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173)
172화
평야를 가득 채운 갈대가 무정한 발걸음에 밟히며 사라졌다.
그 빈자리를 갈대 대신에 마인들이 우후죽순으로 채워내기 시작했다.
검은 무복에 팔과 어깨에 붉은 사슬을 둘러메고 있는 마인들. 마라단(魔羅團).
촤륵
철컥
마라단이 걸을 때마다 들려오는 사슬이 부딪치는 소리.
이 묘한 쇳소리가 평야에 묘한 긴장감을 끌어내고 있었다.
저들의 정체를 알아차린 팽무성의 눈썹이 살짝 떨렸다.
‘마라단. 귀찮은 놈들이 튀어나왔군.’
저들은 마교 내에서도 특수한 타격대.
저 많은 인원이 오로지 한 명의 절대고수를 상대하기 위해 지독한 훈련을 겪었다.
마라단의 혈랑마라진(血?魔羅陣)은 애초에 무위가 아득한 절대고수를 붙잡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만들어진 진법.
마라단 자체가 절대고수를 붙잡기 위한 하나의 살아있는 그물이었다.
전생에도 육백의 마라단이 염왕을 상대로 무려 이틀이나 묶어놓았던 일화는 유명하지 않았던가.
염왕의 황화열공(黃化熱功)이 다수를 상대하는데 최적화된 것을 감안하면 마라단의 능력은 무서울 정도.
팽무성은 오른쪽의 남궁혁을 쳐다보았다. 아마 마라단은 초월경에 오른 남궁혁을 묶어놓기 위해 멸세마왕이 데려온 것일 터.
“역시 사람이 많이 모이니 좁군. 따라오게.”
멸세마왕이 대답을 듣지 않고 먼저 몸을 날리자 팽무성은 사패와 팽호대를 쳐다봤다.
“팽 아우, 여기는 걱정 말게.”
“저희가 사패 분들을 돕고 있겠습니다.”
남궁혁과 철호의 든든한 대답에 팽무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팽무성은 일행들에게 전음으로 짤막하게 마라단의 정보를 알려주고 멸세마왕의 뒤를 따랐다.
먼저 출발하여 상당히 거리가 벌어진 멸세마왕이었지만, 팽무성은 이를 빠르게 따라잡았다.
순식간에 좁혀지는 격차에도 멸세마왕은 고요히 전방을 응시하며 뻗어 나갔다.
멸세마왕이 멈춘 장소는 근처의 호숫가.
분위기가 고즈넉하고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 가만히 앉아 낚시하기에 딱 알맞은 장소였다.
어느새 나란히 선 팽무성과 멸세마왕은 따로 말을 맞추지도 않았는데 호숫가를 따라 걷고 있었다.
그 모습은 목숨을 걸고 생사결을 벌일 사이로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묵묵히 걷던 두 사내 중 멸세마왕이 먼저 주변의 갈대를 쓱 어루만지며 물었다.
“짧은 시간은 아니나, 그렇다고 긴 시간도 아니거늘. 그때와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군.”
멸세마왕은 이전과 달리 팽무성의 기세가 전혀 느껴지지 않은 것에 반박귀진의 경지에 달했음을 직감했다.
“마교가 이렇게 강하니 나도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더 빨리 강해질 수밖에 없소.”
“그런가.”
팽무성은 문득 돌을 줍더니 호수를 향해 던졌다. 던져진 돌에 의해 잔잔했던 호수의 표면에는 파문이 일었다.
“지금의 교주는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맞소?”
팽무성이 호수에 일어난 파문을 보며 묻자 멸세마왕도 흔들리는 호수를 보며 답했다.
“맞네. 현 교주께서 전 교주를 집어삼켰지.”
멸세마왕의 답에 팽무성은 이미 예상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타고난 무재를 지닌 놈이었다. 교주 정도 되는 거인을 먹어치웠다면 지금 절대경에 올랐다고 해도 무방한 일.
멸세마왕은 생각에 잠긴 팽무성을 보며 한쪽 눈을 가늘게 떴다.
‘도왕도 교주를 신경 쓰고 있구나.’
멸세마왕은 간혹 천마휘가 왜 그리 팽무성을 신경 쓰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단순히 호적수를 대하는 느낌과는 사뭇 거리가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리 팽무성을 보니 천마휘가 유별난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전쟁의 주인공이 마신과 삼천이 아닐 수도 있겠군.’
이 대화를 끝으로 두 사내는 그저 호수를 묵묵히 바라봤다.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콰아아앙
평야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폭음.
일순 강한 바람이 밀려왔고 이에 호수의 파문도 더욱 커지고 빠르게 퍼져가고 있었다.
“우리도 시작합시다.”
“그러세, 검선이 사라져서 아쉬웠는데 자네가 그 허무함을 싹 가시게 해주는군.”
팽무성과 멸세마왕은 잠시 눈을 마주하더니 동시에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방금까지 잔잔히 대화를 나눈 것이 무색하게 적아도와 검은 매정하게 허공를 갈랐다.
쩌어엉
적아도와 검의 충돌.
주변의 갈대가 땅을 향해 깊이 누웠고 호수는 들썩이며 작은 파도를 일으켰다.
검을 좌측으로 밀어낸 적아도가 돌연 솟구치더니 그대로 멸세마왕의 머리를 쪼개려 들었다.
끼아아아
귀곡성을 터트리는 검이 눕혀 내리꽂히는 도격을 막아낸 멸세마왕은 왼손의 검결지를 팽무성의 허리를 향해 찔러넣었다.
검은 검기가 바늘처럼 분출되었으나 어느새 하단으로 곡선을 그리는 적아도에 가로막혔다.
그 유려한 적아도의 투로에 멸세마왕의 눈이 가늘어졌다. 순간이지만 적아도의 움직임을 놓친 탓이었다.
검기를 갈라낸 적아도는 그대로 솟구치며 멸세마왕의 가슴을 베어냈다.
귀연보를 밟아 흐릿한 잔상을 남긴 멸세마왕은 그대로 검을 찔러서 응수했다.
하단에서 올려친 적아도에 멸세마왕의 검이 사선으로 튕겨졌다.
멸세마왕은 파지를 바꿔 튕겨 나간 검을 역수로 잡아 그대로 팽무성의 어깨로 찔러넣었다.
그 앞으로 적아도가 수직으로 휘둘러지고 있었다.
콰아아
대기가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멸세마왕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야 했다.
그럼에도 멸세마왕은 아랑곳하지 않고 흑요란란을 펼쳐냈다.
검은 난초와 같은 거미가 시야를 가득 가려냈음에도 이 초식을 논검에서 경험한 팽무성은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갈대밭이 사라지고 사방에 검은 난초가 대신했으나 팽무성은 간결하게 붉은 선을 그려냈다.
논검 때와 달리 팽무성의 대처는 그저 단순했다.
수평으로 그어지는 긴 선은 번개 줄기처럼 사방으로 나뉘더니 흑요란란의 초식을 그대로 찢어내 버렸다.
평범한 횡베기로 혹요란란을 파훼하는 팽무성의 도격을 보던 멸세마왕이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경계를 넘어 도달했는가.’
팽무성을 처음 볼 때부터 멸세마왕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경계에 서 있는 자신과 달리 팽무성은 이미 넘어서서 다음 경지를 밟고 있다는 것을.
본래 팽무성의 사지가 돼야 했을 이 자리가 자신의 사지가 될지도 모름에도 멸세마왕은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자신의 검을 온전히 받아낼 수 있는 것은 교주나 마신들. 그러나 그들은 겨루고 싶다 하여 겨룰 수 있는 상대들이 아니었다.
멸세마왕은 억눌러 왔던 모든 감정을 몸과 검에 풀어냈다.
“크하하하하! 마왕들도 풀지 못했던 노부의 갈증을 자네가 풀어주는가!”
멸세마왕의 광소에 주변의 갈대들이 뜯겨 나가며 사방으로 흩날렸다.
끼아아아아악
그 기분이 검에도 깃든 것일까.
멸세마왕의 검이 그 어느 때보다 절규하며 귀곡성을 터트리고 있었다.
콰르릉
뇌성을 토해내는 적아도의 투로는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이를 받아내는 멸세마왕은 논검에서 경험했던 여러 초식이 펼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초식에서 벗어난 건가.”
절대경에 오른 팽무성은 서서히 오호단문도의 초식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몇 수 겨루지 않았음에도 멸세마왕은 이를 바로 알아차렸다.
멸세마왕 자신도 귀곡마검을 비워내기 위해서 공을 들이고 있었으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오.”
적아도와 검이 여러 번 붙었다가 떨어지길 백여 번. 그때도 난세마왕의 광소에 흩날렸던 갈대들은 아직도 떨어지는 중이었다.
줄기차게 뻗어오는 검은 검기를 사선으로 베어낸 팽무성은 그대로 몸을 회전시키며 수평으로 넓게 베어냈다.
검신을 비틀어 팽무성의 강타를 막아낸 멸세마왕은 힘을 완전히 흘려내지 못하고 옆으로 주춤 밀려나야 했다.
그런 멸세마왕의 앞으로 다섯 가닥의 도격이 각 방향을 점하고 쇄도했다.
순식간에 납검한 멸세마왕은 다섯 도격의 중심을 향해 비야귀를 펼치며 달려들었다.
쏴앙
비야귀의 발검이 뿜어져 도격의 중심부를 꿰뚫으려 했으나 그 찰나의 순간에 적아도의 투로가 바뀌었다.
꺼엉
비야귀가 도격에 막힘과 동시에 곧게 뻗던 다섯 갈래의 도격이 일제히 휘어지며 멸세마왕의 전신을 감싸 들려 했다.
그 모습이 마치 오호굉뢰가 펼쳐지는 것을 보는 듯했다. 팽무성이 가볍게 뻗어내는
도격에도 완전치는 않으나 초식의 의(意)가 실리고 있었다.
이에 멸세마왕은 급히 검을 좌우로 크게 내질러 흑귀야행을 펼쳐냈다.
사방으로 터지듯 뿜어지는 검기가 밀려드는 도격을 막아내려 했으나 도리어 갈라지는 것은 흑귀야행의 검기였다.
그 사이 몸을 빼낸 멸세마왕의 장삼은 잘게 찢기고 있었다.
마기가 집약되어 검게 물든 검을 멸세마왕은 검을 수직으로 그어냈다.
쿠콰카카카
검로에 겹쳐졌던 갈대밭이 양쪽으로 쩍 입을 벌렸고 그 끝에 닿았던 호수의 물은 분수처럼 터져서 주위에 물방울을 뿌리고 있었다.
방금의 일 검.
멸세마왕이 절대경에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는 것을 팽무성은 알아차렸다.
‘적이지만 존경할 만한 사내다.’
팽무성의 적아도가 짙은 적광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팽무성과 멸세마왕 사이로 떨어지는 물방울.
물방울이 느릿하게 떨어지는 사이에 서로에게 달려드는 팽무성과 멸세마왕만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까가가가강
적아도와 검이 쉴새 없이 맞부딪치며 떨어지던 물방울은 수십 갈래로 아주 잘게 흩어져 허공에서 사라졌다.
* * *
촤르륵
남궁혁의 검이 사선으로 뻗자 그 방향으로 여섯 가닥의 사슬이 일제히 날아와 검신을 휘감았다.
반 호흡 늦게 좌측에서도 사슬이 날아오자 남궁혁은 장법을 뻗어내 사슬을 튕겨냈다.
허나 그것은 마라단의 노림수.
장법으로 사슬이 튕겨내는 그 순간, 마라단은 귀신같이 그 찰나의 공백을 노리고 사슬을 뻗어냈다.
십여 개의 사슬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남궁혁을 감싸는데 순식간에 주위로 하나의 그물이 만들어졌다.
빠져나갈 틈은 보이지 않았고 모든 방향을 완벽하게 점하고 있었다.
그 핏빛 그물이 남궁혁을 조여오는 순간,
꺼거거겅
연달아 몰아치는 남궁혁의 무거운 검격에 그물이 잠시 흔들렸다.
다시 간격을 날린 남궁혁은 사슬을 벗어나 혈랑마라진을 펼치는 마라단을 향해 몸을 날리려 했다.
그 순간 수십 줄기의 사슬이 겹쳐지며 하나의 벽을 만들어 남궁혁을 막아냈다.
쿵
그 틈에 혈랑마라진을 펼치고 있는 마라단 전체가 일제히 북쪽으로 다섯 보 물러났다.
그렇게 남궁혁과 혈랑마라진의 간격은 처음과 동일해졌고 마라단은 다시금 진법을 전개했다.
“이 정도일 줄이야.”
미리 팽무성에게 언질을 듣기는 했지만 이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일전에 한 몸처럼 움직이던 의룡단이나 현무단도 마라단에 한 수 처질 것 같았다.
마라단은 혈랑마라진 하나를 완벽하게 펼치기 위해 살아온 이들 같았다.
남궁혁의 중얼거림을 들은 마라단 이번대주는 입꼬리를 올렸다.
‘뭐 저리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마라단은 애초에 절대고수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타격대 중 하나인 만큼 그만큼 훈련도 처절했다.
입단하고 삼 년 동안은 천마신교의 노고수들이나 장로들을 상대로 진법을 수련해야 했고 그 이후는 종주들이나 마왕들을 상대로 훈련을 강행했다.
그 맹훈련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비로소 마라단의 무복과 사슬을 걸치고 무림에 나온 것이었다.
‘제법 잘 버티는군.’
이번대주가 고개를 까닥이자 혈랑마라진으 전개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촤르륵
이것이 전력이 아니었는지 남궁혁을 덮쳐오는 사슬들이 더욱 촘촘하고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푸푸푹
“크흠.”
땅속을 뚫고 튀어나오는 여섯 방향의 사슬을 일제히 쳐낸 남궁혁이 슬쩍 혈랑마라진 너머를 바라봤다.
그 너머에서는 무각과 당화련, 팽호대가 백 명의 마라단과 충돌하고 있었다.
팽호대를 상대하는 마라단 육번대는 혈랑마라진이 아닌 심원마라진(沁苑魔羅陣)을 펼쳐서 이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임무 대상이 호위 병력을 데리고 다닐 상황도 염두하고 훈련을 받은 마라단이다.
그렇기에 팽호대를 상대하는 마라단의 움직임을 능숙했다.
마라단 육번대는 열 명이 조를 이루어 원을 만들고 만들어진 열 개의 원으로 팽호대와 무각, 당화련을 둘러싸고 맹공을 퍼붓고 있었다.
촤차작
“대주! 이놈들 움직임이 대단한데.”
머리를 향해 휘어지는 사슬을 쳐낸 덕삼은 전방에서 여러 줄기의 사슬을 연달아 쳐내고 있는 철호를 향해 소리쳤다.
까앙
덕삼의 외침을 들으며 하단과 상단으로 동시에 쓸어오는 사슬을 쳐낸 철호는 심원마라진을 펼치는 마라단의 움직임을 눈에 담았다.
‘연계가 팽호대보다 뛰어나다.’
철호는 팽호대와 함께 싸우고 있는 무각과 당화련을 바라봤다.
이쪽의 가장 강한 전력, 저 두 사람을 통해 저 진법을 무너트려야 했다.
철호는 두 사람에게 전음을 보냈다.
-팽호대가 팽호진을 펼쳐서 어떻게든 마라단의 진을 잠시라도 흔들어 보겠습니다. 뒤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지금까지 몇 번이고 심원마라진을 무너트리려 했지만, 마라단은 빠른 속도로 진을 수복하며 도리어 팽호대를 몰아치는 중이었다.
이대로 수동적으로 싸우면 승산이 없었다. 다소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전투의 양상을 바꿔내야만 했다.
-맡겨주세요.
-물론! 이번에야말로 다 부숴버리겠소.
두 사람의 전음을 들은 철호는 팽호대를 향해 소리쳤다.
“개진!”
단 두 글자였지만 팽호대는 사슬을 쳐내는 와중에도 진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보통 타격대가 여러 상황에 대비하여 두 세 가지의 진을 수련하는 것에 비해 팽호대는 오로지 하나의 진, 팽호진을 수련해온 탓이었다.
“돌격용으로 만들어진 진인가.”
마라단 육번대주는 노골적인 팽호진의 형태를 보고 웃음을 자아냈다.
“어디 들어와 봐라.”
“팽호대 돌격!”
팽호진을 구축한 팽호대가 마라단을 향해 거침없이 돌진했다.
마라(魔羅). (2)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