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37)
36화
“자네들도 알다시피 작은 상처도 입어서는 안 되네. 내가 검호를 맡지. 백산검, 형혼권, 따라오게.”
상대가 후기지수이나 실력은 경시할 수 없었다. 거기에 나중에는 사도천과 무천궁 둘 중 하나를 상대해야 했다.
최대한 피해를 줄이고 휴식을 취해놔야 승산이 있었다.
다른 이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어 자신보다 어린 후기지수를 상대하는 데 있어서 거리낌이나 부끄러움이 없었다.
추심혈노를 포함한 고수의 수는 딱 열둘.
세 명씩 짝을 지어 팽무성 일행의 각개격파를 노렸다.
이 광경에 남궁혁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사라졌다.
“부끄러움을 잊으셨군. 더는 선배 대접은 하지 않겠소.”
하단을 향한 남궁혁의 검에서 푸른 검사(劍絲)가 흘러나온 건 그때였다.
물 흐르듯 쏟아지던 검사는 점점 얇아지더니 마치 푸른 안개가 검에서 흘러나오는 착각을 일으켰다.
“창무인가.”
“저 나이에 벌써 그 검법을.”
백산검과 형혼권이 낯빛이 어두워졌다.
창무(蒼霧).
남궁세가의 창궁무애검법을 펼칠 때 발현되는 현상이었다.
검이 지나갔음에도 허공에는 창무의 이채가 띠었다.
이에 추심혈노가 솟구쳐 두 손을 휘저었다.
콰자작
추심혈노의 손톱이 창무를 찢어냈지만, 창무는 뒤흔들릴 뿐 제 자리를 지켰다.
남궁혁이 제일 가까운 곳에 서 있던 백산검을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꺼엉
“크윽.”
단순한 찌르기였지만, 그 무게감은 가히 천근과 같았다.
검을 비틀어 남궁혁의 매서운 검격을 흘려냈음에도 백산검은 순간 손목이 끊어지는 줄 알았다.
그 틈에 추심혈노와 형혼권이 양쪽에서 남궁혁을 향해 주먹과 손톱을 뻗었다.
남궁혁은 백산검을 장법으로 날려버리고 검을 크게 휘둘렀다.
파도처럼 쏟아지는 창무가 추심혈노와 형혼권을 삼키려 들었다.
“크흠.”
쇄도하는 창무를 쳐낸 추심혈노는 제 손을 살폈다.
손에 내공을 둘렀음에도 자잘한 검상이 가득했다.
마치 저 창무가 하나의 검이라도 된 듯이.
백산검과 형혼권도 전력을 다해 무공을 펼쳐냈지만 남궁혁의 창무를 뚫어낼 수 없었다.
가공할 힘과 무게를 쏟아내는 남궁혁의 중검(重劍)에 내상만 짙어질 뿐이었다.
점점 좁혀오는 창무를 보다 못한 추심혈노가 일갈했다.
“뭐하나. 멍하니 서 있다 죽을 셈인가!”
어느새 추심혈노는 뒤를 생각하지 않고 내공을 서슴없이 사용했다. 다른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보물이고 뭐고 일단 살고 봐야 했다.
하지만 이를 상대하는 남궁혁의 얼굴은 평온했다.
수십의 심장을 터트린 추심혈노의 손조차도 창무를 어쩌하진 못했다.
그에 추심혈노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검호!”
노성을 터트린 남궁혁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추심혈노의 손톱이 허공을 긁어내려고 했지만, 그 전에 푸른 빛살이 가로질렀다.
그 순간, 추심혈노는 남궁혁의 팔이 사라졌다 착각했다.
눈이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한 탓이었다.
서걱
허공에 솟구치는 자신의 손을 보며 추심혈노는 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이놈, 초절정의 경지를 밟고 있었구나.’
추심혈노가 넘지 못한 절정의 마지막 벽을 남궁혁은 이미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그제야 추심혈노는 왜 남궁혁이 미래의 천하제일검이라 떠받들어지는지 알았다.
그러나 깨닫기엔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창궁무애검법이 펼쳐지는 곳이 곧 남궁의 하늘. 그대들의 실력으로 하늘에 닿을 수 있겠소.”
쏴아아아
마음을 먹은 남궁혁의 검은 비정했다.
남궁혁의 검을 따라 허공을 가득 채운 창무가 추심혈노를 덮쳤다.
‘역시 형님이다.’
“이놈, 어딜 보는 거냐.”
팽무성의 머리 위로 장검이 꽂혀 들었다.
무림에 쾌검으로 드높은 풍비검이었다.
팽무성은 춤을 추듯 몸을 틀더니 그대로 검면을 쳐서 부러뜨려버렸다.
꽈앙
풍비검이 절반으로 부러진 검신을 보며 눈이 커질 때 팽무성의 도는 이미 목에 달하고 있었다.
“잠깐.”
풍비검이 급히 입을 열었지만 도는 멈춤을 몰랐다.
“온다!”
쏴앙
도풍과 함께 쇄도하는 팽무성.
그런 팽무성의 앞을 붕산권과 용두도가 막아섰다.
까가강
붕산권은 두 팔에 착용한 권갑으로 도풍을 튕겨내고 팽무성의 앞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별호에 어울리는 권기가 충만한 정권.
산은 아니더라도 작은 전각은 무너트릴 수 있을 듯 보였다.
발목을 튕겨 옆으로 몸을 회전시키자 주먹이 아슬아슬하게 볼을 지나갔다.
팽무성은 그대로 회전력을 실어낸 도격으로 붕산권의 가슴을 깊게 베고 지나갔다.
“크헉.”
붕산권이 휘청거리며 쓰러질 때 팽무성은 도를 역수로 잡아 그 뒤에 있던 용두도의 발을 찍어눌렀다.
“큭, 이 노옴!”
용두도는 발에서 올라오는 고통을 참으며 도를 휘둘렀다.
쩌엉
두 자루의 도가 잘게 떨리며 서로를 밀어냈다. 용두도가 팽무성의 무정한 눈을 보며 말했다.
“너희도 결국 목적을 위해 피를 보는데 망설임이 없구나. 우리와 다를 바가 없다.”
“그래. 우리는 똑같다. 서로 가고자 하는 길을 관철하며 충돌한다. 그러다가 힘이 부족한 쪽의 길이 끊어질 뿐이지. 그것이 무림이고 무인이 아니던가.”
본래 생각이 여물지 못한 후기지수의 마음을 흔들고자 한 말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답이 튀어나오자 용두도의 눈이 진지해졌다.
눈앞의 후기지수는 이미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도를 잡고 있었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담아낸 도는 결코 꺾이지 않을 것이다.
“너는 강하구나.”
용두도는 이를 악물고 팽무성의 도를 밀어내려 했지만 도리어 팽무성의 도가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컥.”
팽무성은 도병으로 용두도의 명치를 찍고 팔꿈치로 다시 한번 명치를 쳐냈다. 그러고는 좌장으로 턱을 올려쳤다.
뻐억
와호장(臥虎掌)이 용두도의 턱을 강타하자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힌 용두도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팽무성이 상대한 세 명은 모두 절정의 중턱을 넘은 무림에 명성이 높은 고수들이었다.
하지만 그 고수들을 상대하는데 각각 삼 초식 이상을 쓰지 않았으니 팽무성의 폭풍적인 성장세를 엿볼 수 있었다.
조금씩 도왕의 두각을 보이는 팽무성이었다.
쐐애애애액
쿠콰카캉
팽무성과 남궁혁이 완전히 압도했다면 무각과 당화련은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 둘은 비무에서의 경험을 이용해 굳이 따로 싸우지 않고 협공을 벌이고 있었다.
무각이 당화련의 앞을 막아섰고 여섯 명의 고수가 무각을 덮치는 듯했으나 이들의 호흡은 잘 맞지 않았다.
천살불의 심득을 체화한 무각의 움직임은 더욱 자유분방해졌다. 그 야성 속에는 숨겨진 절도가 있었다.
마치 사람의 탈을 쓴 맹수를 보는 기분이었다.
까앙
검이 무각의 허리를 찔렀으나 마치 철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그 때문에 어설프게나마 이어지던 합공의 흐름이 깨졌고 그 틈에 무각은 주먹을 뻗어냈다.
아라한신권의 와류에 두 명의 고수가 휩쓸리는 사이 섬전창이 후미에서 창을 찔러왔다.
키잉
그러나 어린표가 창대를 튕겨냈고, 그 틈에 무각은 창대를 밟고 달려나가 무상각(無常脚)으로 섬전창의 머리를 찍어 밟았다. 환상의 호흡이었다.
“저 땡중을 도울 틈이 있더냐.”
무각이 잠시 묶인 틈을 타서 당화련에게 접근한 두 명의 고수. 강서쌍랑.
후방에서 암기로 계속 견제하는 당화련부터 처리할 속셈이었다.
강서쌍랑의 도검이 양쪽에서 교차하듯 당화련을 베어냈다.
당화련은 여인 특유의 유연함을 이용해 물 흐르듯 피해냈다.
파앙
발의 용천혈에 내공을 터트린 당화련은 단숨에 뒤로 거리를 벌리며 어린표를 꺼내 들었다.
꽈가강
어린표를 막아내는 검이 크게 흔들렸다.
대침과 어린표의 위력이 확연히 달랐기에 이를 막아낸 좌랑은 깜짝 놀랐다.
경험이 풍부한 좌랑의 눈조차 어지럽게 하는 어린표의 궤적.
퍽
여섯 번째 어린표를 튕겨내던 좌랑의 어깨에 언제 날아왔는지 모를 어린표가 박혀있었다.
“끅.”
“이년이!”
어린표에 묻은 독에 좌랑이 조금씩 허물어졌고 대경한 우랑이 당화련을 향해 솟구쳐 절초를 펼쳐내려 했다. 급한 마음에 놓은 악수였다.
당화련의 손이 반짝였다.
수많은 암기가 야명주의 빛에 반사된 탓이었다.
슈슈슈슉
비 오듯 쏟아지는 대침.
좌랑은 도를 휘둘러 간신히 튕겨냈다.
푹
좌랑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쳐다보았다.
자신의 허벅지에는 가느다란 세침이 박혀있었다.
‘이런, 잡기술에 당했구나.’
좌랑은 당화련이 크고 기다란 대침 뒤에 작고 얇은 세침을 숨겨놓았단 사실을 알아차렸다.
세침이 대침에 가려 보이지 않으니 막았다고 방심했을 때 세침에 당한 것이었다.
당가에서 암기술을 가르칠 때 이를 자모(子母)의 묘리라 불렀다.
당화련이 독한 독을 쓴 듯 몸에 퍼지는 속도가 빨랐다.
좌랑이 제대로 몸을 못 가누며 추락할 때 당화련이 유엽비도로 단번에 목을 그어버렸다.
그때 무각도 남은 고수들의 가슴에 주먹을 찔러넣은 상황이었다.
“무각 오라버니, 고생하셨어요.”
“후우, 생사결은 비무랑 다른 맛이 있군.”
땀을 훔치는 무각의 무복은 곳곳이 찢겨있었지만, 핏자국은 없었다. 무각의 수준 높은 외공 덕분이었다.
“두 사람은 운기 해라, 호흡을 고르고 출발하자.”
팽무성의 말에 당화련과 무각은 군말하지 않고 바로 가부좌를 틀었다.
어찌어찌해서 별다른 상처 없이 이길 수 있었지만, 내공과 체력의 소모가 제법 있었기 때문이었다.
팽무성과 남궁혁은 호법을 섰다.
남궁혁은 광장에 펼쳐진 작은 시산혈해를 보며 텁텁한 표정을 지었다.
찰박
남궁혁이 한 발자국 옮기자 고인 피에 파문이 일었다.
얼마나 많은 이가 죽었기에 이렇게 피가 고일 수 있을까.
“오늘 이런 광기는 처음 봤네. 백산검과 형혼권, 평생을 협의를 지켜온 분들인데 평생 걸어온 길을 버릴 정도로 보물이 가치가 있는 걸까.”
남궁혁은 팽무성의 말대로 입구를 막고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물의 유혹을 떨쳐내고 입구를 막아낸 현문 대사와 구파의 제자들이 존경스럽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것의 배는 넘는 시체의 산이 쌓였을 테니 말이다.
“옳다고 생각했던 길이 정말 나에게 옳은 길인가 흔들릴 때가 있을 테지요. 그들은 결국 다른 방향을 선택한 겁니다.”
팽무성은 눈앞에 있는 무수한 시신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저 틈에는 백산검과 형혼권도 섞여 있으리라.
“옳은 방향도 중요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요.”
남궁혁의 텁텁한 표정이 개운한 듯 자취를 감추었다.
팽무성이 내뱉은 말은 뻔한 말이었으나 너무나 청량하게 들렸다.
“그래,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옳은 방향으로. 그것이 정파겠지.”
정파는 뻔하지만 하기 어려운 일을 행하는 자들이었다.
* * *
무신총의 두 번째 광장.
고요한 긴장감이 광장을 맴돌았다.
빠악
휘두른 주먹에 덤벼들던 무인의 머리가 터졌다.
주먹에 묻은 피를 털어내던 사내가 소리쳤다.
“밖이었으면 눈도 못 마주칠 잡것들이, 감히.”
“후후, 이렇게 무신총 안이니 이런 시도도 해보는 것 아니겠소.”
사도천의 삼공자 해무각은 이를 악물고 눈앞에 있는 무리를 노려봤다.
추심혈노처럼 장보도 조각을 얻고 기회를 노리는 자들이 있었다면 무작정 사도천과 무천궁을 쫓으며 견제하는 이들도 있었다.
해무각의 눈앞에 있는 무리가 그런 이들이었다.
‘게다가 무천궁 놈들까지.’
해무각은 처음부터 무천궁을 신경 쓰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최종적인 경쟁은 무천궁과 하게 될 것이라 여겼다.
무천궁의 소궁주, 한백유가 동맹을 거절한 이상 함부로 전력을 손실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 바보 같은 놈만 아니었다면 진작 놈들을 쓸어버리고 안쪽으로 향했을 텐데.’
해무각은 팔짱을 낀 채 여유롭게 서 있는 한백유를 보며 침을 뱉었다.
사도천, 무천궁, 임시로 뭉친 무림인.
기묘한 균형이 이루어지며 묘한 삼파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소궁주, 언제까지 이렇게 시간을 보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가 장로가 속삭이자 한백유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변수를 기다려봅시다.”
한백유는 무신총의 바깥쪽에서 경시 못 할 기세를 느꼈다. 그것도 두 명이나.
한백유는 그 기세의 주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한백유가 예상하지 않은 다른 변수가 벌어졌다.
철컹철컹
바깥쪽으로 향하는 통로부터 시작해 무신총의 안쪽으로 가는 통로에도 철창이 내려와서 모든 길이 봉쇄되었다.
이에 광장에서 대치하고 있던 무림인들의 시선이 흩어졌다.
그르릉
평범한 벽이라 생각했던 곳이 갈라지며 숨겨진 통로가 나타났고 그 통로에서 흑의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뭐야, 저놈들은.”
“저런 숨겨진 통로가 있었다니.”
마지막으로 암마군이 나타나서 광장에 모인 무림인들을 눈으로 쓸었다.
“이 무림 놈들아, 언제까지 입만 나불대며 눈치만 볼 거냐. 참다못해 내가 직접 나섰다.”
암마군과 마인들을 보는 한백유의 눈에 흥미가 돋았다.
하나같이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이상한 기세를 지닌 무인들.
‘저놈들이 소문의 마교인가?’
무림맹주가 무천궁주에게 보낸 서신에는 마인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덕분에 무천궁에서도 마교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
암마군은 수하들을 보며 명령했다.
“발동시켜.”
암마종의 마인들은 기관을 수리하면서 진법도 설치해놓았다.
시간이 부족해 위력이 높은 진은 설치 못 했지만, 이곳에 모인 무림인을 몰살시키기에는 충분했다.
마인들이 미리 지정된 곳에 색색의 깃대를 꼽자 깃대를 중심으로 검은 안개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암천비마진(暗天秘魔陣).
암마종의 진법으로 마기를 숨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검은 안개를 생성하여 암마종의 무공을 펼치기에 알맞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진이었다.
암마종의 마인들은 그 안개에 뒤섞여 점점 모습이 사라져갔다.
“서로 죽여보자, 무림 놈들아.”
암마군의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검은 안개 전체를 흔들었다.
광기의 무신총. (4)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