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24)
23화
낙양에서 살짝 떨어진 한적한 공터.
두 사람은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와 여인 간의 애틋함은 없었다.
빈틈이 보이면 당장이라도 물어뜯으려는 차가운 예기만이 맴돌았다.
팽무성은 도를 빼내 하단으로 늘여놓았고 당화련은 펑퍼짐한 소매에 양손을 교차해서 집어넣고 있었다. 당가 특유의 기수식이었다.
당가 무인의 소매에는 암기와 독이 들어있다. 어떤 종류인지, 수량이 어찌 되는지는 본인들만 알고 있었다.
적으로서는 작은 지옥문이나 다름없었다.
‘오랜만이네.’
팽무성은 도를 잡는 파지를 바로잡았다.
당화련의 전신에서 샘솟는 투기. 어지간한 사내 못지않았다.
얼굴이 찌릿찌릿했다.
그런데도 팽무성은 웃음을 그렸다.
독희는 사패 제일가는 호승심과 투기를 자랑했었다.
환생 이후 그 누구도 팽무성에게 긴장감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당화련이 소매에 손을 집어넣은 그 순간, 아주 살짝이지만 긴장감이 감돌았다.
“갑니다.”
팽무성의 발이 작은 돌개바람을 일으켰다.
황소처럼 돌진하는 팽무성.
당화련의 손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 이미 암기는 팽무성의 앞에 도달했었다.
샤악
따앙
암기를 튕겨낸 도가 잘게 떨렸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반탄감에 팽무성의 웃음이 짙어졌다.
미간을 노리고 쇄도한 작은 암기. 마치 물고기의 비늘과 같았다.
‘어린표. 이때부터 벌써 다루고 있었네.’
당가의 무인들은 다양한 암기를 다채롭게 사용했지만 당화련은 하나의 암기를 파고들었다.
어린표(魚鱗?).
물고기 비늘 형태의 작은 암기.
사천당가에서도 쓰는 이가 드물었다.
암기의 난이도가 매우 높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제대로 숙련만 된다면 어린(魚鱗)이 용린(龍鱗)이 된다는 사천당가의 격언이 있었다. 실제로 독희가 몸소 실현하기도 했었다.
용린폭풍비(龍鱗暴風飛).
어린표를 위해 창안된 비도술.
당화련은 경공을 펼쳐 거리를 벌림과 동시에 손을 쉴새 없이 놀렸다.
춤을 추듯 유연하고 하늘거리는 몸놀림.
마치 아름다운 날개를 펄럭이는 나비를 보는 듯했다.
하지만 팽무성은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당화련에게 탐색전은 없었다.
처음부터 암기에 내공을 실어 전력을 다했다.
전후 상하좌우 삼십육 방향.
직선 사선 곡선.
용이 구름을 거니는 듯 신묘한 궤도.
폭풍처럼 몰아치는 쾌속한 궤도.
상반된 어린표의 두 가지 궤도가 절묘하게 섞여들어 하나의 궤도를 이루었다.
어린표를 쳐내는 도가 작은 비명을 내질렀다.
까아앙 까강
절묘한 시간차를 두고 연달아 쇄도하는 어린표.
팽무성의 전진이 처음으로 멈췄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의 어린표에 바위도 꿰뚫어버릴 힘과 속도가 담겨있었다.
쐐애애앵
어린표가 만들어낸 수많은 궤도가 겹치고 겹치니 마치 허공을 유영하는 물고기 떼를 보는 듯했다.
물고기 무리가 팽무성을 향해 입을 벌렸다.
따다다다당
어린표를 날리는 당화련의 손도 빨랐지만 팽무성의 도는 이를 넘어섰다.
마치 여러 개의 도를 한꺼번에 휘두르는 수라처럼 보일 정도였다.
한 호흡에 쳐낸 어린표의 수가 상당했지만 팽무성의 호흡에는 잔잔한 여유가 있었다.
콰앙
산왕군림보의 기파에 어린표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틈을 철혈맹호도가 뚫고 들어갔다.
어린표를 모두 튕겨내고 도약한 팽무성.
위에서 쏟아지는 도풍에 당화련의 머리가 찰랑거렸다.
그대로 뒤로 빠지는 당화련을 향해 도를 내려찍었다.
부웅
하지만 묵직한 소리만 날 뿐 팽무성의 도는 허공을 갈랐다. 괜히 애꿎은 나무만 옆으로 기울어졌다.
어느새 거리를 벌린 당화련.
그 와중에 반격을 노렸다.
당화련은 소매로 손을 가린 채 암기를 날렸다. 몇 개는 팽무성에게 곧장 날아갔지만 허초였다.
바깥쪽으로 반원을 그리는 어린표는 팽무성의 시선을 비껴갔다.
게다가 이전과 달리 파공음도 들리지 않아 은밀했다.
도의 흐름에 맞춰서 자연스레 비어버린 어깨의 틈을 노렸다.
“흡.”
팽무성은 그대로 몸을 회전시켜 암기를 피해냈다. 어린표가 스쳐 무복이 살짝 갈라졌다.
가만히 당하기만 하면 팽무성이 아니었다.
회피와 동시에 도기를 쏘아냈다.
당화련이 소매로 자신의 손을 가렸다면 팽무성은 몸을 회전시켜 도를 가렸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쏘아지는 도기.
촤악
당화련은 몸을 날려 피해냈지만 펄럭거리던 왼쪽 소매가 잘려나갔다.
“앗.”
팽무성의 걸음에 땅이 들썩였다.
당화련이 땅에 떨어진 소맷자락에 시선을 돌리는 그 찰나의 틈.
우악스럽게 뻗어간 팽무성은 바로 거리를 좁혔다.
근접전.
당화련에게 지극히 불리한 거리였다.
허나 팽무성의 도는 자비가 없었다.
도가 사정없이 당화련을 난도질하려 했다.
당화련은 침착하게 등허리로 손을 가져갔다.
까가가강
놀랍게도 당화련 이십여 차례의 도격을 모두 튕겨냈다.
당화련이 역수로 쥐고 있는 유엽비도.
보통의 유엽비도에 비해 도신이 두껍고 살짝 길었다.
투척용보다는 지금처럼 근접전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았다.
“어우, 무슨 힘이.”
금이 간 유엽비도를 보며 당화련은 눈을 크게 떴다.
당화련은 팽무성의 도를 흘려내며 격공장을 내질렀다.
팽무성의 손이 흔들리자 장력은 손쉽게 막혔다.
파앙
당화련은 반탄력을 동력 삼아 유려한 움직임으로 거리를 벌렸다.
다시 비무를 시작할 때와 똑같은 거리.
팽무성과 당화련은 서로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더 가면 비무가 아닌 생사결이 될 것이다. 지금이 딱 끊기 좋을 때였다.
“팽 소협, 소문에 거품이 없었네요.”
당화련은 개운한 미소를 지었다.
이리 격렬하게 움직인 건 오랜만이었다.
당가의 후기지수 중에는 그녀를 당해낼 사람이 없었다. 오가행을 하며 종종 만난 후기지수도 마찬가지.
조금 시시해지려는 참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만난 팽무성이라는 존재는 당화련에게 새로운 자극이었다.
여유롭게 납도하는 팽무성을 보더니 당화련은 입술을 살짝 내밀며 뾰로통했다.
‘졌으려나.’
비무였기에 서로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당화련은 거기에 독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팽무성은 실력의 문제를 뛰어넘어서 비무 내내 자신의 무공을 봐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가문의 어른들과 비무를 하는 느낌. 노련한 고수의 여유를 비무 내내 팽무성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생사결로 끝까지 갔다면 왠지 자신이 질 것 같다는 그림이 그려졌다.
자신이 또래에게 지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는 당화련이었다.
‘이래서 어른들이 강호는 넓다고 하는구나.’
당화련은 수련의 강도를 높여야겠다고 결심했다.
“흐음.”
비무가 끝나고 긴장이 풀리니 허기가 졌다. 당화련은 배를 잠시 쓰다듬더니 팽무성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팽 소협, 빠른 저녁 어떠세요? 제가 오리 맛있게 하는 곳 아는데.”
* * *
흑상의 경매가 열리는 날.
팽무성과 당화련은 창이 없는 마차에 타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흑상의 마차였는데 경매 장소까지 데려다주는 중이었다.
당화련과 비무를 하고 아흐레가 지났다.
그동안 당화련과 함께 식사도 하고 비무도 여러 번 하며 제법 친해졌다.
환생 이후에 쉴새 없이 달려왔다.
당화련과 보낸 아흐레는 어찌 보면 주위를 환기하고 휴식을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드디어 오늘이네요.”
“그러게.”
팽무성과 당화련은 두 살 터울이란 걸 알며 말을 편하게 하는 사이가 되었다.
“팽 소협도 이번에는 백가회에 오겠네요.”
“그렇네, 이번에 백가회가 열리는 해였나.”
백가회(白家會).
오대세가를 주축으로 이루어진 정파 세가들의 모임.
삼 년마다 오대세가가 돌아가면서 백가회를 개최했다.
세가의 후기지수들은 물론이고 가주들이 모이는 제법 큰 규모의 행사였다.
단순히 결속과 친목을 다지는 것을 넘어서 강호의 큰일을 의논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어디서 열리지?”
“진주언가에요.”
“언가라…”
만약 하북팽가가 오대세가에 여전히 속했다면 이번 백가회는 하북팽가에서 열렸을 것이다.
생각에 잠긴 팽무성의 시선이 살짝 먼 곳을 향했다.
당화련은 팽무성의 눈치를 살폈다.
자신이 주제를 잘못 꺼냈음을 알았다.
‘어휴, 이 바보.’
당화련은 슬쩍 얘기의 주제를 틀기 위해서 두 손을 들이밀었다.
“제 손, 너무 흉하죠?”
천장을 향했던 눈이 당화련의 손을 보았다.
흔히 섬섬옥수라며 여인의 손을 칭찬하지만 당화련은 절대 아니었다.
당화련의 손은 손목 위까지 울긋불긋했고 크고 작은 자상이 가득했다.
“무인의 손으로는 예쁘지 않나.”
전생에서도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때는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가 이마에 암기가 박힐 뻔했었다.
팽무성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아, 정말요?”
당화련은 살짝 놀란 기색이었다.
또래의 후기지수들은 당화련의 화려한 미모에 다가오다가도 도깨비 같은 손만 보면 바로 거리를 벌렸다.
그런데 팽무성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하니 놀랄 수밖에.
“베인 상처는 어린표 때문이고, 색깔은 독인가?”
“네, 장갑을 끼면 아무리 숙련되어도 정밀함에 차이가 있거든요.”
팽무성의 질문에 당화련은 왜인지 신이 나서 재잘거렸다.
당가의 후기지수는 독공을 사용할 때 사슴 가죽으로 만든 녹피장갑을 사용했다.
독공의 성취가 낮아서 독에 오히려 중독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녹피장갑은 제법 두꺼운 편이라 암기술을 펼칠 때 불편함이 생겼다.
더구나 어린표를 사용하는 당화련은 그 영향이 더 컸을 것이다.
독공을 수련할 때만 장갑을 끼고 어린표를 수련할 때는 장갑을 벗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당화련은 그러지 않았다.
“실전에서도 장갑을 끼고 벗으며 싸울 수는 없으니까요.”
이상한 고집이라 할 수 있으나 이렇게 무공을 진지하게 파고드는 자세 때문에 당화련은 어른들의 사랑을 듬뿍 받기도 했다.
그 고집 덕분에 미래에 독희가 있었다.
팽무성은 전생에서도 한 번 들었던 얘기였지만 재미있게 듣고 있었다.
이러다 보니 지루한 줄 모르고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마차가 한 번 덜컹거리더니 점점 속도를 늦추는 게 느껴졌다.
“이제 슬슬 도착할 것 같네요, 내가 모르는 독이면 좋겠다.”
당화련은 경매에 나올 독에 대한 기대로 한껏 들떠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밖에서 마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 시진 정도 어디론가 향하던 마차가 드디어 멈췄다.
팽무성과 당화련이 마차에서 내리자 보이는 것은 숲속으로 이어지는 작은 오솔길이었다.
길목의 중간에는 흑상의 무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흑상의 무인들 앞에 넓은 탁자에는 갖가지 종류의 가면이 놓여있었다.
“마음에 드시는 가면을 고르시면 됩니다.”
당화련은 가면을 빠르게 훑더니 두 개의 가면을 골라냈다.
그리고 그중 하나를 팽무성에게 건네주었다.
“팽 소협은 이걸로 써요.”
당화련의 손에 있는 것은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호랑이 가면이었다. 자신은 여우 가면을 쓰고 있었다.
팽무성은 실소를 머금으며 가면을 받아들었다.
두 사람이 가면을 착용하자 무인들은 길을 비켜주었다.
“원하시는 물건을 얻으시길.”
오솔길을 통해 계속 숲속으로 들어가자 작은 호수가 나왔다.
오후에 잠깐 비가 쏟아졌던 탓일까.
옅은 밤 안개가 호수를 감싸고 있었다.
흘러내리는 달빛이 안개와 호수를 비추니 제법 운치가 있었다.
“경매를 이런 개방된 곳에서 할 줄이야.”
“그러게요, 어디 음침한 지하에서 꽁꽁 숨어서 할 줄 알았더니.”
당화련은 호수 주변을 둘러보았다.
호수를 따라서 차와 술이 놓인 작은 다탁이 줄을 지어 놓여있었다.
호랑이 가면 아래의 번들거리는 호안이 호수 주변을 살폈다.
흑상의 습격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없었다. 독희도 자세히 말해주지 않았었다.
지금부터는 오로지 순간의 대처로 해결해야 했다.
‘아직 이상한 건 안 느껴지네.’
팽무성은 도병을 만지작거렸다.
이에 당화련이 까치발을 들며 속삭였다.
팽무성이 평소와 다름을 느낀 것이다.
“왜 이렇게 날이 섰어요?”
“응? 아니야.”
팽무성은 주변을 살폈다.
흑상의 무인들은 물론이고 경매 참여자들도 아무것도 못 느꼈다.
팽무성 나름대로 갈무리했는데 당화련만이 이를 느낀 모양이었다.
“저기가 우리 자리인가 보네, 가자.”
팽무성은 아직도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당화련을 이끌고 지정된 자리로 향했다.
슬슬 경매가 시작되려는 듯 호수 앞쪽의 단상이 분주했다.
단상으로 금색 장포를 입은 중년인이 올라오더니 경매 참여자들의 주목을 모았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경매를 진행할 금련이라 합니다.”
흑상의 무인들이 경매 물품으로 보이는 단상으로 끌고 올라왔다.
“경매에 참여해주신 귀빈 여러분 감사합니다. 경매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흑상의 경매가 시작되었다.
“이번 경매의 막을 열 상품이 무엇일지 기대되는군요.”
금련의 손짓에 흑상의 무인이 상품을 가리고 있는 검은 천을 내렸다.
“아마 다들 깜짝 놀라실 겁니다. 하하.”
금련의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귀빈들의 기대를 자극했다.
오랜만이네, 너도, 네놈도. (3)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