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25)
24화
검은 천을 벗겨내자 거치대에 고정된 가죽 조각이 드러났다. 평범한 가죽 조각이 아니었다.
가죽에는 점과 선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었다.
“저건?”
“뭐야, 그림은 아닌 것 같은데.”
경매 참가자들이 웅성거리자 금련은 웃으며 그 반응을 즐겼다.
“저건 혹시 장보도가 아니오?”
눈썰미가 좋은 누군가가 묻자 금련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장보도 조각입니다. 사실 경매에 나올만한 물건은 아닙니다.”
어쩌면 참가자들 사이에서 먼저 튀어나왔을 불만이었다.
금련은 이를 먼저 언급하며 능숙하게 분위기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사람의 손을 거쳤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금련은 가면 사이로 반짝이는 귀빈들의 눈빛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무신.”
삼백 년 전의 천하제일인, 무신.
강호를 집어삼키려 했던 혈천을 단신으로 막아낸 전설적인 무인.
강호에서 정사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고 오직 무도(武道)를 숭상하는 거대 문파. 무천궁을 개파한 인물이기도 했다.
“이 장보도는 무신의 모든 것이 잠들어있는 무신총이 있는 위치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무신? 정말인가?”
“무신총이라… 무천궁에서 알면 난리 나겠군.”
“이보시오, 그 장보도의 진위여부는 확인된 것이오?”
닭 가면을 쓴 이가 목소리를 높여 묻자 금련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흑상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한 결과는 팔 할 이상입니다. 이것을 보시지요.”
금련은 거치대의 양쪽을 잡아 반대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장보도의 뒷면이 드러났는데 글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장보도의 조각에 불과해서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무공 구결로 판별되고 있습니다.”
“구결?”
“무신의 무공이란 말인가.”
경매장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무림인들은 물론이고 무공을 익히지 않은 학자, 부호들마저 흥분했다.
무림인이 아니더라도 무신의 손길을 탔다는 사실 자체가 보물로서 소장할 가치가 있었다.
그만큼 무신의 위명은 하늘 위에 있었다.
당화련이 살짝 흥분해서 팽무성에게 속삭였다.
“정말 무신의 장보도 일까요?”
“흑상에서 경매에 내놨으니 그럴 확률이 높겠지.”
확률이 높은 게 아니라 맞았다.
전생에서도 무신총이 발견되었으니까.
몇 달 뒤에 열릴 백가회에서도 무신총이 언급될 것이다.
“완전한 장보도가 아니며 첫 출품작이니 시작가는 이십만 냥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이십일만 냥!”
“이십삼만 냥이오.”
무신이라는 이름값 때문일까. 경매는 처음부터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이를 구경하던 팽무성이 중얼거렸다.
“아무리 흑상이라지만 대단하네, 무천궁의 눈치도 안 보고 그냥 경매에 올려버리다니.”
“고의일지도 몰라요, 흑상이 무신에게 된통 당했단 얘기가 있거든요.”
“그 무신에게 걸려도 흑상은 살아남았나.”
하나씩 경매 물품이 낙찰되었고 어느덧 경매는 중반부에 다다랐다.
“이번 물품은 남만에서 힘들게 구한 극독입니다. 금선사의…”
드디어 기다리던 물품이 나왔다.
껌벅이던 당화련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그러면서 몸이 조금씩 앞으로 기울어졌다.
팽무성은 독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의자에 몸을 기대고 호수의 경치를 감상했다.
‘잠깐.’
팽무성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호수의 안개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자연적인 현상이라 하기에는 짙어지는 속도가 기이하게 빨랐다.
“오십오만 냥!”
“화련아.”
독을 낙찰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던 당화련이 팽무성의 진중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안개를 봐,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안개를 보던 당화련도 이상함을 느낀 듯 눈매가 사나워졌다. 당화련의 행동은 빨랐다.
“내가 쓰는 독의 해약이에요. 혹시 모르니 지금 먹어요.”
당화련은 단환 하나를 던져주더니 일어나서 소리쳤다.
“독무예요!”
당화련의 외침에 내공이 담겼다.
사람들의 귓속에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제대로 박혔다.
당화련에게 이목에 쏠리자 한참 순탄하게 진행되던 경매가 뚝 끊겼다.
이에 금련이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쾅
뒷쪽에서 울리는 폭음.
이를 신호로 세 방향에서 흑의인들이 덮쳐왔다.
“습격이다!”
“귀빈들을 최우선으로 보호해!”
흑상의 무인들이 막고는 있었지만, 수가 많아 중과부적이었다.
“습격인가!”
무림인들은 가면을 벗고 각자 병장기를 꺼냈다.
“아, 어서 도망을.”
무공을 익히지 않은 부호들은 당황해서 사방으로 흩어지려 했다. 경매장은 단번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어쩌죠?”
“내가 전방에서 시간을 번다. 그 틈에 무인들을 뭉쳐, 무공을 모르는 사람은 뒤로 빼고.”
팽무성은 앞으로 몸을 날렸다. 당화련도 반대 방향으로 뛰어갔다.
두 사람의 행동은 신속했다.
당화련이 멈춘 곳은 금련이 서 있는 단상이었다.
“무공을 모르는 귀빈들을 단상 위로 모아주세요.”
“으음. 알겠소.”
금련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음.”
경공을 펼치던 팽무성이 침음을 흘렸다.
경매장을 뒤덮었던 독무를 일찍 발견했지만, 이미 미량의 독이 들어와 있었다.
내공을 움직이니 몸 안에 있던 독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우웅
들어온 독의 양이 적은 덕분에 내공으로 쉽게 태워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흑상의 무인들은 외곽에 있었던 만큼 독무에 오래 노출되어 있었다.
그래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보였다.
독무를 늦게 발견했다면 저들은 검을 잡기는커녕 이미 쓰러졌을 게 분명했다.
팽무성은 정면의 오솔길을 향해 도기를 날렸다.
흑의인들이 제일 많이 몰려오는 방향이었다.
쐐액
초승달 형태의 거대한 도기가 흑의인들을 덮쳤다.
도기가 터지며 흙과 돌이 비산했고 미처 피하지 못한 흑의인들이 그대로 절명했다.
도기를 쏘아낸 팽무성에게 시선이 쏠렸다.
일부러 무위를 드러낸 팽무성의 의도가 성공적으로 들어맞았다. 팽무성은 흑상의 무인들 옆에 착지했다.
“이 방향은 내가 혼자 맡습니다.”
“감사합니다, 손 좀 빌리겠습니다.”
팽무성이 흘리는 기세를 느낀 흑상의 무인들은 별 말하지 않고 말을 따랐다.
자신들이 뭐라 할 수 없는 강자였다.
채채채챙
네 자루의 검이 팽무성을 사방에서 베어냈다. 흑의인들도 팽무성이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흑의인들은 둥근 원을 만들어 팽무성을 둘러쌌다.
도가 뻗어오는 검을 일제히 밀어내자 벌어진 틈 사이로 검풍이 날아들었다.
팽무성은 장법으로 쳐내거나 몸을 비틀어 피해냈다.
틈을 절묘하게 노리고 있었다. 합공에 능숙한 놈들이었다.
팽무성의 도가 순간 사라졌다.
서늘한 소리와 함께 흑의인 셋의 목이 땅을 굴렀다.
그 광경에도 흑의인들의 눈은 건조했다.
흑의인들이 보란 듯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차륜전을 펼치려는 듯 빈자리를 메우고 다시 검진을 짜려고 했다.
팽무성은 이를 기다려줄 생각이 없었다.
쑤앙
후두둑
거센 바람과 함께 붉은 비가 내렸다.
몸뚱이가 갈라진 흑의인들이 쏟아내고 있었다.
차륜전을 펼치기 위해 나선 흑의인들이 일섬에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이 정도 무력 차이라면 공포에 떨거나 사기가 떨어질 법했다.
허나 흑의인들은 흔들리지 않는 합격을 보여주며 팽무성을 압박하려 들었다.
합을 맞춘 검이 연달아 찔러왔고 사이사이로 암기가 날아들었다.
촤악
가로로 그어지는 붉은 참격.
검은 물론이고 그 검을 들고 있던 흑의인도 두 동강이 났다.
그 사이에 언제 장력을 날렸는지 다른 흑의인의 머리가 으깨졌다.
대치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열이 넘는 흑의인이 도륙당했다.
압도적인 강자.
흑의인들은 복면 아래로 땀이 차는 것이 느꼈지만 그래도 발걸음을 돌리지 않았다.
아직 싸울 이들은 많이 남아있었다.
흑의인들은 후퇴를 몰랐다.
그리고 팽무성은 자비를 몰랐다.
팽무성의 팔뚝이 순간 비대해지는 듯싶더니 도가 땅을 긁어냈다.
쿠콰콰
도기가 땅을 뒤집어놓으며 전방의 땅이 들썩이며 솟구쳤다.
흙과 바위를 뚫고 기어코 날아오는 검풍과 암기들이 있었다.
팽무성은 소매에 내공을 불어넣어 가볍게 받아냈다.
‘사람이 아니라 인형을 상대하는 이 기분. 가마단이 거의 확실하다.’
가마단(假魔團).
가마단은 마교의 소속이되 마공을 익히지 않은 말단들을 모아놓은 곳이었다.
주로 중원의 고아들을 모아서 기수마다 다른 무공을 가르쳤다.
의지와 자아는 거의 말살되고 명령만 따르는 전투 인형들.
흔히 마교가 정체를 숨겨야 하는 일에 병력으로 동원되고는 했었다.
그렇기에 아무런 특색도 없는 것이 가마단의 특징이었는데 지금 상대하고 있는 흑의인들이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천천히 알아보면 되겠지.’
쐐애액
먼지구름을 가르고 날아오는 검기 다발.
사방을 점하고 쇄도하는 검기가 팽무성을 노렸다.
팽무성은 몸을 회전시켜 검기를 튕겨냄과 동시에 도기를 뿌렸다.
콰아앙
주변의 나무들이 거칠게 흔들렸다.
검기를 날린 네 명을 선두로 흑의인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팽무성을 둘러싼 포위망이 다시 좁아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흑의인 몇몇이 몸을 떨었다.
“당가의 무인 앞에서 독공이라, 우습네요.”
팽무성의 옆으로 모습을 드러낸 당화련.
언제 하독을 한 것인지 흑의인들이 하나둘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뒤쪽은 괜찮아요. 팽 소협이 워낙 요란하게 싸워서 흑의인들이 이곳에 집중되기도 했고.”
흑상의 무인들과 경매에 참여한 무림인들이 힘을 합쳐 흑의인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해약을 건네주고 무인들이 운기 할 시간을 벌어준 당화련의 공이 컸다.
“여기가 승부처네요.”
팽무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화련.”
“제가 후방에서 지원할게요. 마음껏 날뛰세요.”
팽무성은 말 없이 당화련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할 말을 당화련이 먼저 꺼낸 탓이었다.
등 뒤로 걸어가는 당화련을 보고 팽무성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랜만이네.’
사패 시절에 검제와 광승, 도왕이 전방을 돌파하고 뒤에서 독희가 지원하던 옛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는 몇백의 마인이 몰려와도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저 당화련이 뒤에 서있는 것만으로 도에 힘이 들어갔다.
“가자.”
“가요.”
콰카캉
쐐애앵
강맹한 도격이 검진을 분쇄한 뒤에 남은 것은 쏟아지는 핏방울뿐이었다.
거기에 흑의인의 머리 위로 독무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암기가 비처럼 쏟아졌다.
미리 해약을 먹은 덕에 당화련의 독은 팽무성에게 아무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여러 번 비무를 한 덕분일까.
팽무성과 당화련은 일심동체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팽무성은 등 뒤는 신경 쓰지 않고 맹렬히 돌진했다.
그 파괴력은 무시무시했다.
뒤에서 쏟아지는 어린표는 흑의인들이 팽무성을 노릴 시도조차 못 하도록 만들었다.
마치 작은 자연재해와 같았다.
흑의인들은 나름대로 물러서지 않고 저항했지만 도풍과 독무에 갈려 나갈 뿐이었다.
촤르륵
까앙
사슬 소리와 함께 갑자기 날아든 낫이 흑의인을 베려는 도를 튕겨냈다.
공중에 솟구쳤던 낫은 연결된 사슬을 잡아당기자 주인의 품속으로 쏙 회수되었다.
“역시 중원의 버러지들은 쓸모가 없군.”
중년인은 살기 어린 눈으로 흑의인들, 아니 가마단을 쳐다보았다.
가마단이 저 호랑이와 여우 가면에게 상처를 입힐 때까지 나서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지켜보다가 아예 전멸을 당할 듯싶어 뒤늦게 나섰다.
중년인은 턱을 까딱였다.
“너희는 뒷쪽을 가서 정리해라, 밥값은 하고 죽어라.”
“존명.”
가마단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더니 팽무성과 당화련을 내버려 두고 뒤쪽으로 뛰어갔다.
호수 쪽에서 버티고 있는 이들을 노리고 있었다.
“화련아, 여기는 내가 혼자 상대할게.”
팽무성의 말에 당화련은 입술을 틀었다.
“괜찮겠어요? 꽤 강해 보이는데.”
팽무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뒤쪽을 도와줘. 수가 제법 되니 저쪽도 힘들 거다.”
당화련은 굳건한 팽무성의 등을 보더니 경공을 펼쳐 다시 호수 쪽으로 향했다.
멀어지는 당화련의 기척을 느끼며 팽무성은 도를 바로잡았다.
흑상을 습격하는 임무를 맡은 자라 그런지 지닌 무공이 높았다.
아무래도 쉽지 않은 싸움이 될 듯 싶었다.
당화련의 현재 무공으로는 합공을 했다가 역으로 위기에 처할 확률이 높았다.
팽무성이 홀로 상대하는게 맞았다.
결정적으로 팽무성은 이런 강적은 홀로 상대하는 게 편했다.
전생에서도 괜히 도법의 이름에 철혈(鐵血)이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흑상의 초대목록에는 내가 신경 쓸만한 유명한 고수는 없었는데, 누구냐.”
중년인의 말에 팽무성은 피식 웃었다.
별호가 생길 정도로 명성이 퍼졌다고는 하나 아직 멀었나 보다.
붕붕
중년인은 긴 쇠사슬로 연결된 두 자루의 낫을 들고 있었다.
중년인의 손끝에서 낫은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팽무성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쌍겸(雙鎌)과 독.
익숙한 조합이 아닌가.
“이 새끼, 독마종 출신이구나.”
팽무성은 가면을 내던졌다.
가면이 벗겨지자 강렬한 안광이 번쩍였다.
팽무성이 웃는 모습은 마치 먹잇감을 보고 이빨을 드러낸 호랑이와 같았다.
“오랜만이다.”
오랜만이네, 너도, 네놈도. (4)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