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195)
194화
“왔느냐. 팽무성.”
태사의에 몸을 기대던 사천이 허리를 기울이자 입고 있던 장포의 적룡이 살아있는 듯 꿈틀거렸다.
만마전의 폐허 앞에 선 팽무성을 보는 사천은 감회가 새로웠다.
‘반쯤은 그저 찰나의 여흥이었거늘.’
가능성은 보았지만 설마 팽무성이 자신의 앞에 다시 나서게 되리라 생각지 못했다.
그것도 이렇게 빠르게.
팽무성은 사천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만마전은 왜 이렇게 두신 것입니까.”
사천은 어지럽게 널브러진 만마전의 폐허를 훑어봤다.
“만마전은 본좌가 사도천주의 자리에 오르고 지은 것이다. 본좌의 위엄을 상징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이런 상황에 다시 세우는 것은 의미가 없다.”
팽무성은 사천의 심정을 대략이나마 이해했다.
지마신과 승부를 내지 못했고 그 지마신은 도천에 의해 목이 베였다.
사도천주의 구겨진 위엄을 바로 세울 방법이 사라진 셈이다.
“오늘 만사전이 다시 세워질 것이다.”
사천은 오늘 팽무성과 겨루어 천하제일을 가리고 다시 만사전을 복원시킬 셈이었다.
사천의 말에 팽무성은 입꼬리를 올렸다.
“지마신과의 생사결 이후 쭉 폐관에 드셨나 들었습니다.”
“그래. 최소한의 중상만 치료하고 곧바로 폐관에 들었다.”
지마신과의 생사결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지만 동시에 깨달음을 얻은 사천.
폐관 끝에 십여 년 동안 정체되었던 벽을 넘어선 사천.
그 증거로 사천은 이 전보다 훨씬 젊어져 있었다.
머리끝에 희끗희끗하게 남아있던 백발이 사라지고 온전한 중년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소식은 들었다. 내가 폐관에 드는 동안 도천을 여러 번이나 꺾었다지.”
전쟁이 끝나고 도천은 종종 하북팽가에 찾아와 팽무성과 겨루었지만 한 번도 팽무성을 이길 수 없었다.
현 무림에서 명실상부한 천하제일도(天下第一刀)는 팽무성이었다.
“예. 이 정도면 그날의 내기를 마무리 지을 만한 자격이 되겠지요.”
“큭. 그렇구나. 천하제일을 걸었던 그 터무니없던 내기를 말이다.”
드드득
사천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불어오는 주홍빛의 열풍.
혈사풍혈공(血沙風穴功)의 바람에 주변의 잔해가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간혹 가벼운 목재들은 바람에 둥둥 떠올라 위태롭게 떨리고 있었다.
“생사결이다. 잘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휘이이이잉
사천이 손을 펴자 장심을 중심으로 주변의 대기가 빠르게 모여들었다.
등 뒤로 사천을 향해 밀려드는 거센 풍압에 팽무성의 머리와 무복이 거칠게 펄럭였다.
사천의 장심에서 모습을 드러낸 용권풍은 주변의 바람과 만마전의 잔해마저 집어삼키며 단숨에 크기를 키웠다.
이 층 전각보다 커진 주홍빛 용권풍.
팽무성은 자신에게 밀려드는 용권풍을 보며 웃으며 적아도로 손을 가져갔다.
사천이 팽무성을 시험하기 위해 펼쳐냈던 초식, 광풍소가 다시 팽무성에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광풍소의 엄청난 흡입력에 주위의 흑석 바닥이 들려서 솟구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팽무성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꼿꼿이 서 있었다.
천천히 뽑힌 적아도가 상단으로 올라오더니 그대로 수직으로 붉은 직선을 그렸다.
솨아아
한 번의 가벼운 도격에 정확히 양단된 광풍소.
만마전의 폐허를 거세게 들쑤시던 광풍소는 어느새 미풍이 되어 좌우로 갈라져 흩어지고 있었다.
쿵쿵
광풍소가 걷히면서 허공에 떠올랐던 만마전의 잔해가 다시 떨어졌다.
떨어지는 잔해 사이로 팽무성과 사천이 두 번째 수를 교환했다.
그 충돌에 사방으로 충격파가 터지며 떨어지던 잔해들이 다시 한번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추락했다.
사천은 좌수를 흔들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목재를 걷어내곤 뻗어내고 있는 오른손에 더욱 내공을 실어냈다.
그러자 사천의 손아귀에서 더욱 요란한 바람소리가 일어났다.
까가각
주홍빛 열풍을 두른 사천의 혈사풍장(血沙風掌)이 적아도를 밀어냈다.
손바닥에 두른 바람이 수레바퀴처럼 회전하며 도신을 긁어내자 불똥이 연달아 튀었다.
빠지직
적아도의 도신에서 뇌기가 피어오르며 도신을 할퀴는 바람을 흩어내기 시작했다.
팽무성은 가볍게 사천의 장법을 쳐내곤 적아도를 꺾어 대각선으로 올려쳤다.
사천은 손등을 거칠게 휘둘러 적아도를 쳐내고 거리를 벌렸다.
동시에 허공에서 둥글게 회전하는 바람의 구, 수십 개가 나타나 팽무성에게 쏘아졌다.
쿠와아아앙
연달아 팽무성에 쏘아진 바람의 구는 저들끼리 합쳐지면서 덩치를 불렸다.
이내 팽무성은 거대한 돌풍에 삼켜졌으나 그 돌풍 속에서 한 줄기 벼락이 떨어졌다.
붉은빛을 뒤로 한 채 돌풍을 찢고 튀어나온 팽무성. 그대로 허공을 날아 사천의 머리를 양단할 기세로 적아도를 휘둘렀다.
카카칵
사천의 머리 위로 원반처럼 회전하는 주홍빛 선풍이 도격을 막아냈으나 적아도는 이를 갈라내고 점점 사천을 향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에 사천은 미간을 살짝 좁힌 채 머리 위로 쌍장을 내질러야만 했다.
사천의 쌍장에서 모인 선풍이 용오름치며 팽무성을 거세게 밀어냈다.
팽무성은 그조차도 한 호흡에 갈라내며 사천에게 파고들었다.
‘이놈!’
어깨를 비틀어 도격을 피해낸 사천은 장포가 손가락 두 마디 정도 갈라진 것을 보고 콧잔등을 구겼다.
보란 듯이 자신을 밀어붙이는 팽무성을 보며 사천은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말았다.
정말 그때 자신이 가볍게 보인 한 수에 전력을 다해 막아내던 그 후기지수가 맞단 말인가.
“정말 놀랍구나! 팽무성!”
사천은 마치 바람의 화신이라도 된 듯 전신에서 주홍빛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쿠오오오오
사방에서 똬리를 틀고 용솟음치는 수십 줄기의 질풍. 그런 질풍이 무려 이십여 개.
어느새 언덕 위에 있던 만마전의 잔해들은 어디론가 날아가 자취를 감춘 뒤였다.
팽무성은 주위를 가득 둘러싼 거대한 질풍들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사도천의 높디높은 전각들을 우습게 삼켜버릴 크기의 질풍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휘몰아치고 있었다.
본신의 내공은 물론이고 막대한 양의 자연지기를 한 호흡에 갈무리할 수 없다면 절대 보일 수 없는 광경.
과연 천하제일에 근접한 사내의 무위다웠다.
“장관이로군.”
언덕 전체를 장악한 사천의 위용에 비하면 팽무성은 그저 적아도를 붉게 물들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사천은 자신이 일으킨 돌풍에 비하면 작디작은 저 한 자루의 도가 더욱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간다.”
사천의 손짓에 따라 언덕을 가득 메운 수십 줄기의 질풍이 일제히 팽무성에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동하는 질풍은 언덕의 흙과 바위를 갉아내면서 그 잔해를 함께 머금고 있었다.
그러면서 겹치는 질풍들은 하나로 뭉쳐 덩치를 키우기를 반복했다.
이내 총 세 개의 질풍만이 남아서 팽무성의 삼면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혈사풍천(血沙風天)의 절초에도 팽무성은 고요히 이를 지켜보며 적아도의 뇌기를 갈무리할 뿐이었다.
“역시 천주님이시다!”
“대단하군.”
언덕 아래에서 혈사풍천이 펼쳐지는 것을 지켜보는 사도천 무인들은 하나같이 경외로 가득한 눈빛을 보였다.
‘팽무성, 아무리 네가 마교주를 꺾었다곤 해도 천주께서는 천하제일에 가장 가까운 무인이시다.’
철무련도 사천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마교주가 일전에 용천을 꺾었다지만 이는 사천에게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팽무성, 대단하군.’
혈사풍천은 혈사풍혈공의 절초 중의 절초.
이를 사천이 꺼낸 것만 봐도 팽무성의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꽈르르릉
그때, 혈사풍천을 바라보던 철무련의 무표정한 얼굴이 굳어졌다.
허공에 그려지는 굵은 호선.
마치 거인이 허공에 붉은 물감을 적신 붓을 휘젓는 것을 보는 듯했다.
그 호선을 따라 혈사풍천이 위아래로 갈라져 흩어지고 있었다.
어이없다 느껴질 정도로 손쉽게 파해되는 혈사풍천에도 철무련의 시선은 팽무성이 그려낸 붉은 호선에 향해있었다.
저 투박해 보이는 도격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절망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꼈다.
어느새 철무련은 자신이 손바닥에 피가 맺힐 정도로 주먹을 억세게 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팽무성…”
팽무성과의 격차를 느낀 철무련은 낮게 깔린 목소리로 그저 이름을 읊을 뿐이었다.
격차를 느낀 것은 철무련 뿐만이 아니었다. 사천은 가슴에 수평으로 그어진 도상에 피를 뿜고 있었다.
혈사풍천과 동시에 사천까지 베어낸 팽무성이었다.
“크하핫! 본좌가 이리 쉽게 당할 줄이야.”
사천은 헛웃음을 흘리며 가볍게 적아도를 늘인 팽무성을 노려봤다.
팽무성의 고요한 눈빛을 응시하던 사천은 피로 얼룩진 입술을 꿈틀거렸다.
“그렇군. 네놈은 애초에 다른 경지를 바라보고 있구나.”
천하제일은 그저 지나가는 중간 지점, 팽무성은 그 너머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꿰뚫어 본 사천이었다.
피를 울컥 토하는 사천을 보던 팽무성은 적아도를 갈무리했다.
이에 사천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마무리를 짓지 않는 것이냐. 사도천주의 목을 벨 수 있는 제대로 된 명분까지 갖춰진 유일무이한 때다.”
“그렇지 않아도 혼란한 무림입니다. 거기에 사도천주의 목까지 베어서 혼란을 가중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놈…”
사천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솟아올랐다.
팽무성에게 이미 자신은 위협이나 잠재된 후환조차 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쾅등을 돌려 걸어가는 팽무성의 등이 저리도 크게 느껴지니 사천은 반쯤 남아있던 태사의를 미련 없이 부숴버렸다.
태사의가 더는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크흐흐. 본좌가 이리 보잘것없이 끝날 줄이야.”
저 멀리 사천의 낮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계단으로 향하던 팽무성은 멈춰서서 그 아래에 도열한 사도천의 무인들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잠시 고개를 돌려 사도천 본성의 풍경을 한눈에 담던 팽무성은 입을 열었다.
“보았느냐. 내가 당대의 천하제일이다.”
나지막이 울려 퍼지는 팽무성의 목소리.
내공이 실린 팽무성의 목소리는 사도천 본성 전체에 메아리처럼 울렸다.
정파 무인이 사파의 중심인 사도천에서 천하제일을 선언한다.
무림 역사상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초유의 사태를 맞이한 사도천 무인들은 분노와 격정을 넘어서 머리가 새하얘졌다.
* * *
천하제일을 선언하고 언덕 아래로 내려온 팽무성. 팽무성은 곧장 철무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도천 무인들이 멍한 눈으로 팽무성을 쳐다볼 때 철무련만이 정신을 차리고 팽무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소천주.”
“말하시오.”
“소천주가 무림 대전 이후로 사도천의 모든 대소사를 관장한다고 들었소.”
“맞소.”
이에 팽무성은 입꼬리를 올렸다.
“사도천이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던데. 하긴 전쟁 직후 어수선한 지금이 최적이긴 하지.”
반면 철무련의 얼굴은 굳어졌다.
사도천은 이번 무림 대전으로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지만, 전체적인 피해는 무림맹이 더욱 심각했다.
더구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그 절반 이상이 봉문을 했고 나머지도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
누구에게나 힘든 상황이나, 선수를 놓치지 않고 기회가 잘 잡으면 무림의 판도를 흔들 수 있는 때이기도 했다.
“이번에 만약 내가 패배했다면 사도천은 계획을 실행에 옮겼겠지. 내가 없다면 정파에는 사천을 막을 자가 없으니.”
슬며시 흘러나오는 팽무성의 기세에 철무련은 등이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팽무성은 철무련의 어깨를 툭 치며 지나갔다.
“알아서 잘 판단하기를 바라겠소. 아니라면 그때 다시 사도천을 찾아올 테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철무련은 그저 주먹을 쥘 뿐이었다.
* * *
“궁주. 중원에서 천하제일인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일장로의 보고에 만년빙석으로 만들어진 침상에 누워있던 은발의 여인이 몸을 일으켰다.
“호오. 누구지?”
“도왕 팽무성입니다.”
“놀랍네. 그 핏덩이가 사천과 도천을 누르고 천하제일에 등극했단 말이지.”
잠시 생각에 잠겼던 여인은 입꼬리를 올렸다.
“잘되었구나. 여러 명을 상대할 필요 없이 한 사람만 상대하면 끝나게 되었으니.”
여인의 말에 일장로의 눈에 스산한 한기가 맴돌았다.
“그 말씀은?”
“일 년 정도 남았던 계획을 앞당겨라. 무림의 천하제일을 얼려버리고 북해빙궁이 무림을 발아래 놓으리라.”
새로운 천하제일이 등장했다는 소식에 조용히 때를 기다리던 북해무신이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북해무신. (1)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