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139)
138화
호남성 장사(長沙)
장사 근처에는 울창한 숲과 봉우리로 이루어져 독특한 형태를 한 악록산(岳麓山)이 있었다.
이 악록산에 무천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도천과 무림맹에 사람의 손으로 쌓아 올린 성벽이 있다면 무천궁에는 자연의 힘으로 솟은 봉우리와 산맥이 있었다.
악록산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주요한 여덟 곳의 입구 중 하나를 거쳐야 했다.
그 요충지마다 거대한 전각이 하나씩 자리 잡고 있으니.
무림에서는 이 전각들을 무천궁의 팔관(八關)이라 불렀다.
이 팔관은 무천궁의 여덟 분파가 하나씩 맡아서 지키고 있었다.
무천궁을 이루는 여덟 개의 기둥.
검문(劍門). 도문(刀門). 창문(槍門). 권문(拳門). 비문(飛門). 봉문(棒門). 부문(斧門). 편문(鞭門).
이 여덟 개의 분파는 무신이 생전에 다루었던 여덟 병장기의 무공이 이어지며 만들어졌다.
한 사람이 일생을 쏟아부어도 그 끝을 보기가 힘들다는 것이 병장기다.
허나 무신은 평생을 걸쳐 여덟 종류의 병장기에 통달했으니 그 무신(武神)이라는 별호에 걸맞은 사내였다.
무신총에 남겼던 무신의 안배도 무신이 평생을 쌓아온 업적에 비하면 일부에 불과했다.
“여덟 병장기의 수준이 모두 극에 달했다니. 믿을 수가 없군요.”
남궁혁에게서 무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팽무성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실제로는 십팔반병기를 어지간한 고수 이상으로 다루었다고 하지만 극한의 경지에 도달한 것은 앞서 말한 여덟 개라고 하더군.”
“아미타불… 그 정도면 괴물이라고 하기도 부족하네. 대체 어떻게 살아온 시주야?”
“그러게요. 하늘이 재능을 직접 내려줘도 힘들 것 같은데 말이죠.”
무신의 얘기가 끝날 즈음 사패의 앞에 커다란 전각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전각에는 창관(槍關)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었다. 평소의 팔관은 밤낮으로 문을 개방하여 무인들을 받아들였다.
다양한 병장기를 다루는 만큼 무천궁을 찾는 도전자의 수도 많고 다양했다.
무천궁은 그렇게 무림 곳곳에서 모여드는 도전자들을 받아서 상대하고 이겨내어 강해지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었다.
허나 지금은 곧 논검연회가 열리는 시기라 팔관은 문을 닫고 초대받은 손님만 받는 실정이었다.
창관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두 사내는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사패를 보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가까워지는 사패의 인상착의를 확인하곤 금세 경계심은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가슴팍에 호랑이가 수놓아진 붉은 무복을 입은 거구의 사내.
녹색 경장에 옥잠과 대침으로 긴 머리를 정리한 미녀.
건들거리며 걸어오는 황색 승복의 젊은 중.
마지막으로 소매에 흰 구름이 있는 푸른 무복을 입은 검수.
이와 같은 특이한 조합의 후기지수 네 명은 무림에서도 유일했으니.
“사패!”
“초대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진짜로 오는군요.”
사패가 가까이 오자 고개를 뻣뻣이 세우던 창관의 무인들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사패가 맞으신지요?”
인상착의뿐만 아니라 네 명의 기세를 전혀 읽을 수 없다는 것에서 무인들은 이 후기지수들이 사패임을 확신했다.
팽무성은 인사와 함께 사패의 배첩을 무인들에게 보여주었다.
배첩의 모서리가 금빛으로 꾸며진 것을 본 무인들은 절로 입을 열어 감탄했다.
그 모습에 남궁혁이 궁금해서 물었다.
“왜 그러시오?”
“본궁의 배첩은 금, 은, 동으로 나뉘는데 이번에 만들어진 금첩이 열 개인 것으로 알고 있소.”
거기에 옆에 있던 무인도 창을 기울이며 말을 덧붙였다.
“금첩을 받은 것도 대단하지만, 애초에 후기지수가 논검연회에 초대된 적이 없습니까?”
“생각해보니 그렇군.”
무천궁의 논검연회는 강호의 수많은 고수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이들만이 초대받았다.
무인들의 설명에 무각은 어깨를 들썩였다.
“호오, 뿌듯하구만.”
배첩을 확인한 무인들은 양옆으로 갈라져 창관의 문을 열었다.
“무천궁에 오신 것을 환영하오.”
창관의 관문을 넘어서 악록산에 들어서자 울긋불긋한 풍경이 사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악록산은 채우는 나무의 종류는 크게 세 종류였다.
은행나무. 단풍나무, 밤나무.
곳곳에서 은행잎과 단풍잎이 떨어지며 땅을 수북하게 덮고 있었고 간혹 다 익어서 떨어진 밤송이들이 굴러다녔다.
그저 악록산에 발을 들인 것만으로도 가을이 왔음을 확 느낄 수 있었다.
“어느덧 가을이구나, 가을이야.”
“남궁 형님, 또 술이 당기시나 봅니다.”
팽무성은 남궁혁의 목소리만 듣고도 어떤 마음인지 알아차렸다.
무각도 같은 마음인 듯 침을 삼켰다.
“눈이 즐거우면 코와 입도 마땅히 호강해야 하는 법이라고 부처께서 말씀하셨지.”
이에 당화련이 미심쩍은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로요?”
“그러셨을 거다. 아마도.”
“에이, 뭐야.”
악록산의 곳곳에는 작은 전각이나 비무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마음이 내키면 무공을 수련하고 비무를 펼칠 수 있도록 말이다.
간혹 뜬금없는 곳에 여러 병장기가 마련된 진열대가 있기도 했다.
사패가 산길을 지나는 와중에도 무천궁의 무인들은 수련을 하거나 비무를 벌이고 있었다.
별다른 담장이나 가림막이 없어 수련하는 장면이 그대로 노출되었으나 무천궁 무인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개중에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바둑을 두거나 검집을 베개 삼아 낮잠을 자는 이들도 보였다.
무림맹이나 사도천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들이었다.
여덟 분파의 무인들은 무천궁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분위기였다.
“저기 후기지수들이 지나가는데?”
“이 시기에는 논검연회 배첩을 받은 이들밖에 못 들어올 텐데? 설마 사패인가?”
“무복들을 보니 맞네. 어이, 사패! 무천궁에 온 것을 환영하오. 나중에 시간이 나면 한번 겨루어 봅시다!”
무천궁의 무인들은 사패를 향해 서슴없이 소리치며 인사를 했다.
포권을 하는 이도 있었고 자신이 쥐고 있던 도끼나 봉을 높이 들어 흔드는 이도 있었다.
옆쪽의 언덕에서 들려온 소리에 사패도 웃으며 포권으로 답했다.
무천궁의 무인들은 하나같이 호승심으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이에 팽무성이 재밌다는 양 입꼬리를 올렸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곳이로군.”
“보이는 시주들이 전부 싸움에 미친 것 같네.”
사패는 색색의 가을 경치와 무인들이 만들어내는 병장기의 화음을 들으며 악록산의 중앙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악록산의 중앙은 다른 곳에 비해 지대가 높았다.
마치 악록산이 작은 고원을 품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무천궁은 그 위에 터를 잡고 있었다.
고원의 여덟 방향에는 무천궁을 받드는 팔문의 전각이 팔방에 세워져 있었다.
“저게 무신전인가.”
“엄청 크네요.”
그 중앙에는 지어진 무천궁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무신전이 하늘로 솟은 거대한 지붕을 드러내며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 * *
금첩을 보여준 사패는 바로 궁주가 머무는 무신전으로 안내받았다.
무신전의 거대한 크기도 놀라웠지만 열 보를 걸을 때마다 보이는 각양각색의 병장기가 사패의 눈길을 끌었다.
병장기에 맞춰서 깎아진 고급스러운 좌대마다 범상치 않아 보이는 병장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보기만 해도 검의 예기가 보통이 아니군. 이런 명검이 이렇게 전시되어 있다니.”
“소림에도 이런 봉이 있었다면 봉술도 좀 익혔을 텐데.”
권법에만 파고들어 병장기에는 별 관심이 없는 무각이 눈을 반짝이는 것을 봐도 무신전에 있는 병장기의 수준이 어떠한지 알 수 있었다.
“이곳에 전시된 병장기 대부분이 무신께서 생전에 모으신 것입니다. 이것도 세월이 지나면서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이지요.”
사패를 안내하던 무천궁 무인은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설명해주었다.
당화련은 저 앞쪽에 시위가 풀어져 있는 붉은 대궁을 보더니 물었다.
“무신께서 궁술도 익히셨나요?”
“점창의 사일궁에 감명을 받아 몇 번 궁을 잡으신 적이 있다는 기록이 있기는 합니다.”
삼십여 개의 병장기를 구경했을 때 사패는 비로소 궁주가 머무는 집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호위 무인들의 안내에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이제 불혹(不惑 40세)을 넘은 듯 보이는 중년인이 사패를 보며 씨익 웃었다.
“어서들 오시게. 사패.”
무천궁주는 사패를 살피더니 남궁혁을 보고 흠칫거렸다.
“설마, 검호. 초월경에 올랐는가?”
무천궁주는 초절정과 초월경의 그 간격에 머물고 있었다.
그랬기에 무천궁주는 남궁혁이 초절정의 경지를 벗어났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예. 검각에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하하. 축하하네.”
남궁혁의 성취를 축하하던 무천궁주는 무각과 당화련을 보고도 놀람을 금치 못했다.
‘사패의 수준이…’
팽무성과 남궁혁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들을 상대하려면 팔문의 문주들이 직접 나서야 할 것 같았다.
도왕에 오른 팽무성에 의해 가려졌을 뿐, 사패는 무림의 어느 곳을 가도 뒤지지 않을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금첩으로 사패를 초대하기를 잘했군.’
본래 사패는 은첩으로 초대하려 했으나 사패에 팽무성이 껴있어 금첩이 배당된 것이었다.
‘잠룡들이구나.’
그런데 지금 보아하니 사패가 아니더라도 개개인의 무공이 금첩을 받기에 모자람이 전혀 없었다.
“어서들 앉게. 손님을 세워두고 있었군.”
무천궁주는 다기로 직접 끓인 차를 사패에게 대접하며 말을 이었다.
“인사가 많이 늦었지만, 지난 무신총의 일은 정말 감사하네.
사패의 도움과 양보가 아니었다면 무천궁이 오방신병을 모두 회수하기는 힘들었겠지.”
무천궁주가 가슴팍의 무복을 풀어 헤치자 황금빛의 갑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방신병 중 하나인 황룡신갑이었다.
황룡신갑은 마치 황룡의 일부를 그대로 떼어온 마냥 갑주를 이루는 황금빛 비늘은 정교함의 극치를 뽐내고 있었다.
적당한 인사가 오고 가자 팽무성은 무천궁주에게 절강에서 호남까지 오면서 품었던 질문을 꺼냈다.
“궁주, 혈천검에 대해서 아시는지요.”
“혈천검. 혈천주가 쓰던 검을 말하는 것이군.”
무천궁주는 잘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천궁주에게는 무신이 직접 기록한 일지가 대대로 전해지기에 현 무천궁주도 그 일지를 내용을 모두 읽은 지 오래되었다.
“마교가 혈천검을 찾고 있습니다. 혹 짐작되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손에 깍지를 끼고 생각을 정리하던 무천궁주가 입을 열었다.
“일단 이것부터 말해야겠군. 혈천검의 진짜 이름은 천마신검일세.”
천마(天魔).
무림에 존재하는 모든 마공을 창안했다는 마도의 시초.
후대에도 그 뒤를 따르는 많은 마인이 탄생했으나 그 누구도 감히 천마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했다.
“현재 무림에 혀를 내미는 마교가 천마의 뒤를 잇는 정종(正宗)이자 마도의 총본산인 듯 행세하지만 그렇지 않네.
그들도 마도의 한 갈래에 불과하지.”
“그렇다면 다른 마도가 또 있다는 말씀이신지요.”
눈을 부릅뜬 무각의 물음에 무천궁주는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혈천(血天), 흑야궁(黑夜宮), 마룡림(魔龍林), 역천도(逆天道).”
무천궁주가 전혀 들어보지 못한 이름을 계속 꺼내자 사패는 의문 어린 얼굴을 했다.
허나 무림의 역사에 해박한 편인 남궁혁은 얼굴을 굳혔다.
“하나같이 무림에 거대한 전쟁이나 혈겁을 일으킨 원흉들이군요.”
“이들도 그 뿌리를 거슬러 가면 천마의 마도에 속하지.”
지금까지 이어온 강호의 역사는 마도와 무림의 끝없는 혈투의 족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신록에 의하면 천마신검에는 읽을 수 없는 글자가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고 하더군.
무신께서 평생을 연구하셨지만 밝혀낸 글자는 겨우 네 개에 불과하네.”
“그 글자가 무엇입니까.”
“천마승천(天魔昇天).”
논검. (1)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