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17)
16화
길고 긴 채찍에 내공이 둘렸다.
쐐애액
콰자작
누르스름한 편기(鞭氣)를 두른 채찍.
휘어지며 뻗어질 때마다 날카로운 파공음이 울렸다.
적사의 손목이 흔들릴 때마다 채찍은 기이하게 꺾였다.
채찍이 마치 여덟 줄기로 나뉜 듯 보였다.
사방팔발 뻗어가는 모습은 마치 여러 마리의 뱀이 춤을 추는듯 했다.
‘어디서 이런 놈이 튀어나온 거지.’
처음부터 웃음을 머금었던 적사는 진지하게 팽무성을 상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채찍은 팽무성에게는 닿지 못했다.
적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채찍을 휘둘렀다.
흑적쌍사에게도 나뉜 역할이 있었다.
도를 휘둘러 채찍을 쳐낸 팽무성은 확신했다.
‘움직일 범위를 제한하고 있나.’
채찍은 얼핏 보면 허무하게 빗나가나 싶었다. 하지만 팽무성의 눈에는 정확히 보였다. 적사가 펼치는 초식의 절반은 팽무성이 아닌 그 주변을 향하고 있었다.
적사는 뱀의 혀.
사냥감이 도망가지 못하게 막고 움직임을 억류하는 것이다. 그래야 어금니가 사냥감을 씹을 테니 말이다.
팽무성의 사방으로 휘둘러지는 채찍.
마치 보이지 않는 뇌옥과 같았다.
팽무성은 그 간격을 넘지 않고 있었다.
조금만 넘으면 채찍에 살이 뜯길 테니 말이다.
흑사의 검이 팽무성의 미간으로 쇄도했다.
살기가 지극히 담긴 검영.
눈을 속이기 위한 허초는 없었다.
팽무성을 얕보는 것은 아니었다.
원래 흑사의 검법은 살기가 짙고 독하기로 유명했다.
적사의 채찍에 연동하여 팽무성이 도를 휘두르기 어려운 방향만 골라서 노렸다.
채채채챙
도와 검이 얽히며 서로를 쉴새없이 두들겼다.
적사는 뒤에서 채찍으로 도를 대신 받아내거나 빈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흑사는 팽무성을 계속 끝으로 몰아 등 뒤의 채찍에 대한 부담감을 각인시켰다.
슈슉
미간, 발끝, 어깨, 허벅지.
검이 꽂히는 곳이 중구난방이었다.
팽무성의 도를 어지럽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놈. 네놈 따위가 빠져나올 수 있겠느냐.’
안쪽으로는 검, 바깥으로는 채찍이 몰아쳤다.
눈을 현혹하는 채찍과 미친 듯 날뛰는 검.
이에 두려움을 느껴 뒤로 물러난다면 거기에서 끝이다.
팽무성은 오히려 나아가며 도를 휘둘렀다.
까앙
허벅지를 휘감으려는 채찍을 각법으로 걷어찼다.
그와 동시에 어깨를 찔러오는 검을 위로 쳐냈다.
그러면서 앞으로 일보 전진했다.
팽가의 무공에 후퇴란 없었다.
팽무성의 과감한 행동에 이를 본 적사가 감짝 놀랐다.
‘이놈이 정말 강호 초출인가?’
수십 년을 통해 합을 맞춘 협공에는 노련한 고수들도 쉽게 당해내지 못했다.
그런데 눈앞의 후기지수는 오히려 자신들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채찍이 튕겨나 엄한 곳을 때렸고 검은 파괴력에 밀려 정교함이 떨어지고 있었다.
적사는 채찍을 타고 올라오는 반탄감에 소리쳤다.
“흑사, 전력을 다해야 하네!”
여유가 사라진 적사의 외침.
검신을 타고 주홍빛의 검기가 솟아올랐다.
그 검기가 흑사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보란 듯이 팽무성도 도기를 뽑아냈다.
우웅
내공의 충돌에 싸움은 더 격렬해졌다.
대환단을 먹기 전이라면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꿇릴 것이 없었다.
쿠웅
내공이 실린 발구름.
패도적인 기세가 발산되며 주위의 대기가 무거워졌다.
“큭.”
흑적쌍사의 어깨가 들썩였다.
두 사람은 동시에 내공을 끌어올려 저항했다.
마치 공기에 천근의 무게가 생겨 짓누르는 것 같았다.
산왕군림보.
패왕진보의 무리가 더해져 산왕군림보의 힘은 배가 되었다.
흑적쌍사의 움직임은 둔해졌으나 팽무성의 도는 더욱 호쾌하고 매서워졌다.
“벌써 지친 건가?”
팽무성의 도발에 흑사의 손목에 힘줄이 올랐다.
카카캉
“얕보지 마라, 건방진 놈!”
흑사는 지닌 무공을 뽐내듯 검기와 검풍을 적절하게 섞어 몰아붙였다.
하지만 폭풍 같은 도격 앞에서는 평등했다.
검기와 검풍, 가릴 것 없이 찢겨나가고 있었다.
흑사의 검은 봄날의 허무한 꽃잎과 같았다.
모든 것을 베고 나아가는 철혈의 도가 그렇게 만들었다.
철혈맹호도에 내공이 실리자 본 위력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크흠.”
흑사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무게나 힘이 제대로 실린 것이 중도(重刀)인가 싶다가도 어느새 지근거리에 도달한 속도를 보면 쾌도(快刀)를 상대하는 것 같았다.
팽무성의 도는 단호했으며 망설임이 없었다.
가로막는 모든 것을 갈라버리고 쭉쭉 뻗어나갔다.
‘이것이 정녕 강호 초출의 도란 말인가.’
무공의 극에 도달했을 때 깨닫게 된다는 만류귀종.
만류귀종 이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강유상겸(剛柔相兼)의 묘리가 팽무성의 도에서 엿보였다.
자유자재로 도를 다루는 팽무성을 상대하는 흑사의 얼굴은 점점 거무죽죽해졌다.
앞을 막는 수십의 검영을 찢어내고 도를 밀어 넣었다.
흑사의 목을 베어오는 도.
채찍이 중간에 끼어들었으나 가볍게 베고 지나갔다.
적사가 벌어준 틈에 흑사는 검을 들어서 간신히 막아냈다.
꺼엉
바위도 가를만한 힘이 실린 도격.
도를 쳐낸 흑사는 이를 악물고 두 걸음 물러섰다.
도격를 막아낸 검이 잘게 떨렸다.
수십 초식의 공방. 정확히는 방어였다.
첫수의 공세를 제외하면 폭풍처럼 몰아치는 팽무성의 도를 막기에 급급했다.
보이지 않지만, 흑사의 손아귀는 이미 찢어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흑사의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었다.
방금의 공방에서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적사!”
싸움이 벌어지고 처음으로 흑사가 적사를 불렀다.
수십 년을 함께한 적사는 그 외침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쐐액
적사의 채찍이 거칠게 꿈틀거렸다.
이전과 달리 직접적으로 팽무성을 덮쳤다.
이는 흑사도 마찬가지였다.
흑적쌍사가 감당하기 힘든 상대를 만날 때를 대비해 만든 동귀어진의 절초였다.
채찍과 검이 만들어내는 무수한 그림자.
삼면을 틀어막으며 앞에 있는 것들을 삼켜내고 있었다.
마치 커다란 뱀이 아가리를 벌리는 듯하다.
제법 오랜 공을 들인 듯 파훼할 틈이 쉽게 보이지 않았다.
훌륭한 초식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종이를 찢는데 약한 곳을 찾으며 공을 들이며 찢는 사람이 있던가.
그냥 찢는다. 팽무성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흑적쌍사의 절초는 팽무성에게 종이나 다름없었다.
수직으로 그어지는 도.
객잔의 천장과 바닥을 잇는 붉은 도기.
뱀의 아가리를 찢어냈다.
쩌저적
“쿨럭.”
흑적쌍사의 입에서 핏물이 새어 나왔다.
억지로 초식이 파훼되면서 내공이 엉켜 내상을 입은 것이다.
그래도 표정은 밝았다. 팽무성의 도는 완전히 자신들의 초식을 꺾지 못했다.
흑적쌍사의 마음이 살짝 풀렸을 때.
쐐액
또다시 밀려온 충격.
흑사는 눈을 의심했다.
팽무성이 도를 휘두른 것은 한 번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도기가 쇄도했다.
두 번째 도기가 주춤하던 첫 번째 도기를 밀어냈다.
두 줄기의 도기는 하나가 되어 흑적쌍사의 절초를 완전히 갈라놓았다.
맹호쌍아(猛虎雙芽).
맹호쌍아의 초식은 흑적쌍사의 절초를 찢어내고도 여력이 남아 뒤쪽의 벽을 날려버렸다.
콰아아앙
뒤에서 불어온 폭풍에 흑적쌍사의 장포가 거침없이 펄럭였다.
“쉴 틈이 있나?”
폭음에 귀가 울린 흑사는 순간 팽무성의 신형을 놓쳤다.
빠각
팽무성의 왼발이 흑사의 오른발을 짓밟았다. 거대한 망치로 후려치는 느낌.
발뼈가 그대로 부서지고 흑사의 몸이 순간 휘청였다.
비스듬한 혈선을 그려내는 도.
가슴에서 피분수가 올랐다.
흑사는 그대로 옆으로 기울어졌다.
“흑사!”
적사는 격분했지만 금방 냉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별개로 적사도 점점 뒤로 밀리고 있었다.
도가 채찍을 베어내기를 네 차례.
팔뚝 길이로 변한 채찍은 더는 채찍이라 할 수 없었다.
“잠깐.”
적사가 급히 입을 열었지만 팽무성의 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적사는 짧아진 채찍 대신에 팔을 들어서 막으려다 괜히 팔도 함께 날아갔다.
“등장만 요란하지 별거 없군.”
쓰러진 흑적쌍사는 어떻게든 일어나보려 했으나 압력에 몸을 가누질 못했다.
꿈틀거릴수록 바닥에는 피만 흥건해질 뿐이었다.
팽무성이 앞으로 걸음을 옮기자 미약하게 대기가 울렸다.
쓰러져있던 적사는 기겁해서 소리쳤다.
“그만둬라, 우리가 잘못되면 사도천에 네놈을 가만히 둘 것 같으냐? 일개 후기지수가 거대세력을 감당할 수 있느냔 말이다.”
적사의 발악에 팽무성의 입가가 비틀어졌다.
“정말 그럴까? 사도천이 그렇게 의리가 있는 곳인 줄은 몰랐군.”
팽무성은 흑적쌍사를 번갈아 보았다.
“그런데 스스로 생각은 해봤나. 고작 네놈들을 위해 그 거대세력이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일지 말이야.”
흑적쌍사는 반박하지 못했다.
팽무성은 바닥에 떨어진 만두 중에 그나마 모양이 성한 두 개를 골라 들었다.
그러고는 흑적쌍사의 입에 하나씩 넣어주었다. 다음에는 술병을 들어 입에 술을 부어 넣었다.
팽무성의 기행에 의아해하던 흑적쌍사는 뒤이어 들려오는 말에 죽음을 직감했다.
“꼭꼭 씹어라, 배불리 먹고 죽어야 여한은 없을 테니.”
싸우기 전에 적사가 팽무성에게 한 말이었다. 팽무성은 잊지 않고 되돌려 줬다.
우웅
대기가 떨었다.
압력은 더 강해져 손가락조차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흑적쌍사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며 팽무성은 조용히 도를 들었다.
흑적쌍사를 보는 팽무성의 눈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먹잇감을 보는 호랑이의 눈이었다.
객잔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있었다.
검기가 사방으로 난무하는데 무너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주인장, 계십니까.”
팽무성이 소리치자 안쪽에 숨어 있던 점소이와 객잔 주인이 급히 튀어나왔다.
두 사람은 두려운 눈으로 팽무성을 쳐다보았다.
이에 팽무성은 먼저 소개를 했다.
“하북팽가의 사공자, 팽무성입니다.”
객잔주인의 얼굴이 펴졌다. 이름난 정파이니 대놓고 해코지를 하지는 않겠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죄송합니다, 폐를 끼쳤습니다.”
팽무성이 고개 숙여 사과하자 객잔 주인은 허둥대며 말했다.
“아닙니다요, 나으리. 괜찮습니다.”
그러면서도 객잔 주인은 난장판이 된 객잔을 파악하는데 눈이 돌아가고 있었다.
대충 수리 비용의 견적을 내던 객잔 주인의 얼굴이 노래졌다.
팽무성은 소매에서 작은 전낭을 꺼냈다.
“이 정도면 객잔을 수리하는데 부족하지는 않을 겁니다.”
객잔 주인은 전낭을 열어 내용물을 살폈다.
“허어. 이렇게나 많이.”
“대신 저 시체들의 처리를 부탁합니다.”
팽무성의 말에 객잔 주인은 흑적쌍사의 시체를 보았다.
시체에는 익숙한 듯 피하지 않고 쳐다보고 있었다. 조금 눈을 찌푸릴 뿐이었다.
실제로 객잔을 운영하다 보면 이런 일은 빈번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객잔인 만큼 사고도 잦았다.
객잔을 운영하다 보면 자연스레 피와 죽음에 익숙해졌다. 그러지 않고서는 객잔의 운영이 불가능했다.
객잔 주인도 강호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
“맡겨 주십쇼, 나으리.”
객잔 주인은 두둑이 값을 치러주는 팽무성에게 깊이 허리를 숙였다.
팽무성은 흑적쌍사의 시신에는 일절 눈길조차 주지 않고 객잔을 떠났다.
* * *
산서의 태원.
양모직물과 도자기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현재는 산서의 최대 상업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대로에는 좌판을 벌이고 장사하는 이들이 저마다 호객행위를 벌이고 있었고 손님들은 이에 홀려 물건을 구경하기 바빴다.
“이곳이 금왕의 고향인가.”
팽무성은 소매 안의 반합을 만지작거렸다.
반합에서는 기이하게도 냉기가 느껴졌다.
오월빙화를 넣어 놓은 반합이었다.
정확히는 미래에 금왕이라 불리는 이가 태원에 자리 잡고 있었다. 팽무성은 금왕을 얻기 위해 태원까지 왔다.
지금의 시간대라면 제 능력을 펼치기는커녕 상당히 고초를 겪고 있을 것이다.
팽무성은 이를 도와줄 생각이었다.
무림 문파라 하여 무공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돈은 많은 영향을 끼쳤다.
좋은 식단과 의복, 영약, 무기.
풍부한 지원은 무인을 더 빠르고 강하게 키워냈다.
대문파 일수록 그 자금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미래의 하북팽가를 생각하면 풍부한 자금력은 필수였다.
가세가 조금씩 기울고 있는 하북팽가는 세력권이 줄어들고 있었다. 그에 따라 사업체의 수도 줄어드니 자금난을 겪는다.
이는 또다시 가세가 기울어지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악순환이 이어지는 상황에 금왕의 상재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팽무성은 좌판에서 팔던 꼬치구이를 씹으며 걸어갔다. 팽무성은 바로 금적상단으로 향하지 않았다.
그전에 방문할 곳이 있었다.
“제법 크네.”
팽무성은 꼬치를 먹고 남은 나무 꼬챙이를 입으로 씹으며 중얼거렸다. 앞에 있는 전각의 현판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선향루(選香樓)
말재주가 없으니 몸으로 설득한다. (1)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