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144)
143화
“후우.”
한껏 피로감이 짙은 한숨 소리.
양쪽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환마군은 손을 내밀어 붓을 들었다.
넓은 책상에는 중원 전도가 펼쳐져 있었는데 중원 곳곳에 예(乂) 자로 표시된 곳이 많았다.
그중 유일하게 작은 원이 그려진 곳이 있는데 바로 귀주성의 여천고원이었다.
환마군은 원이 그려진 여천고원의 주변으로 큰 원을 그렸다.
“이제야 겨우 시작할 수 있겠어.”
책장에 기대고 있던 천마휘는 피로를 느끼는 환마군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고생 많았다. 환마군.”
“소교주, 중원 전역을 돌아다니게 해놓고 그게 다입니까?”
빼빼 마른 환마군이 얼굴을 굳힌 채 말하자 마치 해골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해해라. 본교에서 진법과 기관에 대해 제일 해박한 것이 그대니까.”
환술, 진법, 기관에 특화된 환마종.
그런 환마종에서도 진법과 기관에 대해서는 환마군을 따를 자가 없었다.
“내가 보물찾기나 하려고 무림에 나온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천마휘가 무림에 처음으로 나설 때 마군들에게 자율적인 행동을 맡겼지만 환마군은 예외였다.
천마휘는 환마군에게 천마신검을 찾는 임무를 맡겼다.
천마휘는 천마신검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교주가 직접 명령을 내린 탓이었다.
삼백 년 전 무림맹에 들어간 이후로 행방이 묘연해진 천마신검을 찾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천라지망은 어찌 되었습니까.”
“지옥련, 만살회, 가마단을 동원했다.”
세 병력 모두 마교의 무력대보다 중원에서 움직이기 쉬웠고 피해가 커져도 상관이 없어서 부담 없이 동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옥련과 만살회는 이번 일에 동원하기 조금 아깝지 않습니까.”
살수들을 각기 사도천과 무림맹에 보내서 무분별한 살행을 진행해도 큰 피해를 노릴 수 있을 터였다.
실제로 천마휘는 이와 같은 계획을 구상했었다. 허나 천마휘는 환마군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천살택문이 음지에서 이 두 곳을 물어뜯고 있다. 그 역량이 마이각의 예측 이상이더군. 점점 피해가 누적되느니 지금 써버리는 것이 낫지. 애초에 특급살수들은 따로 빼놓았으니 상관없다.”
천마휘의 설명에 환마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검선, 그 노인네가 그렇게 빠르다고 하니 천라지망을 펼친다고 해도 불안하군요.”
“상관없다. 이것도 만일을 위한 대비책일 뿐이니.”
환마군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눈을 감은 채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일에 특별히 종주께서 두 분이나 참여하신다 들었습니다. 전쟁은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하하. 교주께서 소교주를 이제 못 믿나 봅니다?”
환마군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고 천마휘도 눈에 호선을 그렸다.
“오히려 나에게는 좋은 기회다. 종주들도 슬슬 정해야지.”
천마휘의 눈빛이 조금씩 변하는 것을 보고 환마군은 천마휘가 어찌 행동할지 예상이 갔다.
환마군은 천마휘 옆에 있는 책장에서 서책을 몇 권씩 꺼내 들며 책상 위에 올려놨다.
“이제 자리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검총에 펼쳐진 진법만 해도 세 개입니다. 저도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부탁하지.”
검은 학사의를 입은 환마군이 옆구리에 서책을 끼고 있으니 영락없는 서생의 모습이었다.
이에 특유의 기묘한 웃음을 짓던 천마휘는 조용히 서재를 빠져나갔다.
* * *
귀주성 태강(台江).
태강에 들어선 사패가 묵을 객잔을 찾고 있을 때 사내아이가 서슴없이 다가왔다.
사내아이는 팽무성의 눈과 무복에 수놓아진 호랑이를 번갈아 보더니 물었다.
“형이 소왕이에요?”
소왕. 천살택문에서만 사용하는 별칭.
팽무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요.”
사내아이는 접힌 쪽지를 주곤 곧바로 등을 돌려 인파 사이로 사라졌다.
팽무성은 내용을 확인하곤 쪽지를 구겨서 삼매진화로 재로 만들었다.
“오늘 우리가 묵을 객잔은 정해진 것 같네.”
팽무성은 사패를 이끌고 쪽지에 적힌 이름을 찾았다.
“이곳이로군.”
팽무성이 걸음을 멈춘 곳은 태강에서 제일 고급스러운 객잔이었다.
객잔으로 들어서자 입구 앞의 빈 탁자에 앉아서 쉬고 있던 점소이는 사패를 빠르게 훑었다.
“아이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지요.”
객잔의 일 층은 여느 객잔과 다를 바 없었지만, 이 층부터는 여러 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곳곳에서 여인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객잔과 기루를 같이 운영하는 것으로 보였다.
점소이는 사패를 삼 층으로 데려갔는데 삼층도 똑같이 방이 나뉘어 있었지만 조용했다.
“들어가시지요.”
제일 안쪽의 방으로 안내한 점소이는 허리를 깊이 숙이고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팽무성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 안에는 세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빼어난 미모를 지닌 여인과 반백의 중년인, 그리고 앳된 얼굴의 청년.
세 사람은 팽무성이 들어서자 바로 일어나서 예를 갖추었다. 거기서 청년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형님.”
이에 팽무성도 입꼬리를 올리며 반가운 티를 냈다.
“네가 왔구나. 진영.”
별실을 잡고 사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천살택문의 소문주 진영을 비롯한 십영의 일원들이었다.
진영을 선두로 양쪽의 여인과 중년인도 차례로 인사를 올렸다.
“처음 뵙네요. 소왕. 훈영(薰影)이라 해요.”
“암영(暗影)이라 합니다. 소왕.”
이에 사패도 각자 포권을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은 팽무성은 앞에 앉은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십영 중 셋이나 올 줄은 몰랐다.”
“본래는 살왕께서 직접 오시려고 했는데 계획이 바뀌었습니다.”
지옥련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도중에 우연히 지옥련의 본타를 찾아낸 것이었다.
지옥련의 본타는 석 달마다 바뀌기에 추적하기가 힘들었다.
천살택문도 몇 번 본타를 찾아냈지만 시기를 놓쳐 이미 비어 버린 곳을 찾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지옥련의 살수도 귀주로 많이 빠진 상황이라 이번 기회에 지옥련을 정리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조부님도 바삐 움직이고 계시군.”
팽무성과 약속한 대로 살왕과 천살택문은 지옥련과 만살회를 상대로 음지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지옥련과 만살회의 움직임에 천살택문이 빠르게 반응한 것도 이 덕분이었다.
“음식을 안으로 들이겠습니다.”
밖에서 점소이의 목소리가 들리자 진영이 사패를 보며 웃었다.
“사패께서 미식을 즐긴다고 하셔서 준비했습니다. 이 객잔이 주변에서 제일 실력이 뛰어나다 합니다.”
진영의 말에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패의 얼굴이 밝아졌다.
“음. 근래에 먹는 것이 부실했으니 싸우기 전에 배를 든든히 채워야겠지.”
남궁혁이 만족스레 턱수염을 만졌고 상에 올라오는 음식을 보던 무각의 눈은 빠르게 움직이며 무언가를 찾았다.
“크으, 좋구만. 진영 시주, 혹시 술도 있는지요.”
“물론입니다. 무각 스님. 드시면서 얘기하시죠.”
무각은 술의 향과 색을 맡아보더니 환호성을 질렀다.
“으하핫! 모대주(茅臺酒)!”
술을 먼저 찾는 무각을 처음 본 훈영과 암영은 이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방의 문이 열리고 점소이들이 차례대로 음식을 상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당면에 양고기가 듬뿍 들어간 양육분(羊肉粉)을 시작으로 여러 야채를 전병에 싸 먹는 사왜왜(絲娃娃)까지.
귀주 요리가 차례대로 나오고 있었다.
귀주는 사천과 인접하여 고추를 이용한 매운 요리가 많았는데 사천과 비슷한 매운 향을 맡은 당화련이 특히 좋아했다.
“역시 귀주의 요리라서 그런가, 매운맛에 신맛이 더해졌는데 잘 어울리는 것 같네요.”
팽무성은 어떤 시뻘건 국물을 조심스레 떠먹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음. 뭔가 사천의 매운맛이랑 미묘한 차이가 있긴 하네.”
“사천요리의 특징이 마라(麻辣 전율스런 매운맛), 귀주요리의 특징이 초랄(酸辣 시고 매운맛)이니까요.”
팽무성 일행은 식사하면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진영은 계란이 섞인 감자볶음을 집으며 말했다.
“살수들이 흩어져서 이동하고 있지만 목적지로 추정되는 곳이 있습니다. 여천고원이라는 곳입니다.”
“여천고원이라… 어떤 곳이지?”
“귀주성의 동부는 맑은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우기가 길고 흐린 날이 대부분입니다.
개중에도 여천고원 일대는 그런 기후가 더욱 두드러진다고 합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도 비가 올 확률이 높겠군.”
진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거기에 주변의 숲이 워낙 깊고 안개가 자욱해서 들어가면 빠져나오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여천고원에 어지간하면 접근을 하지 않습니다.”
“진법이 있을 수도 있겠군.”
남궁혁은 양고기를 질겅거리며 지나가듯 말했다. 이에 팽무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를 숨기기는 딱 좋은 장소 같습니다.”
“소왕.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상대의 머릿수가 많다지만 모른 척할 수는 없지. 여천고원으로 가야겠다. 지옥련과 만살회 따위 그대로 밀어버리면 그만이지.”
단호한 팽무성의 대답에 진영도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저희 세 명을 비롯해서 천살택문의 호남지부가 뒤에서 지원하겠습니다.”
그렇게 여천고원행이 결정되자 연두부 면을 흡입하던 당화련이 물었다.
“그런데 아무리 은밀하게 움직인다 해도 귀주에서 사도천의 이목을 피하기는 어려울 텐데 사도천이 어째 조용하네요?”
귀주성은 사도천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사도천의 분타가 조용한 것이 이상했다.
“귀주성에 있는 사도천의 분타는 체면치레 정도입니다. 본래 귀존이 귀주에 자리 잡은 덕에 많은 무인을 배치할 필요가 없었지요.”
귀존이라는 별호에 팽무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런데 소문에는 귀존이 실종되었고 생사를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사도천의 귀주 분타는 귀존을 찾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합니다.”
본래 연락이 뜸한 귀존이었기에 귀주 분타에서도 이를 뒤늦게 알게 되었다.
설마 귀존 같은 절대고수에게 무슨 일이 생겼으리라 생각 못 한 것이었다.
“사도천은 아직 모르고 있었나. 귀존은 죽었다. 광마군이라는 놈한테서 들은 것이니 확실할 거다.”
이에 차분한 얼굴을 하던 진영이 처음으로 놀란 표정을 드러냈다.
진영은 젓가락을 툭 떨어트리며 말했다.
“정말 놀랐습니다. 귀존을 이리 조용히 처리하다니.”
팽무성은 어쩌면 마교에서 귀존을 처리한 것이 이번 일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여천고원에 도착해야겠군.”
“이곳에서 나흘 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내일 이른 아침에 바로 출발하시죠.”
“그렇게 하자.”
* * *
사패는 호남성에서 귀주성까지 이동했을 때처럼 직선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팽무성의 예상대로 굵은 빗줄기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거기에 귀주성은 지형의 대부분이 산악지대라 더욱 힘이 들었지만 사패의 속도를 늦출 수는 없었다.
여천고원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던 사패의 발걸음이 멈췄는데 이는 지친 탓이 아니었다.
사패는 조용히 눈 앞에 펼쳐진 전경을 바라봤다.
여천고원 일대에 넓게 포진된 병력.
여천고원의 주변을 둘러싼 숲 쪽에는 가장 빽빽하게 인의 장벽이 만들어져 있었고 그 뒤로 방향마다 일단의 무리가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
언뜻 보면 무분별하게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병법에 기초하여 철저히 계획적으로 배치된 것이었다.
이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도중에 남궁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천라지망인가.”
목표물이 발견될 경우 고원의 주위로 넓게 포진된 병력들은 곧장 진을 전개하며 포위망을 구축할 것이 분명했다.
“네 겹, 잘하면 다섯 겹의 그물을 만들 수도 있겠습니다.”
“보아하니 숲 안쪽과 고원에도 병력이 있는 것 같은데요.”
“아미타불. 시간이 별로 없는 것 같긴 하군.”
사패는 고원 주변의 지형과 병력 배치를 눈에 담고는 각자 가부좌를 틀었다.
운기까지 마치고 단전에 내공을 가득 채운 사패는 다시 일어나 나란히 섰다.
“가볼까.”
팽무성이 운을 떼자 남궁혁이 쓴웃음을 흘렸다.
“이번에도 고생 좀 하겠구나.”
“암기랑 독 배분을 잘해야겠네요.”
“아미타불, 가자고.”
사패는 빗줄기를 헤치며 망설임 없이 여천고원을 향해 몸을 날렸다.
천라지망. (3)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