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Habukpanga RAW novel - Chapter (41)
40화
팽무성은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며 벽을 더듬었다.
구르릉
일정 순서로 벽에 튀어나온 돌출부를 밀어 넣자, 마교가 사용했던 비밀통로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팽 시주, 직접 보니 신기하네.”
아무도 모르는 사실을 꿰뚫어 보는 팽무성에 일행은 일동 놀랄 수밖에 없었다.
“팽 오라버니, 어떻게 아신 거예요?”
“흑상의 경매에서 얻은 장보도 조각 덕분이야.”
흑상은 장보도의 뒷면을 무공 구결로 예상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실상 장보도의 뒷면은 비밀통로가 기록되었으며, 뒤에 적힌 구결도 보물을 찾기 위한 단서에 불과했다.
전생의 무신총은 세 개의 광장은 물론이고 각 통로에도 시체들이 가득했다.
그 어마어마한 수의 시체를 그대로 두면 역병이 돌 확률이 높았기에 황보세가를 주축으로 각 문파에서 지원을 보내어 이 무신총을 정리했었다.
그 과정에서 비밀통로가 발견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었다. 모두 밖으로 드러난 구결에만 집중한 탓이었다.
장보도 사본의 비밀을 뒤늦게 알게 된 무림맹이 나중에서야 다시 비밀통로를 찾았지만 숨겨진 보물은 마교가 찾아서 가져간지 오래였다.
시간이 지나자 다시 벽이 이동하여 팽무성이 연 비밀통로는 은밀히 자취를 감추었다.
다른 곳과 달리 비밀통로는 기관이 설치되지 않아 편한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팽무성을 필두로 몇 번이나 꺾인 길을 쭉 나아가자 머지않아 작은 석실이 나타났다.
“놀랍네.”
석실 안에 들어선 팽무성 일행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사면의 벽은 물론이고 천장과 바닥까지 빼곡한 글씨가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검이나 도 같은 것으로 아로새겼음을 알 수 있었다.
“팽 오라버니. 이것은 무공 구결인가요?”
“자네가 찾고자 했던 것이 이것인가.”
당화련이나 남궁혁의 말처럼 장보도 조각이 없는 마교 역시 이 석실에 새겨진 구결 자체가 무신이 남긴 무공으로 알 터였다.
추측하건데, 진짜는 발밑에 숨겨져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겉으로 이 드러난 구결들을 종이에 옮겨적기 바빴을 것이다.
아마 구결을 제대로 연구하고 나서야 알게 될 것이다.
석벽에 새겨진 구결들은 수백 가지 시의 구절을 마구 섞어놓은 것임을 말이다.
“아닙니다.”
남궁혁의 물음에 팽무성은 고개를 저으며 품속에서 장보도 조각을 꺼냈다.
제갈문산이 도해를 완전히 해석하자 미리 챙겨놨었다. 바로 지금을 위해서.
“이 구결이 적힌 곳을 찾아야 합니다.”
팽무성이 장보도를 내밀자 일행들은 옹기종기 모여 구결을 확인하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석벽에 새긴 글자의 크기가 일반 서책의 필체보다 작기에 일행들은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석벽을 살피면서 팽무성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척 보기에 비밀통로의 벽을 이루는 석재는 다른 통로에 비해 훨씬 견고해 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작고 세밀하게, 쉬지 않고 연달아 글씨를 남겼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거기다 글씨가 이리 깊게 새겨졌는데 주변에는 실금조차 그어지지 않았다.
생각하는 그대로 자유롭게 병장기를 다룰 수 있는 경지였을 것이다.
‘도왕의 시절로 돌아가도 이와 똑같이 글씨를 남길 수 있을까.’
잠시 상상하던 팽무성은 고개를 저었다.
‘직접 마주하지 않아도 그 차이가 느껴지는구나.’
새겨진 글자를 더듬으며 천천히 내려가던 팽무성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장보도 뒤쪽에 있는 구결과 똑같은 구결을 드디어 발견해냈다.
팽무성은 장보도의 구결이 적힌 부분을 정확히 손바닥으로 밀었다.
그러나 벽이 어떠한 미동조차 없자 팽무성은 내공을 불어넣기로 했다.
내공을 운용하며 이를 악물자 팽무성의 상완의 근육이 부풀었다.
그르릉
구결이 적힌 부분이 정확하게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자 작은 울림과 함께 바닥이 열렸다.
암중에 가린 공간이 팽무성의 앞에 드러났다.
그러자 그 안으로 어느 목함 하나가 눈에 띄었다.
뒤이어 석실 안쪽의 벽도 양쪽으로 갈라졌는데 그 사이로 빛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아마 장보도에 기록되지 않은 숨겨진 출구로 보였다.
하지만 지금 출구에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생각보다 작네요. 뭐가 들었을까요?”
“역시 비급이려나.”
팽무성이 목함을 꺼내자 열렸던 바닥은 다시 닫혔다.
목함의 뚜껑을 열어보니 네 권의 비급이 들어있었다.
검본결(劍本訣).
도본결(刀本訣).
권본결(拳本訣).
비본결(飛本訣).
각 비급의 제목을 본 팽무성 일행이 화등잔만 해졌다.
이 비급들은 세 번째 광장 너머에 있는 보물들과 짝을 이루고 있었다.
가 장로의 예상대로 무신총 세 번째 광장 너머에는 오방신병 중 네 개의 신병이 있었다.
청룡무허검(靑龍無虛劍).
백호탐천도(白虎眈天刀).
현무심권갑(玄武沈拳鉀).
주작오륜비(朱雀五輪飛).
그리고 현재 무천궁주에게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황룡신갑(黃龍神鉀)까지 무신이 생전에 사용하던 다섯 개의 신병을 무천궁에서는 오방신병(五方神兵)이라 묶어 불렀다.
“과연 우연일까요. 사람마다 딱 맞는 비급이 존재하네요.”
당화련의 중얼거림에 남궁혁과 무각도 신기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신의 입장에서는 세 번째 광장에 안배한 신병에 맞추어 비급을 남긴 것이겠지만 지금 팽무성 일행의 무공과도 딱 알맞게 일치하고 있었다.
일행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저마다 맞는 비급을 잡아서 펼쳐보았다.
뻔하게 무신의 무공이 남겨진 것은 아니었다. 무공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것.
팽무성이 보고 있는 도본결에는 무공의 종류라는 틀을 벗어난 도(刀) 그 자체에 대한 심오한 사색과 심득이 적혀 있었다.
몇 줄 짧게 읽는 것만으로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팽무성은 감탄했다.
비급을 통해서 무신과 도(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가르침을 받는 느낌이었다.
무공 비급이라기보다는 무신이 수련을 하면서 기록한 일지를 보는 것 같았다.
자신의 안배를 어떤 무인이 발견하던지 빛을 볼 수 있게 준비한 것 같았다.
도본결 말고도 세 권의 비급이 있으니 무신이 생전에 지녔던 무의 깊이에 경외가 일었다.
‘신병보다 가치 있는 것들이 여기에 있었구나.’
남궁혁은 검본결을 덮으며 살짝 떨린 목소리를 흘렸다.
“정말. 이것이 마교의 손에 들어갔다면 큰일이 날 뻔했구나.”
남궁혁의 말이 맞았다.
전생에서는 마교의 최고수들도 이 비급으로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 게 분명했다.
‘마교주. 너도 보았었더냐.’
“쉿.”
그 순간 무각이 웬일인지 먼저 입을 다물며 남궁혁과 팽무성을 조용히 시켰다.
당화련은 비본결을 보고 무슨 단초를 얻었는지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빠져있었다.
‘천만다행이네.’
만약 팽무성이 이 장보도 조각을 손에 넣지 못했다면 마교는 완벽한 장보도를 완성해서 이 석실의 비밀도 풀어냈을 것이다.
이 비급들마저 얻었으니 분명해졌다.
암마군을 잃었고 무신총의 보물을 얻지도 못했다. 무신총에 대한 마교의 계략은 완전히 실패했다.
* * *
반 각이라는 짧은 시간이 지나고 당화련은 명상에서 깨어났다. 눈에 보이는 성취는 아직 없었지만, 벽을 넘을 단초를 얻은 듯 개운한 미소를 보였다.
당화련이 눈을 뜨자 각자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일행들은 석실의 중앙으로 모였다.
“팽 아우, 이제 어찌할 계획인가. 아직도 입구에는 제법 많은 무림인이 진을 치고 있을 걸세.”
남궁혁은 무천궁이 보물을 들고나온 이후를 걱정했다.
“무천궁이 신병을 들고나오면 또 난리가 나겠네요.”
“또 한바탕 싸워야 하나?”
팽무성은 고개를 저었다.
전생에서도 두 곳의 출구가 발견되었다.
무신의 안배를 다 거두어가면 입구가 드러나게 설계된 것이었다.
게다가 세 번째 광장에는 기관뿐만 아니라 무신이 직접 설치한 진법도 있었다.
마교도 그 진법에 가로막혔지만, 해체할 시간이 부족하여 어쩔 수 없이 두 번째 광장에 암천비마진을 설치했을 것이다.
무천궁 측이 진법을 뚫기까지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그 전에 무림인을 흩어지게 하면 그만이었다.
“그쪽에도 이곳처럼 숨겨진 출구가 있을 겁니다. 장보도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뭐야, 그럼 첫 번째 광장에서 만났던 놈들은 그동안 뻘짓을 한 건가?”
“그런 셈이지, 장보도에는 출구가 전혀 그려지지 않았으니.”
출구는 왜 남기지 않았는지 연유를 모르겠지만 덕분에 팽무성 일행과 무천궁은 별다른 충돌 없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다만, 태산에 모인 무림인들을 언제까지 이렇게 모이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보물을 누가 가져갔음을 알면 자연스레 흩어질 겁니다.”
팽무성 일행은 갈라진 석벽 사이를 살폈다. 흙벽으로 막혀있었지만 군데군데 빛이 스며들어오고 있었다.
그리 두껍지 않고 밖과 통한다는 뜻이었다.
무각이 주먹으로 흙벽을 뚫어버리자 신선한 공기와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숨겨진 출구는 태산의 반대쪽 꼭대기에 있었다.
무신총의 입구가 있는 오송정이 태산의 중턱에 있었으니 제법 거리가 있었다.
이 정도라면 무림인의 주목을 받지 않고 태산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팽무성의 예상이 맞았다.
대부분의 무림인은 무신총의 입구를 뚫거나 그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덕분에 팽무성 일행은 별다른 충돌 없이 마을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다음은 간단했다.
마을에 대기하고 있는 백가회와 무림맹의 인원에게 무신총에서 물러나라는 정보를 전달하고 소문을 퍼트렸다.
누군가 보물을 손에 얻고 비밀통로로 이미 나갔다는 소문을.
반면 끝까지 소문을 믿지 않고 기어코 무너진 입구를 뚫어내고 무신총을 돌파한 이들도 있었다.
석실 끝에 출구를 발견하고 그제야 소문이 진실임을 눈으로 확인하자 무림인들은 하나둘 흩어지기 시작했다.
무림인들이 서서히 흩어질 무렵에 팽무성 일행은 이미 황보세가에 도착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에 팽무성의 앞으로 서신 하나가 도착했다.
“가월이 보냈네.”
팽무성은 가월이 보낸 서신을 펴보았다.
정기적으로 보내는 서신인가 했지만, 아니었다.
웃음기를 머금던 팽무성의 입은 굳게 닫혀있었다.
-대공자의 행동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팽무성은 서신을 삼매진화로 태워버렸다.
“본가로 돌아가야겠구나.”
* * *
서신이 오고 이틀이 지나자 팽무성 일행은 제남에서 헤어져야 했다.
본가로 돌아가는 각기 방향이 달랐던 탓이었다.
“아우들아, 다들 조심히 가거라.”
“형님도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가끔 서신 좀 보내주세요. 답장해드릴게요.”
“다음에는 새롭게 만든 곡차를 다 같이 마시자고.”
모두 아쉬움이 있었으나 아예 헤어지는 것이 아니었기에 다음 만남을 고대하며 헤어졌다.
“다음에 만날 때는 더욱 강해지겠네.”
저 세 사람이 각자 바로 돌아가는 것은 무신총에서 얻은 비급으로 수련에 전념하기 위한 이유가 컸을 것이다.
확실히 여러 기연이 겹치고 겹쳐 팽무성 일행은 전생보다 훨씬 더 빠르게 강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마교의 계략을 막고 무림인들의 피해를 현저하게 줄였으니 이도 만족스러운 성과였다.
조금씩 바뀌는 한 걸음이 쌓이고 쌓여 전생과는 아예 다른 종착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팽무성은 하북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 또 새롭게 바뀌는 한 걸음을 밟으려고 하고 있었다.
* * *
며칠 만에 팽가로 도착한 팽무성은 바로 팽연후에게 복귀 소식을 알렸다.
공식적인 협호행의 복귀였다.
아직 몇 달의 기한이 남아있었지만 팽무성이 협호행으로 이룬 결과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형님께서는 주화입마의 치료에 전념하고 계신다. 바로 사주각으로 돌아가서 쉬면 된다.”
“알겠습니다.”
사주각으로 돌아가는 길에 몇몇 가솔들과 마주쳤다.
“사공자. 오랜만에 뵙습니다. 패호도라는 별호 축하드립니다.”
“이제 팽가의 어엿한 무인이 되셨습니다.”
“언제 한번 가솔들에게 협호행의 얘기 좀 들려주시죠.”
대체적으로 팽무성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팽무성은 협호행을 떠나기 전과 달리 높아진 자신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사주각에 점점 가까워지자 팽무성의 걸음도 빨라졌다.
채챙
“하압!”
“좀 더 발을 벌려!”
언제나 고요했던 사주각이었다.
그런데 담장 너머로 여러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팽무성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주각 앞의 연무장에서는 열 명이 넘는 사내들이 웃통을 벗고 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저들끼리 비무를 하는 사내들도 있었고 개인 수련을 하는 사내들도 있었다.
그리고 연무장 전체를 돌며 사내들을 봐주는 이가 있었다.
“팔꿈치를 곧게 펴고 하단에 무게를 실어야 한다.”
사내의 자세를 지적해주던 철호는 누군가의 눈길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철호는 고개를 돌린 모습 그대로 멈춰서 팽무성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바위처럼 흔들림 없는 그 눈빛이 요동치는 것을 처음 보니 괜히 팽무성도 머리를 긁적였다. 그 묵직했던 철호가 저런 극적인 반응을 보이니 언제나 덤덤한 편인 팽무성조차 살짝 어색해진 탓이었다.
“내가 돌아왔다. 철 호위.”
팽가 복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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