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157)
156화
공청석유(空淸石乳)
본래 하늘, 산, 바다를 끊임없이 순환하며 한시도 가만히 머물지 않는 것이 자연지기.
그런 자연지기가 특별한 지세(地勢)에 맞물려 지극히 한정된 공간 안에서 맴돌 때가 있었다.
세월이 쌓이고 쌓여 한곳에 모인 자연지기가 한 방울의 액체로 농축되니 그것을 사람들은 공청석유라 불렀다.
“듣기로 공청석유는 우윳빛이라 들었는데 아니었군요.”
“아니, 우윳빛이 맞다. 조사의 일지를 보면 오백 년 전부터 색이 점점 옅어지며 투명해지더니
그 안에 무지갯빛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곤륜비맥에서는 자연지기뿐만 아니라 곤륜산의 영기(靈氣)까지 공청석유에 스며들어 이런 변화가 되었다고 추측하고 있었다.
몇백 년의 세월이 묵혀 색이 변한 공청석유는 보통의 공청석유보다 효능이 훨씬 뛰어났지만, 용천은 그것까지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이 공청석유는 본래 곤륜비맥의 전승자들이 한 방울이나 두 방울씩 복용하던 것이다. 너는 한 다섯 방울 정도면 되려나?”
“곤륜비맥의 보물인데 제가 복용해도 되겠습니까.”
용천은 빛을 내는 공청석유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비맥의 보물이 아니야. 그저 곤륜비맥의 초대 조사께서 최초로 발견한 것이지.
우연한 자연의 선물이니 최대한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하려는 것뿐이다.”
용천은 팽무성뿐만 아니라 다른 사패에게도 공청석유를 한 방울씩 먹일 셈이었다.
물론 용천의 수련을 이겨내고 스스로의 힘으로 만장단애의 끝에 도달해야 가능할 일이지만.
“시작하자.”
용천이 말하며 손가락을 움직이자 그 손길에 따라 웅덩이에서 한 방울씩 떠오르더니 총 다섯 방울의 공청석유가 팽무성의 앞을 맴돌았다.
영롱하게 빛나는 공청석유를 보며 팽무성은 절로 침을 꼴깍 삼켜냈다.
“마음 단단히 먹거라. 그리 쉬이 공청석유의 기운을 갈무리하기 힘들 것이야.”
팽무성이 가부좌를 틀고 입을 벌리자 혀 위로 다섯 방울의 공청석유가 차례대로 떨어졌다.
팽무성이 그대로 운기에 빠져들자 용천은 그대로 팽무성의 호법을 서기 시작했다.
공청석유를 복용한 팽무성은 곧바로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지금껏 영약을 먹을 때 영약의 기운이 체내로 들어오는 느낌이라면 지금은 팽무성이 공청석유의 기운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주변의 충만한 자연지기에 전신이 녹아드는 포근한 기분이라 팽무성은 의식을 집중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혼원벽력신공을 운용해야 한다거나 공청석유의 기운을 어떤 혈맥으로 보내야 한다든가 하는 생각은 모두 잊었다.
그저 운기를 한다는 자각만 있을 뿐, 팽무성은 광대한 자연지기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찰나의 시간이 지났는지, 며칠이 지났는지 시간 감각이 사라졌을 무렵,
어느 순간 팽무성은 자연지기와 육체의 구분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자연지기가 팽무성이 되는 것인지, 팽무성이 자연지기의 일부로 화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팽무성도 이를 굳이 구분하고 답을 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느끼고 받아들였다.
도천의 수련과 다섯 방울의 공청석유로 다시 균형을 맞춰낸 팽무성의 심기신(心氣神).
심기신이 단순히 균형을 이루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닌 서로 섞여 들어갔다.
마침내 삼태극(三太極)처럼 하나의 온전한 형태를 이루어냈다.
뿌드득
목 중간의 성대에 위치한 아문혈.
척추 두 번째 마디. 폐와 연결되는 위치의 봉안혈.
척추의 말단에 위치한 미룡혈.
이 세 혈도에서 동시에 뼈 소리가 나더니 팽무성의 전신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팽무성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전신의 뼈가 부러지고 다시 맞춰지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었다.
명상하고 있던 용천은 팽무성의 몸에 나는 소리에 눈을 떴다.
“호오. 곧바로 환골탈태라니.”
절대경의 경지를 밟는다고 하여 무조건 환골탈태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얻은 깨달음에 따라 그 시기가 제각각이었는데 용천은 절대경에 오르고 삼 년 뒤에나 환골탈태를 경험했었다.
이는 그동안 팽무성이 쌓아온 깨달음이 상당히 깊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뿌드득 뻐어억
그렇지 않아도 타고난 근골을 타고난 팽무성의 육체.
무림의 어떤 무인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팽무성의 근골에 환골탈태가 일어나니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몇십 년 묵은 느티나무가 쪼개지는 소리가 척추에서 터지는 것으로 환골탈태가 마무리되었다.
동시에 팽무성의 백회혈에서 나온 세 개의 기운. 적(赤), 청(靑), 황(黃)의 기운이
꼬리를 길게 늘이며 회전하더니 팽무성의 머리 위에서 얽히고 얽혔다.
삼태극을 이룬 세 기운은 이내 하나의 순수한 빛으로 화하더니 팽무성의 머리에 내려앉았다.
등불처럼 휘황한 빛을 내는 팽무성을 보며 용천은 팽무성이 등봉조극(登峰造極)에 달했음을 알 수 있었다.
전신의 빛이 사그라들자 팽무성은 드디어 눈을 떴다.
언제나 강렬하고 위압적인 팽무성의 호안이 지극히 평범한 눈빛으로 변해있었다.
반박귀진(返璞歸眞)에 달한 팽무성의 눈빛을 보며 용천은 물었다.
“절대경에 도달했구나. 왕년의 삼천에 비해도 그 성취가 훨씬 빠르니 훌륭하다.”
“두 어르신 덕분에 후배가 크게 덕을 봤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잘하고 있다. 자만하지 말고 계속 정진하거라.”
동굴을 빠져나온 용천은 만장단애의 시원한 바람을 쐬며 물었다.
“배는 안 고프냐? 나흘을 내리 운기에만 몰두했는데.”
용천의 말에 팽무성이 깜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허기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훗. 젊어서 그런가, 좋구나. 그럼 이곳까지 올라온 김에 한 번 놀다 가자꾸나.”
“좋습니다.”
이제 막 절대경에 오른 팽무성이 자신의 힘을 제대로 가늠할 수 있도록 하는 용천의 배려였다.
이에 팽무성은 용천에게 고개를 한 번 숙이곤 적아도의 도병으로 손을 가져갔다.
고작 며칠 안 잡았을 뿐인데 팽무성은 아주 오랜만에 잡는 것처럼 살짝 마음이 들떴다.
“오거라.”
용천이 입을 여는 것과 동시에 팽무성이 발도를 펼쳐냈다. 마치 적아도가 늘어나듯이 도극을 따라 붉은 선이 길게 이어졌다.
발도와 함께 뿜어진 도기가 순식간에 용천이 서 있던 공간을 베어냈다.
한편 용천은 별다른 준비 동작 없이 도복을 펄럭이며 하늘을 유영하고 있었다.
쐐액
파공음과 함께 갑자기 용천이 팽무성을 향해 정면으로 내리꽂혔다. 다시 봐도 전혀 따라 할 수 없는 몸놀림이었다.
용천의 양팔을 뒤덮는 녹색 기운의 파편.
꽃잎 같기도 하고 비늘처럼 보이기도 했다.
파편이 촘촘하게 팔을 뒤덮자 그 모습이 마치 갑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용린기(龍鱗氣)를 양팔에 두른 용천은 그대로 손가락을 구부려 팽무성을 향해 출수했다.
우수를 통해 뻗어오는 운룡조(雲龍爪).
고작 손 하나가 쇄도하는데 거대한 용의 손이 뻗어오는 마냥 전신에 압박감이 들었다.
허나 팽무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적아도를 수평으로 베어냈다.
운룡조가 만들어내던 압력은 단숨에 갈라지고 적아도가 용천의 장심을 찔러냈다.
도극과 장심이 맞부딪치려는 찰나, 바늘이 지나갈 만한 틈을 두고 용천의 손목이 회전했다.
회전과 동시에 용천이 홀연히 팽무성의 앞에 나타나 손을 뻗고 있었다.
적아도에 관통한 듯하면서 그대로 팽무성의 앞으로 도달하는 용천의 움직임은 흩날리는 잔상과 같았다.
이는 십대고수라도 한순간 놓칠 만한 가공할 경지. 도천과 사천도 쉬이 흉내 낼 수 없는 오직 용천만이 보일 수 있는 신위였다.
허나 팽무성의 호안은 용천의 발놀림을 정확히 응시하고 있었다.
저 앞을 향하던 적아도가 어느새 용천의 등 뒤로 뻗어가고 있었다.
예측할 수 없는 기이한 궤적을 그리는 도격에 용천은 좌수로 적아도를 막아내고 우수로 장력을 쏟아냈다.
쩌정
양쪽에서 동시에 밀려오는 충격에 용천의 어깨가 들썩였고,
그사이 활짝 벌어진 용천의 가슴으로 팽무성의 큼지막한 손바닥이 날아들고 있었다.
꽈아앙
어느새 용천의 가슴께에는 녹빛의 투명한 벽이 이루어져 있었다.
와호장이 용린기로 이루어진 호신강기에 가로막히자 팽무성은 장법을 수도로 전환하여 벽력일섬을 펼쳐냈다.
얼음이 쪼개지듯 용린기가 깨부숴져 호신강기가 흩어졌고 그 틈을 적아도가 비집고 들어갔다.
용천은 목 밑이 서늘해짐을 느끼며 허리를 비틀며 다리를 뻗어 반원을 그렸다.
적아도를 각법으로 받아친 용천은 발끝이 도신에 닿았을 때 그 작은 접점을 이용해 훌쩍 뛰어올랐다.
팽무성의 머리 위에서 용천은 쌍장을 내질렀고 구름처럼 피어오른 녹빛 장력을 붉은 뇌전이 꿰뚫어냈다.
꽈르르릉
만장단애의 위에서 뇌벽이 일고 폭음이 끊이질 않으니 곤륜산 전체에 그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용천의 잔상을 베어낸 적아도는 곧장 용천의 발끝을 쫓고 있었다.
허공에서 발목을 비틀어 도격을 피해낸 용천은 아주 오랜만에 오른 승부욕에 입술을 살짝 비틀었다.
‘이제 갓 절대경에 올랐는데 전혀 얕볼 수가 없구나.’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용천은 마치 허공에 보이지 않는 계단이 있는 듯 자유롭게 유영했다.
팽무성은 굳이 용천의 움직임에 따르려 하지 않았다.
용천에게 닿을 수 없다면 주변의 공간을 무수히 베어내면 그만이었다.
촤자자작
다섯 줄기로 시작된 팽무성의 도격이 열 가닥, 오십 가닥으로 무수히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수백 갈래로 분화하며 거대한 번개 줄기를 만들어냈다.
‘환골탈태하며 신체의 격이 오른 건가.’
팽무성은 생각 이상으로 빠르고 정밀하게 휘둘러지는 적아도를 보며 스스로 놀라는 중이었다.
마치 그물처럼 빼곡하게 만장단애의 위를 뒤덮는 팽무성의 도격. 고고한 용마저 잡을 수 있는 붉은 그물을 보는 듯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절대경에 오르고 환골탈태를 경험한 팽무성은 완전히 다른 무인이 되어있었다.
‘허허. 피할 틈이 없구나.’
사방을 뒤덮는 붉은 뇌전에 용천은 쓴웃음을 흘렸다.
이러니 용천도 언제까지 허공에서 피할 수는 없는 노릇.
적당히 손속을 겨룰 생각이었던 용천의 눈에 진지한 기류가 감돌기 시작했다.
용천은 단전에 잠들어있는 용단(龍丹)을 깨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 다른 용천의 기운에 팽무성은 팔뚝에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뭐지, 마치 인간의 낼 수 있는 기운이 아닌 것 같은데.’
지금 용천이 보이는 기운은 아주 이질적이었다. 녹빛이었던 용천의 기운이 점점 채홍빛을 내기 시작했다.
“슬슬 마무리를 짓자꾸나.”
채홍빛의 용린기에 둘러싸인 용천이 그대로 팽무성에게 쏘아졌다.
운룡대팔식 쇄룡(碎龍).
구아아아
용천의 열 손가락에 대기가 거침없이 분쇄되며 고막을 강타하는 굉음이 터졌다.
이에 팽무성은 미간을 좁혔다.
단순한 환영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마리의 용이 입을 벌리고 쇄도하는 것 같았다.
식겁할 광경이나 팽무성은 지금이라면 용이라도 베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팽무성은 아낌없이 내공을 실어내 시원하게 적아도를 휘둘러냈다.
집채같은 크기를 지닌 거대한 뇌전이 쩍 벌려진 용의 입을 강타하더니 이내 용을 반으로 찢어내고 있었다.
꽈르르릉
곤륜산 전역에 거대한 뇌성이 일고 일순간이지만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 * *
끼이익
기관이 움직이며 거대한 철문이 서서히 열리니 그 사이로 상체를 드러내고 하의만 입고 있는 천마휘가 모습을 드러냈다.
천마휘가 나온 비동 앞에는 마왕과 종주를 비롯한 주요 타격대의 대주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대성을 축하드립니다!”
우사가 커다란 외침과 함께 오체투지를 하자 그 뒤로 모인 마교의 중진들도 일제히 오체투지를 하여 천마휘에 대한 충성을 몸소 드러냈다.
그런 와중에 좌사는 조용히 천마휘의 뒤에서 어깨에 검은 장포를 걸쳐주었다.
검은 바탕에 아홉 마리의 적룡이 서로를 물어뜯고 있는 기괴한 문양.
천마신교의 교주를 상징하는 구룡암포였다.
절대의 경지. (3)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