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2)
1화
“왜 아직도 안 깨어나시는 거죠?”
“해독은 다 되었다. 기다려보자.”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는 소리.
예전에 들어본 익숙한 목소리다.
‘뭐야, 지금 내가 살아남은 건가.’
마교주의 손이 자신의 심장을 짓뭉개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보란 듯이 심장의 고동이 느껴졌다.
팽지혁은 힘겹게 눈을 떠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반쯤 뜬 눈 사이로 흐릿하게 보이는 것은 가월과 철호였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다.
‘잠깐, 가월과 철호라고?’
팽지혁의 눈에 당혹감이 서렸다.
지금 눈에 보이는 두 사람은 이미 죽은 인물들이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었다.
“아앗, 공자님.”
“사공자. 정신을 차리셨군요.”
게슴츠레 눈을 뜬 팽지혁을 본 가월과 철호가 침상으로 뛰어왔다.
팽지혁은 몸을 살짝 뒤로 빼며 물었다.
“사공자?”
팽가에 사공자라면 한 명뿐이다.
팽무성. 기이할 정도로 모자란 둔재.
하지만 사공자는 예전에 죽었다.
사공자가 죽은 지가 언제인데 사공자 타령을 하는 것인지. 어이없어하며 가월과 철호를 살피던 팽지혁이 굳었다.
두 사람이 죽었을 때보다 훨씬 젊은 얼굴.
이를 본 팽지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치 과거로 돌아온 느낌 아닌가.
“어?”
어떤 말도 안 되는 추측이 팽지혁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면경! 면경을 가져와!”
면경으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본 팽지혁은 말을 못 하고 침을 삼킬 뿐이었다.
미간을 가로지르는 검상이 보이지 않았다. 얼굴이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다.
‘이건 사공자의 얼굴이잖아.’
나이가 스물이 되던 해에 살수의 습격을 받아 죽은 사공자 팽무성의 얼굴이었다.
손에 힘이 빠지며 잡고 있던 면경이 떨어졌다.
“사공자. 괜찮으십니까.”
철호는 떨어지는 면경을 한 손으로 잡으며 팽지혁을 살폈다. 팽지혁은 머릿속에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말이 안 되지만 확인을 해야 했다.
“혹시 내가 이렇게 된 것이 살수의 습격을 받은 탓인가.”
팽지혁의 물음에 철호는 얼굴을 굳혔다. 그러고는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저희가 모자란 탓에 사공자께서 독침에 맞으셨습니다. 벌을 받겠습니다.”
“하.”
팽지혁은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가정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무슨 연유인지는 몰랐다.
그런데 과거로 돌아왔다.
그것도 원래는 죽었을 사공자 팽무성의 몸으로 말이다.
생각에 잠겼던 팽지혁의 눈이 번득였다.
과거에 사공자의 호위를 맡았던 적이 있었다. 살수들의 습격 때 자신도 자리를 지켰었다.
“지혁, 팽지혁은 지금 어디 있나.”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생각 외로 어색했다.
하지만 팽지혁이라는 이름을 들은 가월과 철호가 더 어색한 반응을 보였다.
마치 듣지 말아야 할 이름을 들은 모습들이다. 이에 팽무성은 철호를 재촉했다.
“뭐야? 왜 말을 못 해.”
철호는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지혁이는 이번 습격으로 죽었습니다.”
* * *
현호원.
하북팽가의 구석에 마련된 조촐한 정원.
현호원의 담장 주변은 수수한 꽃과 나무가 자라있지만, 그 안쪽의 모습은 달랐다.
열을 맞춰 무수히 박혀있는 작은 비석들.
비석마다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하북팽가에 지대한 공을 세우거나 중요한 전장에서 전사한 이들만이 올 수 있는 곳.
팽지혁(彭枝奕)
팽지혁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비석을 보니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를 지키다 죽었다고 이곳에 묻힐 수는 없을 텐데.”
사공자의 입지는 본가에서 전무했다.
십 년 동안 기본 무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공할 재능. 타인에게 도를 겨누지 못하는 유약한 심성까지.
세가의 어른들은 하나둘 관심을 끊었고 다른 형제들은 그를 경쟁자로 여기지도 않았다.
실제로 사공자도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으로 거처를 나오지 않고 방구석 폐인이 된 지 오래였다.
없는 취급을 당하는 버려진 공자를 지키다 죽었다 한들, 이곳에 묻히는 것을 다른 공자들이 가만히 두고 봤을 리가 없었다.
“실제로 대공자와 삼공자가 반대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하지만 병상에 계시던 가주께서 보고를 받으시고 직접 명령하셨습니다.”
“그런가.”
고아였던 자신을 팽가에 직접 데리고 온 전대 가주. 팽진연. 현시점에서는 아직 가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가주님.’
팽진연은 전생에서도 자신을 많이 아껴주어 내심 아버지처럼 여기고 있었다.
‘언제 한 번 존안을 뵈러 가야겠어.’
팽지혁은 팽진연을 잠시 생각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 대신 칼에 찔려서 죽었다고?”
“그렇습니다. 상황이 급박해서 몸으로 막으려 했나 봅니다.”
철호의 말을 듣고 나서야 기억이 명확하게 떠올랐다. 자신의 기억 속 사공자는 독침에 맞은 적이 없었다.
독침에 맞기 전에 검에 찔려 죽었으니까.
사공자의 호위가 된 지 이 주밖에 안 되었는데 벌어졌던 참극. 아들을 부탁한다던 팽진연의 얼굴을 볼 낯이 없었다.
‘내가 과거로 온 영향인가.’
원래 살았어야 할 팽지혁이 죽고 사공자 팽무성이 살아남았다. 팽지혁은 말없이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을 쓰다듬었다.
‘훗날 나 같은 꼴을 당하느니…’
팽지혁은 눈을 감으며 뒷말을 삼켰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을 보니 자연스레 생각이 정리되고 있었다.
이제부터 팽무성으로서 살아가야 했다.
‘팽지혁은 이제 죽었다. 나는 팽무성이다.’
팽무성은 비석을 보며 말했다.
“우리의 목표, 이번에는 이루어 보겠다.”
전생과 똑같이 하북팽가가 쓰러지는 것을 볼 생각은 없었다.
새롭게 얻은 기회를 통해 바꾸어야 한다.
팽무성, 자신의 미래와, 팽가의 미래.
우선 소가주가 되어 몰락하는 하북팽가를 바꾸는 것이 우선이다.
마교가 침공하기 전 최대한 빠르게.
팽무성은 비석을 만지던 손길을 거두었다.
‘음?’
몸을 일으키는 팽무성의 모습을 지켜보던 철호가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
너무나도 부족한 오성으로 무공을 가르치던 장로들에게 매일 꾸중을 들었던 사공자다.
거기에 조용하고 소심한 성격이 더해져 사공자의 인상은 언제나 그늘이 지고 힘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뭐지? 뭔가 바뀌셨다.’
축 처져 있던 눈썹의 양 끝은 하늘로 치솟았고 번쩍 떠진 두 눈은 불꽃 같은 정광을 보이었다.
특히 눈빛이 매서워 마치 호안(虎眼)을 마주한 듯했다.
그것만으로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팽무성은 평소보다 한층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돌아가자.”
철호는 달라진 팽무성을 한참 바라봤다.
사공자 팽무성의 거처.
사주각(四株閣).
사주각으로 돌아온 팽무성은 가월과 철호를 불러 다탁에 앉혔다. 아무도 말이 없어 가월이 차를 따르는 소리만 작게 들려왔다.
팽무성은 가월이 직접 내린 차를 마시며 목을 축였다. 가월은 팽무성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가월이 팽무성의 곁을 지킨지 십 년이 훨씬 넘었다. 달라진 분위기를 모를 리가 없었다.
“가월, 철호야.”
“네, 사공자.”
“말씀하세요.”
팽무성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이제 나도 나이가 찼으니 소가주 경합에 참여할 것이다.”
팽무성의 말에 가월과 철호의 커진 눈이 서로를 향했다.
그동안 소가주 경합에 전혀 관심이 없던 팽무성이다. 갑자기 태도를 바꾸니 놀랄 수밖에 없다.
“이전처럼 한적한 일상은 이제 없을 거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주시하기 시작하겠지. 사소한 것도 조심하고 신경 써야 한다.”
가월의 눈이 순간 깊어졌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가월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팽무성을 보면서도 애써 웃으려 했다.
“네, 앞으로 바빠지겠네요.”
철호는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지닌 성정이 신중하고 생각과 행동이 가볍지 않다. 묵직한 바위와 같은 사내다.
철호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팽무성은 대답을 재촉하지 않고 차분히 기다렸다.
눈을 감고 생각을 하던 철호는 입을 열었다.
“사공자께서 말씀하신 것을 보아 이루기 힘든 길인 것을 잘 아시는 듯합니다. 끝까지 가실 생각입니까?”
“물론이다.”
철호는 팽무성의 눈을 한참 바라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따르겠습니다.”
사실 철호는 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말려야 했다. 평소의 사공자라면 철호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사공자는 다른 형제들에게 먹잇감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철호는 현호원에 다녀간 그 이후의 팽무성이 무엇인가 달라졌다고 느꼈다.
팽무성이 갑자기 소가주가 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허나 현호원에서 본 그 불꽃 같은 눈빛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한번 보고 싶어졌다.
그 타오르는 눈빛의 끝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 광경을 확인하고 싶었다.
“좋아.”
팽무성은 두 사람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겨우 두 명으로 시작하지만 부족함은 없었다.
전생에서도 각자의 위치에서 팽무성을 위해 최선을 다한 이들이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그 끝은 좋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 끝이 다를 것이다.
자신이 직접 그렇게 만들 테니까.
* * *
팽무성은 가월과 철호를 물리고 홀로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버려진 자식이라지만, 직계가 암살 시도를 당했는데 조용하군.’
철호와 가월에게 물어본 팽가의 분위기는 그저 고요했다. 비정상적인 일이었다.
팽무성은 그 이유를 대충 예상했기에 깊게 생각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것보다 소가주 경합을 준비해야겠네.”
현재 소가주 후보는 세 명.
이제 사공자인 자신도 약관이 되었으니 그 자격이 되었다. 경쟁자가 한 명 더 늘어나는 것이다.
소가주 경합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자격을 증명해야 했다.
그 자격이란 바로 2년의 협호행(俠虎行).
본가를 떠나 강호를 활보하며 자신의 가치를 팽가의 가솔들에게 증명하는 것.
이 협호행의 성과에 따라 자신을 지지하는 가솔들의 수가 달라지기에 협호행은 소가주 경합의 시작이자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었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윗줄의 형제들은 예전에 협호행을 마치고 자신의 지지기반을 확실히 닦고 있었다.
‘형제들이라…’
공자들의 면면을 떠올린 팽무성의 손에 힘줄이 솟았다. 세 명의 공자 중에 전생의 팽지혁과 팽호대를 팔아먹은 놈도 있었다.
“이번에는 네가 가주가 될 일은 없다.”
이제부터 벌어질 소가주 경합의 상황은 전생과는 다르게 흐를 것이다.
전생에는 없었던 새로운 경쟁자가 세 명의 공자들을 꺾고 가주의 자리에 오를 테니.
팽무성은 전생과 같은 가주 밑에서 살아갈 생각도, 다른 가주를 세울 생각도 없었다.
“내 손으로 직접 바꿔야겠지.”
팽무성은 확고한 다짐을 한 상태였다.
자신이 직접 가주가 되기로.
팽무성은 분노가 섞인 숨을 내뱉고는 주먹을 풀었다. 현실적으로 팽무성이 형제들과 정면으로 부딪치기에는 무리였다.
형제들은 저마다 외가에서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팽무성은 알기로 외가라 할만한 곳이 없었다.
혼자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남들은 절대 가질 수 없는 이점이 존재했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 도왕이라는 별호를 가진 고수까지 성장한 경험과 재능.
향후 벌어질 미래의 사건과 지식.
이 차별점은 앞으로 팽무성에게 커다란 힘이 될 것이다.
이를 잘 이용한다면 충분히 형제들을 앞지를 수 있고 미래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무공부터 시작해야지.”
세력이 없는 팽무성이 형제들과 경쟁하고 나아가 무림을 마음대로 활보하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무공이 필수였다.
다른 형제들에 비해 시작은 많이 늦었지만 금방 따라잡을 수 있다.
전생에는 십대고수의 말석에 만족해야 했으나 지금은 다르다. 전생보다 더 강해질 자신이 있었고 그래야만 했다.
이번에야말로 마교주에 닿을 수 있도록.
무력하게 후회하며 죽는 것은 전생으로 충분했다.
앞으로 반년은 무공에 시간을 집중한다.
평범한 무인이라면 일정 성취를 보기에는 부족한 시간. 하지만 팽무성에게는 지나온 길을 다신 걷는 것에 불과했다.
팽무성은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현재 몸 상태를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눈을 감은 팽무성은 내부를 관조하기 시작했다.
‘정말 이런 몸을 가지고 둔재라는 소리를 들은 건가.’
팽무성의 눈썹이 파르르 덜렸다.
하북팽가는 타고난 근골과 대력을 자랑한다. 이 때문에 하북팽가의 핏줄에 역발산기개세 항우의 피가 섞인 것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팽무성의 근골은 빼어났다.
이 정도의 근골은 팽가에서도 보기 드물다.
장로들이 사공자의 자질을 평하며 혀를 찼다는 소문이 떠올랐다.
심성이 유약해 타인에게 도를 겨누거나 휘두르지 못한다. 타고난 근골은 훌륭하나 이를 받쳐줄 오성이 부족하다.
‘그 소문이 사실이었나.’
오성은 쉽게 말해 지성과 사고능력이다.
육체는 뛰어나지만, 오성이 부족하여 무공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니.
드문 일이지만 아예 없는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내부는 어떨까.
‘이게 뭐야.’
내공의 움직임을 살피던 팽무성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지개를 펴는 호랑이. (2)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