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197)
196화
북해(北海).
삼라만상이 완전한 백색으로 물든 설경(雪景).
하늘은 푸르고 땅은 새하얘 북해는 오직 두 가지 색만 존재하는 별세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별세계를 팽무성과 검선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팽무성과 검선은 거대한 빙판 위를 주파하고 있었는데 이 빙판 아래의 호수가 바로 북해였다.
바다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호수, 북해.
추위가 심해지는 이 시기에는 드넓은 빙판으로 변모한 상황이었다.
북해의 빙판은 극히 미끄럽기 그지없어서 어지간한 수준의 경공을 펼치지 않는 이상은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 북해의 빙판을 가로지르는 두 고수의 경공은 천하에서 손꼽히는 수준.
덕분에 팽무성과 검선은 그대로 북해를 가로지를 수 있으니 시간을 훨씬 절약할 수 있었다.
휘이이잉
북해의 눈보라가 거침없이 휘몰아쳤지만 두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경공을 펼쳐내고 있었다.
시야를 가리는 거친 눈보라 앞에서는 북해에서 나고 자란 북해빙궁의 무인들도 몇 겹의 털옷으로 무장해야 했다.
그러나 두 고수는 추위에 구애받지 않는 경지이기에 무복 위에 장포를 하나씩 걸치고 있을 뿐이었다.
팽무성과 검선이 극성으로 경공을 펼치니 드넓던 북해도 긴 시간이 걸리지 않고 넘어설 수 있었다.
북해를 넘어서니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릎 높이까지 쌓인 폭설이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거침없이 눈밭 위로 몸을 날렸다.
무릎까지 올라온 눈밭을 내달리고 있음에도 두 사람의 속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눈밭 위를 빠르게 주파하고 있음에도 발자국이 전혀 남지 않았다.
검선은 자신과 팽무성이 지나온 눈밭 위에 조금의 흔적도 남지 않는 것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당연하지만 경공의 수준도 놀랍구나.’
이 광경을 경공에 자신 있는 여느 고수들이 보았다면 입을 쩍 벌렸을 것이다.
눈밭 위를 밟고 뛰어도 발자국이 남지 않는 경지. 답설무흔(踏雪無痕)을 팽무성과 검선이 몸소 선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고 설원을 가로지르던 팽무성은 저 너머로 햇빛에 반짝이는 거대한 얼음벽을 눈에 담았다.
“빙벽?”
중원의 성벽과 다르게 북해에는 거대한 얼음으로 이루어진 빙벽이 솟아있었다.
팽무성이 지금껏 보았던 어떤 성벽보다도 높고 견고해 보였다.
“먼 옛날에는 돌을 쌓아 올린 석벽이었는데 오랜 시간 눈과 얼음이 쌓이고 쌓여 이런 빙벽이 되었다고 하더구나.”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자연의 힘만으로 거대하게 솟아오른 빙벽의 위용에 팽무성은 조용히 감탄을 흘렸다.
오직 눈과 얼음밖에 없는 북해에서 빙벽이 보인다는 것은 북해빙궁에 지극히 가까워졌다는 뜻이었다.
“바로 들어갈 테냐?”
“예.”
팽무성의 대답에 검선은 그대로 얼음을 박차고 앞으로 쏘아졌다. 바람처럼 쏘아지는 검선의 뒤를 팽무성도 곧장 뒤따랐다.
곡선이 진 빙벽을 따라 쭉 돌아가니 거대한 성문이 팽무성과 검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북해의 엄청난 냉기에 온전한 모양새로 버티고 있는 것을 보면 보통 철은 아니었다.
거기에 성문에 얼핏 띠는 푸른빛을 보던 팽무성은 살짝 놀란 눈으로 검선을 쳐다봤다.
“설마 이 성문 전체가 만년한철인 것입니까.”
“맞다. 처음 봤을 때는 노부도 놀랐었지.”
무림에서는 검 한 자루를 만들 양의 만년한철을 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만년한철을 통으로 녹여서 만들어낸 성문이라니. 이를 무림인들이 봤으면 성문을 통째로 떼어가려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르릉
팽무성이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성문에 감탄하는 사이, 북해빙궁의 성문이 얼음을 떨어트리며 개방되고 있었다.
“역시 우리가 북해에 들어선 것을 알고 있었군요.”
“북해빙궁은 북해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곧바로 덤벼들지는 않는군.”
성문 앞에서 팽무성과 검선을 맞이하는 것은 북해무신의 최측근인 일장로였다.
“어서 오시오, 검선, 도왕.”
한기가 뚝뚝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자신들을 맞이하는 일장로.
일장로도 초월경의 경지를 밟고 있는 것을 확인한 팽무성은 북해빙궁의 전력이 만만치 않음을 알았다.
‘마교도 그렇고, 빙궁도 그렇고. 힘이 비대해졌군. 이러니까 힘을 분출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이지.’
일장로는 팽무성을 슬며시 훑더니 입술을 살짝 꿈틀거렸다. 자신의 기세로는 팽무성의 무공 수위를 조금도 읽어낼 수 없는 탓이었다.
팽무성도 일장로의 기운이 자신을 살피는 것을 알았으나 어디 해보라는 듯이 일장로를 정면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크흠.”
일장로는 헛기침을 한 채 등을 돌렸고 팽무성은 피식 웃으며 그 뒤를 따랐다.
팽무성과 검선의 좌우로 백의 무복을 입은 북해빙궁의 무인들이 도열한 채 이동 중이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죄인들을 호송하는 것 같았다.
일장로의 안내를 받으며 북해빙궁의 심처로 향하던 팽무성은 눈앞을 가득 채운 환한 번쩍임에 눈길이 사로잡혔다.
“정말 빙궁이로군.”
거대한 규모의 궁.
오 층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궁의 겉면은 모두 새하얀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북해의 태양에 비친 얼음은 찬란한 빛을 흘러내고 있었다.
단어 그대로 빙궁(氷宮).
어떤 방식으로 이런 빙궁을 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놀라운 수준의 건축물이었다.
“중원의 무림인이 북해빙궁을 눈에 담게 된 것을 영광으로 여기시오.”
일장로는 자부심이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빙궁 안으로 들어섰다.
빙궁의 안은 여느 전각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곳곳에 대들보 역할을 하는 굵고 거대한 얼음기둥이 눈에 들어왔다.
빙궁의 오 층으로 향하는 얼음계단 앞에서 일장로는 멈춰 섰다.
“이 계단은 도왕만 오르시오. 검선은 허락받지 못했소.”
일장로의 말에 헛웃음을 흘린 검선은 팽무성을 쳐다보았다.
“허허. 괜찮겠느냐.”
“예. 다녀오겠습니다.”
팽무성은 그렇게 홀로 얼음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 층으로 향하는 계단은 다른 층의 계단에 비해 두 배는 많았는데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공기가 점점 차가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어느새 팽무성이 계단의 끝에 올랐을 때, 입에서는 입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빙궁의 일 층부터 사 층까지가 보통 전각과 다를 바가 없었다면 마지막 오 층은 마치 얼음동굴 안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일었다.
주위로 푸르른 얼음만이 가득했고 간혹 동물의 형태를 한 얼음조각상이 진열되고 있을 뿐이었다.
‘어지간한 무림인은 오 층에 들어서자마자 얼어버리겠군.’
그만큼 오 층의 냉기는 지독했다.
같은 빙궁인데 이리도 환경이 다르니 팽무성은 내공을 끌어 올려 냉기를 밀어내야 했다.
팽무성은 얼음조각상이 길게 진열된 통로를 지나쳐 만년한철로 이루어진 문을 벌컥 열었다.
솨아아아
문이 열리자 더욱 지독한 냉기가 방 내부에서부터 팽무성을 옭아맸다.
이에 팽무성이 가볍게 손을 휘젓자 냉기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인사가 과하시군.”
“후훗. 어서 오세요. 도왕.”
얼음 의자에 앉아있던 북해무신은 팽무성을 향해 손짓하며 웃음을 머금었다.
은은한 윤기가 흐르는 백발을 지닌 북해무신은 중원의 어지간한 미인들은 가볍게 누를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 백발과 푸른 눈동자는 중원에서도 보기 힘든 외형이라 신비한 느낌까지 흘려내고 있었다.
“소녀가 북해빙궁의 궁주입니다. 북해에서는 북해무신이라는 과분한 별호로 불리고 있지요.”
“하북팽가의 팽무성이오.”
얼음 의자에 앉은 팽무성은 앞에 놓인 탁자마저 얼음으로 만들어진 것에 실소를 흘렸다.
“대접할 게 이것밖에 없네요.”
북해무신은 팽무성의 앞으로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찻잔을 내려놓았는데 찻잔 안에 든 찻물은 꽁꽁 얼어있었다.
팽무성은 아무렇지 않게 찻잔을 잡았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얼음뿐이던 찻잔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북해무신의 눈매가 휘었다.
찻잔의 물을 얼린 것은 단순한 냉기가 아닌 빙백신공(氷白神功)의 기운이었다.
그저 단순히 양기를 흘려보낸다고 하여 녹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가볍게 찻물을 녹인 팽무성은 한 모금 맛을 보더니 미련 없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맛도 없고 재미도 없고, 장난은 이쯤 하시지. 나이도 꽤나 드신 것 같은데.”
팽무성의 말에 북해무신은 입을 가리며 깔깔거렸다.
“어린놈이 제법 눈치는 있구나.”
북해무신은 표정과 말투가 돌변하여 팽무성을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었다.
특히 살짝 들떠 있던 북해무신의 눈동자는 축 가라앉아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윽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북해무신은 보이는 외모처럼 팽무성 또래가 아니라 완전한 반로환동으로 이십대의 외양을 지니고 있던 것이었다.
‘괜히 무신이라 불리던 것은 아니었나.’
그 사천조차 중년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북해무신이 삼천보다 더 높은 경지 위에서 놀고 있는 셈이었다.
“장난은 그만 하도록 하지. 이장로와 본궁의 선발대가 하북팽가에 잡혀있다던데.”
“맞소. 목숨은 살려두었지만 모두 무공을 폐했소.”
무척이나 당당한 팽무성의 태도에 북해무신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겁이 없구나. 근래에 무림에서 천하제일이라 불린다더니 그 자신감인가?”
팽무성은 주변의 온도가 점점 내려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입꼬리를 올렸다.
“딱히 무신이라고 떠받들어줄 이유를 찾지 못해서 말이오.”
팽무성의 말은 진심이었다.
낙호곡의 꿈에서 팔도무선을 본 이상 북해무신이라는 별호는 팽무성에게 별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 기개 하나는 감탄할 만 하구나.”
북해무신이 탁자에 손바닥을 착 올려놓자 얼음 탁자를 타고 빙백신공의 한기가 팽무성에게 쏟아졌다.
얼음 탁자에 서늘한 푸른빛이 감돌며 팽무성의 소매에 서리가 맺히기 시작했다.
이에 팽무성도 오른쪽 손을 탁자에 올려놓고 혼원벽력신공의 뇌기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빠지직
뇌기가 탁자를 가로지르자 투명한 얼음 탁자가 조금씩 노더니 이내 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맺힌 물방울이 떨어지기 전에 냉기가 물방울을 얼려냈고 다시 밀고 들어오는 뇌기가 물방울을 녹이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얼음 탁자는 팽무성과 북해무신의 손짓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있었다.
북해무신의 팔이 한 번 흔들리자 탁자가 팽이처럼 회전하며 날아들었다.
이에 팽무성이 손바닥을 위아래로 흔드니 탁자가 뒤집혀 북해무신을 향해 밀려났다.
두 고수는 내공을 겨룸과 동시에 탁자에 올려놓은 손바닥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서로의 기교를 확인하고 있었다.
팽무성의 소매가 부풀며 거칠게 펄럭였고 북해무신의 백발도 어느새 거꾸로 떠올라 산발이 된 상태.
내공과 기교를 겨루는 매개체가 된 얼음 탁자는 어느새 바닥에서 떨어져 둥둥 떠오르고 있었다.
“과연, 천하제일이라 불릴 만 하구나. 하나 북해무신이 포함되지 않는 천하제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정도로 무신이라 불리기에는 부족하지 않소.”
북해무신은 여유를 과시하듯 먼저 입을 열었고 팽무성은 간단하게 반격을 날려냈다.
팽무성의 도발에 북해무신의 흰눈썹이 살짝 치솟았다.
“곱게 죽을 생각은 하지 말거라.”
그런 상황에서도 팽무성과 북해무신의 힘겨루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얼음 탁자를 부수지 않을 한정된 내공만으로 상대에게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쩌저적
팽무성과 북해무신의 기파가 강하게 몰아치니 오 층의 얼음벽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내공과 기교를 겨루었을까.
비스듬히 기울어진 채 둥둥 떠오르던 탁자의 끝이 살짝 녹아들며 물 한 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팽무성과 북해무신에게는 하늘을 꿰뚫는 뇌성과 같이 크게 들렸다.
자신이 한 수 밀렸음을 알아차린 북해무신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흐응.”
탁자에 주입되던 냉기가 점점 강해졌고 이에 대응하는 팽무성도 혼원벽력신공을 서서히 끌어올렸다.
뻐억
양쪽에서 빠르게 증폭되는 내공을 버티지 못한 얼음 탁자가 결국 잘게 부서졌다.
파아앙
그 얼음 파편을 뚫고 팽무성과 북해무신이 일장을 교환하며 맞붙었다.
그 여파에 빙궁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북해무신. (3)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