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178)
177화
고마단의 머릿수는 어림잡아 팽호대의 수십 배는 되어 보였다.
이런 다수가 싸우는 전장에서는 단순히 압도적인 숫자가 주는 위압감도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다.
종횡으로 열을 유지한 채 전진하는 고마단은 꿀렁이는 검은 물결을 연상시켰다.
이를 향해 스스로 달려들어야 하는 팽호대는 당연히 압박감을 느끼기 마련이었다.
그럼에도 팽호대의 그 누구도 발걸음이 느려지거나 망설임이 실린 이들은 없었다.
팽호대원이 서로의 등을 지켜주고 있을뿐더러 제일 뒤에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 같은 팽무성이 든든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선명한 투기를 드러내며 서슴없이 거리를 좁히는 팽호대를 보며 고마단의 마인들은 코웃음을 쳤다.
“정말 저대로 달려들 셈인가?”
“정파 무공이 주화입마에 들 확률이 적다더니 다 개소리였군. 미친놈들뿐인데.”
고마단의 눈에 팽호대는 뭣도 모르고 목숨을 불사르기 위해 달려드는 불나방으로 보일 뿐이었다.
고마단과 팽호대의 간격이 이십여 보로 좁혀졌을 때, 전방에 있던 철호는 소리쳤다.
“발도!”
이에 팽호대 전원이 일제히 도를 뽑아들었고 전열에 있던 팽호대원은 훈련한 대로 발도와 동시에 도기를 쏟아냈다.
“막아!”
이에 비웃듯이 구경하던 마인들도 급히 병장기를 뽑으며 대응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전열이 흐트러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흐트러지며 생긴 고마단의 틈을 철호가 비집고 들어가며 맹렬히 도를 휘둘렀다.
촤자작
간결하고 투박한 투로에도 마인들은 쉽사리 막아내지 못하고 피를 뿌리고 있었다.
철호를 막기 위해 찔러오는 세 자루의 검에 철호는 더 강한 도격으로 응수했다.
허리의 회전을 실어 수평으로 그려진 도격에 검이 수수깡처럼 손쉽게 부러졌다.
검이 부러져 당황한 마인들은 이어서 철호가 날린 도풍에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그러면서 생긴 공백에 철호는 서슴없이 뛰어들어 길을 만들어냈다.
“이놈들 강합니다!”
“당황하지 마라! 우리에 비하면 상대는 소수다!”
마인들이 사방에서 몰려옴에도 철호는 차분히 도를 휘둘러 베어내며 전진할 뿐이었다.
십성의 성취에 달한 철호의 철혈맹호도는 이제 어지간한 무인들은 막기 힘들 정도의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철호의 도를 눈여겨보던 팽무성은 입꼬리를 올렸다.
‘조만간 십일성에 오르겠군.’
십일성에 오르면 철혈맹호도의 극성을 한 단계 앞둔 상황.
하북팽가에서 팽호대를 훈련시키며 자신의 성취도 철저하게 관리한 철호의 능력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철호. 정말 어울리는 모습이다.’
전생에서는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한 철호가 지금은 이렇게 전장에서 마인들을 거침없이 휩쓸고 있었다.
철호를 중심으로 일조와 이조가 양쪽 날개를 펴듯이 좌우로 퍼지며 길을 넓혔고 삼조와 사조가 그 뒤를 두텁게 받혔다.
“양쪽으로 조여!”
“일번대는 후미를 노려라!”
팽호대의 예상 이상의 무위에 고마단은 잠시 당황했지만, 단주를 비롯한 대주들이 명령을 내리자 고마단 전체가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에 팽호대가 나아가는 속도가 조금씩 느려졌다.
“이제 시작인가.”
팽호대뿐만 아니라 고마단의 움직임 전체를 주시하고 있던 팽무성은 자신의 뒤로 몰려오는 마인들을 쳐다봤다.
고마단은 수적 우위를 이용해 팽호대를 전방위에서 압살할 생각이었다. 제일 쉬운 방법이면서 효과적인 전술이었다.
‘멍청한 놈들. 길을 뚫는 것에 바빠서 후방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군.’
마인들이 앞만 보고 싸우는 팽호대의 등을 비웃으며 거리를 좁힐 때, 팽무성의 오른손이 검결지를 취했다.
땅을 가볍게 튕기며 허공에서 몸을 돌린 팽무성은 그대로 검결지를 좌우로 길게 그어냈다.
푸학
팽호대의 뒤를 덮치려던 마인들 십여 명의 목이 단숨에 날아갔다.
바로 앞에 있던 이의 목이 갑자기 몸과 분리되는 광경에 마인들이 눈이 서서히 커졌다.
“이런 미친.”
뒤에서 이를 보고 있던 일번대주가 욕을 내뱉었다. 일번대주의 눈은 팽무성이 허리춤에 차고 있는 적아도에 향했다.
‘도를 뽑지 않고 그냥 손짓으로 베어낸다고?’
똑같은 무복을 입고 팽호대와 같이 이동하길래 팽호대의 한 명인 줄 알았더니 보이는 무공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잘 보니 무복은 똑같지만, 손짓으로 마인들을 베어낸 사내의 무복에는 팽호(彭虎)라는 글씨가 없었다.
“도왕!”
일번대주가 놀라서 소리치자 이를 들은 마인들의 걸음이 멈칫거렸다.
요새 천마신교에 마인들에게 있어서 도왕은 마주치면 그냥 순교해야 하는 죽음의 대명사였다.
“단주께 말씀드려서 난세마왕께 알려야…”
일번대주는 어느새 자신의 왼쪽 가슴에서 힘차게 솟구치는 핏줄기를 보며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지풍에 심장을 관통당한 일번대주는 그대로 허물어졌다.
이어서 휘저어진 팽무성의 손짓에 이십여 명 정도의 목숨이 단번에 증발해버렸다.
팽무성의 무위에 압도당한 마인들은 더는 팽호대를 쫓지 못했고 팽무성은 다시 등을 돌려 팽호대와 걸음을 같이했다.
그 사이 팽호대는 쭉쭉 뻗어나가 대열의 중심에 있는 고마단주가 있는 위치까지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크게 뒤처지는 이들은 없네.’
팽무성은 팽호대원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살폈다.
여러 전장 중에서도 지금과 같이 다수의 적을 상대로 돌파하며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잠깐 집중이 흐트러지는 것이 전체의 침몰로 이어질 수 있었고 체력도 보다 빠르게 소모했다.
그럼에도 팽호대는 초반과 비슷한 상태로 적들을 베어내며 진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로 팽무성은 팽호대가 그동안 흘린 피와 땀의 어느 정도인지 대충 가늠이 갔다.
‘훌륭하지만 그래도 아직 부족하다.’
팽무성은 계속해서 앞으로 향하는 팽호대의 등을 보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잘하고 있다. 이대로 마인들의 머리를 친다.”
내공이 실린 팽무성의 목소리는 팽호대 전원의 귀에 제대로 박혀 들었다.
“코앞이다! 힘을 내라!”
“와아아!”
적절한 때에 이루어진 팽무성의 칭찬은 팽호대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이에 팽호대의 도가 다시 빨라지고 강렬한 도풍을 쏟아내고 있었다.
더욱 선명해진 투기는 고마단의 분위기를 뒤흔들고 있었다. 저 멀리서도 느껴지는 열기에 고마단주는 미간을 구겼다.
“대체 저놈들을 왜 못 막는 것이냐! 일번대주는 뭘 하길래, 아직도 뒤를 치지 못한 것이고!”
고마단주의 호통에 주변에 연락을 담당하던 마인들은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내가 직접 나설 것이다. 각 대주들도 앞으로 직접 나서라고 전해라.”
“존명!”
고마단주의 명령에 고마단의 움직임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후열에서 명령만 내리던 단주와 대주들이 자신의 정예들을 이끌고 직접 팽호대를 막기 위해 나서고 있는 탓이었다.
꺼엉
고마단과 맞선 이후로 계속 나아가던 철호의 발이 처음으로 뒤로 밀려났다.
생각보다 무거운 검격에 철호도 자세를 다시 잡고 고마단주를 경계했다.
“마음껏 날뛰는군. 실력으로 보아하니 그대가 이들의 우두머리인가.”
“팽호대주. 철호다.”
“고마단주다. 단주인 내가 직접 나선 것을 영광으로 알아라.”
고마단주와 철호가 맞붙기 시작했고 팽호대의 각 조장들도 이어서 모습을 드러낸 대주들과 생사결을 시작했다.
각 위치에서 교착이 일어나며 팽호대의 전진이 멈춘 상황. 자연스레 팽호대는 마인들에게 둘러싸이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팽호대는 자연스레 서로의 등을 맞대며 마인들과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팽무성은 구태여 나서지 않고 팽호대의 전투를 지켜봤다.
상황이 힘들어지면 자신이 나서야겠지만 팽호대가 극한까지 내몰릴 때까지는 내버려 둘 생각이었다.
진주언가의 타격대와 여러 번 맞붙으며 여러 경험을 쌓은 팽호대지만 진주언가와 마교는 아예 수준이 다른 적이었다.
지금의 팽호대에게는 새로운 담금질이 필요한 때였다.
* * *
팽호대가 홀로 고마단과 맞붙는 것은 관문에 올라서 있는 무인들도 곧바로 볼 수 있었다.
“저런 소수로 너무 무모한 것이 아닌가.”
“아무래도 저들이 합류하면 관문이 무너질 것이라 판단하고 어쩔 수 없이 막아선 것 같습니다.”
확실히 지금 무천궁은 위태로웠다.
병력 자체의 차이도 컸지만 계속 겪은 패배로 인해서 무인들의 사기가 많이 꺾인 상황이었다.
“크흠.”
수하의 말을 들은 도문주는 무력감에 손을 억세게 쥐었다.
그때 본성에서 관문으로 새로운 소식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사패와 팽호대의 지원이 도착했습니다. 사패가 마왕과 종주들을 막아서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도문주를 비롯한 무인들의 시선이 고마단과 팽호대가 맞붙고 있는 전장으로 다시 향했다.
“그럼 저들이 팽호대인가.”
“근래에 하북에서 이름을 떨치는 타격대요. 팽가의 타격대 중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들었소.”
옆에 있던 무림맹도의 말에 무천궁 무인은 눈을 찡그렸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저만한 수를 감당하기는 무리일 것인데…”
무천궁을 지키기 위한 싸움인데 정작 자신들은 안에서 싸우고 있고 다른 이들이 밖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도문주는 소식을 전해온 무천궁 무인에게 소리쳤다.
“지금 당장 관문을 열고 우리도 나서야 한다고 궁주께 아뢰게. 적들의 주요 고수가 묶인 상황에서 역습을 가해야 한다고.”
도문주의 외침에 주위에 있던 그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도문주가 같은 심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을 위해 지원을 나온 이들이 피를 흘리는 광경을 멀리서 지켜볼 정도로 무천궁은 경우가 없는 곳이 아니었다.
이 소식은 무천궁주가 기거하고 있는 무신전으로 빠르게 전해졌다.
“각 관문에서 문을 열고 대응해야 한다는 요청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다섯 명의 문주께서 모두 같은 의견입니다.”
이와 같은 의견에도 무천궁주는 고민에 잠겼다.
모든 관문을 열어 결전을 벌이는 것보다는 한 개의 관문을 열어 사패와 팽호대를 구출해내는 것이 낫지 않나 싶었던 탓이었다.
무천궁주는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단신으로 마인들을 도륙하고 싶었다.
하지만 궁주라는 자리에 있기에 감정을 배제하고 무천궁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궁주. 모든 관문을 여는 것이 맞네. 팽무성 그 녀석이 우리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야.”
전신에 붕대를 감은 채 등장한 낭왕에 무천궁주가 벌떡 일으켰다.
“낭왕! 몸은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어두운 낭왕이 고개를 끄덕이자 무천궁주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지금 무천궁에 모여 농성을 벌이는 이들은 흔히 말하는 패잔병입니다. 관문을 연다 한들 투지가 꺾인 이들이 저 마인들을 뚫어낼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요청이 쇄도하고 있지 않나. 무림맹의 지원이 올 때까지 간신히 버티자고만 여겼던 무인들이 스스로 싸우기를 원하고 있네. 사패와 팽호대가 그렇게 만든 것일세.”
무천궁주가 생각에 잠기자 이를 잠시 기다리던 낭왕은 등을 돌리며 말했다.
“노부와 천랑회는 마땅히 밖으로 나갈 것이네. 방해는 말게.”
이 말을 끝으로 낭왕은 무신전 밖으로 빠져나갔다.
낭왕은 몸에 감고 있던 거추장스러운 붕대를 찢어서 풀어냈다. 아직 상처가 온전히 낫지는 않았으나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상처를 입은 채 칼부림을 벌인 것은 낭왕의 인생에서 거의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낭왕의 옆으로 어느샌가 무천궁주가 따라붙었다.
“이번에는 저도 직접 나서겠습니다.”
남부에 전선이 이루어졌을 때부터 병력을 보낼 뿐 무천궁을 지켰던 무천궁주다.
팔관의 문을 모두 여는 것은 무천궁의 명운이 걸린 일, 당연히 궁주가 직접 나서야 마땅했다.
“클클클. 이제야 좀 무천궁주 답군 그래.”
무천궁주는 뒤따르는 무인들에게도 소리쳤다.
“팔관에 알려라, 동시에 관문을 열고 전 병력이 나설 것이라고! 이번에 떨어진 무천궁의 명예를 다시 바로 세울 것이다!”
“존명!”
무천궁주의 명령은 무천궁의 팔관으로 빠르게 하달되었다.
끼이익
무천궁 팔관의 문이 일제히 열리자 이를 뚫기 위해 몸부림을 치던 마인들의 움직임이 잠시 멈추었다.
“돌진해라!”
“이번에 끝을 보는 거다!”
쏟아지는 무천궁, 무림맹도들과 천랑회 낭인들. 그들의 눈빛에는 그동안 서려 있던 패배감 대신에 설욕과 승리의 빛만 감돌고 있었다.
이에 마인들이 사나운 눈빛을 흘리며 달려들었지만, 땅을 찍어내는 거대한 도끼에 마인들이 통째로 짓뭉개졌다.
성인 장정 만한 크기의 도끼를 한 손에 든 무천궁주는 내공을 담아 소리쳤다.
“무천궁! 물러서지 마라! 무천궁주가 제일 앞에 서겠노라!”
“와아아아!”
“무천궁의 힘을 보여라!”
무천궁이 제 발로 뛰쳐나오면서 팽무성이 원하던 광경이 실제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검제와 독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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