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19)
18화
허 무인은 살아남은 이들을 지휘해서 현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전사한 상단 무인들은 수레의 빈 곳에 실었고 산적으로 위장한 낭인들은 주변에 대충 묻어 주었다.
허 무인은 목이 날아간 혈랑도의 시신을 께름칙한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크흠.”
방금까지 자신들에게 칼을 겨눈 놈들이다.
갑자기 나타난 팽무성이 아니었다면 여기에 구르고 있는 것은 자신들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버려서 늑대 밥이 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최소한 사람의 도리를 지키고자 했다.
사람들이 현장을 정리하고 있을 때 팽무성은 금원일과 따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덕분에 저와 상단 식구들이 살았소.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적륜문이 꾸민 일에 대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금원일은 팽무성이 우연히 길을 지나다 도움을 준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호선을 그리던 금원일의 입술이 살짝 수그러들었다.
표정 관리는 했으나 금원일의 눈에는 한 줄기 경계심이 깃들었다.
“무슨 연유로 저희 상단에 도움을 준 것이오.”
“금적상단이 피해를 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째서?”
팽무성은 금원일의 눈을 마주했다.
“금적상단, 그리고 소단주가 저와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소단주라…”
금원일은 말끝을 흐렸다.
상단주인 자신 앞에서 굳이 소단주를 언급했다.
보통이라면 하지 않을 예의 없는 행동이다.
하지만 금원일은 팽무성의 말뜻을 바로 알아차렸다.
‘용만이에 대해 알고 있구나.’
아직은 대외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
이자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
금원일의 경계심이 커지려는 찰나에 팽무성의 한 마디가 금원일의 마음을 흔들리게 했다.
“소단주, 살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금원일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굳게 닫혀있던 입술이 잘게 떨렸다.
“방법이 있소?”
하지만 팽무성은 쉽게 패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건 소단주와 얘기를 나누어 봐야지요.”
* * *
“상단주!”
“고생하셨습니다. 상단주.”
미리 기다리고 있던 금적상단의 사람들이 금원일을 반겼다.
“총관. 돌아왔는가.”
“예, 상단주. 저도 이틀 전에 왔습니다.”
금원일은 오히려 환영하는 총관을 더 반겼다.
총관도 저 멀리 북해로 떠났다가 얼마 전에 돌아왔기 때문이다.
금원일은 주변에 듣는 이가 많음에도 듣고 싶은 소식을 참지 못했다.
“어떻게 되었는가.”
금원일은 총관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총관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역시 그렇게 되었군.”
금원일은 고개를 돌려 행렬의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팽무성을 쳐다봤다.
자신의 목숨을 구한 사내가 아들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이쪽이오.”
팽무성은 바로 금용만을 만나기를 원했다. 빨리 만나면 만날수록 좋았다.
금원일도 급한 마음에 직접 팽무성을 안내했다.
금용만의 방 앞에 선 금원일은 먼저 들어갔다. 간략한 앞뒤 사정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잠시 뒤 금원일이 방 밖으로 나왔다.
“들어가 보시오.”
“감사합니다.”
방에 들어서자 달라진 공기가 반겼다.
눈이 내리고 북방의 칼바람이 몰아치는 시기다.
전각 곳곳에는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온기가 머물고 있는데 이 방만 냉기가 가득했다.
의도된 것인 듯 창문은 활짝 열려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방안에 홀로 있는 사내. 금용만은 여름에나 입는 얇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도 마치 더운 날씨인 듯 흥건한 땀으로 옷을 적시고 있었다.
이 사내가 미래의 금왕, 금용만.
외양은 삐쩍 말라서 나약한 인상을 풍겼지만, 눈에는 끝까지 버텨서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보였다.
“이 겨울에 고생하는군요. 병을 빨리 떨치고 일어나야 뜻을 펼치지요.”
금용만의 눈에 흥미가 일렁였다. 금용만은 일어나서 팽무성을 맞이했다.
“처음 뵙겠소. 금용만이라 하오.”
팽무성은 금용만의 바로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북팽가의 사공자, 팽무성입니다,”
“하북팽가. 팽가에서 오셨군. 좋소이다. 어떻게 저를 살리실 것이오.”
금용만은 직설적이었다. 팽무성도 그편이 나았다.
“염왕사에게 물렸다지요.”
금용만의 눈꺼풀이 살짝 꿈틀거렸다.
대외적으로는 남만의 상행에 다녀오고 알 수 없는 열병에 걸린 것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염왕사(炎王蛇).
남만의 불꽃을 먹고 산다는 영물.
크기는 보통 뱀과 다를 바 없으나 남만의 그 어떤 맹수도 염왕사를 보면 도망치기 바빴다.
염왕사의 독은 특별하다.
극양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 물린 대상의 장기를 안부터 익게 만들어 태워 죽였다.
다행히 남만의 의원이 빠른 조치를 하여 이 년이 지난 지금도 생명을 부지하고 있었다.
양기를 억누르는 약재로 독을 막고 있으나 임시방편일 뿐, 염왕사의 독은 금용만의 양기를 흡수하며 조금씩 덩치를 키우고 있었다.
“치료방법은 지극히 단순합니다, 염왕사의 독을 단번에 누를 극음의 영약.”
“맞소.”
금용만은 자조적인 목소리를 흘렸다.
유일한 해독방법은 염왕사의 독보다 더 강한 음기로 녹여내는 방법뿐이다.
한빙단이라는 영약을 먹었으나 모자랐다. 잠시 독을 억제할 뿐이었다.
반년 뒤 한빙단의 효력이 사라지자 염왕사의 독은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
“흑상의 상인들이 말했소. 원하는 영약을 살 수 있는 것도 기연이라고.”
한빙단 보다 좀 더 강한 음기를 지닌 영약이 필요했다.
기껏해야 빙정, 천년설삼, 오월빙화.
빙궁은 외부인에게 빙정을 내주지 않았고 나머지 둘은 흑상에도 남는 매물이 없었다.
“당신이 나에게 찾아온 기연이오?”
팽무성은 품속에서 반합을 하나 꺼내서 건네주었다. 금용만은 그 반합을 받아들고 깜짝 놀랐다. 나무 반합이 얼음인 마냥 시린 냉기를 뿜고 있었다.
“이건?”
금용만은 반합을 열려다가 팽무성을 봤다.
팽무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팽무성의 허락에 금용만은 떨리는 손으로 반합을 조심스레 열었다.
“아. 오월빙화.”
한눈에 오월빙화를 알아보았다.
살기 위해서 영약에 관한 공부를 그리했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오월빙화의 이름을 읖조리는 금용만의 목소리에는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다.
반합을 만지작거리는 금용만.
두 눈에 순간 불꽃이 타올랐지만 이내 가라앉았다.
탁
금용만은 소리가 나게 반합을 닫았다.
그러고는 팽무성의 앞에 내려놓았다.
“이 영약은 값이 비쌀 것 같소. 제법 많이.”
금용만은 뒷 말을 강조했다.
바로 앞에 자신을 살릴 수 있는 영약이 있어도 침착했다. 오히려 더 차가워졌다.
눈앞의 이득에 흔들려 감당 못 할 손해를 입지 않기 위함이다.
실제로 금적상단에 손길을 내민 몇 곳이 있었다.
하지만 겉으로만 도움의 손길일 뿐, 적륜문과 다를 바 없는 자들이었다.
이 때문에 금용만의 경계심은 상당히 높은 상황이었다.
“오월빙화는 그냥 드리지요. 아깝지 않습니다.”
팽무성은 얼음장 같은 금용만의 눈을 봤다.
자신에게 화려하게 입을 놀리는 재주는 없었다.
그저 투박하게 밀어붙였다.
“나는 하북팽가의 가주가 될 사람입니다.”
금용만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팽무성의 눈을 응시했다.
계속해보라는 의미였다.
“지금은 내 옆을, 훗날에는 본가의 옆을 지켜주었으면 합니다. ”
“가부를 논하기 전에 묻고 싶은 것이 있소. 왜 하필 금적상단이오?”
금적상단은 결국 흔한 중소 상단에 불과했다. 하북팽가가 예전 같지 않지만, 여전히 명문 정파다.
고작 중소 상단에 매달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랬기에 더욱 걱정과 경계심이 올라왔다.
“소단주에 대한 가치를 알아봤을 뿐입니다.”
금용만은 조용히 팽무성을 봤다.
자신의 지론과 비슷한 말이기 때문이었다.
-상인은 정확한 가치를 알아보는 자다.
금적상단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가치를 논한다. 실제로 소규모였던 금적상단은 오 년 동안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금용만이 상단의 일에 손을 댄 이후였다.
금원일은 아들의 천부적인 상재를 알아봤다. 금원일이 상단주지만 금적상단의 중대사를 처리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금용만이었다.
이 일은 아직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정보에 민감한 다른 상단들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이 사내는 어찌 알고 있는가.
금용만은 팽무성을 흥미롭게 쳐다보았다.
‘과연 나에게서 무슨 가치를 보았을까.’
흥미가 일었지만 금용만의 얼굴에는 변화가 없었다. 표정을 숨기는 것도 상인의 기본 덕목이니 말이다.
“현재 금적상단의 상황을 아시오?”
팽무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알고 있지만, 당사자의 관점에서 듣고 싶습니다.”
천살택문의 정보는 정확했다.
아마 금용만의 입에서 새로운 사실을 듣기는 힘들 거다.
하지만 글로 읽는 것과 사람의 입으로 듣는 것은 또 달랐다.
“무인은 칼로 싸우고 상인은 돈으로 싸우는 법이오. 뭐로 싸우던지 피 튀기고 사람 죽어 나가는 것은 마찬가지요.”
팽무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금적상단은 금용만의 주도로 근 오 년 동안 커다란 이득을 취했다. 누군가 이득을 봤다면 누군가는 손해를 보는 것이 당연한 이치였다.
실제로 태원의 십대 상단 중 하나인 적화상단이 큰 손해를 연달아 입었다.
적화상단이 가는 길에 언제나 금적상단이 한 발 앞섰기 때문이었다.
금적상단의 잠재력을 본 적화상단은 금적상단을 통째로 사들이려 했다.
금원일은 그 제안을 당연히 거절했다.
의도가 빗나가자 적화상단은 악의를 품고 금적상단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둔다면 점점 덩치를 불려 자신들의 밥그릇을 직접적으로 노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싸우는 중이오. 상대가 강하기는 하지만 할만하오. 그런데 돈 말고 다른 요소가 끼어드니 버겁고 서서히 말리더군.”
적화상단과 금적상단의 돈의 대결.
규모에서부터 큰 차이가 벌어졌다.
태원의 십대상단과 어중간한 중소상단의 대결이었으니까.
하지만 금적상단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의외로 잘 버티는 것은 물론이고 간혹 반격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자 적화상단은 본래 상단의 뒤를 봐주고 있던 문파에 도움을 청했다.
“적륜문.”
팽무성이 나지막히 말하자 금용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적륜문이 나서기 시작했소.”
적륜문이 관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돈 외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이 닥쳐오기 시작했다.
상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지금은 어찌 버티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상단의 문을 닫거나 먹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금용만을 팽무성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이 사내를 믿어도 될까,
젊은 나이에 비해 깊은 눈빛을 지녔다.
아버지인 금원일 조차 지니지 못한 눈빛이다.
눈을 감고 한참을 고민하던 금용만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우리 상단을 구해주시오, 이 문제를 해결해준다면 팽 소협이 말했던 나의 가치, 스스로 증명해보이겠소. 부탁하오.”
금용만이 앉은 채로 고개를 깊이 숙였다.
“내일 바로 처리할 겁니다.”
내일이라는 단어에 금용만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팽가의 힘을 빌리려는 것이오?”
팽무성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건 나의 힘이 아니지요.”
금용만은 눈매를 찌푸렸다.
마치 혼자 해결하겠다는 말로 들렸다.
허나 팽무성의 눈은 진지했다.
“단신으로 적륜문을 상대하실 수 있으시오?”
금용만이 걱정이 되어 물었지만 팽무성은 오히려 되물었다.
“모든 방해요소가 사라진다면 적화상단을 상대로 이길 수 있습니까?”
질문에서 이유 모를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 자신감에 이끌려 금용만도 가슴을 펴고 흔들림 없는 목소리를 냈다.
“이길 수 없었다면 애초에 싸우지도 않았소.”
팽무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깨끗하게 정리하고 다시 얘기합시다. 아, 오월빙화는 두고 갑니다.”
오월빙화를 두고 간다는 말에 금용만의 눈매가 가라앉았다.
이 사내는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다.
팽무성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금용만은 팽무성이 닫고 간 방문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잠시의 대화였지만 한 줄기 폭풍과도 같은 사내였다.
“정말 해낼 수 있을까?”
적륜문은 그저 그런 중소문파가 아니었다.
태원은 돈이 오가는 규모에 비해 영향력을 끼치는 대문파가 없는 판국이었다.
크기가 비슷한 중소문파가 난립해서 태원의 이권을 나눠 먹고 있었다.
적륜문은 삼 년 전에 새롭게 등장했으나 독보적인 무력과 적화상단의 지원을 받아 그 세력을 빠르게 넓히고 있었다.
호사가들은 앞으로 오 년이면 태원을 넘어 산서 전체로 뻗어 나갈 것이라 말하고는 했다.
일개 후기지수 한 명이 상대할 만한 문파가 아니었다.
“하북팽가 사공자라…”
금용만은 소매로 땀을 훔쳤다.
팽무성이라는 사내가 남기고 간 열기가 아직도 방 안에 남아있었다.
말재주가 없으니 몸으로 설득한다. (3)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