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18)
17화
삼층의 전각.
고아한 분위기를 내는 이 전각은 다루였다.
차를 파는 다루라 그런지 확실히 입구에서부터 진득한 향을 느낄 수 있었다.
팽무성이 선향루로 들어서자 흰색의 경장을 입은 미인이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선향루는 처음이신가요?”
“예.”
팽무성은 시선을 돌려 내부를 살폈다.
일 층은 벽 없는 하나의 넓은 공간이었다.
무대처럼 만들어진 중앙의 낮은 단상에는 예기들이 악기를 연주했다.
그 단상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다탁이 놓여있어 사람들은 저마다 자리를 잡고 음악과 다도를 함께 즐겼다.
팽무성의 시선을 본 미인이 말했다.
“혼자 조용히 즐기고 싶으면 이 층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팽무성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찾으시는 차가 있으신가요? 저희 다루는 귀한 찻잎을 많이 가지고 있답니다.”
“검택차.”
팽무성의 대답에 미인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안내했다.
“귀한 차네요. 삼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삼층으로 올라가니 또 다른 미인이 팽무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루에 있는 여인들이 하나같이 미인이었다.
“따라오시지요.”
남자 손님이 많더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삼층은 태원의 경치를 높은 곳에서 볼 수 있도록 사방이 개방되어 있었다.
삼층에는 다탁이 놓여있었지만,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미인은 삼층 구석의 다탁으로 팽무성을 안내했다.
다탁에 먼저 앉아있던 중년 미부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앉으시지요, 찾으시던 검택차입니다.”
팽무성은 말없이 다탁에 놓인 찻잔을 보았다. 찻잔은 비어있었다.
“향이 어떤가요?”
찻잔이 비었는데 향을 묻는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군요.”
팽무성은 뒷말을 덧붙였다.
“기막을 펼쳐 소리를 차단하는 게 능숙하십니다.”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 만나는 이유가 있었다.
기막을 펼쳐 소리를 차단하는 것은 상승의 공부다. 숙련된 절정의 고수도 어려워했다.
비록 다탁 주변의 좁은 공간에 불과했지만, 이 정도도 대단했다.
“아무래도 무음살의 기본이니까요.”
팽무성의 말에 중년 미부의 웃음이 짙어졌다.
“천살택문 산서분타주, 화란이 소왕을 뵙습니다.”
팽무성이 찾은 선향루는 평범한 다루가 아니었다.
진정한 정체는 천살택문 산서지부였다.
팽무성은 미간을 좁혔다.
“소왕?”
아마 살왕의 별호에서 따온 호칭일 것이다.
“익숙지 않은 호칭이시지요, 본문의 살수들은 팽 공자를 이리 부른답니다.”
팽무성은 대충 이해했다. 자신은 살문의 대를 이을 생각이 없으니 소문주라 부르기도 어색할 것이다.
“월영, 아니 이제 가월이지요. 가월에게 연락은 받았습니다.”
천살택문의 지부 위치와 접선 방법.
모두 가월이 알려준 것이었다.
화란은 미리 준비해둔 서책을 꺼냈다.
“요청하신 금용만의 관련 정보입니다.”
금적상단의 소단주, 금용만.
미래에 금왕이라 불릴 사내의 이름이었다.
금용만을 중심으로 금적상단의 정보가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었다.
‘나쁘지 않네.’
팽무성이 전생에 금왕과 인연이 있지는 않았다. 덕분에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강호에 떠도는 소문을 접한 정도였다.
전생의 소문에 따른 기억에만 의존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지금은 현재의 생생한 정보가 필요했다.
서책을 넘기던 팽무성의 손이 멈췄다.
서책에 적힌 익숙한 이름을 보며 팽무성은 미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것도 인연인가. 참 질기군.”
서책의 이름을 보는 팽무성의 눈이 깊어졌다. 정보를 다 읽고 서책을 덮자 화란은 서신 하나를 건네주었다.
“사흘 전에 들어온 정보입니다. 오늘이 지났다면 필요 없을 정보였지요. 아슬아슬하게 때를 잘 맞춰서 오셨네요.”
서신을 읽던 팽무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참으로 절묘하다.
진인사대천명이라 했던가.
상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하늘은 팽무성의 손을 들어준 듯싶었다.
“위치는 어딥니까?”
화란은 준비한 지도를 꺼내 들었다.
태원 주변의 지리를 그린 지도였다.
“태원에서 두 시진 거리입니다.”
“경공을 펼치면 늦지는 않겠네요.”
팽무성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화란도 같이 일어났다.
“직접 가서 해결하실 생각이신가요?”
“설득하려면 입으로 떠드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는 게 낫겠지요.”
“그렇네요, 백문이 불여일견이지요.”
팽무성은 품속에서 서신 하나를 꺼내 화란에게 건네주었다.
“이 서신에 대한 답장이 오면 바로 저에게 전달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화란은 서신을 받아 품속에 넣으며 다른 무언가를 꺼냈다.
“이걸 가져가세요.”
화란은 도금된 각패 하나를 건네주었다.
각패에는 앞면과 뒷면에 각각 살(殺)과 택(擇)이 새겨져 있었다.
“본문의 금패입니다.”
팽무성은 금패를 집어 들었다.
이 금패가 있다면 보수 없이 의뢰할 수 있었고 천살택문의 정보 열람도 가능했다.
강호에 이 금패를 가진 이는 열 명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문주께서 드리는 겁니다.”
팽무성은 금패를 보더니 말없이 소매에 집어넣었다. 팽무성은 그대로 전각에서 뛰어내리려다 멈칫거렸다.
“문주, 아니 조부님께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전각의 지붕을 밟으며 멀어지는 팽무성의 뒷모습을 보며 화란은 고개를 숙였다.
* * *
다섯 대의 수레가 연달아 언덕을 넘고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겠어.”
행렬의 첫 마차에는 금적(金積)이라는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금적상단의 주인, 금원일.
성공적으로 상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지만 그의 얼굴은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흑상을 샅샅이 뒤져도 못 찾으니 남은 길은 빙궁의 소식뿐인가.”
흑상(黑商)은 음지를 지배하는 상인들.
모든 것을 파는 대신에 값은 상식을 뛰어넘었다. 모든 것을 판다는 매력 덕분에 정사는 물론이고 관에서도 흑상을 애용했다.
값이 부담되지만 금원일은 흑상을 찾아갔다.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원하는 바를 얻지 못했다. 정확히는 한 걸음 늦었다.
방문하기 전에 팔렸다 하니 그 소식을 들은 금원일의 속은 타는 듯 괴로웠다.
“상단에 돌아왔을 때는 빙궁의 소식이 도착했을 것입니다.”
상행의 호위를 책임지고 있는 허 무인이 말을 받았다. 어떤 말을 하려던 차에 허 무인이 허리춤의 검병을 잡았다.
채챙
허 무인은 발검과 함께 허공을 나는 단검 두 자루를 연달아 쳐냈다.
날카로운 금속음을 신호로 양쪽에서 산적들이 쏟아져 나왔다.
“허억.”
미간으로 쇄도하던 단검이 바로 앞에서 튕겨졌다.
이를 본 금원일은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순간 정신을 차려 말에 떨어지는 불상사는 막아냈다.
“수레에 붙어 계십시오.”
허 무인은 안장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검날이 번득이며 산적들을 베어냈다.
검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초반의 기세는 좋았지만 허 무인의 검은 조금씩 막히기 시작했다.
‘이놈들, 보통 산적이 아니다.’
산적 행색을 했지만, 몸놀림은 제대로 무공을 익힌 무인들이다.
일류의 경지인 허 무인이다.
하지만 한 손으로 여럿 감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허 무인이 선두에서 버텼지만, 뒤쪽의 다른 상단 무사들은 하나둘 쓰러지고 있었다.
‘여기서 뼈를 묻겠구나.’
허 무인은 산적을 베면서도 눈은 적들 너머에 홀로 서 있는 중년인을 향했다.
적색 장포를 걸친 중년인은 산서에서 유명한 낭인, 혈랑도가 분명했다.
적륜문주의 의제이자 절정의 초입에 발을 걸치고 있는 낭인이다.
일류의 벽을 넘지 못한 허 무인이 당해낼 상대가 아니었다.
“슬슬 정리되는군.”
전황을 살피던 혈랑도는 땅에 박아놓은 대도를 뽑았다. 그저 그런 상단의 호위라 그런지 무인들의 수준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대부분이 삼류에서 이류 언저리.
유일하게 일류로 보이는 놈만 홀로 버티고 있었다. 저놈만 처리하면 수월하게 끝날 것으로 보였다.
“비켜라, 내가 처리하겠다!”
혈랑도의 고함에 허 무인을 상대하던 이들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쩌엉
크게 휘둘러진 대도가 허 무인을 후려쳤다. 힘에 밀린 허 무인은 막은 자세 그대로 뒤로 날았다.
“쿨럭.”
한 번 막기만 했는데 기혈이 흔들렸다.
목숨을 구한 대신 검이 부러졌다.
과연 대도를 한 손으로 다루는 만큼 엄청난 괴력이었다.
거기에 내공까지 실리니 당해낼 수가 없었다.
“한 번에 끝내려 했는데 이걸 흘려내는군. 제법이구나.”
혈랑도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허 무인에게 걸어갔다. 마무리를 하기 위함이었다.
“큭. 이제 대놓고 일을 저지르나?”
허 무인은 고통을 인내하며 소리쳤지만 혈랑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알면 어떻게 하려고? 그저 약한 자신을 탓하게.”
비열한 웃음을 흘리던 혈랑도가 걸음을 멈췄다.
언제부터였을까.
태산 같은 덩치를 지닌 사내가 수레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 태도가 사뭇 여유롭다.
혈랑도의 자세가 낮춰지며 경계를 취했다.
자신이 데려온 낭인들은 어느샌가 다 쓰러져 있었다. 혈랑도는 정체불명의 사내가 손을 쓰는 것을 보지도 못했다.
혈랑도는 왜인지 팔에 소름이 돋았다.
“소협은 누구인가?”
혈랑도는 당황한 티를 내지 않았다.
“당신이 알 필요는 없는데.”
수레에 앉은 사내, 팽무성은 쓰러진 이들을 살피며 말했다.
혈랑도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만약 평범한 후기지수가 저렇게 대답했다면 바로 피를 봤을 것이다.
하지만 혈랑도는 화를 억눌렀다.
“무림의 선배로서 충고하지. 원래 무림에서 남의 일에 간섭하다 칼을 맞는 법일세. 조용히 갈 길 가시게.”
혈랑도의 말에 팽무성이 피식 웃었다.
“구린내가 나는 놈이 뻔뻔하기도 하지.”
수레에서 엉덩이를 뗀 팽무성의 발이 땅에 닿았다.
쿵
그저 사뿐 발이 닿았는데 마치 진각을 밟은 듯 땅이 울렸다.
발바닥이 땅을 찍을 때마다 패도적인 기파가 혈랑도의 피부를 따갑게 찔렀다.
거기에 주위의 공기는 무거워져 이를 버티는 어깨와 허리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끄윽.”
혈랑도의 눈이 튀어나올듯 커졌다.
팽무성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기파와 압력이 강해졌다.
혈랑도는 급히 내공을 끌어올리고 허리에 힘을 주었지만 압력은 그 이상으로 강해졌다.
팽무성이 혈랑도의 바로 앞에 섰다.
혈랑도는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꿇으며 덜덜 떨고 있었다.
산왕군림보의 기파가 한 명에게 집중되니 어느새 절정 고수도 쉽게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성취가 올랐다.
혈랑도가 물론 절정 초입치고는 부족한 면이 있었지만 괄목한 성취였다.
팽무성은 혈랑도의 어깨를 쓰다듬듯 손을 올렸다.
“무림의 후배로서 충고하지. 무림에서는 자기 주제를 잘 알아야 칼을 안 맞는 법이야.”
혈랑도의 어깨에 올려진 손에 힘이 들어갔다.
“끄아악!”
그저 악력만으로 혈랑도의 어깨에 금이 가고 있었다. 놀라운 괴력이었다.
“혈랑도, 산서에서 제법 이름있는 낭인이더군. 주로 더러운 돈을 받는 놈이고.”
혈랑도, 천살택문의 서책에도 있는 이름이다.
더러운 돈이란 방화, 갈취, 살인 같은 범죄를 의뢰자 대신 처리하고 받는 돈을 칭했다.
적륜문주의 의제, 절정의 무인임에도 낭인으로 활동하는 데에는 적륜문의 뒤처리를 도맡아 하기 위함이었다.
“뭐 흔한 놈이네.”
딱히 감흥은 없었다.
그냥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쓰레기를 본 느낌이다.
이런 평범한 악인.
많이 봐왔고 앞으로도 숱하게 볼 것이다.
팽무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도를 뽑았다.
스릉
도가 뽑히는 소리가 이리 섬뜩하게 들린 것은 처음이었다.
“그만둬라, 나는 적륜문주의 의제다. 산서에서 적륜문에 찍히고도 살 수 있을 듯싶으냐.”
혈랑도는 악에 받친 듯 소리쳤다.
뭐라고 계속 소리치는 혈랑도의 목에는 핏줄이 솟아 필사적임을 알 수 있었다.
“그게 끝이냐?”
팽무성은 한쪽 눈을 찡그릴 뿐이었다.
“적륜문주의 의제? 그래서 뭐, 이 새끼야.”
혈랑도의 목젖에 깨끗하게 그어진 혈선.
팽무성의 도에는 거침이 없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혈랑도.
팽무성은 혈랑도의 수급을 보며 말했다.
“산서에서 적륜문은 곧 사라질 거다.”
말재주가 없으니 몸으로 설득한다. (2)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