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4)
3화
당당한 팽무성의 말에 철호는 말문이 막혔다. 철호가 가져온 네 권의 비급.
모두 팽가의 기본 무공으로 두 개의 도법, 한 개의 권법과 보법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확실히 잘 골라오기는 했어.’
기본 무공은 전생에 죽도록 경험했다.
전생의 경험이 있는데 필요한 과정은 아니었다.
팽무성은 비급 하나를 잡아 펼쳤다.
맹호도결(猛虎刀訣)
하북팽가 도법의 기원.
보통이라면 가볍게 익히고 다음 무공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전생의 팽지혁은 오히려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피도 섞이지 않은 고아 출신. 성과 이름만 운 좋게 얻었기에 장서각에서 열람할 수 있는 무공의 수가 매우 적었다.
그렇기에 익힐 수 있는 것에 집중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결국 득이 되었다.
훗날에서야 장서각의 열람 제한이 풀리고 직계 중 일부만 익힐 수 있는 혼원벽력신공과 혼원벽력도를 받은 것도 마교 중원 침공이 본격화되었을 때다.
약해진 하북팽가로서는 마교의 침공에 무력하게 휩쓸릴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자신을 앞세워 방패막이로 세울 속셈이었다.
‘그때는 전쟁 때문에 새로운 무공을 익힐 시간도 없었지.’
도왕이라 불릴 때에는 이미 독자적으로 창안한 무공이 완성된 시기다.
새로운 무공보다는 원래 익히던 무공의 깊이를 더하는 것이 전장에서 살아남는 길이었다.
게다가 팽호대를 직접 이끌며 거의 모든 시간을 전장에서 보냈다. 여유롭게 장서각에 방문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직계와 방계의 차이가 확실히 체감되네.’
장서각의 삼층은 직계 혹은 가주의 허락을 받은 이만 들어올 수 있다.
팽무성이 삼층으로 가는 계단을 밟았다.
전생에서도 밟아보지 못한 계단을 지금 오르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철호는 올라갈 자격이 없기에 이층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래.”
어느 문파든지 차이와 차별은 있다.
본산제자와 속가제자. 직계와 방계.
하북팽가는 유독 그 차별이 심했다.
당장 남궁세가만 해도 직계와 방계에 상관없이 오로지 재능과 실력으로 대우했다.
팽무성은 그것이 오대세가의 정상으로 군림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 하북팽가는 이십 년 전에 오대세가에서 방출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오대세가라는 개념이 확립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하북팽가는 시대를 탓할 뿐 스스로 변화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본가도 이제 바뀌어야 한다.’
아니면 천천히 도태될 뿐이다.
그리고 전생에서 그 과정을 직접 보았다.
소가주, 나아가 가주가 된다면 좀 더 손쉽게 하북팽가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마교의 침공에서 살아남을 힘을 키울 수 있다.
생각에 잠긴 채 책장을 둘러보던 팽무성의 걸음이 멈췄다.
“찾았다.”
팽무성이 장서각에서 찾던 것은 오직 하나였다.
산왕군림보.
“팽가의 도는 산왕군림보를 익혀야 진정한 힘을 보이지.”
산의 왕인 호랑이.
호랑이는 날래고 용맹하며 사납다.
그런 호랑이의 움직임을 그대로 담아낸 것이 산왕군림보.
산왕군림보에 팽가의 도법이 더해지면 말 그대로 하늘이 무너지는 위력이 나타났다.
하지만 전생에서는 산왕군림보를 배우지 못했다. 기껏 파생된 비호보를 익히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결국 직계가 펼치는 산왕군림보를 훔쳐보며 이를 대체할 새로운 보법을 직접 창안해야 했다.
“그렇군. 패왕진보는 이 부분이 모자랐었어.”
산왕군림보를 훑어본 팽무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눈에 모든 것이 일목요연해졌다.
전생에 창안한 패왕진보는 산왕군림보에 비해 더욱 패도적이다. 그러나 산왕군림보에는 패왕진보에는 없는 여유, 당당함이 있었다.
시작이 잘못되었었다.
그럼에도 패왕진보는 산왕군림보에 못지 않았다.
“산왕과 패왕을 결합하면, 산왕군림보는 기존보다 월등해진다.”
팽무성의 눈에서 용광로와 같은 불길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더 강해질 수 있는 길을 본 느낌이다.
드디어 최소한의 준비가 갖춰졌다.
전생과 똑같은 무공을 익힌다면 굳이 장서각을 찾아올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전생의 무공으로는 부족했다.
전생에서는 그저 타고난 재능으로 도만 파고들어 벽을 깨트릴 수 있었다.
하지만 하북팽가의 무인으로서 완성되었다 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있었다.
전생에서 놓친 것을 이번 생에 채워 넣는다면 더 강해질 수 있으리라.
하북팽가를 바꾸고 다시 키운다 해도 마교를 막지 못하면 결국 원점이었다.
현시대를 사는 마교주도 나날이 강해지고 있을 터. 팽무성도 이를 따라잡아야 했다.
십대고수의 위에 군림하는 천외천.
천하제일에 제일 근접한 초인들.
삼천(三天).
전쟁 당시에 삼천과 무수한 생사결을 겪으며 강해지던 마교주.
결국에는 그 삼천을 홀로 꺾었다.
끊임없이 성장하는 괴물.
지금도 그 성장을 떠올리면 소름이 돋는다.
“네놈은 지금 어떤 경지에 서 있나.”
팽무성은 마교주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 * *
팽무성이 무공을 수련한지 넉 달.
그 시간은 팽무성이 흘리는 땀이 늘어날수록 더 빠르게 지나갔다.
쏴앙
산왕군림보를 밟으며 맹렬하게 도를 휘두르는 팽무성. 도가 시원하게 대기를 갈랐다.
방구석 폐인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전신에서 슬그머니 올라오는 사나운 기세.
산의 호랑이가 연무장으로 내려온 듯했다.
‘수련하신 지 반년도 채 안 지났다.’
팽무성이 도를 휘두르는 모습을 보면 가끔 놀랄 때가 있다. 만약 자신이 저 도를 상대한다면 받아낼 수 있을까.
팽무성이 도를 잡은 시간을 생각한다면 정말 우스운 일이다.
말도 안 되는 성장 속도를 보이는 팽무성이다. 사실 처음 도를 잡을 때도 예사롭지 않았다.
자연스레 도를 잡는 손, 전신의 힘을 낭비 없이 도에 싣는 감각까지.
익히는 무공도 막힘 없이 성취를 늘려갔다. 경악을 넘어 의아할 정도였다.
“저런 사공자가 둔재라고 불렸다고?”
이런 재능을 가지고? 무언가 잘못되었던 것이 아닐까. 둔재가 아니라 천재였다.
사공자가 수련하는 것을 보면 마치 고수가 무공을 처음부터 다시 익히는 과정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일도 재능이라는 이유로 설명할 수 있는가.
철호는 팽무성의 수련을 보며 눈을 떼지 못했다. 경이로울 팽무성의 성장 속도도 있지만 주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사공자가 익히는 도법 때문이었다.
저 도법을 보다 보면 막힌 벽을 깰 수 있는 깨달음을 얻을 것 같았다.
‘철혈맹호도라 했었지.’
철호가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도법.
하지만 그 근간이 맹호도결에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결국 하북팽가의 무공이라는 것인데 철호는 왜 모르고 있을까.
그 이유는 전생의 팽지혁이 자신의 깨달음을 넣어 창안한 도법이기 때문이다.
“후우,”
팽무성은 수련을 하는 동안 어제보다 강한 오늘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전생의 심득이 빠르게 육체에 녹아들었다.
도왕의 깨달음을 온전히 빨아들이는 팽무성의 육체는 다시 놀라움을 자아냈다.
기존의 팽무성의 육체.
전생의 팽지혁의 경험.
이 두 가지가 맞물려 경이로운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철혈맹호도를 펼치던 팽무성은 도를 거두었다. 이제 도법을 팔성까지 익혔다.
아무래도 직접 창안한 도법이다 보니 성취가 빨랐다.
부족한 내공만 해결한다면 자연스레 극성까지 도달할 것이다.
“이제 출발선을 넘었네.”
산왕군림보와 쌍호장법도 마찬가지.
팽무성은 장서각에서 산왕군림보과 더불어 쌍호장법을 챙겼다.
전생에서는 패왕진보와 파갑권법를 익혔다. 모두 직계가 펼치는 무공을 눈대중으로 보며 자신의 깨달음을 섞어 창안한 무공.
-제법 일대종사의 흉내를 내는 듯한데 그래도 아직 깊이가 부족하다.
창안한 무공을 본 도천(刀天)의 평가였다.
팽무성도 똑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지고 있었다.
장서각에서 본 비급으로 팽가 무공의 정수가 더해지니 수련을 할 때마다 무공의 부족한 점이 채워지고 깊이가 깊어지고 있었다. 전생에서는 안 보이던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 정도가 최선인가.”
팽무성은 쥐고 있는 도를 보며 고민했다.
지금은 철혈맹호도가 하북팽가의 도법 중 제일이라고 자신했다.
혼원벽력신공과 짝을 이루는 도법.
혼원벽력도.
본래는 초대 가주가 창안한 팽가 최강의 도법이자 팽가를 오대세가로 이끌어 준 도법이다.
하지만 지금은 빛바랜 살구에 불과하다.
난해한 도법인 만큼 심득과 초식이 세대를 거치면서 조금씩 실전된 것이다.
‘이것도 언젠가 해결해야 하는데.’
다만 혼원벽력도보다 급한 문제가 많았다.
팽무성은 도를 갈무리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턱선을 따라 흐르는 땀을 훔쳤다.
해가 뜨기 전부터 도를 잡기 시작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도를 휘둘렀더니 해가 모습을 감추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내일은 그 날이군요.”
수련을 끝낸 팽무성에게 철호가 걸어오며 말했다. 팽무성은 덤덤한 반응이었다.
“뭐 특별한 날이라고.”
팽무성은 평소와 같이 저녁을 먹은 다음에 권장법을 수련할 생각이었다.
* * *
해가 중천에 떴다.
하북팽가의 사공자가 머무는 사주각은 여느 때와 같이 조용했다.
평소와 같지만, 전각 앞에 서 있는 가월은 살짝 씁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뭐랬어, 큰 기대하지 말랬지.”
“공자님.”
“됐어, 들어가자. 식겠다.”
다시 전각으로 들어가는 팽무성.
가월은 한숨을 내뱉으며 다시 시선을 돌렸다. 혹시 누군가 오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올해는 한 분도 안 오시네.”
오늘은 사공자의 생일이었다.
본가에서 팽무성의 생일을 챙기지 않은 것은 오래된 일이다. 어릴 적의 팽무성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사주각에서 생일을 조촐하게 축하하고 손님을 받았지만 해가 갈수록 손님과 선물의 수는 확 줄어들었다.
“가월아.”
전각 안에서 다시 들려오는 팽무성의 목소리에 가월은 결국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전각 안은 갖가지 음식의 향으로 가득했다. 생일을 맞아 모두 가월이 새벽부터 준비한 것들이었다.
생일을 축하하러 오실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 양도 푸짐하게 했지만 아무도 방문하지 않았다.
결국, 십여 가지 음식이 놓인 탁자에는 팽무성과 철호, 가월. 이렇게 세 사람이 앉았다.
“가월아, 새벽부터 고생했다. 고맙다.”
“가월이 오늘 제대로 힘을 쏟았군요.”
맛있게 먹는 두 사람을 보며 가월도 결국은 웃음을 지었다.
“많이 드세요. 공자님. 철 호위도요.”
음식을 먹던 팽무성이 가월을 힐끗 봤다.
웃으며 식사하고 있지만 한편에 그늘이 져 있었다.
“가월아, 아직도 마음이 쓰이는 거냐.”
팽무성의 말에 가월은 속내를 들켜 얼굴이 붉어졌다.
“죄송해요. 공자님. 저도 속상해서요.”
“나는 신경 쓰지 않으니 너도 크게 마음에 두지 마라.”
“네. 공자님.”
팽무성은 가월과 철호를 보더니 말했다.
“십 년.”
갑작스러운 말에 가월과 철호는 그저 팽무성을 바라보기만 했다.
“십 년 뒤의 내 생일에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하는 장소, 손님의 수, 선물, 여러 가지가 말이다.”
팽무성의 말을 듣던 가월의 얼굴이 밝아졌다. 반면 철호는 사뭇 진지하게 팽무성을 바라보았다.
사공자가 한 말이 훗날에 생일잔치를 크게 벌인다는 뜻이 아니었으니까.
단순히 낙담하는 가월을 위로하기 위한 한 말이 아닌 스스로 다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이에요. 공자님.”
가월은 씩씩하게 말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서로 힘내자.”
팽무성은 술병을 기울여 가월과 철호의 잔을 채워주었다.
챙
술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조용히 들렸다.
* * *
“다녀왔습니다.”
“그래, 어떻더냐?”
“이번에 찾아온 손님은 없었습니다. 그냥 철 호위와 시비와 함께 조용히 자축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한심하긴.”
수하의 보고를 듣던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내는 탁자에 놓인 상자를 들었다.
상자를 보는 사내의 입꼬리는 올라갔다.
“불쌍한 막내에게 선물을 주러 가볼까.”
격렬한 생일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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