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156)
155화
먹구름에 초승달이 가려서 답답할 정도로 유난히 어두운 날이었다.
텅 비어 있는 만마대전의 광장.
그 드넓은 광장에 어느 순간 흑의 무복을 입은 무인들이 귀신처럼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세를 갈무리했음에도 잘 벼려진 검과 같은 날카로운 분위기가 몸에 밴 이들이었다.
교주의 직속 호위대. 만마전검대.
교주를 호위하는 타격대인만큼 마교의 수많은 타격대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최정예들이었다.
도열한 만마전검대원의 맨 앞에 자리한 전검대주는 저 멀리서 열리는 문을 주목했다.
여덟 명의 종주들이 차례로 등장했고 그 뒤로 멸세마왕과 곤세마왕이 걸어왔다.
종주들과 마왕들이 등장했음에도 전검대주는 차분히 전방을 응시했다.
마지막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 하늘을 바라보는 천마휘의 모습에 전검대주의 눈이 움찔거렸다.
“소교주.”
“대주. 야밤에 고생하는군.”
전검대주는 천마휘가 두 손으로 소중히 품에 안고 있는 것을 힐끗 쳐다봤다.
“소교주. 놀랐습니다. 설마 호천투귀대를 손에 넣으셨을 줄이야.”
만마전검대가 만마대전의 내부와 그 주변을 지킨다면 호천투귀대는 만마대전으로 통하는 두 개의 관문을 지키고 있었다.
아무런 소란 없이 천마휘가 조용히 관문을 뚫고 들어섰다는 것은 호천투귀대가 넘어갔다는 의미였다.
전검대주의 눈이 소교주를 벗어나 그 뒤로 향했다. 호천투귀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 여전히 관문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교주를 지키는 든든한 철옹성이 어느새 만마대전을 에워싸는 포위망이 되는 순간이었다.
“개진.”
전검대주의 무미건조한 명령에 만마전검대는 일사불란하게 검진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를 천마휘는 그저 여유롭게 구경했다.
“직접 굴복시키고 싶지만 중요한 일이 있어서 어쩔 수가 없군.”
천마휘의 말에 곤세마왕(困世魔王)이 기다렸다는 듯 앞으로 나섰다.
“소교주는 어서 가보시게. 이곳에서는 우리가 놀고 있을 테니.”
“곤세마왕. 혹여나 저들을 흡수하시면 안 됩니다.”
만마전검대는 사람이 아니라 천마신교 교주라는 직위에 충성을 따르는 타격대.
천마휘가 교주위에 오른다면 온전히 천마휘의 손발이 되어줄 이들이었다.
천마휘의 충고에 식마종 출신인 곤세마왕은 반백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혀를 찼다.
“쯧쯔. 간만에 보양 좀 하려고 했더니.”
콰아앙
요란한 폭음을 뒤로하고 천마휘는 홀로 만마대전의 안으로 들어섰다.
천마휘는 화려하게 치장된 만마대전의 길고 긴 통로를 한 걸음씩 나아가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마침내 천마휘는 수라의 얼굴이 양각된 대문 앞에 섰다. 저 문 뒤에서 교주가 언제나 그랬듯이 태사의에 몸을 기대고 있을 터.
평소라면 대기하던 만마전검대의 무인들이 문을 열어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콰앙
천마휘의 발길질에 수라의 얼굴 반쪽이 박살 나며 길을 만들어냈다.
“교주. 아니, 스승님.”
천마휘의 예상대로 교주는 태사의에 반쯤 몸을 기댄 채 턱을 괴고 있었다.
“천마휘.”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천마휘를 쳐다보던 교주는 자연스레 천마휘의 품에 들려있는 것을 눈에 담았다.
쩌적
그 순간, 교주의 전신에서 마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만마대전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태산이 그대로 떨어지는 듯한 압력을 버티지 못한 주위의 대들보에 커다란 실금이 그어지고 있었다.
거대한 만마대전이 통째로 흔들리니 천마휘의 머리 위로 먼지가 쏟아지고 있었다.
교주의 격한 반응에 천마휘의 입꼬리가 귀밑까지 올라갔다.
“스승님. 이제야 좀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이시는군요.”
“네놈이 미쳤구나!”
노호성과 함께 교주가 태사의에서 벌떡 일어나자 천마휘는 품에 안고 있던 것을 그대로 교주를 향해 던졌다.
“스승님이야말로 미친 것이겠지요.”
천마휘는 내공까지 이용해서 자신이 던진 것을 부드럽게 받아내는 교주의 행동에 웃음을 참지 않을 수 없었다.
“고작 그 아이 때문에 본교의 대업을 망치려 들다니. 설마 스승님이 한낱 부정(父情)에 흔들릴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천마휘가 교주에게 던진 것은 천마휘의 유일한 사제. 사사롭게는 교주가 말년에 얻은 유일한 자식이었다.
천마휘의 사제는 탐천마공에 당했는지 거의 목내이와 같은 꼴이 되어있었다.
“무슨 어린놈이 단전에는 그리도 많은 내공을 지니고 있는지, 어지간한 노고수보다 낫더군요. 덕분에 제 단전이 든든해졌습니다.”
목내이가 된 천마휘의 사제는 교주의 틈에서 몸을 잘게 떨더니 결국 숨이 끊어졌다.
그 미약한 호흡이 끊긴 것을 알아차린 천마휘의 눈매가 더욱 휘어졌다.
사제의 정혈을 모두 흡수해내지 않고 검은 가루가 되기 직전에 탐천마공을 멈춘 것은 지금의 상황을 연출하기 위함이었다.
“스승님이 저를 비롯한 마군들을 전부 갈아치우고 천마신교를 이을 새로운 세대를 만들려고 했던 이유가 방금 사라졌군요.”
소교주를 비롯한 구마군이 선발대라는 명목으로 한정된 자원으로 무림에 나선 것도,
마군들이 하나씩 죽어 나감에도 천마신교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도 모두 교주의 의도대로였다.
이대로 무림에 전쟁을 벌여 마도천하가 열린다면 자신의 아들이 교주가 될 가능성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천마신교는 교주의 핏줄이라 하여 그 자리를 이을 수 있는 물렁한 곳이 아니었다.
천마휘는 아직도 아들의 시신을 보며 입을 다물고 있는 교주를 보며 서서히 웃음을 지웠다.
“하아. 당신의 아들이 당신을 이렇게 망쳐놓았군.
부정에 흔들리고 천마신검에 의존하려는 자가 내 위에 있는 것이 너무 역겨워 이제 참을 수가 없군.”
천마휘의 전신에서 마기가 화산처럼 뿜어져 나오며 교주의 마기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쩌저적
마기와 마기가 격돌하는 중간 지점에서 대기가 찢어지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천마휘의 마기는 교주의 마기에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이에 교주도 이미 식어버린 아들을 태사의에 올려놓곤 천마휘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교주의 눈은 살기로 뒤덮여 붉은 안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네놈도 똑같이 탐천마공으로 죽여주마.”
숨을 막히게 하는 살기에도 천마휘는 스산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교주를 응시했다.
“끝까지 교주가 아니라 아비로서 싸우는 건가. 그런 당신의 작태 때문에 오늘과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고 당신을 죽음에 이르게 할 거야.”
천마휘는 좌권우장을 취했고 교주는 태사의 뒤쪽에서 허공섭물로 잡은 검을 뽑아냈다.
“네놈 따위가 가능할 듯싶더냐.”
교주와 천마휘는 초월경의 극을 밟고 있는 상황. 경지의 차이는 아주 근소했다.
“오늘 당신을 잡아먹고 새로운 마신이 될 것이다.”
마기가 휘감아진 천마휘의 주먹이 쏘아졌다.
교주와 소교주의 격돌에 만마대전이 굉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 * *
용두동.
곤륜비맥의 전승자들이 수련하는 곳이었다. 이 용두동에 곤륜비맥에 관련되지 않은 무인이 들어온 것은 몇백 년 만의 일.
용천의 뒤를 따라 용두동에 들어선 팽무성은 처음에는 보통 동굴과 다를 바가 없다고 여겼다.
휘이잉
그런데 용두동에 깊이 들어갈수록 안쪽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가 점점 거세지는 것이 느껴졌다.
한참을 들어가자 어느새 동굴의 끝에서 빛이 보였다.
그 빛 안으로 들어선 팽무성은 눈앞에 드러난 광경에 고개를 들어 탄성을 흘렸다.
절벽의 끝에는 짙은 운무가 바다처럼 흐르고 있었고 그 운무의 바다 위로 만장단애가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철컹철컹
바람이 불 때마다 절벽 쪽에서 쇳소리가 메아리쳐서 들려왔다.
이에 팽무성이 살펴보니 절벽의 끝에 성인 장정의 팔뚝만 한 크기로 만들어진 쇠사슬이 박혀있었다.
팽무성은 쇠사슬에 얼핏 짙은 푸른빛이 감도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설마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것입니까?”
이에 운무가 흘러가는 모습을 감상하던 용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슬은 저 만장단애의 꼭대기까지 이어져 있다.”
팽무성은 팽팽하게 펼쳐져 위로 향해있는 사슬을 보며 침음을 흘렸다.
대체 누가 만년한철로 이렇게 커다란 사슬을 만들었는지도 신기했지만,
이 절벽과 저 높은 만장단애 사이로 어떻게 사슬을 연결했을지 도무지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이곳 전체가 용두동이니라. 자, 따라오거라.”
용천은 사슬을 가볍게 밟으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용천은 그대로 다시 하강하지 않고 허공에서 몸을 뒤틀며 만장단애를 향해 쭉쭉 나아가고 있었다.
짙은 운무를 뚫고 체공하는 그 모습은 마치 구름 속을 거니는 용과 같았다.
단 한 번의 도약으로 허공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말도 안 되는 경지의 신법.
“저것이 운룡대팔식인가.”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
구름을 노니는 용의 움직임을 담았다는 무공.
이 안에 검법, 권장각을 이용한 박투, 신법과 보법 등이 모두 집대성되어 있었다.
곤륜파 무학의 뿌리이며 곤륜비맥의 전승자만이 익힐 수 있는 신공이었다.
운무 사이로 날아가 버린 용천의 신비한 움직임에 혼을 뺏겼던 팽무성은 정신을 차리고 사슬 위로 몸을 날렸다.
휘이이잉
팽무성이 사슬 위를 달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절벽과 만장단애 사이의 그 길고 깊은 협곡에서 강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이에 평화롭게 흘러가던 운무도 거칠게 회오리치며 급변하기 시작했다.
한 방향에서 몰아치는 것도 아니고 팔방에서 어지간한 바위도 날려버릴 힘으로 몰아치니 사슬도 미쳐 날뛰듯이 철렁이고 있었다.
“이런.”
팽무성은 용천혈에 내공을 흘려내 사슬과 발을 착 달라붙게 하곤 이 미친 듯이 몰아치는 바람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사이에 저 위쪽에서 용천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때론 역으로 맞서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한 번 드러내고 느껴보는 거다. 자연과 너의 간격을 말이다.”
용천의 목소리에 파도처럼 출렁이는 쇠사슬 위에 멈춰 서서 가만히 서 있던 팽무성.
사슬에 의해 몸이 위아래로 다섯 번쯤 흔들렸을 때, 팽무성이 눈을 번쩍 뜨더니 사슬 위를 주파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사슬 위를 이동하며 본래 속도의 절반 정도만 보였다면 지금은 전력으로 경공을 펼쳐내고 있는 팽무성이었다.
후우우웅
요란한 바람소리는 여전했으나 사슬이 이전만큼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팽무성이 협곡 전체로 뿜어낸 무거운 기세가 바람을 대신 막아내고 있었다.
팽무성의 기세에 닿은 바람은 수십 갈래로 갈라지고 있었는데 팽무성의 기세에 베어내겠다는 의지가 실린 탓이었다.
철컹
사슬을 한 번 강하게 밟고 뛰어오른 팽무성은 결국 만장단애의 끝에 착지할 수 있었다.
만장단애에서 팽무성을 기다리고 있던 용천은 허허로운 웃음을 흘렸다.
설마 협곡 전체에 기세를 흘려 바람을 막아내고 갈라내며 만장단애로 올라올 줄은 용천도 예상치 못했다.
기대하던 장면은 나오지 않았으나 용천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을 마주하는 법에 있어서 정답은 없으니 팽무성이 생각해낸 것이 곧 옳은 길이라.
“본래 이 사슬에서 운룡대팔식을 수련한단다. 사패도 내가 직접 움직임을 봐주었다.
그 녀석들도 사슬에서 제법 떨어져서 내가 잡아줘야 했지.”
용천의 말에 팽무성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어쩐지 얼굴이 창백해져서 나올 때가 많더니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용천과 팽무성이 서 있는 만장단애는 곤륜산에서도 높은 축에 속하는지 곤륜산의 드넓은 산세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정말 대단한 산입니다.”
“평생을 곤륜산에서 살아온 나도 모르는 곳이 많다.”
잠시 곤륜산을 눈에 담은 팽무성은 용천을 따라 만장단애의 위에 있는 동굴로 들어갔다.
동굴에 들어온 순간 팽무성은 이상함을 느끼고 절로 주위를 살펴야 했다.
곤륜산은 그렇지 않아도 자연지기가 너무나 충만하고 영기까지 흐르고 있어서 운기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동굴은 다른 곤륜산의 어떤 곳보다도 자연지기와 영기의 농도가 매우 짙었다.
이에 팽무성은 용천을 봤지만 용천은 묵묵히 동굴 안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이 동굴은 그다지 깊지 않았는데 동굴의 끝에는 수십 줄기의 종유석이 뭉쳐서 솟아올라 있었다.
그 여러 종유석의 끝이 한데 모이고 모여 작은 웅덩이 같은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웅덩이 안에는 투명한 물이 고여 있었는데 신기한 것이 그 투명한 물 안에는 채홍빛이 은은하게 어려있었다.
그 물을 가만히 바라보던 팽무성은 문득 떠오른 것이 있어 용천을 쳐다봤다.
이에 용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래, 네가 생각하는 것이 맞다.”
팽무성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공청석유!”
절대의 경지. (2)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