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32)
31화
두 사람은 전각의 지붕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받게.”
남궁혁이 건넨 호리병을 통해 두 사람은 호리병 안에 든 술을 나눠 마시고 있었다.
연잎 특유의 향이 나는 술. 남궁혁이 즐겨 마시는 연엽주(蓮葉酒)였다.
목을 축이는 팽무성을 보며 남궁혁이 말을 꺼냈다.
“무슨 연유로 권왕이 저리 화났는지 모르지만 조심하게, 존경할 만한 원로와는 거리가 먼 노인일세.”
그랬기에 남궁혁은 언가후의 초대에 나서지 않으려 했다. 격렬하게 진동하는 기의 흐름을 느끼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알고 있습니다.”
“무림에 소문이 자자한 패호도가 오는 줄 알았다면 연회에도 나가볼 걸 그랬어.”
“오늘 나오지 않으신 연유가 있으십니까.”
팽무성은 모르는 척 물었다.
“내 나이가 작년에 이립(30세)이었네. 후기지수들과 어울리기도 모호한 나이지. 그것이 아니라도 그다지 관심이 가는 후배가 없는 탓도 있네.”
이번 백가회에는 오룡이 둘이나 참석했다.
그 말인즉 남궁혁의 눈에는 그 오룡도 눈에 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협호행의 얘기 좀 풀어주게, 얼핏 들어보니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던데.”
“처음부터 시작할까요.”
“나야 좋지.”
어느덧 시작된 팽무성의 얘기에 남궁혁은 점차 빠져들기 시작했다. 맞장구를 치며 웃기도 하고, 때론 성을 내기도 했다.
“그렇군, 소림에서 이곳으로 바로 온 것인가.”
“예.”
“자네가 땡중이라 칭한 스님도 만나보고 싶군.”
남궁혁은 무각에게 관심을 보였다.
“언젠가 만날 일이 있겠지요.”
남궁혁과 팽무성은 잠시 말을 멈추곤 눈앞의 전망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하늘 너머에 희미한 빛 꼬리가 춤을 추고 있었다.
조금씩 머리를 내미는 태양을 보며 이번에는 남궁혁이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했다.
한참 얘기하던 남궁혁은 술로 목을 적시고 얘기를 이어갔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나는 천재라고 불렸지, 지금도 그렇기도 하고.”
팽무성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남궁혁의 별호는 창천검호(蒼天劍豪)였다. 남궁혁의 첫 별호이기도 했다.
남궁혁은 그 당시 후기지수 중 제일 뛰어났음에도 검룡(劍龍)이라는 별호로 불린 적이 없었다.
검룡이라는 별호도 남궁혁의 검을 담아낼 수가 없었다.
“호사가들은 나를 미래의 천하제일검, 천하제일인이라고 부르고는 하지.”
풍경을 바라보던 남궁혁의 눈이 팽무성을 향했다.
“오늘 자네를 보고 알았네. 천하제일검은 내가 될 것이네, 그런데 천하제일인은 내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군.”
팽무성은 그 말이 뜻하는 바를 대번에 이해했다.
“미래는 확실히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팽무성의 담백한 대꾸에 남궁혁은 미소를 짓더니 다시 일출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남궁혁이 물었다.
“팽 아우라고 불러도 되겠나.”
“저는 형님이라 부르겠습니다.”
“크하하하.”
팽무성의 호쾌한 대답에 남궁혁이 크게 웃어 젖혔다.
“팽 아우, 오늘 상품이 걸린 작은 비무 대회가 열린다던데, 참가하나?”
“예. 재밌을 것 같습니다.”
팽대혁이 깔아놓은 판을 엎어버릴 테니 말이다. 남궁혁은 호리병의 남은 술을 탈탈 털어 넣었다.
“오늘은 밖에 나가야겠군, 아우의 실력이나 감상하겠네.”
완전한 일출이 뜰 때까지 두 사내는 한참이나 자리를 지켰다.
* * *
둘째 날도 어김없이 연회가 벌어졌다.
허나 이날은 술잔이 오가는 모습을 보기가 드물었다.
오늘은 상품을 내걸고 작은 비무대회를 연다는 소식이 있던 탓이었다.
정해진 시각이 되자 대연무장으로 후기지수들이 모여들었다.
대연무장의 중앙에는 이미 비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 틈에는 팽무성과 당화련도 껴있었다.
“상품이 뭘까? 영약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언가이니 자잘한 영약은 준비하지 않았겠지, 기대되는군.”
“하하, 누가 보면 자네가 얻은 줄 알겠어.”
후기지수들이 기대감에 부풀어 있을 때 언태균이 무리를 이끌고 대연무장에 들어섰다. 그 사이에는 팽대혁도 있었다.
언태균은 후기지수들 앞에서 포권을 했다.
“반갑소, 진주언가의 권룡이오.”
“오오!”
“권룡!”
언태균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같이 온 일행들은 요란을 떨며 분위기를 유도했다.
“저놈들은 배알도 없는 건가.”
언태균에게 아부하며 떠받드는 후기지수들을 보던 황보세운은 미간을 구겼다.
대대로 권룡의 별호는 황보세가가 차지했었다. 그만큼 황보세가는 권법에 대한 자부심이 높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변이 일어났다.
언태균이 황보세가의 후기지수들을 제치고 권룡의 별호를 얻은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권법을 주력으로 쓰는 진주언가와 황보세가는 무언의 경쟁을 하고 있었다. 이러니 황보세가의 후기지수들은 어른들의 질책에 죽을 맛이었다.
‘이번 기회에 내가 권룡에 더 어울림을 무림에 증명하겠다.’
황보세운은 언태균이 비무 방식을 설명하는 모습을 보며 그 커다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비무 방식은 간단했다.
후기지수들이 비무대에 올라 비무를 한다. 그리고 승자와 또 다른 도전자가 비무를 펼친다.
도전자가 없을 때까지 비무를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무공이 뛰어나도 연달아 상대하면 지쳐서 보다 약한 상대에게 질 수 있었다.
눈치와 체력 안배가 중요한 방식이었다.
“아버님께서 오늘을 위해 준비하신 상품은 소성단이오.”
이에 후기지수들의 눈이 반짝였다. 동시에 분위기도 뜨거워졌다.
“소성단, 좋은 영약이지.”
“오늘 한번 전력을 다해볼까.”
소성단은 신의가 만든 영단 중 제일 효과가 떨어졌다. 그렇지만 한 번의 섭취로 이십 년의 내공을 얻을 수 있었다.
후기지수들이 의욕을 불태우기에는 충분했다.
“자, 첫 비무를 빛낼 용기 있는 주인공들은 누구시오.”
후기지수들이 서로 눈치를 봤지만 언제나 먼저 물꼬를 트는 사람은 있는 법.
비무대의 양쪽에서 두 사람이 동시에 올라왔다.
“일련창가의 산수백이라 합니다.”
“진호문이오, 쌍일진가의 무공을 선보이겠소.”
팽무성은 어제 자신을 소개하던 두 사람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에 팽무성도 약간 관심이 갔다.
산수백은 장창을 겨누었고 진호문은 쌍도를 각기 상하단으로 늘어놓았다.
기수식의 자세만 봐도 대충 누가 이길지 감이 왔다.
‘창을 쓰는 자가 이기겠군.’
그리고 그 감은 머지않아 증명되었다.
차차차앙
산수백이 만들어낸 창영이 진호문의 쌍도를 튕겨내며 바로 목 앞에서 멈추었다.
“졌소.”
“좋은 비무였소.”
패배한 진호문은 비무대를 내려갔고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 싶은 후기지수들이 비무대로 올랐다.
후기지수들의 비무인 만큼 수준이 높지는 않지만 싸움 구경은 재미있는 게 진리였다.
팽무성도 비무를 보며 나름 즐기고 있었다.
“허 소협, 올라오시오, 겨루어봅시다.”
중간에 비무의 분위기가 살짝 바뀌었다.
승리한 후기지수가 도전자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 지목을 했기 때문이었다.
“흥, 안 그래도 올라가려고 했소.”
이에 다른 후기지수들은 무슨 일인지 대충 가늠이 가는지 작은 탄성을 터트렸다.
“아.”
“저 두 사람, 어제 연회에서 문 소저를 두고 싸웠지?”
“이거 재미있네.”
원래 없던 규칙이었으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비무의 분위기는 한층 끓어 올랐다.
언태균도 만족스러운 듯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후기지수 사이에서도 강한 축만 남게 되자 비무는 더욱 치열해졌다.
콰앙
“으억.”
무지막지한 권력에 휩쓸린 후기지수가 비명과 함께 비무대 바깥으로 날아가 뒹굴었다.
“역시 황보세가.”
“엄청나네.”
황보세운은 상대를 연달아 격파해내고 있었다. 이번이 세 번째 상대였다.
황보세운도 오룡 바로 밑의 수준으로 평가받는 기재였다.
“권룡, 이대로 구경만 하면 심심하지 않겠소.”
황보세운의 한 마디에 분위기가 일순 가라앉았다.
저 두 가문의 사이를 모르는 후기지수는 아무도 없었다.
이 상황에서 언태균만이 홀로 웃고 있었다.
‘일이 쉽게 풀리는군.’
언태균이 자연스레 비무대에 올라갈 필요가 있었는데 쉽게 해결되었다.
언태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팽무성은 언태균이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과연 권룡의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슬슬 지루해지려던 참이었는데 잘됐네.’
언태균은 관람하는 후기지수들을 보며 말했다.
“언가에서 준비한 상품을 본인이 얻으면 모양이 이상할 터, 내가 이기면 황보 소협이 계속 비무를 하는 것으로 합시다.”
언태균의 말에 황보세운의 얼굴이 붉어졌다.
마치 자신이 패배할 것을 당연시하고 말하지 않는가.
황보세운과 언태균이 마주 섰다.
“권룡의 별호는 오늘부로 내가 가져가겠소.”
“훗, 할 수 있다면 그러시오.”
황보세운이 그 자리에서 주먹을 내지르자 거대한 권풍이 언태균을 덮쳤다.
황보세가 제일의 권법, 천왕삼권(天王三拳)을 쉽게 풀어낸 천왕십삼권(天王十三拳)이었다.
언태균은 어깨를 틀어 권풍을 피하고는 하단으로 몸을 기울인 채 거리를 좁혔다.
황보세운은 뻗은 주먹을 회수조차 못 한 상황, 놀라운 몸놀림이었다.
그대로 각법을 펼쳐 황보세운의 오른쪽 옆구리를 걷어찼다.
황보세운이 예상 이상의 충격에 움찔거릴 때 언태균은 어느새 좌측으로 이동해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황보세운은 팔뚝을 교차해서 막아냈지만, 묵직한 타격음이 울렸다.
언태균의 움직임이 가벼운 듯 보였으나 주먹에 실린 힘까지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변화무쌍한 움직임으로 상대의 틈을 노리는 권법, 이것이 언가권(彦家拳)의 특징이었다.
언태균은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아 황보세운의 어깨를 팔꿈치로 찍고 내려오면서 등을 장법으로 밀쳐냈다.
“이익!”
언태균은 신출귀몰한 보법을 밟으며 황보세운을 농락하고 있었다.
미끄러지듯 거리를 벌린 언태균은 자세를 낮췄다가 그대로 뛰어올랐다. 그 기세를 실어 황보세운의 턱을 쳐올렸다.
“컥.”
황보세운은 골이 흔들려 비틀거리면서도 언태균을 향해 권풍을 쏘아냈다.
맞추지는 못했으나 권풍의 크기와 힘만은 발군이었다.
‘진짜 무식하게 싸우네.’
팽무성은 비무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황보세운은 기교와 경험에서 언태균에게 완전히 밀렸다.
“같은 오대세가인데 이렇게 차이가 나다니.”
“괜히 황보세가가 권룡의 별호를 빼앗기지는 않았겠지.”
열세를 넘어서 거의 농락을 당하는 황보세운을 보며 후기지수들은 안타까움에 눈을 찌푸렸다.
“크아악.”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황보세운은 힘과 파괴력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그럴수록 언태균은 손쉽게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황보 소협, 맷집이 대단하군, 그 정도 충격이면 기절을 했을 텐데.”
비무 도중에 말을 할 정도로 언태균은 여유가 넘쳤다.
큰 동작으로 인해 비어버린 황보세운의 가슴으로 언태균이 파고들었다.
퍼퍼벅
권기를 머금은 주먹이 황보세윤의 가슴을 두들겼다. 결국, 뒤로 주르륵 밀려난 황보세윤의 한쪽 무릎이 꺾이고 말았다.
“권룡의 별호는 내가 가지는 게 맞는 것 같군.”
“크, 크윽. 졌소.”
황보세운은 어지간히 분한 듯 두 마디를 하는데에도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두 사람의 차이가 너무 컸다.
“내가 내려가기 전에 겨루어보고 싶은 상대가 있는데.”
언태균은 중얼거리며 후기지수들을 살폈다. 덩치가 커서 그런지 팽무성의 얼굴이 바로 보였다.
“근래에 소문이 자자한 패호도의 무공을 식견 하고 싶군. 올라오게, 팽 소협.”
언태균의 미소에 팽무성도 따라 웃었다.
‘팽대혁, 예상은 했지만, 너무 시시하구나.’
팽대혁의 입장에서는 언태균이 당연히 이긴다고 생각했겠지만 팽무성은 그저 가소로울 뿐이었다.
팽무성은 후기지수들이 비켜준 틈을 걸어 비무대 위로 올라섰다.
웃음기를 머금던 언태균의 표정이 살짝 이상해졌다. 팽무성이 허리춤의 도를 뽑지 않고 두 주먹을 든 탓이었다.
“도를 쓰지 않을 생각인가.”
“권법으로 상대해보고자 합니다.”
“허.”
언태균은 어이가 없어 얼굴을 찌푸렸다.
팽무성이 도를 뽑지 않는다는 것은 전력을 다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았다.
게다가 권룡인 자신을 상대로 권법이라니.
방금 황보세운이 당하는 꼴을 못 봤단 말인가.
“아무리 패호도라도 이건…”
“무리야, 어떻게 이기냐고.”
대화를 듣던 후기지수들도 저들끼리 고개를 저었다.
“자네는 대혁이의 동생이니 나의 동생이나 마찬가지. 방금의 실언은 못 들은 것으로 할 테니 도를 뽑게.”
“당신 같은 형을 둔 적은 없는데.”
“대혁이가 왜 자네를 보살펴 달라 했는지 알 것 같군.”
언태균의 웃음이 기이하게 비틀어졌다.
마치 어젯밤에 본 권왕의 미소와 닮았다.
“기고만장하군, 선배로서 현실을 깨닫게 해주지. 오룡이 왜 오룡인지.”
“어디 용의 발톱이 얼마나 날카로운가 봅시다.”
호왕투법의 기수식을 취하는 팽무성의 눈은 진지했다. 언태균을 보는 게 아니라 그 너머 권왕의 잔재를 보고 있었다.
어젯밤, 일부러 찾아가 권왕을 만났다.
권왕이 어떤 경지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몸소 그 기세를 경험하며 온전치는 않지만, 권왕의 무위를 엿볼 수 있었다.
자신의 경지가 들키는 것은 상관없었다.
권왕을 다시 만났을 때는 전혀 다른 경지를 밟고 있을 테니. 오히려 예전의 무위로 자신을 생각한다면 감사할 따름이었다.
‘언젠가는 쳐부숴야 할 상대다.’
자신이 그리는 하북팽가에 언가의 손길 따위는 없었다.
언태균은 권왕이 심혈을 기울여 가르치는 자손.
그 움직임에는 자연스레 권왕의 움직임이 녹아 있으리라.
‘너를 통해 예습해주지.’
팽무성의 이빨은 권왕을 향하고 있었다.
백가회. (4)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