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15)
14화
“나는 어릴 적에 선승께 호신을 위한 가르침을 몇 수 받았을 뿐이네.”
석공이 말한 선승이란 천살불을 뜻했다.
팽무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살불의 제자가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들었다.
팽무성의 말투가 살짝 너그러워졌다.
“천살불의 제자란 말입니까?”
석공은 고개를 저었다.
“선승께서는 자신을 스승이라 부르지 말라고 하셨네.”
석공은 천살불의 목내이를 아련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저 선승의 마지막 염원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곁을 지킬 뿐이네.”
“마지막 염원.”
팽무성은 고개를 돌려 천살불의 목내이를 바라보더니 석공을 보았다.
“그 염원, 저도 듣고 싶군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나 선승께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네.”
운강 석굴에 머무른 천살불.
천살불은 맨손으로 동굴을 파고 부처를 깎았다. 이를 수십 년을 계속 해왔다.
이것이 천살불에게는 참선이자 속죄였다.
그 과정에서 천살불은 커다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저 목함을 열어보게.”
석공의 말에 팽무성은 목함을 조심스레 열었다. 목함 안에는 이름 없는 두 권의 비급과 손바닥 크기의 작은 보합, 낡은 서신이 들어있었다.
팽무성은 그 서신을 펼쳐보았다.
-수많은 세월을 부처께 참회했으나 살업의 무게는 지워지지 않았다.
결국 숭산에 돌아가지 못하는구나.
반드시 돌아오라며 대환단까지 맡긴 방장 사형.
내가 소림에 돌아갈 이유를 구태여 만들어주신 방장 사형께 죄송할 따름이다.
서신을 읽는 연자여.
대환단을 취해도 좋으며 비급의 무리(武理)를 익혀도 좋다.
대신, 작은 보은으로 비급을 소림에 전해주었으면 한다.
부족한 사제를 믿고 소림의 보물을 내어주신 방장 사형께 대한 최소한의 속죄다.
팽무성은 서신이 훼손되지 않도록 조심스러운 손길로 접었다.
“죽어서도 참회를 하신다고 장례조차 거부하셨네. 그래서 이런 모습으로 남아계신 거지.”
팽무성은 천살불의 목내이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물었다.
“천살불께서는 이 목함이 악인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고려하지 않으셨습니까.”
실제로 전생에서 철무련은 대환단을 먹고 비급의 심득을 얻어 커다란 성취를 얻었다.
물론 그 비급이 소림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팽무성은 이 기억을 빗대어 석공에게 물었다.
“나도 똑같은 우려를 해서 선승께 말씀드렸고 차라리 내가 직접 소림에 전하겠다고 했네.”
하지만 목함은 이곳에 있다. 천살불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또한 마음의 짐을 덜어내려는 행동이니 미래의 인연에 대한 고민과 걱정도 자신의 업보라고 하셨네.”
팽무성은 혀를 내둘렀다.
“확고한 건지, 고집스러운 건지, 무슨 단어를 사용해야 하나 고민이 되는군요.”
팽무성의 말에 석공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거기서 넘어 선승이 미련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네, 지금은 조금 이해가 되네. 타인이 느끼는 업의 무게를 우리가 어찌 알겠나. 자신만이 알 것이야.”
석공은 천살불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우는 듯 미묘한 얼굴빛을 띠고 있었다. 잠시 옛 추억에 빠졌던 석공은 팽무성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찌할 생각인가.”
운강 석굴은 산서 구석의 벽지에 있어 애초에 사람이 많이 찾는 곳도 아니었다.
그나마 방문하는 이들도 이곳까지 오는 일이 드물었다.
팽무성은 일엽동을 찾은 것을 넘어 진법까지 통과해서 이곳에 도달했다.
석공은 이 사내가 천살불의 여한을 풀기 위해 부처가 내려준 인연임을 확신했다.
“저도 얻은 것이 있는데 모른 척 내뺄 수는 없지요.”
팽무성은 아직 아무것도 얻지 않았다.
대체 무엇을 얻었다는 걸까, 석공은 팽무성의 말뜻을 이해한 듯 후련한 웃음을 흘렸다.
“소림에 선승의 목내이가 있다는 것도 전해주시게. 이제 소림에 돌아가 쉬실 때가 되지 않았나.”
“알겠습니다.”
“배웅은 하지 않겠네, 잘 가시게.”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석공은 마지막 부탁을 남기고 빠르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팽무성이 뭘 할지 아는 눈치였다. 팽무성은 목함 안에 들어있는 작은 보합을 열었다.
“흠.”
보합을 열자 몇 겹의 기름종이에 싸인 단환이 보였다. 기름종이에 가려 보이지는 않았지만 팽무성은 그 정체를 알고 있었다.
기름종이를 조심스레 벗기자 향이 폭발하듯 팽무성을 감쌌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향기가 팽무성의 코를 벌름거리게 했다.
영롱한 황금빛의 단환을 보며 팽무성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대환단. 이걸 보는 날이 오네.”
소림의 제자조차 보기 힘들다는 대환단이 지금 팽무성의 손에 있었다.
소림사가 아니더라도 역사가 깊은 대문파라면 저마다의 연단술을 가지고 있었다.
팽가에도 태양단이라는 가문 비전의 단환이 존재했다.
그런데도 소림사의 대환단이 강호에서 압도적인 위명을 자랑하는 이유가 있었다. 다른 단환은 비교가 안 되는 약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환단을 먹고 제대로 흡수한다면 어마어마한 내공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면 강호에서 무가지보라 불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환단이 독보적으로 가지는 특징은 바로 영기(靈氣)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환단의 영기는 먹은 이의 그릇을 더 크고 견고하게 바꾸어 놓는다.
사람이 지닌 그릇의 견고함과 크기를 바꾼다. 이는 새롭게 태어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자연적인 영약을 제외하고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단환 중 영기를 지닌 단환은 대환단이 유일했다.
“괜히 긴장되네.”
팽무성은 호흡을 골라 빠르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전생에도 영약 몇 개 주워 먹었지만 그다지 효능이 없는 자잘한 것들이었다. 먹었던 것 중 제일 귀했던 게 백년하수오였다. 어찌 보면 팽무성의 반응은 당연했다.
팽무성은 제법 비장한 표정으로 대환단을 입안에 넣었다.
대환단은 혀에 닿자 사르르 녹아 액체가 되었다.
예상했던 쓴맛이 아니라 달달한 맛이 나서 마치 꿀을 삼키는 느낌이었다.
‘달다. 당과를 먹는 느낌.’
대환단의 단맛에 취하는 것도 잠시였다.
팽무성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대환단이 목울대를 넘어가자마자 어마어마한 약기(藥氣)가 혈맥으로 쏟아져 내려왔다.
마치 범람하는 홍수를 상대하는 느낌이었다.
대환단의 약기에 맞서 단전에 잠들어있던 혼원벽력신공의 내공이 솟구쳐올랐다.
약기와 내공이 충돌했지만, 내공이 속절없이 밀렸다. 당연한 일이었다.
팽무성은 정면으로 맞서는 대신에 내공을 주요 혈맥으로 퍼트렸다. 대환단의 약기를 유도해서 아직 뚫지 못한 혈맥을 뚫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조금씩 약기를 내공으로 흡수하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 조금씩 갉아 먹는 거다.’
팽무성은 별다른 위험 없이 운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세밀한 내공 운용이 받쳐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그 대상이 대환단이라면 어지간한 고수도 엄두를 못 낼 일이다.
내공이 부족해 뚫을 엄두를 내지 못했던 혈맥들이 대환단의 쏟아지는 약기에 손쉽게 뚫리고 있었다.
새로운 혈맥이 뚫릴수록 내공이 다닐 수 있는 길이 늘어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만큼 약기를 내공으로 바꾸는 과정도 더욱 빨라지고 있었다.
‘이 정도 기세라면.’
혈맥을 뚫어내면서도 끊임없이 내부를 관조하던 팽무성은 결심했다.
팽무성의 의지에 따라 내공이 움직였고 그 인도에 따라 대환단의 약기가 뒤를 따랐다.
임독양맥.
강호에서 흔히 생사현관이라 불렸다.
그만큼 임독양맥을 타통하는 과정이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하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내공으로는 어림없기에 내로라하는 고수 중에서도 임독양맥을 타통한 이는 드물었다.
팽무성의 혈맥이 선천적으로 뛰어난 편이라 많은 혈맥을 뚫어내면서도 대환단의 약기가 거의 소모되지 않았다.
이 상태라면 충분히 임독양맥 타통에 도전해볼 만했다. 전생에서도 임독양맥의 일부를 뚫었을 뿐 완전히 뚫지는 못했다.
지금부터는 팽무성도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임독양맥을 타통하지 않아도 고수는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팽무성이 바라보는 천외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가자.’
쾅
머릿속으로 폭음이 울리고 전신이 잘게 떨렸다. 내공이 임독양맥의 첫 번째 관문에 부딪힌 것이다.
뒤이어 따라온 대환단의 약기가 연달아 두들겼다.
쿵쿵
몸 안의 작은 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전신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임독양맥을 두들길 때마다 조금씩 정신이 멀어지는 것 같았다.
팽무성은 전신을 떨면서도 의식을 부여잡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수십 번의 두들김.
이제 몇 번째인지 알 수조차 없었다.
대환단의 약기마저 힘이 빠져 주춤거렸다.
팽무성은 반동으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정신이 혼미해진 탓인지 들릴 리가 없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대주. 갑시다.
-대주님, 저희가 길을 열겠습니다.
-저놈의 팔 한쪽이라도 가져가자고.
낙호곡에서 최후를 맞이한 팽호대의 목소리. 죽을 자리임을 알면서도 등을 보인 자는 없었다.
바로 옆의 동료가 핏물이 되어 사라짐에도 팽호대는 앞으로 나아갔다.
-도왕.
마지막으로 마교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절대 잊지 못할 목소리에 팽무성의 정신이 돌아왔다.
‘겨우 이 정도에 끝나려고 살아난 거냐.’
스스로 다그치는 팽무성.
우웅
팽무성의 강력한 의지에 내공이 반응했다.
대환단의 약기에 뒤에 밀려있던 혼원벽력신공의 내공이 약기를 비집고 솟구쳤다.
쾅
이에 반응한 대환단의 약기도 뒤를 따랐다. 이전에는 약기가 타통을 주도했다면 지금은 혼원벽력신공의 내공이 주를 이루었다.
쾅쾅쾅
견고하던 임독양맥의 첫 관문이 흔들리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미세한 금은 점점 켜졌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콰아앙
‘아아.’
팽무성은 자신을 둘러싼 어떤 경계가 무너짐을 느꼈다.
마침내 임독양맥의 첫 혈맥이 뚫렸다.
혈맥을 뚫으며 자연스레 내공과 약기는 하나로 융화되었다. 내공은 약기를 흡수하면 급격하게 덩치를 불렸다.
그야말로 파죽지세.
융화된 기운은 기세를 놓치지 않고 쭉쭉 뻗어 나가 임독양맥을 관통하기 시작했다.
임독양맥 중에서도 난관이라 불리는 천돌혈과 백회혈마저 이를 버티지 못하고 길을 열어주었다.
임독양맥을 중심으로 먼저 뚫어놓은 혈맥을 따라 전신으로 내공이 흘러갔다.
전신 혈맥을 순회한 내공은 단전으로 흘러들었다가 다시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팽무성은 거의 무의식의 상태에서 운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이나 운기를 했을까.
팽무성의 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운기 하던 내내 전신에서 흐르던 땀이 점점 진해지더니 검은색으로 변했다.
혈맥이 깨끗하다고는 하나 완전히 탁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 새로운 혈맥을 뚫어내면서 그 안에 쌓인 탁기까지 배출되기 시작했다.
“후우.”
길게 숨을 내뱉으며 드디어 팽무성이 눈을 떴다. 떠진 팽무성의 눈은 은은한 빛이 서렸다.
용암같이 강렬했던 이전의 눈빛과 달리 잔잔해졌다. 하지만 내뿜어지는 그 정광은 더욱 깊어진 부분이 있었다.
잘못했으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 그런 상황에서 팽무성의 정신을 다잡게 한 것은 마교주의 목소리였다.
가장 죽이고 싶은 원한이 있는 사내의 목소리가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
뭐라 설명하기 힘든 기묘한 느낌이었다.
“마교주.”
낮게 깔린 팽무성의 목소리가 공동을 울렸다.
뱀 사냥. (1)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