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21)
20화
묵진방의 장원은 피로 물들었다.
적검단의 붉은 무복처럼 묵진방의 땅은 붉게 물들었다.
적검단은 특기인 적륜검진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전멸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사방을 찢어버리는 도격. 팽무성은 적검단을 손쉽게 유린했다.
“커흑.”
팽무성의 발이 적검단주의 가슴을 짓밟고 있었다. 팽무성의 각력에 늑골이 다 부서진 채였다.
“정파의 어린놈이 피를 보는 것을 꺼리지 않는구나.”
“그 어린놈을 상대로 떼로 몰려든 놈한테 듣고 싶은 말은 아닌데.”
팽무성은 가슴을 밟고 있는 오른발에 힘을 주었다. 압력이 강해지자 적검단주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내가 후환을 남기는 성격은 아니라서.”
적검단주는 마지막까지 팽무성을 저주했다.
“너는 문주에게 사지가 찢겨 죽을 거다.”
* * *
팽무성은 태원의 대로를 걷고 있었다.
팽무성의 등장과 함께 시끌벅적하던 좌판은 조용해졌다.
적검단이 묵진방으로 쳐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상인들이었다.
그런데 팽무성이 홀로 나왔다.
그 의미를 알고 있는 상인들은 슬며시 길을 비켜주며 팽무성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묵진방의 장원 쪽을 기웃거렸고 누군가는 팽무성의 무복에 수놓아진 호랑이를 보며 저들끼리 속삭이고 있었다.
“묵진방에, 적륜문. 설마…”
“금적상단이군.”
“이참에 싹 쓸어버리면 좋을 텐데! 한가와 적가도 저놈들 때문에 가게를 접었지 않았나.”
“쉿, 겨우 한 명이야. 큰 기대 하지 말게. 쓰읍. 오늘 장사는 일찍 접어야겠어.”
태원의 상인들 사이에서 금적상단은 유명했다.
자신보다 큰 규모의 적화상단을 상대로 버티면서 적륜문과 묵진방의 방해를 견디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으니까.
상인들은 응원의 눈빛을 담아 당당하게 나아가는 팽무성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팽무성은 적륜문 앞에서 멈춰 섰다.
문을 지키는 수문 무인은 없었다.
어서 들어오라는 듯이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팽무성은 바로 적륜문의 문턱을 넘었다.
제법 돈을 들인 듯 청강석이 바닥에 깔려 있었고 그 뒤로 전각들이 늘여져 있었다.
중소문파라 하기에는 그 규모가 화려한 면이 있었다.
“공을 들였네.”
팽무성은 매끄러운 청강석 바닥을 밟으며 걸어갔다.
그러다 중간쯤 걸음을 멈추었다.
청강석 바닥이 넓게 깔린 이곳은 연무장으로도 쓰이는 것으로 보였다.
잘 보면 청강석 바닥에 도검에 미세하게 긁힌 흔적이 있었다.
“이제 나오지.”
팽무성은 평소와 같이 말했다.
목소리에 내공이 실려 적륜문 전체에 울렸다.
쿵
열려있던 적륜문의 대문이 굳게 닫혔다.
그 소리를 신호로 양쪽에서 적륜문의 무인들이 쏟아져나왔다.
좌우, 후방을 점한 무인들은 팽무성의 퇴로를 점하고 그대로 대기했다.
“하북팽가의 핏줄이라 그런가, 패기가 대단하군. 정말 홀로 찾아올 줄이야.”
연무장의 정면으로 홀로 걸어오는 중년인.
한쪽에는 붉은 안대를 차고 있었다.
적륜문의 문주, 독안도였다.
“자네가 보낸 선물은 잘 받았네.”
독안도는 팽무성을 향해 뭔가를 던졌다.
억울한 표정을 한 묵진방주의 목이었다.
“설마 금적상단, 그런 별 볼 일 없는 상단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건가?”
굳이 친절하게 설명해줄 필요는 없었다.
팽무성은 대신 다른 얘기를 꺼냈다.
독안도에게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금적상단만 엮여있다면 대충 마무리 지으려 했는데 적륜문 뒤에 있는 놈 때문에 마음이 바뀌었다.”
독안도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독안도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네놈.”
“청빙음마, 그 늙은이가 산서에 꼼수를 부리고 있었을 줄이야.”
성을 대표할 마땅한 대문파가 없는 산서. 그 덕분인지 다른 성에 비해 훨씬 많은 수의 중소문파가 난립하고 있었다.
그 중소문파 중에서도 정파의 비율이 절반이 넘어섰다.
섬서의 화산과 종남.
하북의 언가.
하남의 소림까지.
언급된 문파들은 성의 경계를 넘어 영향을 끼치는 대문파였다.
산서를 둘러싼 지역의 명문 정파에 어지간한 사파는 산서에서 숨도 못 쉴 지경이었다.
그런 산서에 청빙음마가 대담하게도 자신의 수족과 세력을 심어서 몰래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이는 팽무성도 천살택문의 정보를 보고 안 사실이었다.
‘하북의 마랑문을 견제하기 위함인가, 하긴 사도천의 정치 상황은 내 알 바 아니지.’
청빙음마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독안도의 하나뿐인 눈에서 시퍼런 불꽃이 튀겼다.
“팽무성, 너는 선을 넘었다.”
역시나 독안도는 팽무성을 알고 있었다.
“너희도 선을 넘었던데, 적륜문이 자리 잡는 과정에서 태운장, 정검문에 수작을 벌여놨던데. 지금 이 자리도 원래 태운장이 있었다지.”
술술 흘러나오는 적륜문의 치부에 독안도는 등에 차던 거치도를 뽑아 들었다.
그와 동시에 적륜문도들이 조금씩 팽무성에게 접근했다.
팽무성은 그러거나 말거나 독안도를 보고 있었다.
“청빙음마가 몸을 보신하라고 뱀 두 마리를 선물로 보내셨거든. 그래서 나도 선물을 드리려고.”
흑적쌍사.
독안도는 그 일을 알고 있었다.
문파에 남아있는 무인들을 총동원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피해는 상관없었다.
청빙음마의 성격상 적륜문의 피해보다 팽무성의 죽음에 눈이 갈 것이다.
스릉
팽무성의 도신이 시퍼런 빛을 흘렸다.
“오랜만에 부하의 머리를 보면 청빙음마도 좋아하시겠네.”
독안도는 거치도를 팽무성에게 겨누었다.
“죽여라.”
마침내 떨어진 명령.
때를 노리고 있던 적륜문의 무인들이 달려들었다.
평범한 후기지수였다면 치를 떨었을 광경.
하지만 팽무성은 오히려 재밌다는 듯 이빨을 드러냈다.
홀로 수많은 적을 상대하는 것은 팽무성의 특기였으니까.
하단을 향했던 팽무성의 도가 서서히 올라왔다.
죄다 붉은 무복을 입고 있어 마치 붉은 파도가 밀려오는 듯했다.
하지만 팽무성의 도는 파도마저 가를 힘을 지니고 있었다.
솨악
도가 시원하게 좌우로 그어졌다.
거기서 다시 사선으로 베어갔다.
“크학.”
누군가의 핏물이 튀기고 손발이 잘려나갔다.
수십 자루의 검이 어지럽게 움직였으나 닿지 않았다.
“쉴 틈을 주지 마라!”
“단 한 번이다. 한 번만 찌르면 저놈도 끝이다.”
“와아악!”
여기저기서 명령이 쏟아졌고 적륜문도들이 죽어라 덤벼들었다.
그럴수록 도는 흉포한 기세를 내뿜으며 적을 베어 넘겼다.
비릿한 혈향이 팽무성을 감쌌다.
‘이런 느낌은 오랜만이네.’
전장에서 살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마치 개떼 사이에서 날뛰는 호랑이와 같았다. 도가 빛을 뿜을 때마다 핏물이 번졌다.
바닥에 몸을 맡기는 이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청강석 바닥은 점점 붉게 물들었다.
이에 점점 적륜문 무인들의 눈에 두려움이 새겨졌다.
‘지금이면 적당하다.’
이를 읽은 팽무성은 내공을 끌어올렸다.
도신을 감싼 붉은 도기.
도가 휘둘러지며 붉은 도풍이 여러 갈래로 쏟아졌다.
“흩어져!”
범상치 않은 내공의 흐름을 느낀 독안도가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화려하고 광범위한 초식.
혈호난풍(血虎亂風).
서로 엮이며 휘몰아치는 도풍에 적륜문도들은 힘없이 휩쓸렸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동료들을 보며 적륜문도들은 멈칫거렸다.
이를 본 팽무성은 입꼬리를 올렸다.
일부러 화려하고 다수를 노리는 초식을 펼친 이유가 이것에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조금씩 두려움이 올라오는 적륜문도들이다.
그런 와중에 이런 무자비한 초식을 본다면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다수가 소수에게 심리적으로 밀릴 때 그 전장의 분위기는 반전이 되었다.
다수가 소수를 사냥하는 싸움에서,
소수가 다수를 학살하는 싸움으로.
이런 경우는 수도 없이 봤다.
수많은 전장을 넘어온 전생의 경험이 길을 제시했다.
팽무성의 신형이 하늘을 날았다.
겁에 질린 무인은 놔두고 아직 전의가 남아있는 쪽을 노렸다.
푸학
먹잇감을 노리고 달려드는 호랑이를 누가 막겠는가.
“저걸 어떻게 죽이라는 거야.”
팽무성의 움직임은 여전히 가볍고 힘이 넘쳤다.
점점 뒷걸음질 치는 무인들이 늘어났다.
사기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이에 타격대의 단주로 보이는 이들이 소리쳤다.
“적랑단, 검진을 펼쳐라.”
“적귀단, 검진이다!”
그때 다시 한번 팽무성의 도가 호선을 그렸다.
“처음부터 검진을 펼쳤어야지.”
지휘자의 판단이 늦었다.
팽무성의 학살에 눈길을 뺏겼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상황은 기울어졌다.
어설프게나마 검진이 완성되었지만 팽무성의 눈에 차지 않았다.
마교의 수라혈검진이나 흑룡난련진에 비하면 약점을 찾아 파훼할 가치조차 없었다.
“이딴 걸 검진이라고.”
너무 엉성해서 대충 후려쳐도 알아서 무너졌다.
콰앙
붉은 도기가 솟구쳤다.
거력이 실린 도격이 검진을 가로질렀다.
팽무성은 단순히 힘으로 검진의 축을 날려버렸다.
“엇?”
“사라졌다.”
적륜문의 무인들은 팽무성이 사라지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팽무성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적랑단주와 적귀단주가 쓰러진 뒤였다.
자신들을 이끌던 단주들마저 죽자 남아있는 적륜문도들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쿵
산왕군림보의 진각이 울렸다.
태산 같은 엄중한 기파가 팽무성을 중심으로 흘러나왔다.
“무기를 버리고 꿇어라.”
팽무성은 적을 살려둔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전의를 상실해 무기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는 적륜문도는 더는 적이라 할 수 없었다. 상대할 가치가 없었다.
그저 무의미한 학살에 불과했다.
적륜문도는 서로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
“큭.”
누군가 산왕군림보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무릎을 꿇었다.
그때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놓치고 말았다.
챙
검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적륜문도의 귀에는 크게 들렸다.
채채챙
이 소리가 도화선이 되었다.
앞다투어 무기를 바닥에 버리고 산왕군림보의 압력에 몸을 맡겼다.
독안도는 이 광경을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쯧, 이런 것들을 데리고 큰 일을 하려고 했었군.”
독안도는 중얼거리며 팽무성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피로 물든 바닥을 보며 입을 열었다.
“팽무성, 대체 오늘만 몇 명을 죽인 거냐, 강호초출이 뭘 믿고 이리 날뛰는 거냐?”
독안도가 혀를 나불거리자 팽무성의 눈이 매서워졌다.
이를 본 독안도의 혀가 쉴새 없이 움직였다.
“몰락하는 팽가 따위가 사도천과 청빙음마라는 두 이름의 무게를 감당해낼 수 있겠느냐? 네놈의 무모함이 팽가를 지도에서 지울 것이다.”
요사스럽게 움직이는 독안도의 혀를 보며 팽무성이 피식 웃었다.
“뱀 새끼들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사도천, 청빙음마. 이 두 이름을 꺼내지 못하면 말을 못 하는 건가.”
팽무성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도신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사도천, 청빙음마. 나는 이 두 이름이 무겁지도, 무섭지도 않아.”
팽무성의 전신에서 가공할 투기가 구름처럼 흘러나왔다.
독안도는 피부가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따끔거림을 느꼈다.
도가 독안도를 향해 겨누어졌다.
“자기 이름은 내뱉지도 못하면서 다른 이름만 내세우는군. 무인의 자존심도 없냐?”
혹여나 팽무성을 흔들기 위해 꺼낸 말이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독안도가 화만 치미는 꼴이 됐다.
“건방진 말을 잘도 지껄이는군.”
독안도의 전신에 핏줄이 솟아오르고 근육이 팽창했다.
동시에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내공.
흉포한 기세를 흘리는 독안도를 보며 팽무성이 중얼거렸다.
“잠혈폭공인가.”
잠력을 폭발시켜 단시간에 본연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파의 무공.
사도천의 무인들이 익히고 있는 사공이었다.
“크륵.”
“말은 잘하더니 겨우 그딴 사공에 의지하네.”
독안도는 정상적으로 싸우면 팽무성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올바른 판단이기는 했다.
“팽무성, 찢어 죽여주마.”
독안도의 목소리는 마치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울음소리와 같이 변했다.
독안도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등 뒤에서 이빨을 드러내는 거치도.
거치도가 팽무성의 전신을 토막 내려 하고 있었다.
팽무성은 거치도의 톱날같이 튀어나온 날 부분을 보며 웃었다.
“발악을 하네.”
말재주가 없으니 몸으로 설득한다. (5)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