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145)
144화
투투툭
주적주적 내리는 거센 빗줄기.
운기를 하며 순간 빳빳하게 마른 무복이었지만 빗줄기에 그새 그 색이 다시 짙어지고 있었다.
끝없이 내리는 비로 펼쳐진 대지는 질척거리는 진흙탕이 된 지 오래였다.
일정 경지에 오른 무림인들도 제 속도를 내기 힘든 환경.
그럼에도 사패는 마치 마른 땅을 거니는 것처럼 가벼운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패가 가까이 접근하고 있음에도 아직 가마단의 무인들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폭우가 쏟아져 시야와 청각이 제약을 받는 상황에 비조처럼 날아드는 사패를 가마단이 사전에 식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솨악
빗물이 땅을 두들기는 소리 속에서 무언가 예리한 파공음을 들은 가마단 무인이 고개를 돌릴 때.
수평으로 길게 그어진 반월형의 도풍이 무인의 목을 가르고 지나갔다.
이를 시작으로 도풍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연달아 새로운 피가 솟구쳤다.
이렇게 수십의 무인이 일거에 의식조차 못 한 채 숨이 끊어졌다.
“뭐야!”
“동쪽이다!”
날아드는 거대한 원형의 권풍이 공성추 마냥 급히 등을 돌리는 가마단의 무인들을 날려버렸고.
전각의 대들보처럼 덩치를 키운 푸른 검기가 진흙탕에 굵고 긴 흔적을 남기며 지나갔다.
남궁혁과 무각의 요란한 공격 뒤에서 녹색의 지풍이 빗줄기와 함께 꽂혀 들었다.
이에 후열에 있던 가마단 무인들이 급히 검풍을 날렸지만 팽무성은 소매를 펄럭이는 것으로 가볍게 검풍을 쳐냈다.
직접 몸으로 막아서려는 이도 있었으나 사패의 돌파력을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는 사패.
가마단 무인은 긴박한 마음에 신호탄을 터트리려 했지만, 폭우가 쏟아지는 것을 깨닫고 눈을 파르르 떨었다.
그 사이 붉은빛이 번쩍이더니 신호탄과 함께 가마단 무인의 목젖이 깔끔하게 갈라졌다.
사패와 조우한 가마단 한 조가 궤멸할 즈음 다른 곳에서도 이변을 눈치챘다.
하지만 다른 곳에 포진된 병력은 자리에서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사패의 진로에서 벗어나려는 무인들의 움직임이 남궁혁의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를 막으려 하지 않는구나.”
남궁혁의 말에 팽무성이 빗물에 축 늘어진 앞머리를 넘기며 말했다.
“어쩌면 밖이 아니라 안쪽에서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한 병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미타불, 함정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것 같군.”
“이러니까 더 힘들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주위를 둘러싼 병력의 움직임에서 이상함을 느꼈지만 사패는 이동을 멈추지 않았다.
천천히 상황을 살피며 움직일 상황이 아니라고 직감한 탓이었다.
사패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알려주듯이 곳곳에 배치된 환마종의 마인은 습격 소식을 듣고도 당황하지 않았다.
“사패인가. 환마군의 예상이 맞으셨군.”
“이대로 고원으로 보내도 되겠습니까?”
“길을 열어라. 혹여나 외부에서 간섭이 들어온다면 막지 말라는 명령이셨다. 진법의 구축에 집중해라.”
여천고원을 둘러싼 병력은 외부의 공격을 막는 방진이 아니라 그 누구도 빠져나오지 못할 개미지옥이니 말이다.
“사패에게 궤멸한 것이 가마단 이십일 조였나. 배치를 살짝 바꿔야겠군.”
* * *
여천고원을 둘러싼 숲속.
폭우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안개는 여전히 짙어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다.
숲의 한구석에는 일단의 무리가 모여있었다.
환마군은 구석에 쪼그려 앉아 지팡이로 무언가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는데 환마종의 마인들은 환마군의 명령에 따라 오고 가기를 반복했다.
“환마군이 직접 나서는데 이리 시간이 오래 걸리다니, 확실히 뭐가 있긴 있는 모양이군.”
나무 아래에서 빗방울을 피하던 풍마종주가 하품을 하며 중얼거리자 가부좌를 틀고 있던 독마종주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그래도 주변의 기가 흔들리는 것을 보니 곧 해제될 것 같군.”
“그러게 다른 곳에서 쉬고 있지 그랬나, 종주들.”
괴세마왕이 무뚝뚝한 얼굴로 입을 열 때 풍마종주가 어깨의 물기를 내공으로 날려버렸다.
“그럴 수야 없지. 교주께서 직접 하명하신 일인데.”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괴세마왕이 말하자 독마종주가 슬쩍 물었다.
“검선은 어찌 생각하나? 십대고수 중 제일 강하다고 평가받고 있지 않나.”
“주먹을 뻗어봐야 알겠지. 거기에 내가 아니더라도 소교주와 마군이 있으니 검선이라도 별수 없을 걸세.”
소교주의 이름이 거론되자 풍마종주는 환마군의 뒤에 가만히 서 있는 검마군을 쳐다봤다.
“그나저나 검마군, 소교주는 어디 계신 건가. 자네도 이곳에 있는 마당에.”
“저는 환마군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소교주께서는 따로 움직이신다고 했습니다.”
이에 풍마종주의 눈이 가늘어졌다.
“굳이? 무얼 하겠다고?”
교주의 명령으로 소교주를 감시하러 왔는데 직접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영 마음에 걸렸다.
“소교주는 예전부터 그 속을 알 수 없단 말이지.”
이에 괴세마왕도 어릴 적의 천마휘를 떠올리곤 입꼬리를 올렸다.
“확실히 소교주가 어릴 적부터 남다르긴 했지.”
천마휘는 일곱 살에 마교의 후기지수 수준을 벗어나 교주의 눈에 들었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천마휘를 천마의 재림이라 일컬었다.
괴세마왕이 천마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 주변에 비틀어졌던 기운이 크게 흔들리더니 순환하며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자욱하게 퍼졌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숲의 안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휴. 대체 어떤 고인이 만든 진법인지.”
환마군은 뒤로 털썩 주저앉더니 눈을 찔끔 감았다.
한 시진을 내내 집중해서 진법을 풀었더니 머리에 쥐어짜이는 고통이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괴세마왕은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자, 다시 가도록 하지.”
이에 환마군은 괴세마왕을 죽일 듯 노려봤으나 입하나 뻥긋할 수 없었다.
마인들이 숲을 넘어 여천고원으로 향할 때 검총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던 검선의 눈이 번쩍 떠졌다.
티잉
그와 동시에 검총에 박혀 있던 검 한 자루가 튀어 올라 땅에 떨어졌다.
“숲의 진법이 해제되었나.”
방금 튀어 오른 검은 숲의 진법을 구성하던 진축 중 하나였다.
이 검이 튀어 올랐다는 것은 숲의 진법이 해제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젠 남은 것은 여천고원에 펼쳐진 진법과 검총에 펼쳐진 진법. 두 개였다.
허나 검총의 진법은 봉인에 가까운 최후의 수단이었기에 실질적으로 남은 것은 여천고원의 진법 하나였다.
지지징
띠잉
여천고원의 진법의 진축이 되는 검들이 서서히 검명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진법에 들어선 침입자의 수와 수준을 파악하던 검선은 진축을 구성하던 검들을 잡고 비틀기 시작했다.
쿠르르릉
여천고원의 진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 * *
막 숲속으로 들어온 사패는 나무 사이로 뭉쳐있던 안개가 점점 흩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자연적으로 사라지는 것치고는 그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랐다.
“진법이 해제되었나 보군.”
“팽 아우, 서둘러야겠어.”
그렇게 속도를 높이는 사패의 앞으로 기존의 하얀 안개 대신에 회색의 안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찌르릉
그와 함께 기분 나쁜 방울 소리가 끊임없이 울리며 사패의 귀를 자극했다.
“다시 진법이 발동된 걸까요?”
팽무성은 미간을 좁히더니 고개를 저었다.
“환마종이다.”
팽무성은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몸을 틀어 땅을 박찼다.
단숨에 나무 다섯 그루를 지나치자 여섯 개의 작은 돌탑이 쌓여있었고 그 돌탑 사이로 안개가 뿜어지고 있었다.
그 주위에 모여 방울이 달리 지팡이를 흔들며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고 있던 환마종의 마인들.
팽무성이 단번에 도기를 쏘아내자 마인의 절반이 그대로 허리가 잘려나갔다.
“헉!”
“뭐냐!”
위에서 갑자기 팽무성이 적아도를 휘두르며 등장하자 깜짝 놀란 마인들이 급히 지팡이를 고쳐 잡으며 덤벼들려 했다.
그러나 당화련이 날린 지풍에 당한 마인들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이건?”
남궁혁은 환마종 마인들이 둘러싸고 있던 돌탑을 조심스레 살폈다.
돌탑에서 흘러나오는 회색의 안개는 단순히 색뿐만 아니라 뭔가 사특한 기운이 느껴졌다.
“환마종은 진법에도 능하다고 들었습니다. 아마도 기존의 진법을 해제하고 이 숲에 환마종의 진법을 깔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으음. 그럼 이곳이 진축의 하나라는 것인데.”
“이 마귀들이 숲 밖의 병력 말고도 따로 준비하는 게 있었다는 소리군.”
“이대로 둬도 될까요? 진법이 완성되면 그것도 나름대로 골치 아플 것 같은데.”
환마종의 진법은 제갈세가의 진법에 맞먹을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하지만 진법을 정석으로 해제할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갖춘 이는 사패에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진법을 힘으로 부숴야 하는데 이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초월경의 고수가 두 명이나 있어 어떻게 진법은 깨부수겠지만 적의 정확한 전력을 모르는 이상 좋은 판단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소 진축이 여섯 개 이상은 있을 것 같은데.’
당화련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었지만 환마종은 보기에 고원을 둘러싼 숲 전체에 진법을 깔려는 것 같았다.
외부에 병력으로 천라지망을 펼쳐놓았듯이 숲에 또 다른 그물을 치고 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진축을 찾아서 다 부수려다가 정작 중요한 여천고원의 일에 늦을 수도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팽무성은 기감을 넓혀 주위를 확인했다.
“동쪽과 서쪽. 삼십 장 정도에 다른 진축이 있다. 딱 이 두 개의 진축만 처리하고 바로 여천고원으로 향하자.”
세 개의 진축과 이를 관리하는 마인을 처리한다면 환마종으로서도 짧은 시간 내에 진법을 구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팽무성의 의견이 타당하다 여긴 남궁혁은 바로 등을 돌렸다.
“음. 양쪽이니 우리도 갈라져야겠군. 무각 아우와 내가 동쪽으로 가지.”
“알겠습니다. 남궁 형님. 진축을 부수고 바로 여천고원에서 합류하는 것으로 하지요.”
사패는 바로 양쪽으로 나누어져 이동하기 시작했다.
환마종은 숲 곳곳에 나누어진 진축에서 각기 진법을 전개하여 거대한 하나의 진법으로 통합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찌르르르릉
서쪽의 진축 주변으로 향하자 상당 부분 진행되었는지 사위가 회색 안개로 가득했고 귀를 찌르는 방울 소리만 울리고 있었다.
안개 안으로 들어서자 서서히 오감이 둔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에 팽무성은 당화련의 손을 잡고 말했다.
“경공의 속도를 맞춰.”
팽무성의 목소리가 흔들려서 들렸지만 당화련은 눈빛과 입 모양으로 그 의미를 바로 알아차렸다.
두 남녀가 손을 잡고 나란히 달리기 시작했고 팽무성은 기감을 끌어올려 주변의 자연지기를 훑기 시작했다.
이미 비틀어진 자연지기 중에서도 유독 인위적으로 꼬여있는 그 중심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렸다.
최근에 자연에 대한 화두로 깨달음의 수준이 높아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 하는 것이라 익숙지 않은 일이지만 팽무성은 빠르게 적응하며 올바른 방향을 찾아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인들과 함께 돌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회색 안개가 돌연 두 남녀를 토해내자 돌탑 주변에서 가부좌를 틀고 수인을 맺고 있던 마인들은 이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팽무성과 당화련은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장력을 쏘아내 마인과 진축을 박살냈다.
콰릉
마인들이 곤죽이 되어 쓰러지고 돌탑이 무너져 내리자 일대의 검은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당화련은 계속해서 울리던 방울 소리가 거슬렸는지 귀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진법인데 위력이 상당하네요.”
“어중간한 진법을 준비하지는 않았겠지. 이번에 마교도 제법 공을 들인 모양이다.”
팽무성과 당화련은 주변을 확인하곤 여천고원 방향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파른 언덕을 넘어 여천고원에 들어섰을 때, 팽무성은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설마.’
팽무성은 급히 등을 돌려 당화련을 확인했지만, 뒤에서 따라오던 당화련은 사라진 뒤였다.
“고원 위에도 진법이 펼쳐져 있었나.”
검총. (1)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