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138)
137화
화르륵
보타산을 태우는 거대한 산불 앞에서는 거대한 보름달의 달빛도 흐릿했다.
밤이면 고요했을 보타산에는 오늘따라 무언가 타들어 가는 소리와 짐승들의 울부짖음만 가득했다.
몸을 날린 팽무성은 적아도를 뻗어 앞을 가로막는 화염의 벽을 갈라냈다.
보타산을 삼키며 덩치를 키운 산불의 열기는 상상 이상. 피부가 열기에 건조해지는 것이 바로 느껴질 정도였다.
팽무성은 내공을 끌어올리는 것뿐만 아니라 철호피공을 전신으로 펼쳐내야만 했다.
적아도를 크게 휘둘러 팽무성이 도풍을 일으켰지만, 평소와 같이 예리하지 않았다.
뭉툭하고 필요 이상으로 광대했다.
도풍이라기보다는 그저 자연의 질풍과 같았다.
후우우웅
도풍이 화염을 그대로 밀어내더니 열기와 연기도 함께 흘려보냈다.
뒤이어 쏟아지는 도풍도 회오리치더니 주변의 화염을 머금고 용솟음쳤다.
몇 번의 도풍으로 팽무성이 주변의 산불을 잠재웠지만, 아직 보타산은 불타고 있었다.
광마군은 탈인순마공으로 화염을 맨몸으로 뚫으며 도망쳤는지 보타산 근처에는 느껴지는 기척이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팽무성은 검각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직 산불은 잡히지 않아 이대로 둔다면 검각은 물론이고 양민들의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것이 분명했다.
시간을 들여서 광마군을 쫓는다면 찾을 수야 있겠지만 팽무성은 산불을 끄고 사람들을 구하는 것을 우선으로 여겼다.
파앙
후우웅
팽무성은 도풍과 장력으로 눈앞의 산불을 끄며 계속해서 전진했다.
검각에 가까워졌을 때, 팽무성이 날린 도풍이 반대편에서 날아온 검풍을 만나 거센 역풍을 일으켰다.
팽무성은 저 멀리서 검을 크게 휘두르며 다가오는 남궁혁을 보곤 손을 휘저었다.
“남궁 형님!”
“팽 아우!”
팽무성은 여기저기 찢긴 남궁혁의 무복을 보곤 물었다.
“초월경의 고수와 맞붙으신 것 같던데요.”
“그래. 검마군도 초월경에 올랐더군.”
남궁혁은 옆에 밀려오는 산불을 꺼트리며 말했다.
“이번에 완전히 제압을 못 했네. 반 수 정도 부족했나. 그래서 놓치고 말았어. 면목이 없네.”
남궁혁은 아쉬운 듯 머리를 긁적였지만 팽무성은 고개를 저었다.
막 초월경에 도달했는데 이렇게 싸운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다.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후후. 고맙네.”
남궁혁은 초월경에 오르고 나서야 팽무성이 저 멀리 앞서고 있다는 것이 명확하게 보였다.
남궁혁은 초월경에 올랐다고 기뻐할 틈이 없었다. 빠르게 달려가는 팽무성의 뒤를 따라잡으려면 자신도 쉴 틈 없이 뛰어가야 했다.
‘정말 대단한 아우란 말이지.’
“검각은 어떻게 됐습니까.”
“마인들은 물러갔네. 검마군을 비롯해서 소수만 도망칠 수 있었지만, 산불 때문에 쫓을 여력이 없었네.
지금 모두 산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을 거야.”
실제로 마인들이 후퇴하고 무인들은 물론이고 검각에 숨어있던 양민들까지 모조리 뛰어나와 물통과 흙을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만큼 산불은 위협적으로 덩치를 키운 상황이었다.
남궁혁은 산불이 올라오는 형태를 가늠하더니 말을 이었다.
“이곳부터 갈라지세. 산불이 올라오는 것은 대충 막았으니 이제 내려가면서 불을 꺼야 할 거야.”
“이거 밤새 고생 좀 하겠습니다.”
팽무성과 남궁혁은 각자 일렁이는 산불을 향해 땅을 박찼다.
“물을 담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사용해!”
“손이 남는 사람은 흙이라도 퍼서 움직이십시오!”
보타산에 있는 모든 이들이 산불을 끄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해가 뜰 때 즈음이 되어서야 산불은 서서히 잡히고 있었다.
크게 번진 산불을 하루도 안 되어 잡을 수 있는 것은 팽무성과 남궁혁의 힘이 컸다.
밤새도록 산 전체를 돌며 도풍과 검풍을 날려 산불을 날려 보냈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이 산불을 꺼트리면 무인들과 양민, 승려들이 돌아다니며 꺼지지 않는 불씨를 확인했다.
이러니 온몸이 까매지지 않은 이가 없었다. 검각의 연무장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이 피로에 드러누워 있었다.
“아오, 이건 아무래도 추가보수를 청구해야겠는데.”
“차라리 해적들을 상대하는 게 낫지. 뜨겁고 숨 막히고, 진짜 죽는 줄 알았네.”
밤새 물통을 들고 산 곳곳을 뛰어다닌 천랑회의 낭인들도 체력이 다해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대단하긴 하네요. 도풍이나 검풍으로 산불을 날려서 꺼트려 버리다니.”
“우리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도리어 불길을 키울걸. 낄낄.”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다른 낭인들도 누운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도풍을 날릴 수 있다고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저 둘이 아니었다면 보타산 전체가 불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낭인들은 팽무성이 홀로 산불 속으로 달려들어 도를 휘두르며 산불을 허공으로 날려버리는 그 장면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무공이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 * *
검후가 정신을 차린 것은 산불이 꺼지고 나서 나흘이 지난 후였다.
검후는 자신이 쓰러진 사이 마교의 무리가 보타산에 올랐다는 소식에 잔잔한 분노를 내보였다.
“너희 덕분에 검각이 멸문지화를 면했구나.”
검후의 감사에 도리어 사패가 고개를 숙였다. 검후는 이런 인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검후는 짧은 시간에도 눈에 보이는 변화를 이룩한 사패를 뿌듯하게 바라봤다.
“보타산에 좀 더 머문다고 들었다.”
검후의 물음에 사패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정비를 하고자 합니다.”
무각은 좀 더 사찰에 남아서 주지승들의 가르침을 받기를 원했고, 남궁혁도 초월경에 올라 검을 다시 되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
검후는 고개를 끄덕이곤 당화련을 바라봤다.
“내일부터 다시 시작하자. 혁이도 초월경에 올랐으니 집중적으로 봐주마.”
당화련은 검후를 걱정스레 보며 고개를 저었다.
“또 쓰러지실까 봐 걱정되는걸요.”
“괜찮다. 화련이 너는 나에게서 독룡제의 것을 최대한 빼먹을 생각만 하거라.”
검후가 온화한 웃음을 보이며 안심시키자 당화련도 따라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팽무성이 검후에게 물었다.
“검후, 마교가 왜 혈천검을 찾는지 짐작되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팽무성은 검후에게 기대를 걸었지만 아쉽게도 검후는 이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혈천검에 대해서는 나도 아는 것이 별로 없구나. 무천궁이라면 아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군요.”
전생에서는 혈천검이라는 이름이 무림에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마교가 조용히 무림을 뒤지며 혈천검을 찾았을 확률이 높았다.
‘무천궁이라…’
그렇지 않아도 무천궁을 언제 한번 방문하기는 해야 했다.
동맹까지는 아니더라도 마교와의 전쟁에서 무천궁의 협조는 필요했다.
무림맹에서 무천궁에 먼저 손을 뻗고 있지만, 진도가 지지부진하다고 며칠 전에 받은 가월의 서신에 적혀 있었다.
‘아무래도 마교에 대한 입장 차이인가.’
무림맹은 마교를 반드시 처치해야 할 파사멸마의 무리로 여겼다면, 무천궁은 마교를 마공이라는 특이한 무공을 익힌 무리로만 보고 있었다.
무천궁은 마교를 흥미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아직 경계는 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마교가 만약 쳐들어오면 그저 싸우면 그뿐이라 생각하며 은근 먼저 덤비기를 바라는 것이 무천궁이었다.
‘보타산을 내려오면 무천궁으로 가봐야겠다.’
팽무성은 사패의 수련이 끝나면 바로 무천궁으로 향할 생각이었지만, 의외로 무천궁에서 사패를 먼저 찾아왔다.
검각에 머문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무천궁에서 보낸 사람이 보타산을 올랐다.
“무천궁의 백련당주라 합니다.”
수하 세 명을 대동하고 나타난 백련당주는 사패에게 극진하게 예를 갖추었다.
사패의 나이가 어리다 한들 그 명성은 강호의 어느 명숙에도 뒤처지지 않은 탓이었다.
“무슨 일로 백련당주께서 이곳까지 찾아오셨습니까.”
무천궁은 호남성에 자리 잡고 있어 절강성과는 제법 거리가 있었다.
팽무성의 물음에 백련당주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현재 무천궁의 일원들이 무림을 바삐 활보하고 있습니다. 이것 때문이지요.”
백련당주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겉의 비단을 풀어내니 안에는 배첩이 들어있었다.
“본궁의 논검연회에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시길 바랍니다.”
백련당주는 금빛으로 장식된 배첩 네 개를 사패에게 내밀며 고개를 숙였다.
* * *
소교주, 천마휘는 뒷짐을 진 채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었다.
“사형!”
어디선가 들려온 앳된 목소리에 천마휘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이제 겨우 열 살이 넘은 듯한 사내아이.
이를 본 천마휘의 눈매가 기묘하게 비틀렸다.
그 기묘한 웃음에 사내를 호위하던 마인들은 천마휘를 보며 절로 긴장해야 했다.
“사제.”
천마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내아이를 불렀다.
“오랜만에 돌아오셨군요.”
“아아, 나를 찾는 사람이 참 많아서 말이지.”
천마휘는 사내의 위아래를 훑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그 미소는 무언가 감정이 뒤틀린듯한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허나 사내아이는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단순한 웃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용이나 봉황의 내단이라도 먹은 건가. 내공이 더욱 진일보했어. 정말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수위로군.”
이를 칭찬으로 받아들인 사내아이는 그저 웃으며 좋아했다.
“교주님께서 내려주신 영약 덕분 같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영약도 먹고 대법도 받고 말이야?”
사내아이가 대답하려 할 때 뒤에서 호위가 입을 열었다.
“공자, 시간이 늦었습니다.”
이에 천마휘의 눈이 가늘어졌다.
입을 연 호위는 천마휘의 눈빛을 모른 척 피하고 있었다.
교주가 직접 붙인 호위라 그런지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이었다.
“아! 죄송해요. 사형. 얼른 가봐야 해서…”
“가봐라.”
천마휘는 멀어지는 사내아이를 보며 입술을 핥더니 다시 걸음을 옮겼다.
천마휘의 앞에 궁궐과 같은 거대한 전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만마대전(萬魔大展).
교주의 호위인 만마혈검대를 지나쳐 만마대전에 들어서자 구마종주, 사세마왕이 도열하고 있었다.
그리고 중앙의 거대한 태사의에는 반백의 중년인이 천마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만마대전에 가득 찬 농밀한 마기에도 천마휘는 자연스레 숨을 내쉬었다.
의복을 정돈한 천마휘는 태사의를 향해 곧장 오체투지를 하며 예를 올렸다.
“소교주 천마휘, 만마지존을 뵙습니다.”
천마휘가 인사를 올렸음에도 태사의에 앉은 교주는 반응이 없었다.
이에 천마휘도 계속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어야만 했다.
반 각 정도가 흐르고 나서야 교주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일어나라.”
“감사합니다. 교주.”
“이번에 권마군을 잃었더군. 이제 남은 마군은 겨우 셋인가?”
제자이자 차기 종주를 맡을 권마군의 이름이 언급되었음에도 괴세마왕은 바위처럼 꿈적도 하지 않았다.
“마군들이 무능한 것이냐, 아니면 네가 무능한 것이냐.”
교주의 질책에 소교주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무림도 본교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강자존의 세상이었지요.”
죽은 마군들은 그저 약해서 죽었다는 것을 에둘러 말하는 것이었다.
이 말에 몇몇 종주는 눈을 꿈틀거렸지만, 감히 입을 여는 자는 없었다.
교주는 마군의 피해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지 바로 다른 것을 물었다.
“검은?”
“후보지를 좁힌 상황입니다. 무천궁과 검총을 생각 중입니다.”
“소교주, 검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손에 넣어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전쟁보다 중요한 일이니.”
무감정한 교주의 목소리에서 한 줄기 욕망이 새어 나오는 것을 천마휘는 놓치지 않았다.
그에 천마휘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는 척하면서 하얀 이빨을 드러냈다.
‘고작 검 따위에 의존하려고 하다니. 하긴 이러니까 그딴 생각을 하는 것이겠지.’
내심을 감춘 천마휘는 지극히 공손한 목소리로 답했다.
“존명.”
천마휘는 고개를 들어 구마종주, 사세마왕을 보더니 마지막으로 교주에게 시선을 옮겼다.
“본교도 이제 무림에 발호할 때를 슬슬 정해야 한다고 사료됩니다.”
그 말에 석상처럼 서 있던 구마종주와 사세마왕이 천마휘를 쳐다봤다.
호의적인 시선도 있었고 부정적인 시선도 있었다.
천마휘는 그 시선을 제대로 느끼고 있었다. 구마종주와 사세마왕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허나 천마휘는 애초에 이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림에서 마군들이 이리 죽어가는데 아직도 발호를 머뭇거리는 이들이 있다니.
만약 마군들이 건재했다면 지금 있는 호의적인 시선들도 줄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돼지 같은 늙은이들…’
천마휘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내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흠.”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던 교주의 손가락이 살짝 들썩였다.
이에 구름처럼 만마대전을 고요히 맴돌던 마기가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발호라…”
무천궁. (2)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