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141)
140화
논검연회가 열리는 연회장은 시끌벅적했다.
곳곳에서 논검이 벌어지고 있고 그 주위에서 몇몇 무인이 술을 곁들이며 논검을 관전하고 있었다.
직접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곤 하나 연회장의 치열한 열기는 후기지수들의 비무 대회에 비해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호오. 묵산검객이 이겼소이다.”
“십 년 만의 설욕인가. 풍연쌍봉은 며칠간 잠을 못 자겠군. 껄껄.”
여러 고수의 논검이 벌어지고 있으나 개중에 제일 사람이 많이 몰리는 것은 역시 사패의 논검이었다.
“악가창법의 여섯 번째 초식, 유량격지로 반원을 그리며 하단을 세 번 쓸어내겠네.”
“왼발로 진각을 밟아 하단의 창날을 봉쇄함과 동시에 오조수를 펼쳐 상체를 사선으로 긁어내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땀을 흘리며 고전하던 산동악가주는 팽무성의 한 수에 미간을 구겼다.
눈을 뜬 산동악가주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포권했다.
“졌네. 과연 명불허전일세. 도왕.”
“감사합니다. 선배님. 악가창법도 명불허전이었습니다.”
패배를 인정한 악가주는 팽무성과 술을 나눠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이 몇 번째야?”
“열두 번째 승리로군.”
팽무성이 따로 돌아다니지 않아도 고수들이 알아서 몰려들었다. 덕분에 팽무성은 편안히 상대를 맞이할 수 있었다.
방금의 산동악가주가 열두 번째 상대.
팽무성은 앉은 자리에서 연회장에 모인 고수들을 차례대로 격파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십 초식 만에 끝났나. 점점 늘어나는데.”
“힘들어하는 건 아니고 점점 논검에 적응하나 본데. 그냥 즐기고 있는 것 같소.”
“허허, 거참.”
고수들의 통찰이 옳았다.
팽무성은 슬슬 논검에 익숙해지자 짧게 끝내지 않고 논검의 호흡을 길게 가져가고 있었다.
‘이번 연회 동안 최대한 많은 고수를 상대해야겠다.’
자신보다 경지가 낮은 고수라 하여 배울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닌 품성, 익힌 무공, 무인으로서 살아온 삶, 고수마다 어느 하나 똑같은 것이 없으니 이 논검의 가치는 무궁무진했다.
거기에 논검의 횟수가 늘어나면서 심상에 그려지는 풍경도 더욱 정교해지고 있으니 심상 수련의 경지도 한 층 오를 수 있을 터였다.
팽무성은 이번 논검연회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 낼 생각이었다.
연달아 논검을 펼치느라 목이 말랐던 팽무성이 술잔을 기울일 때 다른 쪽에 모인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섬란권이 패했는가.”
“으음. 이게 무슨 후기지수의 실력이야. 괴물들이구만.”
무인들 틈 사이로 가부좌를 튼 채 염주를 굴리고 있는 무각의 모습이 들어왔다.
실눈을 뜬 채 팽무성과 눈이 마주친 무각은 눈을 찡긋하더니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서들 들어오시오. 이 무각의 혀는 열 명은 더 거뜬히 쓰러트릴 수 있으니. 크하. 이거 무슨 술이지? 맛이 괜찮네.”
주위에 모인 고수들에게 광범위한 도발을 날린 무각이 술병으로 나발을 불자 고수들의 이마에 일제히 힘줄이 솟았다.
“괜히 광승이라는 별호가 붙은 것이 아니었군.”
“역시 불존의 제자로다.”
이에 우락부락한 한 중년인이 양 소매를 걷고 무각의 앞을 차지했다.
“광서에서 온 파강권 철전이다. 겨루어보자, 애송이.”
이에 무각은 손등으로 입에 묻은 술을 쓱 훔치며 다시 염주를 굴렸다.
“들어오시오. 파강권 시주.”
이에 철전은 당장 무각의 턱을 쳐버리고 싶은 듯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애꿎은 무릎만 꾹꾹 누를 뿐이었다.
“후배이니 삼 초식을 양보하마.”
“내가 또 그런 것은 사양하지 않지.”
그 모습을 지켜보던 팽무성은 낮게 웃음을 흘렸다.
논검연회가 진행되니 의외로 팽무성보다는 다른 사패에게 관심이 더욱 쏠리고 있었다.
팽무성이야 십대고수에 올라 도왕에 올랐으니 논검에서 연전연승을 이어가도 다른 무림인들이 그러려니 했다.
팽무성의 무위에 놀라기보다는 정말 십대고수의 무공을 지녔는지 확인하는 느낌이었다.
그에 비하면 다른 사패는 명성이 많이 부풀려졌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팽무성과 함께 다니며 다른 사패는 주워 먹기식으로 자연스레 명성이 늘어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 논검연회로 사패에 대한 고수들의 편견이 싹 뒤집히고 있었다.
“이거 우리가 후기지수들이라고 너무 무시했나 본데.”
“하나같이 강하군. 사패라는 별호가 전혀 아깝지 않네.”
“이번에 파강권이 진다면 제가 나서보지요.”
남궁혁은 당연하게도 팽무성처럼 승리를 이어갔고 무각과 당화련도 선전을 벌이고 있었다.
무각은 주먹으로 제법 이름을 알린 권사들을 상대로도 전혀 밀리지 않았고 당화련은 무천궁의 비문주와 논검을 벌이고 있었다.
암기를 다루는 비문의 문주가 당화련에게 관심을 보이고 먼저 논검을 도전한 것만 해도 당화련의 무공을 대변해주는 것이었다.
무천궁주를 비롯한 다른 팔문주들은 당화련과 비문주의 논검을 구경하며 감탄했다.
“후기지수가 비문주를 상대로 칠십 수를 교환하는군요.”
“당장 비문에도 저런 고수가 몇 없을 것인데 놀랍군.”
“사패를 금첩으로 초대하기를 잘했습니다. 잘못했으면 본궁이 창피를 당할 뻔했습니다.”
문주들의 말을 들으며 조용히 술을 기울이던 무천궁주의 머릿속으로 전음이 울렸다.
전음을 보낸 수하의 살짝 놀란 듯한 목소리였으나 무천궁주는 이를 듣고도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전음을 들은 무천궁주가 술잔을 세 번 정도 흔들 때 새로운 인물이 연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백색 무복에 회색 장삼을 걸친 노인.
눈썹과 정리된 머리는 눈이 내린 듯 완연한 백발인데 얼굴과 목의 피부는 주름이 거의 없어 묘하게 세월을 비껴간 느낌을 주었다.
노인은 아무런 기색도 내지 않고 조용히 연회장에 들어서는 그 순간.
연회장에 모인 고수들이 일제히 고개를 틀었다.
입을 열지도 않고 기세를 흘리지도 않는데 노인의 등장을 고수들이 알아차리니 정말 기묘한 존재감이었다.
대부분의 시선이 자신에게 몰렸으나 노인은 한 손으로 뒷짐을 진 채 걸으며 연회장을 천천히 구경할 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노인의 눈이 상석에 있던 무천궁주와 부딪쳤다.
그러자 노인이 손에 들고 있던 검집을 바로잡고 검례로 먼저 인사했다.
“궁주. 처음 뵙겠소이다.”
이에 무천궁주도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으로 답했다.
“어서 오시오. 예상치도 못한 손님이라 살짝 놀랐소.”
무천궁주의 너스레에 노인은 그저 옅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저 노인을 아는 사람 있소?”
“풍기는 분위기는 마치 은퇴한 노학사와 같군. 정파의 은거고수인가?”
실제로 노인이 검을 들고 있지 않았다면 그 잔잔한 분위기와 평온한 인상을 보고 그 누구도 무인이라 생각하지 못했을 터였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들은 무천궁주는 노인에게 부탁했다.
“이곳에 모인 고수들에게 소개를 부탁드려도 되겠소?”
“객으로 왔는데 마땅히 해야 할 일이오.”
노인은 시선을 돌려 연회장에 모인 고수들을 쭉 훑어봤다.
고수들 사이에서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는 팽무성을 보곤 노인은 검집을 만지작거렸다.
“강호 동도 여러분. 처음 만나서 반갑소이다. 이런 고수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을 보니 메마른 내 가슴이 설레고 있소.”
노인은 연회장의 세 방향으로 검례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천마신교, 사세마왕의 일좌. 멸세마왕이오.”
노인, 멸세마왕의 당당한 소개에 연회장에 모인 이들은 잠시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옆 사람과 눈빛을 교환하기도 했다.
허나 그것도 찰나에 불과했다.
차앙
쿵
정파와 사파에 속한 고수들은 일제히 병장기를 뽑거나 내공을 풀어내며 멸세마왕을 노려봤다.
“마왕이라면 마교 최고수의 별호가 아닌가!”
“이리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다니.”
“자신감이 대단하군.”
고수들의 기세가 그대로 멸세마왕에게 쏟아지려는 찰나, 무천궁주의 전신에서 대해와 같은 방대한 기세가 넘쳐 흘렸다.
그렇게 장내를 단번에 장악한 무천궁주의 기세는 고수들이 뿜어내는 기세를 일제히 막아내고 있었다.
“멈추시오.”
연회장에 모인 고수들의 기세를 홀로 이렇게 막아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를 무천궁주는 가볍게 해내고 있었다.
“다들 이 자리에서 논검연회가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잊은 것이오?”
“하지만 궁주!”
“정사를 나누지 않는 자리에서 마도를 따로 구분하는 것도 이상한 일 아니겠소.”
“크흠.”
무천궁주는 연회장의 고수들을 진정시키고는 이번에는 멸세마왕을 바라봤다.
“마왕. 논검연회를 즐기러 온 것이라면 환영할 일이나 피를 볼 생각이라면 무천궁 전체를 상대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오.”
“노부가 그렇게 상식이 없는 인간이 아니오. 당연히 논검연회의 규칙을 따라야겠지.
노부가 무천궁 안에 있는 한 검을 뽑을 일은 없을 것이오.”
“좋소이다.”
무천궁주가 고개를 끄덕일 때 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대현 진인이 입을 열었다.
“멸세마왕. 단순히 논검연회를 즐기자고 몸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닌 듯한데 본도가 억측하고 있는 것이오?”
이에 멸세마왕은 나지막이 고개를 까딱이더니 다시 무천궁주를 쳐다봤다.
“궁주. 이번 논검연회는 무기 창고를 개방했다고 하던데 맞소이까.”
“맞소.”
“그럼 한 가지 묻겠소. 그 무기 창고에 혈천검이 있소이까?”
멸세마왕이 혈천검을 언급하자 조용히 이를 지켜보던 사패의 얼굴이 굳어졌고 무천궁주도 눈을 반짝였다.
“없소.”
무천궁주는 잠시의 지체도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
“음.”
그러자 멸세마왕도 헛웃음을 흘리며 침음을 흘릴 뿐이었다.
“못 믿겠다면 직접 확인해 보는 것도 좋소. 물론 논검연회에서 도전하는 고수들을 다 꺾어야 하겠지만.”
그러자 잔잔한 느낌을 흘리던 멸세마왕의 눈이 가늘어지며 검과 같은 예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 날카로운 눈빛으로 무천궁주를 찌를 듯 쳐다보자 무천궁주도 이를 피하지 않았다.
잠시 무천궁주와 눈싸움을 벌이던 멸세마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없다니 아쉽군. 허나 이대로 헛걸음을 하기는 아쉬우니 논검연회를 즐기다가 조용히 떠나도록 하겠소.”
“마음 가는 대로 하시오.”
무천궁주의 중재로 논검연회는 다시 시작되었지만 가라앉은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멸세마왕은 홀로 상에 앉아 술과 음식을 몇 점 집어먹으며 고수들이 논검하는 것을 구경했다.
그러던 도중에 멸세마왕도 걸음을 옮겼으니 바로 팽무성의 앞이었다.
팽무성과 논검을 벌이던 상대가 패배를 인정하고 일어나자 멸세마왕은 기다렸다는 듯 그 자리에 앉았다.
“만나서 반갑네. 도왕.”
“팽무성이오.”
멸세마왕과 마주한 팽무성은 자신의 감이 위험을 감지하고 있음을 느꼈다.
‘이 노인이 멸세마왕.’
전생에서 멸세마왕의 검에 죽은 십대고수가 무려 세 명이었다. 그중에는 십대고수 중 최강이라 불리는 검선도 있었다.
비록 검선에 의해 팔 하나를 잃기는 했지만 결국 멸세마왕이 승리했었다.
“요새 본교에서 제일 많이 들리는 이름이 자네, 혹은 사패의 이름이라네. 직접 보니 그럴 만하군.”
팽무성이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자 멸세마왕은 흘흘 웃더니 서서히 웃음을 지워내기 시작했다.
“한 번 논검으로 겨루어 보세. 도왕.”
“좋소.”
팽무성과 멸세마왕의 기세가 동시에 고개를 내밀며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논검. (3)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