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133)
132화
“홀홀홀. 너희의 이야기를 들었으니 나도 나잇값을 해야겠구나.”
무인으로서 백여 년을 살아온 검후의 삶.
마교의 이야기를 듣고 당장 검각을 나서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검후의 몸은 이제 검을 잡기에는 무리였다.
그 대신에 자신이 쌓아온 그 농밀한 경험과 깨달음을 사패에게 전수할 생각이었다.
직접 검을 들고 싸울 수는 없으나 검후도 정파로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마교와 싸울 셈이었다.
“내가 너희 나이일 때, 검신께 가르침을 받아 훗날 검후라 불렸단다.”
검후가 말하는 검신은 남궁세가의 인물로 남궁혁의 선조였다.
남궁혁은 이미 검존에게 들은 일화가 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마교가 마도의 방식으로 구마군을 키웠으니 나는 정파의 방식으로 사패를 키우겠다.”
선대의 유산이 후대에 전해지며 더욱 장대해지고 깊어진다. 이것이 검후가 생각하는 정파의 힘이고 가치였다.
사패가 검각의 제자가 아니지만 가르침을 아낌없이 전수하려는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검후는 이를 대단한 일로 여기지 않았다.
검신이 그러했고 검후가 그러했듯이 이 아이들도 훗날 이러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아이들도 훗날 정파의 거목으로 자랄 터.’
검후는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결정을 내린 듯 눈을 떴다.
“우선 너희들과 일일이 비무를 하며 가르칠 것은 아니란다. 중추절까지 머무른다지?”
“예. 검후.”
“너희는 내가 하루씩 번갈아 가며 무공을 봐주마.”
검후가 눈빛을 마주하며 말한 이는 무각을 제외한 세 사람이었다.
검후의 가르침에서 제외된 무각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검후를 쳐다봤다.
이에 검후는 부드러운 눈웃음을 지으며 무각을 바라봤다.
“무각. 많이 의아한 것을 알고 있단다.”
“예.”
“마교에 대한 얘기를 들으며 자연스레 너에 대해 알게 되었고 광승이라는 별호와 지금의 눈빛이 너에 대해서 다시금 알려주고 있구나.”
무각은 대꾸하지 않고 검후의 눈을 마주했다. 그 눈빛은 포근한 듯하면서도 명검처럼 날카로웠다.
만난 지 겨우 반 시진이 지났을 뿐인데 무각은 검후가 자신의 모든 것을 꿰뚫어 봤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마치 스승인 불존과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무각, 너는 지금 주먹을 뻗고 땀을 흘릴 때가 아니다.”
“그럼 소승은 어찌해야 합니까.”
“대신심, 대분심, 대의심.”
대신심(大信心) 크게 믿는 마음.
대분심(大憤心) 크게 분한 생각.
대의심(大疑心) 커다란 의심.
참선하기 위해서 수도자가 갖추어야 할 세 가지 마음가짐이었다.
무각은 검후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바로 알아차렸다.
무각이 익힌 소림의 무공은 불가의 것.
무학의 심득뿐만 아니라 불법(佛法)의 참선을 통한 깨달음도 균형 있게 맞춰져야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소림의 무공을 익히는 그 과정 자체가 또 다른 방식의 참선이었다.
“무각, 피하기만 한다면 언제까지고 그 근처에서 머물 뿐이란다.”
“하지만 참선을 통한 깨달음이 하루아침에 찾아오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조급해하지 말아라. 무각. 네가 평생을 가야 하는 길이다.”
검후는 손가락을 들어 보타산의 다른 산줄기를 가리켰다.
“보타산에 있는 세 사찰의 주지 스님은 모두 법력이 뛰어난 분들이다.
내가 말한 세 가지를 다시 되새기며 가르침을 받거라. 그분들이라면 너에게 맞는 화두와 답을 주실 터이니.”
검후의 말에서 느낀 바가 있는지 무각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장 가까운 사찰인 법우사로 향할 셈이었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가르침 감사합니다.”
반장을 하며 등을 돌리는 무각의 뒷모습을 보며 검후가 덧붙였다.
“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이 옳은 길이나 먼저 답을 얻고 이를 되돌아보는 것도 하나의 공부이니라.”
검후는 그러곤 당화련을 응시했다.
“당가의 아이야, 독룡제라는 별호를 알고 있느냐.”
검후가 독룡제를 언급하자 당화련은 눈을 반짝였다. 독룡제는 우내팔존의 시대에 일좌를 차지했던 당가의 절대고수였다.
“네. 저도 이것을 주로 사용하고 있는걸요.”
당화련이 소매 속에서 어린표를 꺼내서 보여주자 검후는 잠시 그리운 얼굴을 보였다.
당화련의 어린표를 보며 이미 흙으로 돌아간 옛 친우가 비쳤기 때문이었다.
독룡제가 주로 쓰던 암기도 바로 어린표였던 탓이었다. 독룡제의 용(龍)도 어린표 때문에 붙여진 것이었다.
독룡제가 날리는 어린표는 무엇이든 꿰뚫는 용린이었다.
“독룡제 이후로 어린표를 사용하는 당가의 아이는 네가 처음이구나. 어린표를 사용한다면 용린폭풍비를 익혔겠구나.”
“네.”
검후는 반가운 얼굴을 했다.
“독룡제의 용린폭풍비를 오랜 시간 지켜본 것이 나다. 용린폭풍비에 대해서는 당가의 누구보다도 확실한 조언을 해줄 자신이 있단다.”
본래 독룡제의 암기술을 전체적으로 알려주려 했으나 당화련도 용린폭풍비를 익혔다는 것에 방향을 바꾸었다.
넓게 여러 묘리를 전수하는 것보다 용린폭풍비에 집중해서 가르칠 생각이었다.
그편이 검후의 입장에서도 가르치기가 수월했다.
“아.”
당화련은 기쁨이 섞인 탄성을 흘렸다.
용린폭풍비는 그 자체로 난해했고 어린표를 다룬 경험이 있는 무인은 당가에서도 드물었다.
애초에 독룡제 이후로 어린표와 용린폭풍비에 진지하게 파고든 것은 당가에서 당화련이 유일했다.
이러니 당가에서도 용린폭풍비와 어린표에 대한 가르침을 받기는 힘들었다.
독장을 익히고 다른 여러 암기술을 익혔지만 당화련은 용린폭풍비를 자신의 주 무공으로 여기고 있었다.
지금까지 약점과 부족함을 채워왔다면 지금에야 장점을 부각해 다듬을 기회가 온 것이었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당화련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천당가와 정반대 방향인 중원의 극동.
절강의 검각에서 용린폭풍비에 대한 가르침을 받게 될 줄이야.
생각지도 못한 기연이었다.
검후는 당화련의 손을 잡아서 살폈다.
상처투성이에 곳곳의 피부가 변색한 것을 보곤 검후는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훌륭하다. 무인의 손이구나.”
검후는 당화련을 칭찬하며 자신의 손을 보여주었다. 세월로 인한 주름도 평생 검을 잡으며 생긴 굳은살은 지울 수 없었다.
검후는 당화련의 손등을 가볍게 두들겨 주곤 남궁혁으로 눈길을 돌렸다.
남궁혁을 보는 검후는 결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검신께 받은 가르침에 검후로서 쌓아온 모든 것을 더해서 다시 너에게 되돌려 주마.”
“감사히 받겠습니다.”
“덕분에 죽어서 검신을 뵐 면목이 생겼구나.”
남궁혁을 보며 웃는 검후의 얼굴을 정말 밝았다.
“너희들은 먼저 물러나거라. 오늘은 이 아이와 대화를 나누어야겠구나.”
이에 당화련과 남궁혁이 먼저 자리를 비웠고 팽무성이 홀로 남았다.
검후는 팽무성의 호안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명문의 후손인데 보이는 눈빛은 수라장을 헤쳐온 것 같이 치열하며 사납고, 살아온 세월에 비해 곱절은 익은 눈빛을 띠고 있구나.”
이는 단순히 무공의 경지가 높은 탓으로 치부하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있었다.
눈빛은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을 압축하여 하나의 모양새로 보여주는 것이기에.
이에 팽무성은 그저 부드러운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검후는 아무래도 전생부터 이어온 자신의 기질을 꿰뚫어 본 모양이었다.
‘무각의 경우도 그렇고, 통찰력이 뛰어난 분이시군.’
팽무성이 답하지 않자 검후도 캐묻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미 너는 어렴풋이 자연에 손을 뻗고 있구나. 내가 너에게 가르칠 입장이 아니다.”
검후가 보기에 팽무성은 완숙한 초월경에 올라 절대경을 슬슬 넘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 잡히지 않는 안개 같습니다. 확실히 감을 잡지 못했습니다.”
팽무성은 사천과 겨루며 자신이 깨달은 바를 허심탄회하게 검후에게 전했다.
이를 들은 검후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내팔존에도 절대경에 도달한 이들이 있었지.
자연에게서 힘을 빌리고자 하는 자, 자연을 자신의 발아래로 두려는 자, 자연도 그저 하나의 검으로 생각하는 자.
얻은 깨달음도 제각각이었단다.”
검후는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초목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이들은 결국 자신을 주체로 삼았는데 너는 자연을 주체로 삼고 녹아들고 기다리려 하는구나.”
그 말에 팽무성의 양눈썹이 치솟았다.
검후는 단순히 차이점을 말하는 듯싶었지만, 팽무성에게는 또 하나의 화두였다.
검후는 어느새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간 팽무성을 보며 웃었다.
‘그 작은 차이가 단순히 절대경에 오르는 것이 아닌 자연경에 도달할 길을 마련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검후도 팽무성을 보며 많은 생각에 잠겼다. 사실 팽무성이 자신이 얻은 깨달음에 대해 말했을 때 내심 많이 놀랐었다.
그 성질이 팽무성의 눈빛을 통해 엿본 기질과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팽무성이 얻은 자연에 대한 깨달음은 득도한 고승이나 진인의 것과 비슷했다.
‘이 나이를 먹었어도 아직 부족하구나.’
중천에 떴던 해가 저물고 달이 기울 무렵.
석상처럼 꼼짝도 하지 않던 팽무성에게 한 줄기 바람이 스쳤다.
바람은 그저 지나가지 않고 팽무성의 몸을 한 바퀴 보듬고 날아갔다.
이윽고 팽무성이 눈을 뜨자 그 앞에서 명상하고 있던 검후도 눈을 떴다.
팽무성은 검후가 호법을 서준 것을 알곤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도움이 되었나 보구나.”
“단초를 얻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단순한 말 한마디로 깨달음을 얻었다면 이것은 나의 덕이 아니라 네가 마땅히 얻었을 것이겠지. 나는 그 시간을 줄여 주었을 뿐.”
팽무성의 성장은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삼천 이후로 검후를 놀라게 한 인재는 팽무성이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검후는 팽무성이 깨달음을 얻은 것을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되려 온화함을 머금고 있던 검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하늘이 너에게 이런 힘을 쥐여주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지.’
팽무성을 안쓰럽게 보는 검후는 모옥으로 시선을 옮기며 팔을 들었다.
그러자 허공섭물이 펼쳐지며 모옥의 열린 문을 통해서 한 자루 검이 날아들었다.
“길게 겨룰 수는 없지만 한번 어울려 보자꾸나.”
이에 팽무성도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리곤 천천히 적아도를 뽑아냈다.
차앙
검과 도가 가볍게 부딪쳤다.
고요한 달밤에 맑은 금속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검후의 검 놀림은 지극히 느렸고 팽무성도 이에 맞추었다.
그러니 두 사람은 비무보다는 검무로 합을 맞추고 있는 느낌이었다.
검후가 내공을 끌어올리자 그렇지 않아도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던 은발이 은은한 빛을 머금기 시작했다.
검이 하단을 향해 수직으로 베어지나 싶더니 어느새 좌상단을 찔러오고 있었다.
미세한 손목의 떨림조차 없는데 어찌 이루어낸 조화인지 알 수가 없었다.
허나 적아도는 검후의 검로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쫓아가 날을 들이댔다.
파앙
팽무성과 검후를 중심으로 원형의 기파가 터졌다. 부드럽게 퍼지는 풍압에 주변의 나무들이 잘게 떨었다.
검후의 검은 느렸으나 눈으로 뻔히 보고도 받아내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검후는 검을 뻗으면서도 끊임없이 입을 달싹였다.
마치 구결을 읊듯이 팽무성에게 자신이 얻어온 심득을 말하며 검으로도 직접 보여주고 있었다.
채앵 챙
과연 검후. 계속 말을 하면서도 검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검에 한정된 것이 아닌 총괄적인 무(武)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검후가 평생을 쌓아온 모든 것.
이것이 팽무성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검후도 모르는 일.
그럼에도 검후는 가르침을 마다하지 않았다. 팽무성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성공이었다.
검을 휘두르는 검후의 이마와 손에서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검후의 검은 멈추지 않고 은광을 흘려냈다.
카앙
처음으로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리고 팽무성과 검후가 멀찍이 뒤로 물러났다.
“마지막은 이 초식으로 마무리하마.”
우우웅
검후의 검이 처음으로 검명을 토해냈다.
내공이 집약된 검신은 은빛으로 물들었다.
검후는 여태 그랬듯이 가볍게 검을 찔렀으나 눈부신 은빛 섬광이 검극에서 분출됐다.
은하장미(銀河長尾).
은하유성검법의 가장 기본적인 초식.
단순한 쾌속의 찌르기였다.
길쭉하게 늘어진 은빛 검기가 팽무성의 가슴으로 쇄도했다.
허공을 가르는 검기가 잔상을 남겨 마치 검후와 팽무성이 기다란 은실로 이어지는 광경을 보는 듯했다.
촤아악
적아도가 하단에서 상단으로 솟구치자 은하장미의 검기가 양 갈래로 갈라졌다.
검후의 상태를 팽무성도 알았기에 최대한 부드럽게 받아내느라 한 걸음 뒤로 물러나야 했다.
그것을 제하더라도 검후의 검은 받아내기 껄끄러운 부분이 있었다. 은하장미를 받아낸 팽무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큽.”
“검후!”
검후가 짧은 신음과 함께 무릎을 꿇자 팽무성은 대경하여 달려갔다.
중추절의 불청객. (1)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