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27)
26화
무기, 영약, 비급.
그리 급한 것들은 아니었다.
흑상에서 얻을 수 있는 다른 것은 없을까.
“그것보다는 다른 것을 받고 싶습니다.”
의외의 대답에 금련은 흥미를 보였다.
팽무성이 어떤 것을 요구할지 궁금해졌다.
“흑상도 정체를 숨기고 대외적으로 상단을 운영한다고 들었습니다.”
“물론입니다, 흑상은 모든 물건을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태원의 금적상단이 있습니다. 그 상단을 간접적으로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흐음.”
금련은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아, 무슨 말씀이신지 가늠이 갑니다. 금용만이 팽 소협의 품에 들어갔다지요.”
팽무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소단주에 대해 잘 알고 계시나 보군요.”
“저희도 눈여겨보던 인재입니다. 때가 되면 영입하려고 했으나 아깝게 되었지요.”
‘흑상도 알고 있었던 건가.’
금련은 흑상의 정보력을 과시하듯 말했다.
금련이 말한 때란 금적상단이 적화상단에 무너지는 때를 의미했다.
팽무성은 금련의 희미한 웃음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양기의 성질을 띤 영약이 있으면 금적상단에 우선으로 팔아주시겠습니까. 이것도 금적상단을 돕는 일입니다.”
뻔뻔한 팽무성의 말에 금련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말장난으로 치부할 수 있으나 누구에게 팔던지 제값만 받으면 그만이기에 딱히 상관없었다.
“팽 소협의 말씀대로 하지요. 이번 경매에서 제일 이득을 본 것은 팽 소협이군요.”
“흔쾌히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정도라면 금적상단은 더욱 순탄하게 성장할 수 있으리라. 팽무성도 발품을 팔지 않아도 영약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팽무성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기막을 쳐 소리를 차단했다. 이에 당화련이 팽무성을 쳐다보았다.
“흑상이 지금 정체 모를 곳에 위협받고 있습니까.”
갑작스러운 말에 금련은 팽무성을 쳐다보았다. 금련의 입술이 달싹였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이번 습격은 마교의 소행입니다.”
마교라는 단어에 금련의 눈이 차게 식었다.
당화련도 커다래진 눈으로 팽무성을 쳐다보았다.
“할아버지들이 해주시는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그 마교요?”
팽무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습격이 마교의 수작으로 밝혀졌으니 흑상이 마교에 굴복했다는 방향에 힘이 기울어졌다.
이번에도 흑상이 마교가 넘어가는 일은 막아야 했다.
“마교는 흑상도 상대하기가 힘들 겁니다. 어느 곳이라도 좋으니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금련은 답을 하지 못하고 팽무성을 쳐다보기만 했다.
“흑상의 주인에게 이 말을 꼭 전해주셔야 합니다.”
팽무성은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흑상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정보를 은폐하고 자신들의 힘으로 처리하려 할 것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들은 절대 남의 손을 빌리려 하지 않았다.
“화련아, 당가에 이 사실을 알려.”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당화련은 굳이 팽무성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백가회에 정식 안건으로 올리려고요?”
“사람들이 쉽게 믿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팽가와 당가 두 가문이 나선다면 무시할 수 없겠지.”
마인이 나타났다는 소식은 혼란을 불어올 것이다. 그렇다고 팽무성 혼자 이 정보를 안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분께도 익명으로 보내야겠다.’
마교는 어떤 식으로든 혼란을 일으킬 터.
어차피 일어날 혼란이라면 먼저 알아차리고 방비하는 방향이 좋았다.
이런 일로 천마대계(天魔大計)의 큰 틀은 바뀌지 않을테니 말이다.
백가회에서 마교가 언급되는 날에 무림은 마교의 재림을 알게 될 것이다.
* * *
두 사람은 마차를 타고 낙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당화련은 괜히 마차의 장식을 만지작거리며 딴청을 부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훅 고개를 돌렸다.
“고마워요.”
팽무성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됐다, 다음부터는 후방도 신경 써.”
당화련은 입술을 삐쭉였다.
“이제 계획은 있어요?”
“소림사에 가려고,”
“소림?”
팽무성의 말에 당화련은 가느다란 다리를 까딱거렸다.
“흐음.”
당화련은 결정을 내린 듯 다리를 가지런히 했다.
“저도 따라갈래요.”
“경매가 끝나면 남궁세가로 간다며.”
당화련이 먼저 동행한다고 하자 팽무성은 살짝 놀랐다.
“본가에 마교의 소식을 보내면 어른들이 깜짝 놀라서 당장 복귀하라고 할걸요.”
팽무성이 생각하기에도 당가의 특성상 그럴 확률이 높았다.
“팽 소협이랑 같이 다닌다고 하면 본가에서도 무작정 오라고는 못 할 거예요.”
팽무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런 게 있어요.”
자신보다 약한 남자와는 혼인하지 않겠다는 엄포를 놓은 당화련 때문에 당가의 어른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런 당화련이 남자와 함께 무림을 다닌다면 방해는커녕 조용히 지켜볼 것이다. 오히려 팽무성을 응원할지도 몰랐다.
“그래.”
팽무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화련이라면 오히려 환영이었다.
게다가 소림에는 그놈이 있으니 미리 친해지면 좋은 일이었다.
“아, 그리고 우리 제법 친해졌잖아요, 오라버니라고 불러도 되죠? 팽 오라버니.”
당화련이 배시시 웃었지만 팽무성은 반대로 콧잔등을 구겼다.
‘얘가 갑자기 왜 이러나.’
전생에서는 오라버니 소리를 듣는 데 일년 정도 걸렸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렇게 빨리 호칭이 변화하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 * *
팽무성과 당화련은 숭산의 소실봉을 오르고 있었다.
처음 오지만 길을 잃을 걱정은 없었다.
소림을 찾는 향화객들이 많아서 그들의 뒤를 따라가면 되었다.
“소림은 처음인데 살짝 떨리네요.”
“확실히 기대되긴 하네.”
태산북두. 북숭소림.
천하공부출소림.
어지간한 대문파도 감당하기 힘든 무게의 수식어.
정파의 후기지수들이 강호에 나서면 열에 여덟은 소림사를 방문했다.
그만큼 소림사는 상징적인 문파였다.
“슬슬 보이네.”
서로를 마주보는 돌사자 두 마리를 지나쳐 계단을 오르니 소림사의 산문이 보였다.
소림사(少林寺).
산문에 달린 흑금자 현판에는 소림사라는 세글자가 휘황한 필체로 쓰여 있었다.
소림사의 산문을 지키고 있던 젊은 무승은 무림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걸어오는 모습을 봤다.
“아미타불. 무정이라 합니다.”
무정이 반장을 하자 두 사람은 포권을 취했다.
“하북팽가의 팽무성입니다.”
“사천당가의 당화련입니다.”
소개를 들은 무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명문의 자제분들이시군요, 따로 용무가 있으신지요.”
[천살불의 유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방장을 만나 뵙고 싶습니다.]은은한 미소를 짓던 무정은 팽무성의 전음에 눈이 동그래졌다. 무정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튀어나온 탓이었다.
“괜찮으세요?”
당화련의 목소리에 무정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지객당으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무정의 발걸음은 매우 급했다.
* * *
소림사 방장, 현진은 한 손으로 염주를 굴리며 불경을 읽고 있었다. 이때 방장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방장 사형, 천살불, 아니 헌연 사조의 유지를 가지고 온 아이가 왔습니다.”
현진은 토해내듯 말하는 지객당주, 현우를 보더니 뒤에 따라 들어오는 사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시주가 인연이 닿았군.”
“방장을 뵙습니다. 하북팽가의 팽무성입니다.”
현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현우를 보며 말했다.
“이놈, 현우야. 아직도 행동거지가 가볍구나. 누누이 말하지 않았더냐.”
현진의 가벼운 타박에 현우도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방장 사형.”
“시주와 단둘이 얘기하마, 물러가거라.”
현우가 방장실을 나가자 현진은 팽무성에게 자리를 권했다.
“보아하니 지객당주가 차를 마실 여유조차 주지 않은 듯하네, 일단 드시게나.”
“감사합니다.”
현진은 천살불이라는 이름에도 차분하게 차향을 즐겼다.
일다경이 지나자 천천히 염주를 굴리던 손가락이 멈췄다.
“헌연 사조의 유지를 보여줄 수 있겠나.”
팽무성은 미리 준비해 놓은 비급 두 권과 서신을 현진의 앞에 내려놓았다.
“아미타불.”
현진은 조심스레 서신을 펼쳤다. 서신을 읽고 비급을 살피는 손길은 어딘가 경건했다.
이를 보던 팽무성도 현진의 행동에 왠지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다.
모두 살핀 현진은 속에서 우러나오는 깊은숨을 내뱉었다.
현진은 잠시 눈을 찔끔 감았다.
“어떻게 인연이 닿았는지 설명해줄 수 있나.”
팽무성은 운강 석굴의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전생의 기억에 대한 부분은 적당히 포장했다.
“당장 제자들을 보내 사조를 모셔와야겠구나.”
홀로 한탄하던 현진은 팽무성의 손을 잡았다.
“팽 시주, 정말 큰 일을 해주었네. 감사하네.”
“아닙니다.”
“서신과 비급을 훑어보면서 느꼈네, 사조께서는 정말 소림을 사랑하셨구나, 제자들을 걱정하셨구나. 소림이 그리우셨구나.”
현진은 이미 식어버린 차로 마른 입술을 적셨다.
“대환단은 팽 시주가 먹었나?”
“그렇습니다.”
현진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팽 시주를 보니 강호에 신성(新星)이 떴음을 알겠네. 이에 소림이 일조하게 되어 기쁠 따름이야.”
평범한 이라면 팽무성이 먹어버린 대환단을 아까워했을 터였다. 대환단의 가치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허나 현진의 눈에는 조금의 아쉬움도 보이지 않았다.
오롯이 팽무성에 대한 기대감과 뿌듯함이 담겨있었다.
‘이것이 소림을 대표하는 방장의 그릇인가.’
“그렇다면 비급도 익혔나?”
팽무성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다만 두 번째 비급을 얻고자 합니다.”
현진은 팽무성이 말한 비급으로 눈을 두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소림의 무공이 아닌 천살불이 창안한 독문무공이었다.
직접 익혀봐야 알겠지만 강맹하고 위력적인 무공이 주를 이루는 팽가의 무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현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네, 갑작스러운 부탁이네만. 소림에 좀 머물러 줄 수 있겠나. 자네가 어울려줬으면 하는 아이가 있네.”
누군가를 떠올리는지 현진의 얼굴에는 약간의 근심이 서렸다. 팽무성은 왠지 현진이 말하려는 이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가 있네. 헌연 사조가 남기신 비급을 보고 제일 먼저 떠오른 제자이기도 하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억지를 들어주어 고맙네, 팽 시주라면 그 천둥벌거숭이도 하늘을 올려다 보게 해주겠지.”
팽무성의 이해했다는 얼굴에 현진은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현진은 두 번째 비급을 펼치며 말했다.
“이 무공은 수련에 상당한 약재도 필요한 것 같네. 소림에서 책임질 테니 머무는 동안 새로운 무공을 익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걸세.”
수련에 필요한 약재와 장소를 제공해 준다면 팽무성이 오히려 감사해야 했다.
‘이 기회에 무공을 손보고 경지를 끌어 올려봐야겠다.’
협호행을 다니면서도 수련을 쉬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을 온전히 수련에 쏟는 것에 비하면 밀도의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 * *
팽무성은 현진과 얘기를 마치고 동자승의 안내를 받았다. 지객당에서 기다리던 당화련도 함께였다.
“한동안 여기서 머물며 수련하려고 하는데 너는 어떻게 할래?”
당화련은 팽무성을 따라서 뒷짐을 지고 걷고 있었다.
“소림에서 수련이라. 흔한 기회가 아니네요. 대신 가끔 내려가서 밥 먹어요. 절밥은 취향이 아니에요.”
“그래.”
동자승이 걷는 방향은 소림에서도 제법 외진 곳이었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절벽이 보였고 그 옆으로 작은 모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쾅쾅
절벽에 주먹을 내다 꽂는 사내.
곧은 허리와 흔들리지 않는 두 다리.
온전히 힘을 머금은 주먹을 뻗었다.
쩌적
놀랍게도 조금씩 금이 가는 것은 사내의 주먹이 아니라 절벽이었다.
장시간 수련했는지 흐르는 땀으로 민머리가 번들번들 빛이 났다. 정말이지 익숙한 뒷모습이었다.
팽무성이 다가가자 주먹을 내지르는 자세 그대로 몸을 틀더니 권풍을 쏘아냈다.
“히익.”
뒤에서 이를 본 동자승이 기겁했다.
팽무성은 우장을 내질러서 권풍을 받아냈다.
상당한 힘이 압축되어 마치 바위가 날아온 듯했다.
권풍을 날린 무승은 팽무성이 손쉽게 권풍을 막아내자 눈에 이채를 띠었다.
“역시 막아냈군.”
“수련하는 모습을 본 건 사과하지요.”
“됐고, 누구냐. 제법 하네?”
초면에 거침없이 반말을 내뱉는 무승을 보며 팽무성은 입술을 비틀었다.
누가 이 모습을 보고 소림의 승려라고 할까.
뒤에서 이를 지켜보는 당화련만 해도 어이가 없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이 새끼, 어릴 때부터 싹퉁머리가 없었네.’
무승이 한쪽 손을 까딱거렸다.
하는 짓이 왈패와 다름없었다.
“덩치 큰 시주, 한판 붙자.”
무승은 허락을 묻는 게 아니라 통보를 하고 있었다.
팽무성은 허락도 안 했는데 무턱대고 주먹이 쏘아졌다.
밀려오는 권압에 팽무성의 머리카락이 거칠게 흔들렸다.
“이 땡중이.”
말을 그리했지만 팽무성은 짙은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반갑다, 광승.’
어느새 팽무성의 손에는 도가 들려있었다.
꽈앙
소실봉의 여명을 보며 피워내다. (2)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