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38)
37화
광장을 삼켜버린 암무(暗霧).
어둠을 몰아내던 야명주의 빛조차 암무를 밀어내지는 못했다.
“기척을 차단하는 진법인가!”
“다들 어디에 있소.”
몇 발자국만 멀어져도 바로 암무에 가려서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암천비마진의 암무는 사람의 기척과 소리를 삼켜버렸다.
여기저기서 무림인의 외침이 울렸으나 소리가 일그러져 무언가의 울음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랬기에 무림인들은 알지 못했다.
그 울음소리에 누군가의 비명과 신음이 섞여 있음을.
“쿨럭.”
순식간에 목을 지나간 참격.
무림인은 피를 토하는 자신의 목젖을 부여잡은 채 앞으로 고꾸라졌다.
우왕좌왕하는 무림인과 달리 암마종의 마인들은 암영마공(暗影魔功)을 익힌 탓에 진법 안에서도 행동에 제약이 없었다.
암마종이 우선으로 노리는 것은 소속이 없는 무림인들.
사도천과 무천궁은 진법이 발동되자마자 방진을 구축했다. 그에 비하면 제각기 흩어져 따로 움직이는 무림인들은 걸어 다니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그중에도 실력이 뛰어난 무림인들이 대항하기 시작했지만, 일방적으로 칼침을 맞는 무림인이 대부분이었다.
거기에 암마종의 마인들은 조를 이루어 행동하니 어지간한 고수가 아니라면 당해낼 요량이 없었다.
“과연 마교의 진법인가, 기이하군.”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끊임없이 기이한 울음소리가 들리니 등골이 서릴 만도 하지만 한백유는 한없이 여유로웠다.
한백유는 뒤쪽을 살폈다.
기분 나쁜 암무만이 시야에 들어왔다.
한백유는 마인들이 튀어나오자마자 방진을 구성하고, 제자리를 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었다.
한백유도 그 후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으니 무천궁의 방진과 열 걸음 정도 차이가 났다.
그런데 모습은커녕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장로가 두 분이나 계시니 방진은 문제 없겠지.’
한백유가 뒤쪽으로 고개를 틀었을 때 암무를 뚫고 튀어나온 쌍도.
검은빛을 띤 쌍도는 암무 안에서 사용하기에는 최적의 무기였다. 그런 흑빛의 쌍도가 좌우로 교차하며 한백유의 상체를 베어내려고 했다.
타탕
한백유가 검지와 중지를 동시에 튕겨 지풍을 쏘아냈다.
튕겨 나간 쌍도를 타고 올라오는 반탄력이 상당했다.
이에 마인은 뒤로 물러서다가 문득 한백유의 손에 들린 도를 흘겨보았다.
‘언제 도를 뽑았지?’
분명 적수공권이었고 도병에 손을 가져가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기이한 노릇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생에 마지막 생각과 동시에 마인의 몸이 직선으로 갈라진 채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렇군, 네 걸음 안으로 들어오면 보이는 건가.”
중얼거리는 한백유의 사방으로 암무를 뚫고 쌍도가 튀어나왔다.
이에 한백유는 즐거운 듯 도를 힘차게 휘둘러 암무를 갈라냈다.
도합 열 자루의 도가 한백유의 전신을 베었지만 한백유는 한 호흡이 끝나기도 전에 모든 공격을 쳐냈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섬광을 내뿜는 한백유의 도는 마인들의 몸을 단숨에 조각내고 있었다.
가공할 쾌도(快刀).
강북에 검호가 있다면 강남에는 광도(光刀)가 있었다.
광도라는 별호답게 한백유의 도는 도신을 보이지 않고 섬뜩한 빛살만이 드러내고 있었다.
이에 마인들의 눈은 경악으로 물들었지만 잠시뿐이었다.
이내 저들끼리 눈을 맞추더니 다시 한백유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농밀한 마기와 살기가 뒤섞이니 경험이 많은 고수들도 등이 오싹할 듯하지만 한백유는 가볍게 떨쳐내고 도를 밀어 넣었다.
도광(刀光)의 틈에서 한백유는 웃고 있었다.
* * *
촤악 촤악
연달아 살이 갈라지는 소리.
해무각은 자신의 팔과 다리가 붉어지는 것을 보고 욕을 내뱉었다. 전신에 암무군이 만들어낸 상처로 가득했다.
“자, 이번에는 어디에 상처를 만들어줄까. 사파라면 얼굴을 가로지르는 상처 하나쯤은 있어야지.”
“이 빌어먹을 놈, 비겁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싸우는 거냐.”
그에 암무 속에서 음산한 웃음소리가 깔렸다.
“크크큭, 사파놈이 그런 말을 하니 웃기는군. 이 정도도 대응하지 못해서야 사도천주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겠느냐?”
그와 동시에 허리를 갈라오는 두 줄기의 도격을 해무각은 간신히 피해냈다.
“사도천의 오대호법 중 아무도 너를 선택하지 않았다지. 그럴만하군.”
해무각은 조금씩 가까워지는 암마군의 목소리를 들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터진 입술은 더욱 선명한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제기랄.”
사도천의 대공자와 이공자는 무신총 따위에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후계자 자리를 두고 한창 싸움이 벌어지고 있으니까.
경쟁 구도에서 한참 밀려난 해무각은 마지막 역전의 기회를 노리고 무신총에 찾아온 것이었다.
무신의 보물을 가져가면 사도천주가 마지막 기회를 주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내가 이딴 곳에서 죽을 성싶으냐!”
해무각은 혼신을 다한 일장을 내질렀지만, 그저 암무만 허무하게 뚫고 사라질 뿐이었다.
솨악
바로 눈앞의 암무가 갈라지는가 싶더니 해무각의 시야가 흐려졌다.
암마군이 왼쪽 눈을 그어버린 탓이었다.
해무각의 얼굴에는 눈을 중심으로 얼굴을 가로지르는 긴 검상이 생겼다.
“크악!”
고통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해무각은 쌍장을 내질렀다.
이번에는 암마군의 기척을 정확히 읽어냈다.
후웅
내공을 가득 실어냈기에 장력이 암무를 거침없이 밀어냈다.
커엉
해무각의 쌍장이 처음으로 적중하며 그 앞에 암무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나 눈이 웃고 있다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제야 좀 볼만한 얼굴이 되었구나.”
이에 해무각의 하나 남은 눈동자가 붉은빛을 발했다.
끓어오르는 분노에 실핏줄이 터진 탓이었다.
“개자식이!”
해무각은 한 손으로 쌍도를 부여잡고 남은 손으로 암무군의 머리를 내려치려 했다.
“울지 마라.”
해무각의 얼굴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는 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암마군은 도기를 뿜어내 해무각의 손가락을 가볍게 잘라내고는 그대로 가슴 양쪽에 쌍도를 깊게 찔러넣었다.
“좌우사자가 너의 부하들을 찢어 죽이고 있다. 가는 길 즐겁게 가라.”
해무각의 눈에서 점점 생기가 사라질 때 암마군은 그대로 도를 쳐올려 해무각의 목을 날려버렸다.
“이 맛이지.”
목이 잘린 해무각의 시체를 보며 암마군은 희열에 찬 목소리를 흘려냈다.
암마군은 암무 속에서 상대의 약점을 줄줄 늘어놓아 심기를 건드리는 것을 좋아했다.
이는 암마군이 익힌 귀령암마공(鬼?暗魔功)의 영향도 있었다.
귀령암마공을 펼치면 특이한 울림을 지닌 목소리로 바뀌는데 이를 들으면 괜히 마음이 혼잡해지고 전투에 집중 못 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너무 오래 가지고 노셨습니다.”
암마군은 뒤에서 나타난 노인의 말에 클클거리며 웃었다.
“사도천의 병력은 어찌 되었소.”
“우사가 마무리 중입니다, 삼공자의 세력이라 그런지 별 볼 일 없었습니다.”
“우사는 정리하고 올 테니, 우리는 먼저 무천궁 쪽으로 갑시다.”
암마군과 암마좌사는 시야를 가리는 암무가 뻔히 보이는 듯 방향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그 뒤로 암마종의 마인들이 뒤따랐다.
“무천궁은 사도천처럼 가벼이 여기시면 안 됩니다.”
“알고 있소. 그래서 사도천을 먼저 친 것이오. 내가 맛있는 것은 언제나 마지막에 즐기지 않소.”
* * *
팽무성 일행은 두 번째 광장에 가까워지자 전신을 소스라치게 하는 알 수 없는 기운을 느꼈다.
‘마기. 역시 있었나.’
마기를 경험해본 팽무성만이 그 기운의 정체를 바로 알아차렸다.
통로의 끝에 다다른 당화련은 눈을 깜빡였다. 통로의 끝에는 철창이 길을 막고 있었다. 팽무성은 철창을 쓰다듬었다.
“연한 갈색을 띠는군, 곤철인가.”
남만에서 채굴되는 광물로 일반 철을 뛰어넘는 강도를 가지고 있어서 검기로도 자를 수 없었다.
“내가 자를게.”
도에서 곧장 붉은 도사(刀絲)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수십 줄기의 도사가 도신을 따라 뭉쳐서 덩어리를 이루어냈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면 강기가 되었다.
아직 완전한 강기를 만들어낼 경지까지 이르지 못했음에도 이를 본 남궁혁은 내심 놀라워했다.
‘팽 아우가 생각보다 성취가 뛰어나군.’
남궁혁의 경탄 속에 팽무성은 도사를 머금은 도를 그대로 후려쳤다.
본디 곤철은 탄성이 적어 부러지기가 쉬웠다. 그 때문에 벤다기보다는 부순다는 느낌으로 도를 휘둘렀다.
꾸앙
도사가 뿌려짐과 동시에 굉음이 울리며 철장이 쪼개졌다.
철창을 날려버리고 두 번째 광장으로 들어선 팽무성 일행에 진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마인의 시선이 쏠렸다.
“아미타불, 이게 무슨 조화냐.”
“연막이나 독무 같지는 않은데요.”
“암천비마진. 본가의 고서에서 읽은 적이 있다.”
물론 전생의 기억 덕분이지만 다른 이들이 의문을 가질 수 있기에 적당히 거짓을 섞었다.
“팽 아우. 파해법을 알고 있나.”
“예. 계획이 있습니다.”
팽무성의 입을 열자 다른 세 사람은 팽무성의 얘기에 집중했다.
“그렇군. 그렇게 전문적인 진법의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예. 다만 저들을 뚫어야겠지요.”
팽무성은 자신들을 노려보는 암마종의 마인들을 마주보았다.
“시작하시죠.”
“그래.”
네 사람은 양쪽으로 패를 나누어 각기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팽무성은 당화련과 움직이며 앞을 가로막는 마인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색색의 천으로 묶인 깃대. 그 깃대에는 알 수 없는 문자들이 적혀 있었다.
암천비마진의 진축이었다.
일단은 진의 바깥쪽에 있는 진축을 모조리 부숴버릴 생각이었다.
스슥
마인들이 암영마공을 펼치자 전신에서 흘려내던 마기가 암무로 변하며 퍼져갔다.
마치 사람이 검은 구름을 두른 형상이었다. 마인들은 암무 안에서 모습을 숨기며 살수처럼 움직였다.
팽무성은 하나씩 상대해줄 생각이 없었다.
최대한 빠르게 진법을 해체하는 게 한 명이라도 더 살리는 길이었다.
호흡을 크게 들이쉰 팽무성이 도기와 도풍을 연달아 쏟아내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쏟아지는 철혈맹호도의 절초가 앞을 가로막는 암무 덩어리 자체를 맹렬히 찢어발겼다.
혹여나 팔다리가 잘린 채 살아남은 마인이 있어도 당화련의 귀신같은 암기술이 끝을 냈다.
쿠르릉
팽무성은 그대로 계속 전진해나가며 바닥에 꽂힌 진축을 베어버렸다.
팽무성도 폭급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남궁혁과 무각도 그에 못지않았다.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탓이었다.
어느새 네 사람이 반대쪽에서 다시 만나게 되고, 마지막 진축이 무각의 발에 짓밟혔다.
우웅
그러자 암천비마진이 크게 떨리더니 암무가 흐릿해졌다.
“크아아악!”
“좌측이다. 막아!”
“커헉.”
진법의 힘이 약해지자 사람들의 소리가 명확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시야도 밝아져서 사람의 윤곽이 보일 정도로 연해졌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팽 아우의 말대로군.”
남궁혁은 감탄한 눈으로 팽무성을 쳐다봤다. 진법이 완전히 파해가 안 될 것이라 팽무성이 이미 언급한 탓이었다.
“가시죠.”
“그래!”
팽무성 일행은 거침없이 진법 안으로 뛰어들었다. 이번에는 무각이 선두였다.
중간중간 보이는 마인들은 그 자리에서 베고 지나갔다.
“무각. 중앙이다!”
팽무성의 외침에 무각은 바로 그 자리에서 멈춰섰다.
“아미타불.”
무각은 불호를 외며 합장을 하고는 반야대능력의 내공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이에 무각의 주변에 있던 암무들이 도망치듯 뒤로 물러났다.
소림의 무공은 파마(破魔), 파사현정(破邪顯正)의 힘을 지녔으니 이에 반응한 암천비마진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무각은 합장을 한 채 높이 뛰어오르더니 바닥을 향해 거대한 금빛 장력을 쏟아냈다.
콰아앙
대력금강장(大力金剛掌)이 광장의 중앙 바닥을 날려버리자 숨겨진 진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무각은 반야대능력의 내공을 담아 소리쳤다.
“바닥을 쳐라! 그러면 진법이 깨진다!”
살아남은 무림인들은 무각의 외침을 똑똑히 들었다.
광기의 무신총. (5)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