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163)
162화
서신을 읽던 무인은 눈이 동그래지더니 자신에게 주목된 뜨거운 눈길을 느끼곤 목에 힘을 주었다.
“일단 귀주에서 올라온 병력은 흥문(興文)에서 사패, 흥문 지부의 맹도 스무 명이 맞서 상대했습니다.”
보고를 듣던 간부들이 잘못 들었나 싶어 무인을 쳐다보았다. 이에 그 눈길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무인의 등에 진땀이 났다.
“스무 명? 그 적은 수로 삼십 배가 넘는 인원을 상대했다는 말인가.”
“도왕이 있고 거기에 창천검호도 초월경에 올랐다고 들었으니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요.”
“음. 그렇군.”
누군가의 말을 들은 무인은 서신을 급히 확인하곤 말을 이었다.
“창천검호는 감락에 있었다고 합니다.”
무인의 보충 설명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결국 팽무성이 홀로 상대한 것이나 마찬가지.
“허어.”
“십대고수라 해도 쉬운 일이 아닌데. 도왕의 무공이 과소평가 되었나 봅니다.”
“검선께서 자리를 비우셔서 걱정이 컸는데 도왕이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군요.”
팽무성의 소식만으로 무거웠던 회의장의 분위기가 다소 가벼워졌다.
회의 내내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남궁구의 눈매도 살짝 풀어졌다.
‘의미 있는 성취를 보았나 보군.’
뒤를 맡길만한 후배가 점차 거리를 좁혀오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었다.
예상대로 흥문의 전투는 단 한 명의 부상, 사상자도 없는 대승이었고 다음은 감락의 전투에 대한 소식이었다.
“감락은 중반까지는 무림맹이 유리했지만, 그 이후로 전세가 바뀌어서 양측이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나는 것으로 전투가 일단락되었다고 합니다.”
감락의 보고에 잠시 뜨거웠던 분위기가 빠르게 가라앉았다.
“전세가 갑자기 뒤집힌 이유는?”
훅 치고 들어오는 남궁구의 질문에 무인은 서신의 다음 내용을 빠르게 훑어내며 답했다.
“사천 연합의 문파 중 마교의 끄나풀이 있었습니다. 청의문, 오형보, 진사문, 마운방입니다.
이들이 갑자기 분란을 일으키니 마교가 그 혼란을 이용했습니다.”
“흐음. 청의문은 사천에서 제법 이름을 날리는 곳이 아닌가.”
“진사문도 알기로 그 역사가 백 년이 넘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평소보다 주름이 깊게 파인 남궁구가 중얼거렸다.
“역시 요마종의 요녀들을 모두 솎아내지 못한 모양이군.”
팽무성이 요마군을 잡은 이후에 무림맹과 사도천에 정보를 보내서 요녀들을 색출하게 했다.
그렇다 한들 무림에 있는 수많은 문파를 모두 뒤지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요녀들은 그저 강하고 세가 큰 문파에만 녹아드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뿐만 아니라 정파로 정체를 감추고 있던 마도 문파도 확인되었습니다.”
등 뒤를 맡긴 동료들이 갑자기 능숙하게 마공을 구사하며 자신들을 기습하는 것은 정파 무인들에게 가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첩첩산중이로군.”
“사천에만 있을 리가 없을 터, 무림에 골고루 퍼져있다고 생각해야겠군요.”
“마교가 오랜 시간을 준비했군.”
승전의 기쁨도 잠시, 회의 중이던 간부들은 사천에서 올라온 정보를 토대로 새롭게 보완해야 할 점들을 안건으로 삼고 회의하기 시작했다.
전시체제로 전환된 지금 본성에는 각 문파에서 파견된 무인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거기에 천랑회를 이끌고 본성에 머무는 낭왕, 의룡단의 후기지수들을 갈구는 창성, 무림맹주인 검존까지.
무려 세 명의 십대고수가 무림맹 본성에 모여있는 상황이었다. 무림맹은 본격적으로 전력을 끌어올리며 전쟁을 대비하는 중이었다.
“각 성의 지부와 분타를 비상체제로 전환하고 아주 사소한 차이점이라도 가볍게 여기지 말고 보고하게 해라.”
“몇몇 타격대는 본성이 아닌 호북성 경계에 위치한 분타에 배치하여 곧바로 다른 성으로 지원을 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음. 아직 마교의 정확한 움직임을 파악해낼 수가 없으니.”
이에 회의에 참여하고 있던 개방의 호북지부장 한걸개가 입을 열었다.
“마교의 움직임이 제법 치밀하오. 곳곳에 깔린 개방도를 모조리 죽이고 전혀 상관없는
위치의 개방도도 없애버리니 정보도 늦고 위치를 상정하기가 어렵소.”
한걸개의 말에 먼저 입을 열었던 정검당주가 고개를 숙였다.
“개방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니 개의치 마십시오.”
“물론이오. 마교는 단순히 무력이 강한 것이 아니라 개방과 맹의 천안각이 힘을 합쳐도 쉽지 않은 정보력을 가지고 있소.
이러하니 정말 어려운 상대라고 강조하는 것이오.”
전쟁은 이제 개전에 불과했지만, 정보를 다루는 개방과 천안각. 지옥련과 만살회를 앞장세우는 마교의 마이각.
정보 조직들은 음지에서 벌써 치열한 정보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 정보전의 승패가 향후 있을 전쟁의 흐름을 크게 좌지우지할 것이 분명했다.
회의를 정리하던 남궁구는 서신을 들고 대기하고 있던 무인에게 물었다.
“중요한 것을 안 물어봤군. 사패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건가.”
“살아남은 점창파의 제자들과 호북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무인의 답에 간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를 들어보면 이번 사천의 개전에서 사패가 아주 커다란 역할을 했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사패가 만약 없었다면 사천의 일부가 불바다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
그런 사패가 무림맹으로 향하고 있다 하니 간부들은 든든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 * *
사천의 전투가 마무리되자 사패는 사천 지부에 몸을 맡기고 있던 점창파 제자들과 함께 호북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장문인을 비롯한 여러 제자가 희생을 자처했고 터전이었던 본산이 불탔다는 소식에 점창파 제자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어린 나이의 삼대 제자가 제일 많았고 배분이 올라갈수록 그 수가 적어졌다.
아무래도 배분이 높을수록 무공이 높았기에 본산에 남아 시간을 버는 역할을 자처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니 이대 제자와 일대 제자의 수는 훨씬 적었고 장로 배분에 해당하는 이는 제자들의 탈출을 지휘했던 광현검 대현 진인이 유일했다.
“대현 진인, 오늘 중경을 지났으니 이 숲에서 야영하시지요.”
중경(重慶)은 사천과 호북의 중간에 위치하는 지점이라 내일이면 호북의 경계를 넘을 수 있을 터였다.
어떤 생각에 잠겨있던 대현 진인은 팽무성의 말에 번쩍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어 하늘은 누렇고 붉은색으로 물드는 참이었다.
“그렇게 하도록 하세. 팽 대협.”
이렇게 시간이 흐르는지도 모른 채 걷기만 했음을 자각한 대현 진인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제자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야영할 것이다. 각자 맡은 바 임무대로 움직이되 혼자 다니지 말고 무조건 조를 지어서 움직이거라.”
“예. 장로님.”
대현 진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점창파 제자들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처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우왕좌왕하던 삼대 제자들도 이제 능숙하게 마른 땔감을 주워오거나
사숙들의 뒤를 따르며 혹시나 있을 물을 찾고 있었다.
그 덕분에 황혼의 무렵에는 여러 개의 모닥불에 흩어져 앉아서 식사할 수 있었다.
“대현 진인.”
“고맙네.”
대현 진인은 팽무성이 건네준 그릇의 온기를 느끼며 입을 열었다.
대현 진인은 죽을 한 숟가락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건량과 찹쌀, 육포를 섞어서 만든 죽이지만 그래도 제법 맛이 났다.
“자네들과 함께 가니 이리 안심이 되는군. 덕분에 사천 지부에 대한 부담도 덜었고, 고마우이.”
본래 점창파 제자들을 호북까지 호위할 타격대를 사천 지부에서 따로 붙여주려고 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난 마당에 자신들 때문에 전력이 빠진다고 하니 마음이 좋지 않던 대현 진인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호북으로 떠나야 하는 사패와 합류하면서 그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다.
팽무성은 그런 대현 진인의 옆모습을 슬쩍 바라보았다.
무천궁의 연회 때와 달리 대현 진인은 어딘가 무겁고 축 처진 분위기였다.
“요즘 생각이 많아지신 듯합니다. 점창파 때문에 그러십니까.”
팽무성의 물음에 대현 진인은 숨기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점창파의 앞날을 고민하고 있는데 정말 어렵군. 내가 아니라 장문 사형이 살아남으셔야 했는데.”
당장 아래의 제자들은 내일을 걱정하고 있으나 대현 진인은 좀 더 미래를 생각해야 했다.
점창파의 맥이 끊기지는 않았으나 이대로라면 조금씩 말라가며 쇠퇴할 가능성이 컸다.
대현 진인의 고민을 옆에서 능히 짐작하고 있던 팽무성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몇 번 말을 섞어보니 배분에 상관없이 다들 점창파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총명해 보이는 제자도 몇몇 보이더군요. 나중에 다른 제자들과 함께 얘기를 나누어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에 죽이 끓는 솥의 국자를 젓고 있는 남궁혁이 덧붙였다.
“게다가 무림맹에는 장문 제자인 하양 진인과 점창파 장로 몇 분이 파견 나와 계시지 않습니까.”
“음. 그렇지.”
후배들의 말을 듣던 대현 진인은 혼자 너무 과도하게 점창파의 미래를 짊어지려고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간단한 생각을 왜 못했을꼬. 그만큼 나도 시야가 좁혀있었다는 거겠지.’
점창파의 본산이 불태워지는 대참사는 평생 처음 겪는 일이니 대현 진인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고맙네. 평생을 도를 쌓았지만 자네들만 못하군.”
사패와 대현 진인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아영지 주변으로 새로운 기척이 느껴졌다.
낯선 기척이 점점 가까워 이를 느낀 이들이 늘어나자 야영지에는 일순 긴장이 감돌았다.
“이런 선객이 계셨군요.”
“아니, 자네는?”
멀리 꽂아 넣은 횃불 사이로 얼굴을 드러낸 중년인은 대현 진인도 잘 아는 사내였다.
“미호방주가 아닌가.”
“아. 대현 진인! 무사하셨군요.”
대현 진인이 일어나며 반가움을 표하자 눈을 가늘게 뜨고 있던 팽무성이 물었다.
“아시는 분이십니까?”
“그렇네. 운남의 정파 중 한 곳인데, 점창파와 제법 사이가 각별했지. 그런데 자네들은…”
대현 진인은 말끝을 흐리며 미호방주 뒤를 따르는 방도들을 살폈다.
다들 크고 작은 짐을 메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피난 가는 것처럼 보였다.
“예. 점창파와 무림맹 운남 지부가 쓰러지고 일부 마인들은 운남을 완전한 마도의 땅으로 복속 중입니다.
그래서 운남을 빠져나와 무림맹이 있는 호북으로 향하던 차였습니다.”
이에 대현 진인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허허. 점창파가 이리 쉽게 무너져서 이런 고생을 하는군. 자네들을 볼 면목이 없군.”
“아닙니다. 대현 진인. 저희도 늦게나마 야영을 하려 하는데 옆쪽에 자리를 잡아도 되겠습니까?”
“음. 그렇게 하시게.”
감사 인사를 표하던 미호방주가 남색 도복을 걸치고 있는 사패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이를 보아하니 이대 제자인 것 같은데 처음 보는 얼굴들이군요..”
“아아. 신경쓰지 말게. 속가 제자들이니.”
“그렇습니까.”
대현 진인의 말에 사패에 관심을 끊은 미호방주는 미호방의 야영지로 들어가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흠, 많이 피곤했던가. 미호방주가 얼굴을 보이질 않는군.”
대현 진인이 미호방 쪽의 야영지를 쳐다보며 말했지만 팽무성은 조용히 술잔을 들이킬 뿐이었다.
두두두두
시간이 지나며 달빛은 더욱 밝아졌다.
고요한 밤에 점창파 제자들은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고 있을 때였다.
“어?”
불침번을 서던 제자는 갑자기 땅이 울리는 것에 당혹성을 흘렸다.
땅의 울림은 점점 커졌고 이에 잠을 자고 있던 제자들도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야영지를 향해 몰려오는 기마.
말 위의 기수들의 실력이 보통이 아닌 듯 전열의 기수들이 들고 있는 횃불에 의지하여 수백의 기마가 야밤에도 거칠게 내달리고 있었다.
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던 미호방주도 슬쩍 천막에서 빠져나와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마치 이 때를 기다린 것처럼.
“좀 쉬고 가려고 했더니 많이도 모여있군.”
언월도를 한 손에 들고 있는 선두의 중년인은 야영지에 모인 이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그 중년인 뒤에는 하나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는데 그 깃발에는 황풍(黃風)이라는 글자가 수놓아져 있었다.
황풍철문.
사도칠문의 한 곳으로 언월도를 장기로 하는 문파였다. 그 황풍이라는 글자를 본 팽무성의 눈이 미묘하게 휘어졌다.
“어쩐지 묘하게 거슬리더니.”
팽무성은 황풍철문과 미호방을 번갈아 보며 피식 웃었다.
팽무성의 중얼거림에 황풍문주의 눈이 가늘어졌다.
“거기 소형제. 무슨 뜻이지?”
“닥쳐라, 마교의 끄나풀들이 여기는 왜 온 거냐.”
그 말에 황풍철문주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팽무성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또렷하여 듣지 못한 이가 없었다.
그러자 정사할 것 없이 모든 시선이 팽무성에게 쏠렸다.
점창파는 건재하다. (2)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