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142)
141화
멸세마왕은 손에 들고 있던 장검을 가부좌를 틀고 있는 자신의 다리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두 손을 검집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곤 본격적으로 기세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흠.’
팽무성을 서서히 삼키려 드는 멸세마왕의 기세. 의외로 마기 특유의 이질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풍기는 기세만 보자면 마공이 아니라 정종 무공을 익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역시 절대경을 엿보고 있구나.’
아득하면서도 팽배한 느낌을 들게 하는 멸세마왕의 기세에 팽무성은 강풍이 몰아치는 밤바다를 마주한 느낌을 들었다.
팽무성은 멸세마왕이 마(魔)를 넘어서는 길의 중간에 섰음을 간파했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역천의 행위를 마(魔)라고 불렀으나, 결국 마(魔) 또한 자연의 굴레 안에 있었다.
태극이 음양의 조화로 이루어지듯 자연도 순천과 역천이 맞물리고 있었다.
그 어떤 길을 걸어도 그 끝은 자연으로 향하듯이.
‘마도의 탈마(脫魔)가 이런 의미였나.’
역설적이게도 팽무성은 멸세마왕의 마기를 접하면서 자연에 대한 묘한 화두를 얻었다.
이 화두를 어떤 깨달음을 어떻게 발전시킬지는 팽무성의 몫이었다.
팽무성의 미약하지만 확실한 변화를 멸세마왕은 바로 눈치챘다.
팽무성이 기세를 통해 멸세마왕을 엿보듯 멸세마왕도 팽무성을 탐색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본교를 막아설 역량이 있는 사내로다.’
일렁이는 흑회색의 급류를 막아내는 붉은 뇌전.
쩌저적
두 기세의 충돌에 팽무성과 멸세마왕이 앉아 있는 주변에 실금이 그어지고 파편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술잔에 담겨 있던 술이 방울방울 떠오르는 기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에 구경하던 무인들도 십 보 뒤로 물러나면서 내공을 끌어올려 몸을 보호했다.
단순히 앉아서 기세를 끌어올리는 것만으로 이런 현상을 일으키니 이를 관전하던 고수들은 그 격차를 여실히 실감했다.
같은 공간에 있으나 마치 보이지 않은 경계 밖에 있는 느낌이었다.
‘이것이 초월경의 경지에 오른 고수의 힘인가.’
‘마치 귀존과 창성의 논검을 보는 듯하군.’
평소였다면 저들끼리 평을 내놓으며 떠들었을 테지만, 이 순간만큼은 조용히 논검의 시작을 기다렸다.
“먼저 시작하시게.”
“산왕군림보로 전진하며 상단을 수직으로 베어내겠소.”
논검을 듣고 있는 이들은 팽무성이 탐색전을 벌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팽무성의 기세를 면밀하게 살피고 있는 멸세마왕의 생각은 달랐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려는가.’
멸세마왕의 눈매가 기울어졌다.
“도를 좌측으로 흘려내고 귀연보(鬼沿步)를 밟으며 좌측 어깨의 중부혈을 찌르겠네.”
멸세마왕의 말을 들으니 일련의 움직임을 마치 한 동작처럼 동시에 해내는 그림이 그려졌다.
적아도를 옆으로 쳐냄과 동시에 찔러오는 멸세마왕의 검.
그저 머릿속으로 그려내는 심상의 풍경이었으나 팽무성은 머리털이 곤두섬을 느꼈다.
먼저 선수를 친 것은 팽무성인데 도리어 공격을 받는 것이었다.
“산왕군림보로 일 보 앞으로 나서며 전박자여의 초식으로 검을 밀어내겠소.”
멸세마왕이 공방일체의 한 수를 보여주니 팽무성도 똑같은 수로 대응했다.
적아도가 양쪽을 연달아 두들기며 검을 튕겨내는 장면이 멸세마왕의 머릿속에 펼쳐졌다.
멸세마왕은 팽무성이 뒤로 물러나며 수비할 것이라 예상했다.
무공의 수위를 떠나서 방금의 일격은 거리를 벌려 막아내며 반격을 노리는 것이 제일 좋은 수였다.
그런데 팽무성은 도리어 앞으로 나서며 강수로 대응했다.
‘무모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힘을 정확히 알고 내 검을 밀어낼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이야.’
멸세마왕은 방금의 한 수로 팽무성의 성정과 평소에 어떤 식으로 싸우는지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귀곡마검의 삼 초식 흑요란란(黑嶢亂蘭)으로 자네의 전방과 좌우, 삼면을 뒤덮겠네.”
멸세마왕의 기세가 일렁이더니 무릎 위에 올려진 멸세마왕의 검이 귀곡성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악
검마군의 검이 흘리는 귀곡성보다 더욱 처절했고 음울했다.
그 귀곡성을 들으니 논검을 지켜보던 무인들은 괜히 마음이 울적해지는 것 같았다.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울음이구나. 모두 내공을 더욱 두텁게 끌어올리시게.”
미간을 찌푸린 대현 진인의 말에 귀곡성에 넋을 놓고 있던 몇몇이 정신을 차리곤 급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검을 잡지도 않았는데 검명이 터지다니.”
“아마 저 검도 보통 검이 아닐 테지.”
팽무성도 심상을 흔드는 귀곡성에 눈을 미세하게 찌푸리곤 혼원벽력신공의 운용에 박차를 가했다.
귀곡성 다음에는 팽무성의 삼면을 둘러싸고 낭창낭창 쏟아지는 검은 검기들이었다.
심상에 그려진 흑요란란의 초식은 마치 검은 난초가 어지럽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이에 팽무성은 좌우 사선으로 적아도를 빠르게 그어냈다.
“오호단문도의 사각혈뢰를 펼쳐 흑요란란의 정면을 뚫어내고 그 틈으로 백호도간을 펼치겠소.”
“귀곡마검의 비야귀(飛夜鬼)로 응수하지.”
그 순간 귀곡성이 뚝 그쳤다.
비야귀는 발검을 통해 펼치는 초식이었다.
실제로 발검을 펼치는 것도 아닌데 멸세마왕의 기세에 반응한 검은 울음을 그쳤다.
팽무성이 사각혈뢰로 흑요란란을 뚫어냈을 때 멸세마왕은 검을 검집에 집어넣은 상황.
끼아아악
다시 검신이 드러나는 순간, 멸세마왕의 검이 우렁찬 귀곡성을 내뱉었다.
한 줄기 번개가 되어 백호도간을 펼쳐내는 팽무성과 발검을 통해 비야귀를 선보이는 멸세마왕.
붉은 직선과 불규칙하게 구겨진 검은 선이 겹쳐졌다.
명상 중인 두 고수의 사이로 팽팽한 힘싸움을 벌이던 양측의 기세가 일순 크게 들석였다.
눈을 감고 있는 팽무성의 오른쪽 어깨가 움찔거렸다.
백호도간과 비야귀의 격돌에 오른쪽 어깨가 베인 것이었다.
반면 멸세마왕은 가슴의 옷깃이 손가락 두 마디 정도 갈라졌을 뿐이었다.
멸세마왕도 이와 같은 장면을 보곤 눈썹이 서서히 올라갔다.
‘도왕의 도가 설마 나에게 닿을 줄이야.’
멸세마왕의 기세에 살기가 묻어나기 시작했다. 이러니 흑회색의 기세가 더욱 요동치며 팽무성의 기세를 삼키려 들었다.
그럴수록 붉은 뇌전은 더욱 밝게 점멸하며 마기를 밀어내려 애썼다.
멸세마왕은 눈은 감은 채 함박웃음을 지었다. 지금까지 아주 희미한 감정을 내비쳤던 멸세마왕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흥이 나는군. 본격적으로 해보지.
귀곡마검의 사혼낙귀(死魂落鬼)로 상단에서 하단까지 수직으로 길게 베겠네.
그리고 좌수로 검결지를 짚어 회원귀래(回院鬼來)를 펼쳐 천돌혈, 선기혈, 중부혈을 노리겠네.”
속사처럼 쏟아지는 멸세마왕의 목소리를 들으며 팽무성은 멸세마왕이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음을 느꼈다.
전생에 멸세마왕은 오른손으로 검을 휘두르는 동시에 좌수의 검결지로 다른 검초를 동시에 펼쳐내는 것이 장기라고 들은 적이 있었다.
심상 속에서 펼쳐지는 가상의 공격임에도 귀곡마검의 각기 다른 검초가 동시에 날아들었다.
단순히 두 개의 초식을 따로 펼친 것이 아니라 두 초식이 맞물리며 상승효과를 일으키고 있었다.
‘이것에 사세마왕 중 최강. 멸세마왕의 검이구나.’
전생의 수준이었다면 멸세마왕의 본심을 끌어내지도 못하고 논검에서 패배했을 터.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전생의 무위는 훌훌 떨쳐버린 지 오래였다. 팽무성은 멸세마왕의 검초에서 아득함을 느끼면서도 서슴없이 적아도를 내밀었다.
“오호단문도의 오호포망을 펼쳐 두 초식을 막아내겠소. 거기에 오련만전을 펼쳐 도망(刀網)에 묶인 검초를 터트릴 것이오.”
이를 시작으로 멸세마왕과 팽무성이 본격적으로 수를 교환하기 시작했다.
논검이 진행될수록 팽무성의 이마에는 땀이 맺히기 시작했고 멸세마왕은 간혹 팽무성의 수에 짧지만, 고민에 잠기기도 했다.
“으음. 어렵군.”
“이제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따라가지도 못하겠소.”
초월경 고수들의 논검은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기연과 기회나 다름없었다.
논검이 시작될 때부터 다른 이들도 나름대로 이 두 고수의 대결을 따라가려고 했다.
그러나 논검이 진행되며 하나둘 나가떨어지더니 지금은 남궁혁과 무천궁주를 비롯한 아주 극소수만이 간신히 따라오는 중이었다.
꺄아아악
빠지직
팽무성과 멸세마왕의 논검이 어느새 이백여 합을 향하고 있었다.
두 고수의 기세는 어느새 극성으로 개방되었다.
이를 감당하지 못한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더욱 뒤로 물러나 귀를 기울이거나 관전을 포기해야만 했다.
“귀곡마검의 흑귀야행을 펼치겠네.”
“오호단문도의 벽력일섬을 펼치겠소.”
쩌엉
그 순간, 끊임없이 맞붙던 두 고수의 기세가 힘차게 격돌하더니 대기를 찢어내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에 거센 바람이 쏟아져 술상이 뒤집히고 관전하던 무림인들의 의복이 거세게 펄럭였다.
이 두 마디를 끝으로 두 고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 장내를 뒤덮었던 기세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먼저 눈을 뜬 것은 팽무성이었다.
전신이 땀으로 축 젖은 팽무성의 입술 사이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멸세마왕이 마지막으로 펼쳤던 흑귀야행에 팽무성은 오른쪽 가슴과 옆구리를 꿰뚫렸다.
멸세마왕과의 논검이 격해지며 결국 마지막 격돌에서 내상을 입은 것이었다.
‘논검이니 내상으로 끝난 건가. 실제였다면 중상이었나.’
팽무성이 손등으로 피를 훔칠 때 멸세마왕도 눈을 뜨고 있었다.
멸세마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팽무성을 지긋이 바라봤다.
“왜 그렇게 보시오.”
“처음 논검을 벌일 때만 해도 자네를 다섯, 여섯 수 차이 정도로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네.”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여는 멸세마왕의 눈이 점점 가늘어졌다.
“그런데 자네는 논검을 벌이면서도 그 차이를 한 수씩 좁혀내더군.
수준이 좁혀지지 않았다면 마지막에 자네는 모습을 온몸이 찢겼을 테지.”
허나 이리 말하는 멸세마왕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그 이유는 마지막에 벽력일섬으로 자신의 허리춤을 베어낸 탓이었다.
멸세마왕조차도 아슬아슬함을 느낄 정도.
팽무성이 멸세마왕의 예상을 깨고 겨우 한 수 차이로 논검을 마무리 지은 것이었다.
이에 멸세마왕은 살짝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팽무성의 무재에 경이로워했다.
‘타고났구나. 마치 소교주를 보는 듯하군.’
처음에는 흥미였으나 논검이 끝나자 멸세마왕은 팽무성을 위험 요소로 보고 있었다.
팽무성은 묵묵히 자신을 쳐다보는 멸세마왕을 보며 실소를 흘렸다.
“멸세마왕. 논검은 끝났는데 살기는 그대로군. 마음이 바뀐 거요?”
“후후.”
멸세마왕은 무릎 위에 놓인 검집을 쓰다듬었다. 팽무성의 말이 맞았다.
멸세마왕은 이번 논검으로 팽무성을 인정했다.
나이를 떠나서, 정마를 떠나서 마땅히 자신과 나란히 설 만한 자격이 있는 무인이었다.
그렇기에 멸세마왕은 팽무성을 죽이고자 하는 살심을 머금었다.
멸세마왕이 검병을 만지작거리자 검신이 검집에서 빠져나와 모습을 보이기를 반복했다.
이처럼 오싹한 살기도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니 주위에 모인 고수들도 덩달아 긴장했다.
멸세마왕이 초월경의 고수라고 가만히 구경할 생각이 없었다. 만약 검을 뽑는다면 다른 고수들도 일제히 덤벼들 셈이었다.
철컹
결정을 내린 듯 멸세마왕은 검을 내려놓았다.
“내가 한 말이 있으니 지켜야겠지. 오늘은 그냥 물러나겠네.”
그러자 사파의 한 고수가 멸세마왕을 도발했다.
“이대로 싸운다면 당신도 무사할 수 없으니 물러나는 것이 아니오?”
“후후. 그대들이 허락만 해준다면 검을 뽑도록 하지. 물론 나는 모두 도륙하고 빠져나올 자신이 있네.”
멸세마왕의 자신감에 괜히 시비를 걸었던 사파의 고수는 꼬리를 말았다.
멸세마왕은 흐트러진 무복을 정돈하더니 팽무성을 바라봤다.
“조만간 다시 만날 걸세. 더욱 강해져 있기를 바라지. 그 정도 실력으로 본교를 막기에는 살짝 부족한 면이 있군.”
이는 팽무성도 잘 알고 있었다.
사세마왕뿐만 아니라 교주도 있었고 천지마신도 있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팽무성은 한 번도 자신의 무위에 만족한 적이 없었다.
그저 앞으로 계속 전진할 뿐이었다.
“바라던 바요.”
멸세마왕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처럼 조용히, 그리고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다.
멸세마왕이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노려보던 팽무성은 곧바로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멸세마왕과의 논검을 복기하며 다시 멸세마왕과 겨루어 볼 심산이었다.
팽무성이 조용히 명상에 빠지자 사패가 걸어 나와 호법을 서기 시작했다.
이를 본 무림인들은 조용히 하나둘 숙소로 흩어졌다. 방금의 논검으로 관전하던 이들도 모두 진이 빠진 탓이었다.
* * *
검총.
검의 무덤.
수많은 검이 여기저기 꽂혀 있었고 그 가운데 홀로 영롱한 어둠을 뱉어내는 검 한 자루가 있었다.
검총의 구석에 자신의 애검을 손질하고 있던 검선은 그 검을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혈천검, 아니 천마신검을 검총에 봉인하고 검선은 검총 밖으로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이목은 열어놓았는데 검각에서 천마신검을 찾았다는 마교의 소식도 알고 있었다.
마교의 그물이 점점 좁혀오고 있음을 검선은 느끼고 있었다.
‘만약 마교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검총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 검만은 옮겨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검선은 홀로 고민하며 묵묵히 검을 손질했다.
천라지망. (1)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