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169)
168화
의자에 편히 몸을 맡기고 있다가 돌연 앞으로 쏘아진 남궁구.
그와 동시에 책상 위에 올려놓았던 검을 잡고 발검을 펼쳐냈다.
앉아있다가 발검을 펼쳐내는 남궁구의 몸놀림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기 그지없었다.
꺼엉
호쾌하게 뻗은 발검이지만 묵직한 쇳소리와 함께 중간에 가로막혔다. 남궁혁의 검을 막아낸 것은 두 자루의 쌍도였다.
검과 쌍도는 잘게 떨리며 서로를 밀어내려 했지만, 양쪽 모두 쉽사리 밀리지 않았다.
남궁구가 자신의 발검을 막아낸 노인을 째려볼 때 밖에서 호천대 무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맹주님?”
그 와중에 남궁구는 노인의 무기와 기세를 가늠하고 있었다.
은연중에 느껴지는 희미한 기세와 분위기, 거기에 특이한 쌍도까지.
분명 살수이거늘, 검존인 자신을 긴장시킬 수 있는 이는 무림에 단 한 명뿐이었다.
남궁구는 쌍도를 교차하여 검을 막아낸 노인, 살왕을 보며 천천히 검을 내려놓았다.
“아무 일도 없다. 괜찮다.”
“알겠습니다. 맹주님.”
호천대원의 기척이 멀어지자 남궁구는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앉으시게.”
“고맙군.”
남궁구는 옆자리에 앉은 살왕을 바라봤다.
암살이 아니라 살왕이 정면에서 맞선다고 해도 쉬이 결판이 날 것 같지가 않았다.
살왕은 살수 출신의 십대고수.
내심 한계가 분명하리라 생각했던 남궁구는 살왕에 대한 평가를 정정해야 했다.
“강하군.”
“그런가.”
겨우 한 번 검을 맞댄 것이지만 남궁구는 살왕의 무공이 예상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성이에게 듣기를 천살택문이 만살회와 지옥련과 음지에서 전쟁을 벌였다고 들었네.”
“그랬었지. 그런데 여천 고원의 전투가 벌어진 이후로 거의 모습을 감추었네. 아예 활동을 멈춘 것처럼.”
“그때 사천연합에 의해 대부분의 살수가 죽임을 당했지.”
“그놈들은 잔챙이일세. 우두머리를 비롯한 특급살수들은 아예 여천 고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네.”
살왕의 말에 남궁구의 표정에 그늘이 서렸다. 그렇다면 지옥련과 만살회의 힘은 여전하다는 뜻이었다.
“무림맹에서 설치고 있는 살수들이 그놈들이군.”
중얼거리던 남궁구는 내심 궁금했는지 살왕에게 물었다.
“그런데 무성이와 무슨 관계이길래 천살택문이 무림맹을 이렇게까지 돕는 건가.”
남궁구의 입장에서는 궁금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몇만 금을 준다고 해도 천살택문이 연맹, 거대 문파와 손을 잡는 일은 천살택문이 개파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없었으니.
남궁구의 물음에 무표정하던 살왕이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살수에게 무슨 관계가 있겠나. 죽이고 죽는 것이지.”
애초에 살왕의 대답을 기대하지 않던 남궁구는 집무실의 창문 밖을 바라봤다.
오늘은 달빛도 약해서 사위가 짙은 어둠에 잠긴 밤이었다.
“지금 시작된 것인가.”
“맞네. 살수들의 밤이 시작되었지.”
* * *
무림맹 황학당
늦은 밤임에도 황학당에서는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요즘 상황이 심상치 않은 만큼 평소에 비해서 세심하게 살펴야 할 것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었다.
이에 황학당주는 낮에 미처 다 보지 못한 보고서를 읽어내는 중이었다.
“으음, 피곤하군.”
보고서에 잠시 눈을 뗀 황학당주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양쪽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무공을 익혀 체력이 일반인에 비해 월등한 무림인도 엄청난 양의 서류를 매일 밤 처리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눈을 감고 관자놀이의 욱신거림을 느낄 때 황학단주의 미간으로 단검이 쇄도하고 있었다.
소리 없이 덮쳐오는 위협을 감지한 황학당주.
쿠다당
등으로 의자를 밀쳐내고 낮은 마보 자세를 취한 황학당주는 곧바로 단검을 쥐고 떨어지는 살수를 눈에 담아냈다.
“핫!”
관자놀이를 누르던 왼손을 뻗어 단검을 튕겨내곤 우장을 뻗어 단검을 쥐고 있던 살수의 턱을 강타했다.
빠각
살수의 턱이 박살 날 때, 황학당주가 서 있던 뒤쪽의 바닥이 열리며 두 명의 살수가 연이어 튀어나왔다.
‘미끼였나.’
고개를 살짝 틀어 곁눈질로 뒤를 확인한 황학당주의 얼굴에 낭패감이 서렸다.
등 뒤에서 튀어나온 두 살수의 움직임은 이미 절명한 살수와는 전혀 다른 쾌속함을 보였다.
황학당주의 머릿속에는 반응이 한발 늦어 단검에 꿰뚫리는 상황이 그려졌다.
어느새 두 살수의 단검은 황학당주의 양 옆구리에 손가락 반 마디 정도를 남겨둔 상황이었다.
포기하지 않은 황학당주가 허리를 비틀며 각법을 펼치려 할 때, 두 살수의 앞쪽에 한 줄기 미세한 바람이 불었다.
스각
단검을 쥐고 있던 살수의 손이 허공에서 회전하며 피를 뿌릴 때, 느닷없이 팔이 잘린 살수들은 황학당주의 앞을 가로막는 흑의인을 쳐다봤다.
그 흑의인은 의복과 어울리지 않는 흰 가면을 쓰고 있었다.
“천살…”
그 가면을 확인한 살수들이 눈을 부릅뜨며 저도 모르게 입을 열려고 했다.
촤악
그전에 사선으로 교차한 쌍도가 두 살수의 목을 동시에 날려버렸다.
가면에 묻은 피를 쓱 닦은 흑의인은 자신을 경계하는 황학당주를 힐끗 보더니 모습을 감추었다.
“이것이 무슨…”
황학당주는 꿈을 꾸는 것인가 싶었지만 주변에 널브러진 시체는 현실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황학당주를 구해낸 감영(監影)이 전각 위에서 특이하게 생긴 호각을 꺼냈다.
감영이 호각을 힘껏 불어냈음에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이 호각의 소리는 오직 천살택문의 훈련을 받은 살수들만 들을 수 있었다.
무림맹에서는 천살택문의 호각소리가 고요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호각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왕. 감영이 해결했다고 합니다.”
“알았다.”
전각의 지붕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팽무성.
팽무성이 자리한 전각은 무림맹 본성의 중앙에 위치했다.
팽무성은 기감을 넓게 펼쳐내어 무림맹 본성 전체를 아우르는 중이었다.
무림맹 본성이기에 느껴지는 기척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가만히 멈춰있는 기척과 움직이는 기척.
무공을 익힌 자와 익히지 않은 자.
무공을 익힌 이들 중에서도 수백 가지 다양한 내공으로 그 종류가 제각각이었다.
팽무성은 기감을 극도로 끌어올려 수상한 기척을 잡아내고 있었다.
자연경에 오른 팽무성은 기감을 통해서 좀 더 세밀하게 기척을 살필 수 있게 되었다.
‘찾았다.’
확실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사람마다 외모가 다르듯이 느껴지는 기척마다 결의 다름이나 느낌을 읽을 수 있다고나 할까.
이를 통해 팽무성은 느껴지는 기척들을 걸러내고 또 걸러내어 수상한 기척을 잡아낼 수 있었다.
“칠(七) 구역의 동서쪽에 수상한 기척 셋이 느껴지는군.”
“알겠습니다.”
팽무성의 말을 들은 천살택문의 살수가 방향을 잡더니 호각을 불기 시작했다.
무림맹 본성의 곳곳에는 천살택문의 살수가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본성이 워낙 넓기도 했고 지옥련과 만살회에 비해 살수의 수가 적었기에 천살택문으로서는 대응하기가 힘들었다.
기껏해야 무림맹의 주요한 간부들에게 호위 형식을 배치하는 정도였다.
이에 팽무성은 천살택문의 십영을 기준으로 본성의 영역을 임의로 열 개로 나누어 살수들을 배치했다.
그리고 자신이 중앙에서 기감을 통해 수상한 기척이 느껴지면 살수들을 움직이는 식으로 운용하는 중이었다.
“일(一) 구역에서 수상한 기척 둘. 북쪽이다.”
한참 팽무성이 기척을 잡아내고 있을 때. 전각의 지붕으로 비오대의 무인이 올라왔다.
“팽 대협. 말씀하신 대로 객잔에 화탄을 설치하던 살수 다섯을 잡아냈습니다. 화탄은 모두 회수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막 연무장 쪽에 보낸 삼영대도 살수들과 맞닥뜨린 것 같습니다.”
천살택문의 살수들이 무차별 살행을 막아서고 있다면 비오대와 같은 잠행이 특기인 타격대는
무림맹 곳곳에 화탄을 숨기고 있는 살수들을 색출해내고 있었다.
“허어. 연무장 쪽에 있었군요.”
비오대주는 눈을 감은 채 기감으로 무림맹 본성을 훑고 있는 팽무성을 괴물 보듯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사람이 없는 구석에서 알짱거리는 기척들이 있다 하길래 반신반의했지만 가는 곳마다
수상한 짓을 하는 인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수상한 짓은 역시나 화탄을 비롯하여 독연과 같은 대량 살상을 꾀할 수 있는 암기들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것들이 다음날에 예고도 없이 터진다면 그 인명 피해는 심각할 터.
‘놀랍구나. 팽 대협이 아니라면 저번과 같은 참사가 벌어졌을 테지.’
맹주와 간부들이 모인 누각이 화탄에 잿더미가 되었다는 것은 무림맹도들이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만약 그 화탄에 맹주들과 간부들이 휩쓸렸다면 무림맹은 그대로 무너져내렸을 것이다.
이를 상상하면 지금도 비오대주는 어깨가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비오대주는 팽무성이 무림맹에 상주하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비오대주. 서쪽의 식량 창고 쪽에 경계를 서는 기척 말고 다른 기척이 느껴집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비오대주가 전각 지붕 아래로 훅 내려갔고 팽무성은 잠시 눈을 뜨고 무림맹 본성을 바라봤다.
지금까지는 순조롭게 지옥련과 만살회를 막아내고 있었다.
‘오늘 밤이 지나면 지옥련과 만살회도 당분간 몸을 사릴 터, 오늘 최대한 그 숫자를 줄여놓는다.’
전생에서는 무림맹 혼자의 힘으로 지옥련과 만살회의 암살 공세를 막아내느라 제법 곤욕을 치른 것으로 알고 있었다.
외부에서는 군단의 침공을 막아내야 하고 내부에서는 암살을 대비하느라 신경을 곤두서야 했으니
무림맹의 사기는 날이 갈수록 곤두박질쳤었다.
특히 삼전(三殿) 중의 하나인 문상전주의 암살은 무림맹에 있어 꽤나 치명적이었다.
하나 지금은 팽무성에 의해 무림맹과 천살택문이 힘을 합쳐 막아내고 있으니 지옥련과 만살회는
다소 허무할 정도로 힘을 못 쓰는 상황이었다.
다시 기척을 가늠하던 그때, 팽무성의 눈이 번쩍 떠졌다.
팽무성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주위를 경계하고 있던 살수가 뒤돌아봤다.
“소왕?”
“이건 내가 직접 나서야겠다.”
“알겠습니다.”
팽무성이 모습을 감추자 살수는 조용히 호각을 들어 팽무성의 부재를 알렸다.
이에 천살택문 살수들이 임의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십영을 비롯한 천살택문의 살수들은 어둠 속에 녹아든 지옥련과 만살회 살수들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추적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살법(殺法) 대결의 시작이었다.
* * *
문상전(文象展)
맹주전, 무상전(武象展)과 함께 무림맹을 지탱하는 대들보 중 하나였다.
무상전이 무림맹의 무력을 총괄한다면 문상전은 정보, 보급, 군략, 재정 등의 나머지 분야를 총괄하는 상급기관이었다.
무림맹에서도 손꼽히는 중요한 기관인 만큼 문상전의 경계는 맹주전 다음으로 삼엄했다.
“천랑회와 낭왕은 무천궁의 전선에 합류했지만 그래도 접전이라고 합니다.”
“창성께서 이끄시는 병력은 대충 두 시진 후면 전선에 도착하시는 건가.”
야밤임에도 문상전의 학사들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밤이 되어도 절대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이 무림맹에 몇 곳이 있는데 문상전도 이 중 하나였다.
무림맹 본성의 문상전인 만큼 중원 전체의 상황을 읽어내고 분석하려면 밤낮을 가릴 처지가 되지 못했다.
문상전주는 청강석 바닥에 커다랗게 조각된 중원 전도와 그 위에 놓인 깃발들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이 정도가 마교의 전력일 리는 없을 터, 나머지는 어디에 숨어있는 거지.’
콰아앙
쾅쾅
문상전주가 상념에 잠겨있을 때, 밖에 커다란 폭음이 울렸다.
살수들의 밤. (3)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