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30)
29화
팽무성과 당화련은 현진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시주들이 떠난다니 아쉽구나. 제자들이 너희에게 많이 배웠다고 들었다. 고맙구나.”
소림사로 보낸 두 가문의 서신은 백가회가 열리는 진주언가로 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방장, 정말 커다란 신세를 지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절밥을 먹으러 오겠습니다.”
팽무성과 당화련의 말에 현진은 푸근한 미소를 보였다.
“너희들이 이리 성장해서 소림을 내려가니 괜히 내가 뿌듯하구나, 강호에 나가 그 힘을 구세제민에 쓰길 바라느니라.”
차 한 잔 정도 마실 시간이 지나자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사를 하고 방장실을 나서는 팽무성에게 현진의 전음이 들려왔다.
[아직도 어깨가 무거워 보이는구나, 젊은 아해라도 홀로 버티려 하면 병이 생기는 법이니라. 조금씩 털어 보아라.]팽무성은 잠시 멈춰서 현진을 바라보았다.
현진은 그저 희미한 웃음을 보일뿐이었다. 어쩌면 현진은 처음부터 팽무성을 정확히 꿰뚫어 봤을지도 모르겠다.
“명심하겠습니다.”
팽무성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방장실을 나가자 무각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을 차고 있었다.
“쓰읍, 이제 너희가 떠나면 나는 심심해서 어떻게 사냐. 사형제들은 죄다 약해서 재미가 없는데.”
무각은 무진이 들었다면 당장 뒤통수를 후려칠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다음에 또 올 테니 곡차나 잘 숨겨놔요.”
“흥, 그건 걱정하지 마. 당 시주. 스승님도 못 찾는다고.”
무각은 팽무성의 가슴을 주먹으로 톡 치며 말했다.
“팽 시주, 다음에는 더 무서운 주먹을 맛보게 해주지.”
“그래, 기대한다.”
실제로 무각은 천살불의 심득을 조금씩 체화하면서 빠르게 강해지고 있었다.
“폐관수련 열심히 하고.”
팽무성의 말에 무각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무각은 얼마 전에 불존에게서 지은 죄가 있으니 묵거처로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묵거처는 달마 대사가 면벽구년(面壁九年)을 행한 치우 동굴을 부르는 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곡차를 마시던 그 날 나온 게 분명해, 아니면 어떻게 아시겠냐고.”
불존은 원래 묵거처에서 면벽수련 중이었으니 무각은 불존과 함께 폐관수련을 하게 될 예정이었다.
폐관수련을 하며 불존이 직접 천살불의 심득을 가르친다면 무각은 더욱 빠르게 성장하리라.
무각은 산문까지 따라와서 떠나는 두 사람을 배웅했다.
소실봉을 내려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처음에는 그저 두 사람의 강함에 끌렸었다. 단순한 호승심과 호기심이었다.
허나 함께 시간을 보내며 무공을 겨루고 생각과 마음을 나누었다.
그러다보니 팽무성과 당화련이라는 사람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
어느새 팽무성과 당화련은 중요한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스승님과 사형제들이 가족이라면 저 두 사람은 처음 사귄 친우들이었다.
“뒤숭숭하구나.”
소림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는 무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저 친우들과 함께 무림을 거닐고 싶어졌다.
두 사람이 떠나간 돌계단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무각은 시주들의 무사를 기원하며 반장을 했다.
“아미타불.”
진심이 흠뻑 담긴 불호가 산문을 고요히 맴돌았다.
이때만큼은 소림의 제자다운 모습을 보이는 무각이었다.
* * *
하북 진주(晉州).
진주언가가 자리 잡은 근거지.
곧 진주언가에서 열릴 백가회 때문인지 진주도 평소보다 활발했다.
“다행히 늦지 않았네요.”
당화련이 진주언가의 현판을 보며 말했다.
마치 성벽을 연상시키는 높은 담장과 커다란 진주언가의 정문은 오대세가의 위명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권법으로 이름을 떨친 가문임을 보여주듯 정문을 지키는 수문 무인들은 적수공권으로 위풍당당한 기세를 흘려내고 있었다.
“팽 오라버니, 나중에 봐요.”
“그래, 쉬어라.”
진주언가에 들어선 팽무성과 당화련은 중간에 갈라져야 했다. 사천당가와 하북팽가에게 숙소로 배정된 전각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팽무성은 시종의 안내를 받으며 하북팽가의 숙소로 향했다.
“편히 쉬십시오.”
시종은 전각까지 안내하고 사라졌다.
“엇, 사공자.”
“다행히 늦지는 않으셨군요.”
전각에 들어서자 본가의 무인들이 있었다.
팽가의 타격대 중 하나인 흑호대였다.
이번 백가회의 호위를 맡아 따라온 것으로 보였다.
“다들 오랜만이네. 본가는 별일 없지.”
틈틈이 가월에게 소식을 받고 있었지만 팽무성은 괜히 흑호대에게도 물어보았다.
“사공자 덕분에 시끌시끌하지요. 사공자의 소식을 기다리는 가솔들이 많습니다.”
“사공자, 협호행의 얘기 좀 풀어주십시오.”
“소림에 제법 오래 머무셨다 들었습니다.”
저들끼리 휴식을 취하고 있던 흑호대는 사공자를 반겼다. 요즘 호사가의 입에서 하북팽가의 이름이 올라오는 일이 많았다.
모두 협호행을 다니는 팽무성 덕분이었다.
덕분에 팽가에 소속된 무인들의 어깨에도 절로 힘이 들어갈 수 있었다. 사공자는 어느새 팽가의 자랑이 되었다.
“갑자기 왜 이리 소란스럽나 했더니 막내가 왔구나.”
팽대혁은 계단을 내려오며 팽무성을 바라보았다. 팽대혁은 팽무성을 보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팽무성은 적당히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예를 갖추었다.
“오랜만에 형제끼리 회포를 풀자, 올라오거라.”
팽대혁은 팽무성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먼저 계단으로 올라갔다.
“나중에 따로 자리를 갖지.”
팽무성은 흑호대원의 어깨를 두들기곤 계단을 올랐다.
팽대혁의 방에 들어가자 놀랍게도 이미 술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마치 팽무성이 왔음을 알고 미리 준비해 놓은 것처럼.
이에 팽무성의 입술에 주름이 졌다.
‘재미있네.’
팽대혁의 맞은편에 앉은 팽무성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외가에 오신 기분은 어떠십니까.”
“나쁘지 않구나, 오랜만에 외조부를 비롯한 어른들과 시간을 가졌단다.”
문득 팽무성은 궁금해졌다.
진주언가의 어른들과 무슨 얘기를 나누었을까.
“그러셨군요. 그런데 숙부님과 다른 형님들은 어디에 계십니까.”
“숙부님은 다른 가주들을 만나러 가셨다. 둘째야 예전부터 참석하지 않았고, 셋째는 지금 산동에 갔다. 요즘 셋째가 제일 바쁘거든.”
팽무성은 잠시 대답을 미뤘다.
그 망나니가 무엇을 하느라 안 왔을까.
팽소혁은 전생에서도 백가회를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다.
“셋째 형님이 말입니까.”
“흑적쌍사에 이어서 적륜문까지. 너의 협호행에 셋째가 자극을 받은 모양이다. 이제 술과 여자도 안 찾더구나. 신기한 일이지.”
팽대혁의 말대로 팽소혁은 자신의 인생에서 한 번도 없었던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자극을 받은 것인지, 위기를 느낀 것이지는 본인만 알고 있을 테지만.
“상단과 사업체에 손을 대고 있는데, 제법 상재가 있다. 재정각주도 칭찬을 하더군.”
팽소혁은 아무래도 무공으로는 답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외가도 산동의 커다란 상단이니 그쪽이 팽소혁에게는 더 좋은 길이었다.
팽무성은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팽대혁은 본론에 앞서 잡설을 길게 하는 버릇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 자리에 없는 팽소혁의 얘기를 이리 길게 하는 것도 그 이유였다.
“나는 막내의 협호행이 좀 과격한 것이 아닌가 싶다. 사도천과 계속 악연을 만드니 본가에도 영향을 미칠까 두렵구나. 당장 하북의 북쪽에는 마랑문이 있지 않느냐.”
마랑문은 사도천의 사도칠문에 속하는 문파. 오대세가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마랑문은 이 일을 반길 겁니다.”
마랑문은 사도천 대호법의 밑에 있었다.
대호법과 청빙음마는 서로 다른 후계자를 밀고 있었다.
청빙음마의 손해는 대호법에게 있어서 이득이었다.
“어찌 되었든 본가는 지금 강호를 향해 포효할 게 아니라 잠시 몸을 움츠릴 때이다.”
팽대혁의 말에 팽무성의 주먹이 살며시 쥐어졌다.
“그렇게 움츠려서 무엇을 얻었습니까. 전력을 보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약해지고 있습니다.”
팽가의 세력권은 십 년 전에 비해 이 할이 줄었다. 마랑문과 진주언가가 위아래로 좁혀오고 있는 탓이었다.
팽가의 전력이 예전에 비해 못하다고는 하나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다.
마랑문과 진주언가도 이를 알기에 대대적으로 나서지 않고 조금씩 팽가의 영역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러다가 팽가의 전력이 만만해질 때 마랑문과 진주언가는 숨겨놓은 발톱을 드러낼 것이 분명했다.
“마랑문, 진주언가. 지금의 팽가에게 버거운 상대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다면 팽가는 끝입니다.”
팽무성의 목소리는 처음과 같이 덤덤했다.
하지만 눈에서 뿜어지는 정광은 점점 진해졌다.
진주언가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팽대혁의 미소도 사라졌다.
“진주언가는 왜 나오는 것이냐, 진주언가는 팽가의 우방이며 나의 외가이기도 한 곳이 아니냐.”
“그래서 언가는 우방인 팽가의 세력권을 계속 넘보는 것입니까.”
팽무성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저는 가끔 헷갈립니다. 큰형님이 팽가의 사람인지 언가의 사람인지.”
실제로 팽무성은 마랑문보다 언가를 경계하고 있었다.
전생의 팽가는 꾸준히 가세를 잃었고 결국 마랑문을 막기 위해 언가의 힘을 빌려야 할 정도로 추락했다.
힘을 빌릴수록 언가의 입김은 강해졌고, 언제부터인가 팽가는 언가의 입맛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 선두에는 가주가 된 팽대혁과 그의 심복들이 있었다.
그렇게 팽가는 조금씩 언가의 색으로 물들었다.
보통이라면 있을 수 없는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혼약으로 묶인 두 가문인 데다 명문 정파로서의 명성과 명분이 실상을 가렸다.
강호에서는 진주언가가 몰락하는 팽가를 도와준다는 시선으로 바라봤으니.
진주언가는 팽가를 이용하여 하북의 진정한 패자가 되었다.
‘다시 생각해도 열불 나네.’
그때의 팽지혁은 팽가에서 특출난 무인에 불과했다. 도왕이라 불리기도 전이니 아무런 힘도, 발언권도 없었다.
“큰형님은 본가가 쇠락하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쾅
팽무성의 말이 깊은 곳을 찌른 탓일까.
팽대혁의 손이 술상을 내려쳤다.
“이놈, 할 말이 따로 있다! 그렇게 가주가 되고 싶더냐. 권력에 눈이 팔린 괴물이 된 것이냐.”
팽무성은 대꾸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가 괴물이 될지는 두고 보면 알지 않겠습니까.”
팽무성은 그대로 방을 박차고 나갔다.
팽대혁은 얼굴이 붉어진 채 술병째로 입에 가져갔다. 목울대가 쉬지 않고 꼴깍거렸다.
“후우, 저놈과 같이 가기는 글렀군.”
팽대혁은 빠르게 화를 가라앉혔다.
대체 왜일까. 팽무성 앞에서는 이상하게 감정의 조절이 쉽지 않았다.
팽대혁은 술병을 놓으며 물었다.
“그래,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 것 같지?”
팽대혁의 앞에는 어느새 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언가의 무인이지만 언가의 명령으로 팽대혁을 보필하고 있는 사내, 언지환이었다.
“최소 절정의 중턱은 지났습니다.”
언지환의 말에 팽대혁은 미간을 구겼다.
“놀라운 성취이기는 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 적륜문을 홀로 무너트릴 수 있나.”
“팽무성은 적륜문 전체를 한꺼번에 상대한 게 아닙니다. 게다가 소문에는 살이 붙기 마련입니다.”
“아무튼, 나보다 강하다는 거군.”
언지환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언지환은 팽대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듯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었다.
“그래도 소가주님에 비하면 부족합니다.”
“그래, 막내가 무공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형님 정도는 아니겠지.”
용봉지재(龍鳳之才).
정파는 그 세대의 후기지수 중 두각을 보이는 이들에게 용봉(龍鳳)의 별호를 붙여주는 정통이 있었다.
현 정파에는 오룡이 있었고 언가의 소가주인 언태균은 권룡(拳龍)이라 불리고 있었다.
“백가회의 중간에 작은 비무대회가 열린다고 했지. 그 기회를 이용해야겠다. 형님이라면 충분히 막내를 가지고 노시겠지.”
“제 생각에도 좋은 듯합니다.”
팽대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언태균을 찾아가기 위함이었다.
언지환도 일어나서 팽대혁의 뒤를 따라갔다.
쪼르륵
두 사람이 나가고 아무도 없어야 했었다. 그런데 방에서 누군가 술을 따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술잔을 채우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팽무성이었다.
“흐음… 권룡이라.”
팽대혁과 언지환은 절대 모를 것이다.
언지환이 느낀 팽무성의 무위는 팽무성이 일부러 그렇게 보이게 조절했음을.
그리고 모든 얘기를 팽무성이 듣고 있음을 말이다.
“이렇게 알아서 상을 차려주니 먹을 수밖에.”
팽무성은 술잔을 비우고 자취를 감추었다.
이틀 뒤 본격적인 백가회가 시작되었다.
백가회. (2)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