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20)
19화
태원 구석의 작은 장원.
장원에는 묵진방이라는 현판이 비스듬히 걸려있었다.
삐뚤삐뚤한 필체를 감상하던 팽무성을 언짢게 보는 이들이 있었다.
묵진방에 소속된 왈패들이었다.
“어이, 뭘 그리 구경해.”
대문 앞에서 죽치고 있던 사내들. 하나같이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마다 얼굴에 검상이 그어져 있어 이 정도면 일부러 그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내 중 제일 덩치가 큰 이가 팽무성에게 다가왔다.
그래도 팽무성에 비하면 모자랐지만, 고개를 치켜들고 팽무성을 노려보았다.
눈빛만은 당장이라도 죽일 듯 살벌했다.
“이게 사람 말을 무시하네, 죽으려고. 지금 덩치 좀 크다고.”
짜악
사내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귀를 울리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허공을 날았다.
뺨을 맞은 사내는 한쪽 볼이 붉게 부어오른 채 일어나지 못했다.
“어어?”
이에 다른 사내들은 그저 입을 뻐금거리기만 했다.
사내들의 눈에는 팽무성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혼자 날아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 가려서 안 보이잖아.”
팽무성은 날아간 사내를 보더니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는 사내들에게 물었다.
“여기 묵진방 맞아?”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머뭇거리자 팽무성의 양쪽 눈썹이 치솟았다.
“맞냐고.”
“맞습니다!”
눈알을 부라리니 그제야 대답이 나왔다.
현판의 필체가 워낙 엉망이라 글씨를 읽기가 힘들었다.
팽무성은 대문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슬며시 주먹을 말아쥐었다.
콰앙
팽무성의 주먹은 마치 공성추와 같았다.
일권에 대문을 날려버린 팽무성은 거침없이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이를 옆에서 멍하니 쳐다보던 사내들은 뒤늦게 얼굴을 구기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방주님께 죽었다.”
* * *
묵진방의 집무실에서는 방주를 비롯한 간부들이 모여 한참 회의 중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문파의 회의와 사뭇 다른 부분이 있었다.
“좀 더 가까이 오너라.”
“후훗, 지금도 너무 붙어있는데요?”
간부들은 종이 대신에 술잔을 들고 있었고 여인들을 한 명씩 끼고 있었다.
“금적상단은 요즘 어찌 되었나?”
적륜문은 일의 경중이 낮은 자잘한 일들은 묵진방에게 전담시키고 있었다.
적륜문에 줄을 대고 싶은 묵진방주로서는 절호의 기회였다.
“사해객잔을 비롯한 금적상단의 사업체는 지속적으로 손을 쓰고 있습니다.”
묵진방은 사파의 작은 문파다.
묵진방의 대부분이 무인이라기보다는 왈패나 파락호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사내들.
그들이 손을 쓴다는 말은 그리 거창한 말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왈패들을 사업체로 보내 장사를 방해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금적상단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괴롭히고, 빼앗고, 방해하고, 망치고.
모두 왈패들의 특기였다.
“장사는 이제 못 하고 있나?”
“이게 반복되니 사람들이 알아서 피하고 있습니다. 아예 방문하는 손님들이 줄었습니다. 상단의 무인놈들도 심력을 쏟고 있습니다.”
난리가 벌어지면 금적상단의 무인들이 들이닥치기는 했다.
하지만 수습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묵진방은 대체로 무공의 경지는 낮았지만, 밑바닥 특유의 독기가 있어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거기에 숫자마저 많았다.
거기에 묵진방은 자신들이 무력에서 불리함을 알았다.
그래서 때를 맞춰서 미리 빠져버리면 상단 무인들은 답이 없었다.
“거기에도 좀 센 놈이 있지 않았나. 실력이 일류였나?”
묵진방주는 허 무인을 말하고 있었다.
실제로 묵진방은 허 무인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허 무인이 사업체를 도는 날은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상대하고자 하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지만 그렇게 열과 성을 들일 필요는 없었다.
자신들은 적륜문의 뒤에서 살짝 돕는 정도니까.
적당히 성의를 보이며 적륜문주가 하라는 대로 하면 그만이었다.
“예, 그놈은 지금 상단주를 따라서 상행에서 막 돌아왔다고 합니다.”
보고에 묵진방주의 입술이 튀어나왔다.
“하, 요즘 자리를 비워서 우리 애들이 일하기 편했는데.”
“제가 애들을 보내서 확인했는데 부상을 입은 듯 보였습니다.”
이에 묵진방주는 흐뭇한 웃음을 그렸다.
“그렇다면 그 틈에 좀 더 애들을 움직여야겠군.”
콰아앙
바깥에서 들려오는 폭음에 묵진방주는 벌떡 일어섰다.
“뭐냐, 벽력탄이라도 터진 거냐!”
간부들도 깜짝 놀라 저들끼리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인상을 찌푸린 묵진방주는 집무실을 빠져나와 바깥으로 뛰어갔다.
“대문 쪽으로 모여!”
“뭔 일이야!”
“대검방에서 쳐들어 왔나?”
곳곳에 흩어져 있던 묵진방도들이 대문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뭐냐, 저놈은.”
묵진방주는 미간을 좁혔다.
다른 사파에서 쳐들어온 줄 알았더니 보이는 것은 단 한 명이었다.
박살 난 대문으로 보이는 나무 조각을 밟고 들어오는 거대한 덩치.
아무리 봐도 모르는 놈이었다.
‘쓰읍. 무슨 놈의 눈이.’
팽무성과 눈을 마주친 묵진방주는 속으로 침을 삼켰다.
저 살벌한 눈빛은 마치 산 속의 맹수를 마주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묵진방주는 금세 웃음을 머금었다.
외양만 거칠고 무서운 놈들은 사파에서 흔해 빠졌다.
진짜배기는 특유의 분위기를 흘리는 놈들이다.
하지만 눈앞의 덩치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고수는 아닌 것 같은데.’
묵진방주는 어릴 때부터 뒷골목에서 구르며 여기까지 올라온 사내였다.
말단에서 방주에 오르기까지 꾸준히 익혀온 무공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사십여 년을 쏟아부어 일류의 초입에 불과했지만 묵진방주는 최소한 고수를 판별하는 눈을 가졌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 눈이 지금까지 자신을 살려오기도 했다.
“무슨 자신감으로 이딴 짓을 벌인 거냐!”
확신이 서자 묵진방주의 목소리에도 자연스레 힘이 실렸다.
묵진방주가 기세등등하자 휘하의 왈패들도 자연스레 기세가 올랐다.
팽무성을 향해 온갖 욕설과 비방이 쏟아졌다. 팽무성은 묵진방을 쭉 훑어보더니 정확히 묵진방주를 보며 말했다.
“네가 묵진방주인가?”
묵진방주의 팔자주름이 깊어졌다.
“네가? 이게 미쳤구나.”
“방주, 당장 처리하겠습니다.”
팽무성의 말에 간부들이 대경하여 소리쳤다. 누군가는 말없이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팽무성은 그러거나 말거나 끝까지 묵진방주를 쳐다봤다.
“오늘부로 묵진방은 문을 닫는다. 이유를 굳이 설명해줄 필요는 없겠지.”
묵진방주는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죽이지는 마라, 어떤 놈인지 확인해야 하니까.”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순간 묵진방주는 가슴이 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묵진방주의 명령을 듣고 웃는 팽무성.
그 웃음을 보자 순간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
그때 이미 묵진방 전원이 팽무성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팽무성은 그저 웃으며 주먹을 들었다.
마치 호랑이의 입이 벌려지며 어금니가 보이는 듯했다.
묵진방주는 뒤늦게 소리쳤다.
“멈춰!”
콰직
팽무성의 주먹이 솟구쳤다.
제일 선두에서 칼을 휘두르던 사내도 함께 부웅 떴다.
호랑이가 날뛰기 시작했다.
* * *
“끄으억.”
“아악.”
묵진방의 장원에서 두 발로 서 있는 이는 팽무성과 묵진방주 뿐이었다.
곳곳에서 낮게 울리는 신음.
저마다 어디 하나를 부여잡고 꿈틀거리는 사내들을 보며 묵진방주는 눈을 찌푸렸다.
다들 목숨은 붙어있었지만, 사지가 멀쩡한 놈들이 없었다.
게다가 모조리 단전이 파괴된 상황.
쥐꼬리만한 내공이라 있으나 없으나 상관은 없겠지만.
‘망했군.’
이놈들이 앞으로 사파로 살아가기는 무리였다.
일반적인 생활조차 힘들 것이다.
묵진방주는 사파로 평생을 살아왔기에 잘 알고 있었다.
자신들은 양민의 피와 살을 착취하며 살아왔다.
이제 그런 양민보다 약해져서 그들 틈에 섞여서 살아가야 했다.
그동안 당하며 살아온 양민들이 가만히 두고 볼까.
어쩌면 한이 맺힌 매타작에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부하들에 대한 연민도 잠시뿐이었다.
묵진방주는 자신의 안위에 대한 걱정이 우선이었다.
‘어디서 온 놈이지, 이런 고수가 엮일 일은 벌인 적이 없는데.’
묵진방주는 머리를 빠르게 굴렸지만, 이 정도의 고수가 나설만한 견적을 가진 일을 떠올리지 못했다.
“너희들은 산서의 사파에게 보이는 본보기다. 금적상단에 헛짓거리를 하면 이렇게 된다는.”
금적상단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튀어나오자 묵진방주는 입술을 꿈틀거렸다.
이제야 전후 사정이 끼워 맞춰졌다.
‘이놈들, 몰래 고수를 고용한 건가. 그런 정황은 포착하지 못했는데.’
“묵진방주, 너는 할 일이 있다.”
묵진방주는 급히 허리를 숙였다.
“예, 말씀하시지요. 대협.”
방금까지 멀쩡하던 자신의 문파를 쳐부순 장본인을 대협이라 칭했다.
이에 팽무성은 코웃음을 쳤다.
“적륜문주에게 직접 전해.”
적륜문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묵진방주의 눈이 커졌다.
커진 눈은 불안하게 떨렸다.
“금적상단의 일에서 손 떼라고. 싫으면 직접 이곳으로 찾아오던가. 겁나면 내가 그쪽으로 가고.”
팽무성의 말이 이어질수록 묵진방주의 안색이 점점 썩어갔다.
이런 말을 전하라는 것은 죽으러 가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묵진방주의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을 때 팽무성이 뒷말을 덧붙였다.
“중간에 도망치면 알지?”
묵진방주는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도망치면 굳이 팽무성이 아니더라도 적륜문에서 쫓아온다.
일을 이렇게 벌여놓고 도망친 사실을 알면 가만히 둘 놈들이 아니었다.
도망칠 곳이 없는 사면초가.
어느 방향이든 결국, 앞으로 가야 했다.
결국, 묵진방주는 걸음을 옮겼다.
이러나저러나 죽는다면 조금이라도 살 확률이 있는 쪽을 택해야 했다.
묵진방주는 걸어가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느 때와 똑같은 푸른 하늘. 더럽게 맑았다.
자신은 멀쩡히 살아있는데 남의 손에 목숨을 맡기는 기분이라.
정말 더러웠다.
“빌어먹을.”
적륜문을 향하는 묵진방주의 걸음걸이는 한없이 무거웠다.
* * *
“지금쯤이면 몰려오고 있겠네.”
팽무성은 장원의 지붕에 걸터앉아 있었다.
적륜문과 묵진방 모두 태원에 있었다.
묵진방을 털고 적륜문으로 곧장 쳐들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팽무성은 굳이 그러지 않았다.
적륜문을 쳐들어가는 것은 확정이었다.
하지만 굳이 적륜문의 무인들을 한 번에 상대할 필요가 있을까?
무공에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단신으로 적륜문을 무너트릴 자신이 있었다.
다만 쉬운 일이라도 이왕이면 효율적이고 이득을 볼 수 있는 쪽으로 움직이고자 했다.
전생에 팽호대를 이끌며 팽호대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행동하면서 생긴 버릇이었다.
적륜문에게도 금적상단의 일은 중요한 만큼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일 것이다.
묵진방주의 얘기를 듣는다면 최소 타격대 하나는 보낼 것이다.
이 정도 전력 분산도 만족스러울 것이다.
단순한 전력 분산을 넘어서 적륜문의 무공과 수준을 파악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태원의 전경을 바라보던 팽무성이 안력을 높였다. 그러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저기 오는군.”
살기등등한 기세로 대로를 가로지르는 무인들. 적륜문의 타격대였다.
한참 장사를 하고 있던 상인들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적륜문 무인들의 뒤를 쳐다봤다.
“소문은 확실히 나겠네.”
강호의 소문이란 직접 본 이들에 의해 살이 더 붙기 마련.
팽무성은 오늘의 일이 상인들에 의해 더 빠르고 화려하게 퍼질 것을 확신했다.
협호행을 하며 강호에 명성을 떨쳐야 하는 팽무성에게는 더없이 좋은 일이었다.
굳이 일을 조용히 처리할 필요는 없었다.
필요할 때는 화려하게 벌일 줄 알아야 했다. 팽무성은 오늘 그럴 셈이었다.
팽무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에 맞추어 적륜문의 타격대, 적검단이 들이닥쳤다.
“네놈이 적륜문의 행사에 감히 왈가왈부 한 놈이냐?”
적검단주를 필두로 좌우로 빠르게 흩어진 적검단은 장원을 둘러쌌다.
이를 본 팽무성의 움직임은 여유로웠다.
“문주께서 네놈을 끌고오라 하셨다, 사지는 잘라서 말이야.”
스릉
팽무성은 천천히 도를 뽑아 들었다.
“굳이 손속에 사정을 둘 필요는 없겠지?”
팽무성은 적검단을 눈에 담으며 물었다.
“애초에 정파와 사파가 서로 봐주고 살려주는 사이도 아니잖아?”
지금만큼은 같은 생각인 듯 적검단은 팽무성을 향해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삼십 명이 일제히 쏟아내는 살기.
하지만 팽무성에게 이 정도 살기는 귀여웠다.
팽무성은 망설임 없이 지붕에서 뛰어내렸다.
“쳐라!”
적검단주의 명령에 적검단도 일제히 검을 뽑아 들고 팽무성에게 뛰쳐 갔다.
팽무성은 적검단의 한가운데로 도를 크게 휘둘렀다.
콰직
팽무성의 몸놀림을 보는 적검단주의 눈이 점점 커졌다.
말재주가 없으니 몸으로 설득한다. (4)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