네였어.”
공손진은 한 호흡 늦게 답했다.
팽무성을 보는 공손진의 눈은 뭔가 복잡한 빛을 보였다.
백음마는 청빙음마의 제자.
당연히 나이에 비해 출중한 무공을 지녔다.
최소 일류의 끝자락으로 알려져 있으니 대문파의 후기지수에도 밀리지 않았다.
‘정말 이 아이가 잡았단 말인가.’
공손진의 기억 속에서 울고 있던 어린 팽무성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만큼 팽무성의 인상이 강렬했다.
‘음.’
공손진은 속으로 침음을 흘렸다.
하북성 전체를 총괄하는 총지부장인 만큼 그 무공은 훌륭했다.
하지만 공손진은 팽무성의 무위를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그만큼 팽무성의 기운이 온전하게 갈무리 되었다는 증거였다.
‘이런 느낌은 남궁혁 이후로 처음이군.’
팽무성도 공손진이 자신의 무위를 읽어내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른 척했다.
공손진은 팽무성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놀랍다. 놀라워.’
생각이 많아지는 공손진이다. 이를 알아차린 팽연후가 적절히 끊어냈다.
“본가의 사공자네. 잡아 온 것도 사공자이니 직접 마무리하게 했네.”
공손진의 옆에 있던 팽연후가 웃었다.
이에 공손진은 마주 웃으며 혀를 찼다.
‘마무리는 무슨, 사공자를 보이고 싶던 것이겠지.’
심정은 이해가 갔다.
자세한 사정은 몰랐으나 충분한 재목이다.
팽무성을 보며 잠시 고민하던 공손진이 입을 열었다.
“사공자, 내 밑에서 일해보겠나. 일을 배우며 공을 쌓으면 무림맹 본단으로 추천서를 써주지.”
공손진의 제안에 이를 들은 무림맹 무인들이 놀란 기색을 보였다.
파격적인 제안이기도 했지만 공손진이 사사로이 인재를 영입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후기지수가 이 제안을 들었다면 바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한 성을 책임지는 지부장의 추천서.
고속승진을 하며 무림맹의 요직으로 갈 수 있는 빠른 길이었다.
“죄송합니다. 아직은 본가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팽무성은 정중히 거절했다.
공손진은 말뜻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쉽군.”
공손진은 팽연후와 인사를 나누고 바로 출발했다.
공손진은 호송 마차를 이끌고 나아가던 중에 이미 멀어진 하북팽가의 정문을 다시 되돌아봤다.
“연후, 자네가 틀렸어. 팽가의 작은 풍운이 아니야. 무림에 큰 풍운을 불어올 걸세.”
공손진은 홀로 중얼거렸다.
단순히 오랜 친우를 보러 왔건만, 크게 될 후배를 보아 기분이 좋았다.
“조만간 팽가가 다시 비상하겠구나.”
* * *
카카캉
사주각의 연무장에서는 묵직한 금속음이 쉬지 않고 울렸다.
깡
“크흑.”
철호는 옆구리를 노려오는 도를 쳐냈다. 하지만 두 걸음이나 옆으로 밀려났다.
생각 이상으로 무겁다.
마치 도가 아니라 거대한 바위를 막아낸 것 같았다. 철호의 도는 충격 때문에 잘게 떨리고 있었다.
“흡.”
호흡을 조절하며 다시 자세를 잡는 철호.
전신이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육체의 힘만으로 두 시진이나 비무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는 아무리 철호라도 상당한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더구나 그 비무의 상대가 팽무성이었다.
하지만 정작 팽무성은 아직 멀쩡했다.
마찬가지로 전신에서 열이 피어오르고 있지만 자세에 흔들림이 없었다.
‘사공자가 이리 컸었던가.’
철호는 왜인지 팽무성이 크게 느껴지는지 알 수 없었다.
“이제 마지막이다, 다 쏟아부어.”
팽무성의 말과 동시에 강맹한 힘이 실린 도가 덮쳐왔다. 마치 생사결을 하는 듯 팽무성의 도는 사정없었다.
이는 철호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만큼은 호위의 입장에서 벗어나 오직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맞섰다.
“하아압!”
철호는 남은 힘을 한 방울까지 끌어모아 전력으로 도법을 펼쳐냈다.
어깨가 틀어지나 싶더니 순식간에 다섯 줄기의 빛살이 쏟아졌다.
다섯 줄기의 도풍은 단숨에 팽무성을 집어삼키려 했다.
철호가 익힌 도법인 섬호도법(閃虎刀法).
속도에 치중된 도법인 만큼 도의 쾌속함이 발군이었다.
그에 비하면 팽무성의 도는 느릿하다.
하지만 그 느릿한 도가 어느새 철호의 도를 따라잡고 있었다.
팽무성은 전신을 왼쪽으로 살짝 틀었다.
그러면서 사선으로 한 번에 베어냈다.
섬호도법의 초식을 파훼함과 동시에 원을 그린 도는 철호의 목에서 멈춰있었다.
자신의 목에 멈춰있는 도신을 보는 철호는 복잡한 얼굴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지켜야 하는 존재였던 팽무성이다.
그 팽무성이 어느새 자신의 앞을 훌쩍 앞서고 있었다.
‘끊임없이 성장하시는군.’
팽무성은 숨을 헐떡이는 철호를 보더니 도를 거두었다.
“수고했다.”
“헉헉.”
팽무성의 호흡은 차분했다. 자신과 같이 두 시진 동안 비무를 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철호는 여태 궁금한 것이 있는지 비무가 끝나자마자 물었다.
“사공자, 체력 배분을 어떻게 하시는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근래에 무공을 수련하며 급성장을 한 팽무성이다. 그런데 보이는 요령을 보면 후기지수가 아니라 경험이 풍부한 노고수를 보는 듯했다.
“이건 특별한 방법이 없다. 한계를 여러 번 경험하며 직접 몸으로 체득해야 해.”
쉽게 말해 오랫동안 굴러야 한다는 뜻이다. 팽무성이라고 전생에 이런 훈련을 해왔던 것은 아니었다.
자신도 정마대전이라는 실전을 겪으며 살아남기 위해 터득한 것이었다.
전쟁은 싸우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몸 상태가 언제나 최선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실제로 전생에서는 함정에 빠져 끝없이 밀려오는 마인들을 반나절이나 베어낸 적이 있었다.
종국에는 내공도 바닥을 보여 오로지 순수한 육체의 힘으로 도를 휘둘러야 했다.
“우선 내공을 봉하고 육체의 한계를 체감해라. 다음이 내공이다. 그렇다면 힘의 분배와 내공 운용이 더욱 세밀해질 거다.”
“감사합니다.”
철호는 팽무성이 어떻게 이런 조언을 해줄 수 있는지 더는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럴 시간에 어떻게 벽을 깨트릴지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중간중간 팽무성이 던져주는 조언은 철호에게 가뭄의 단비나 다름없었다.
“밥 먹으면서 마저 얘기하자.”
사주각에 들어서니 어김없이 향긋한 음식 냄새가 감돌고 있었다. 온종일 격정적으로 수련을 한 탓에 두 사람은 곧바로 허기가 요동쳤다.
“오늘도 고생하셨어요. 식사하세요.”
가월은 살수임이 밝혀졌지만, 평소와 같이 행동했다.
팽무성도 달라진 것 없이 가월을 대했다.
다만 철호는 아직 어색한 부분이 있었다. 철호도 끝까지 함께 가야 하기에 가월에 대해 미리 알려준 상황이었다.
식사를 거의 끝마칠 때 팽무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에서 세 권의 비급을 들고 왔다.
팽무성은 그 비급을 철호에게 건네주었다.
“이것은.”
철호의 목소리가 약간이지만 떨렸다.
비급의 맨 앞에 적힌 다섯 글자. 철혈맹호도.
철호는 비급과 팽무성을 번갈아 쳐다봤다.
철호에게 준 세 권의 비급은 전생에 직접 창안한 무공이었다. 팽무성이 시간이 날 때마다 한 권씩 손수 만들어 놓았다.
“지금부터 이 무공들을 주력으로 익혀. 지금의 너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거다.”
철호는 조심스레 비급을 살폈다.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듯 첫 장을 펴자마자 먹물 냄새가 올라왔다.
초식마다 그림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었고 그에 대한 주석이 작은 필체로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내가 협호행을 떠나면 시간이 남을 테니 수련에 전념해. 지금처럼 약하면 곤란하다.”
무공을 익힌 이후로 약하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 철호다.
약하다는 말이 철호의 가슴을 찔렀지만 새로운 무공을 얻었다는 기쁨이 더욱 컸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사공자.”
“그래, 보다가 괜찮은 놈 있으면 사주각 소속으로 오라고 꼬셔보고.”
철호는 팽무성의 말뜻을 바로 알아들었다.
“옥석만 골라보지요.”
전생에서도 철호는 타격대의 부대주를 맡으며 인재들을 골라내는 탁월한 안목을 보여주었다.
철호가 데려온 이라면 제법 쓸만할 것이다.
“가월은 공자들부터 시작해서 하북의 정세에 대해 계속 정보를 수집해. 특이사항 있으면 천살택문을 통해 알려주고.”
“걱정 마세요.”
“철 호위도 옆에서 도와주고.”
팽무성은 철호와 가월을 번갈아 보았다.
“나 없는 동안 사주각, 잘 지키고 있어.”
팽무성이 협호행을 떠날 날이 바로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 * *
“삼언은 하북성 총단의 뇌옥에 감금되었습니다. 시일이 지난 후 무림맹 본단으로 압송된다고 합니다.”
“일이 꼬이려니 이렇게까지 꼬이는군.”
수하의 보고를 듣던 노인, 청빙음마는 삼언이라는 이름을 곱씹었다. 삼언은 팽무성에게 잡힌 백음마의 이름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흑상에서 대체할 물건을 확보했습니다.”
쩌적
청빙음마의 손에서 흘러나온 냉기에 의자의 손잡이가 단숨에 얼어버렸다.
“팽무성이라 했던가.”
“맞습니다.”
“우연이라 하나 이대로 넘어가기에는 내 속이 불편하구나.”
“조만간 강호에 나선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수하의 말에 청빙음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호초출이니 한번 쓴맛도 봐야지. 그래야 크게 성장하는 법이야.”
청빙음마의 말에 수하는 고개를 숙였다.
청빙음마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수하는 알고 있었다. 팽무성이 쓴맛을 보는 것에 끝나기를 바란다는 것을. 아마 쓴맛을 보고 그 뒤는 없을 것이다.
사실상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팽무성의 행보를 미리 알아놔야겠군.’
천살불의 기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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